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205화 (205/332)

# 205

205. 죽음의 무게(1)

“공포라고?”

세한의 말에 니알라토텝은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공포라. 그 감정에 대해선 아주 잘 안다.

인간들이 크툴루의 존재를 볼 때면 매번 보이던 감정이었으니까.

단순히 겁에 질리는 것.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만용을 부리는 것.

정신을 잃고 미쳐버리는 것.

수없이 많은 공포의 형상을 보았다.

니알라토텝이 인간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그런 인간의 모습이 무척이나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접 느껴본 적은 없었다.

그야 그럴 일이 없었으니까.

“너는 역시 내가 본 인간 중에 가장 오만하구나.”

“분에 넘치는 선물을 받았으니, 그에 걸맞은 일을 해야 되지 않겠냐?”

자신만만한 세한의 얼굴을 니알라토텝에게 무척 생소한 모습이었다.

감히 어떤 인간이 자신의 앞에서 저럴 수 있단 말인가.

‘더 이상 힘을 아껴두는 짓을 할 수 없겠군.’

방금 전이었다면 세한의 몸에 상처를 입히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물러났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녀석의 오른팔에 착용된 ‘쇳덩이’를 반드시 차지해야만 했다.

필경 저것은 자신들에게 큰 위협이 될 테니까.

‘어리석은 이드라. 너는 정말 인간에게 미쳐 있었구나.’

신이 아닌 인간을 위해 저런 것을 만들다니.

니알라토텝은 가슴속에 피어나는 분노조차 잊은 채 자세를 가다듬었다.

세한의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힘은 현재의 자신보다 우위에 있었다.

“더 이상 이 게임에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르겠어.”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였다.

본신의 힘을 끌고 오는 것. 시스템의 법칙을 벗어난 일인지라 되도록 피해왔지만 이젠 그런 것 따위는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우득, 우드드득!!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울리며 니알라토텝의 옷이 찢겨졌다.

근육이 부풀어오르며 점차 거대한 살덩이가 되어 점차 커져가기 시작했다.

쿵! 쿵! 쿵!

등에 튀어나와있던 촉수들은 지면에 하나씩 박혔고, 꿈틀거리던 살덩이는 공중에 떠오르며 부피를 확장시켰다.

「자랑해도 좋다.」

여태까지 억눌러졌던 신격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이드라가 만들어낸 환상 속 대지를 파괴시켰다.

「너는 나의 본 모습을 본 최초의 인간이니까.」

지면에 박혀 있던 촉수가 꿈틀거리자 새까만 연기가 치솟으며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흔들렸다.

하늘을 향해 치솟았던 산맥이 붕괴되며 세한을 노리고 뻗어졌다.

‘아직 완전히 해방된 건 아니야.’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촉수를 보며 세한은 허리를 숙였다.

동시에 궁기의 날개를 펼치며 전속력으로 날아올랐다.

하늘에 떠 있는 거대한 살덩이에는 수많은 눈들이 빼곡하게 박혀 깜박이고 있었다.

‘이 정도면, 평범한 최상급 신격이 신이다.’

말이 평범한 최상급 신격의 신이지.

간단히 말해 어릿광대나 모리안과 비슷한 급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건 니알라토텝이 발휘할 수 있는 전력도 아니었다.

만약 이드라의 백업이 없었다면 지금의 니알라토텝에게 순식간에 당하고 말았으리라.

거기다 이드라의 백업도 무한할 리 없었다.

아까 봤던 만신창이와도 같은 모습을 생각하면 온힘을 쥐어짜서 자신을 도운 게 분명했다.

그러니 단숨에 끝냈다.

「길게 끌지 않으마.」

“그건 나도 공감이다.”

니알라토텝의 전신에 박혀 있는 눈동자가 일제히 세한을 향했다.

거대한 육신에 빼곡하게 박혀있는 수만 개의 눈동자에 자색의 빛나기 시작했다.

피피피핑!!

가는 실처럼 얇은 보라색 빛이 니알라토텝의 눈에서 쏘아졌다.

부드러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는 빛을 피해 세한은 날개를 펼치고 날아올랐다.

콰콰쾅!!

환상으로 만들어진 산맥이 붕괴했고, 지면으로 떨어지던 빛줄기는 궤도를 수정하며 공중으로 날아간 세한의 뒤를 쫓았다.

‘뭔 말도 안 되는……!!’

물리법칙조차 벗어난 모습에 혀를 내두르며 계속해서 방향을 틀어 회피한다.

빗나간 빛은 주변의 사물들을 산산조각 내며 눈이 멀 것 같은 빛을 명멸한다.

「──!」

빛줄기를 피하며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모습에 니알라토텝의 거대한 육신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빛줄기는 물론, 수많은 촉수가 세한을 덮쳐왔고 거기에 검은 구술들이 다섯 개씩 무리지어 회전하며 하늘에 떠올랐다.

‘미친놈이!’

아마 이곳이 이드라가 만든 환상이 아니었다면 대체 어떻게 됐을까.

르뤼에가 박살 나는 건 당연했고,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나라인 미국까지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거기까지다!」

니알라토텝의 외침이 들리는 동시에 세안의 한쪽 날개가 뒤틀렸다.

하늘에 떠 있는 구슬들은 빠르게 날아다니며 그 아래에 있는 걸 모조리 짓누르기 시작했다.

세한은 빛줄기와 촉수를 피하며 비행했지만, 모든 걸 피할 수는 없었다.

아주 잠깐, 궁기의 날개를 스쳐지나간 것만으로 한쪽 날개가 뒤틀리며 쓸 수 없게 되었다.

한쪽 날개를 잃은 세한의 몸이 추락했고, 그런 그를 향해 무수한 촉수가 사방에서 덮쳐왔다.

“프라가라흐!”

허수공간이 열리며 거센 충격파가 일어났다.

음속을 넘어 날아간 프라가라흐가 세한의 뒤를 좇아오던 촉수들을 절단하며 세한의 근처로 날아왔다.

콱!

세한이 떨어지는 속도에 맞춰 느려진 프라가라흐를 손에 쥐고 세한은 재차 니알라토텝을 향해 날아갔다.

방금 전보다 배는 빠른 속도였다.

프라가라흐에 매달려 날아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양팔에 무리가 가기 시작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하늘에 떠있는 니알라토텝에게 접근하려면 이 방법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질긴 놈!’

점차 가까워지는 세한의 모습에 니알라토텝은 조금씩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정말로 자신을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건가?

그런 작은 금속덩어리로 정녕 이 거대한 육신을 쓰러트릴 수 있으리라 믿는 건가?

건방지다.

이 몸은 기어오는 혼돈, 니알라토텝.

외우주의 전령이며 우둔한 아버지, 아자토스의 심복.

인간 따위가, 감히 도전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란 말이다.

머리가 뜨거워졌다.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저 작은 인간을 죽이고 싶었다.

니알라토텝은 그런 자신의 변화를 인지하지 못했다.

난생처음 생겨난 분노라는 감정에 먹혀 눈앞에 있는 존재만을 보고 있었으니까.

말하자면 그건 독이었다.

세한과 이드라의 모습을 보고, ‘호기심’이라는 감정에 휩쓸려 인간의 모습을 했을 때부터 생긴 호기심. 단순히 인간의 모습을 흉내낸 것이 아닌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를 느끼고자 했던 그의 행동이 독이 되어 돌아왔다.

이드라와는 정반대의 결과다.

그 사실은 니알라토텝도, 이드라도 알지 못했다.

콰차차창!!

세한의 주위로 수많은 허수공간이 열리며 넣어두었던 모든 무기, 광물, 소재가 쏟아지고 날아가며 니알라토텝의 촉수가 다가오는 걸 막았다.

쏟아지는 빛줄기는 세한의 몸 주위에 열리기 시작한 허수공간에 빨려들어가며 도리어 니알라토텝의 몸에 명중했다.

“차라리 인간 모습인 편이 귀찮을 뻔했네.”

「무슨 의미지?」

“힘은 강해졌지만, 패턴이 너무 단순하잖아.”

연기로 변해 덮쳐오는 촉수를 향해 허수공간을 열고 아흐리만의 악의를 방출했다.

그러자 연기로 변한 촉수까지 바스러지며 자취를 감췄다.

“단순히 힘으로 짓누르려는 상대를 꺾는 건 간단하거든.”

1회차의 세한은 약자의 입장인 경우가 많았다.

자신보다 강한 상대와 수없이 싸워왔고, 그런 그가 가장 손쉽게 상대할 수 있는 건 니알라토텝과 같은 이들이었다.

압도적인 힘을 이용해서 상대를 눌러버리는 놈들.

그들은 상대가 자신의 힘에 저항할 수 없으리라는 오만이 밑바닥으로 깔려 있었다.

만약 니알라토텝이 아자젤처럼 스스로의 강함을 알고, 영리하게 싸울 수 있었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니알라토텝은 단순했다.

강한 공격을 가하고, 그것이 막히면 더 강한 공격을 할 뿐이다.

그것에 맞부딪치거나 막으려고 한다면 니알라토텝의 의도대로 세한은 목숨을 잃을 것이다.

그러니 상대하지 않으면 된다.

공교롭게도 이드라에게 받은 전승스킬들은 그런 싸움에 아주 특화되어 있었다.

「그건…… 환상?」

니알라토텝을 향해 날아가던 세한의 모습이 흐릿해지며 점차 분열해가기 시작했다.

족히 수백 명이 될 때까지 분열한 세한은 사방으로 퍼져 니알라토텝의 공격을 피해 사방에서 덮쳐왔다.

‘고작 환상 따위에!’

이드라의 환상을 완벽히 사용하면 가까이에서 보더라도 실체가 느껴졌고 신조차 구분할 수 없었다. 마법으로 만들어내는 환상과는 급자체가 달랐다.

그렇다 해도 환상자체가 공격이 되는 건 아니다.

니알라토텝에게는 하등 쓸모도 없는 스킬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세한의 목적은 단지 니알라토텝에게 가까이 접근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렇다면 모든 환상을 파괴하면 그만이다!’

하늘에서 빛이, 중력이, 연기가. 그리고 공간이 열리며 튀어나오는 뱀의 머리들이 세한의 환상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여태 아껴두었던 신격까지 모조리 소모시키며 공격하기 시작하자 환영의 숫자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진짜 세한을 찾는데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거기 있었구나!」

다른 환영들과 다르게 유독 자신의 공격을 잘 피하는 환영을 발견한 니알라토텝은 그것을 향해 모든 공격을 집중시켰다.

아무리 놈이 대단하다고 한들, 모든 공간을 점하는 공격까지 피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사방에서 덮쳐오는 촉수에 다리를 잡히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빛의 궤적에 허리를 꿰뚫렸다.

비명을 지르는 세한을 향해 검은 구슬이 움직였고, 놈의 육신은 지상을 향해 떨어져 뭉개졌다.

「하, 하하하! 그래, 인간이란 고작 그 정도일 뿐이다.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결국 인간……!」

철컹.

「……?」

육신의 가까운 곳에서 낯선 소리가 들렸다.

방금 떨어진 세한을 향해 쏠려 있던 수많은 눈동자가 움직였다.

“이래서 쉽다는 거야. 힘에 취한 놈은 단순한 법이지.”

언제 다가왔는지 니알라토텝의 거대한 육신의 뒤에 세한이 오른팔을 겨누고 있었다.

태연하게 말한 것과 달리 그의 몸은 만신창이였다.

왼팔은 촉수에 뜯겨졌는지 검게 물들어 녹아내리고 있었고.

오른 다리는 뒤틀려 부러졌다.

복부에는 레이저가 관통했는지 새까맣게 타들어간 상처가 있었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처다.

“하지만 난 여러 가지 스킬들이 있거든.”

재생 스킬도 있고, 천살성 스킬도 지수에게 공유받고 있다.

죽지만 않는다면, 어떻게든 살아날 수 있었다.

「설마, 그걸 믿고 일부로 피하지 않은 건가?」

“그래.”

「자칫했으면 그대로 죽었을 텐데도?」

“그렇다니까.”

태연히 답하는 그의 모습에 니알라토텝은 혼란스러워졌다.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고통에 취약한지 그는 안다.

자칫했으면 허리나 팔이 아니라 머리가 파괴됐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세한은 피하지 않았다.

특별한 회피행동을 했다간 니알라토텝이 본체를 파악해 버렸을 테니까.

‘위험해.’

니알라토텝의 수많은 눈동자가 세한에게 향했다.

유일하게 무사하다고 할 수 있는 파일벙커가 장착된 오른팔.

그것이 니알라토텝의 몸에 차갑게 닿았다.

단순히 금속이 육신에 닿았기 때문이 아니다.

기이한 감정이 니알라토텝의 몸에 오한을 일으켰다.

수천 미터가 넘는 니알라토텝의 거대한 육신에 비하면, 세한은 너무나 작았다.

집중하지 않으면 그곳에 세한이 손을 대고 있다는 것조차 모를 정도였다.

“이제야 깨달은 모양이군.”

당장 세한을 떨쳐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어째서인지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촉수도, 검은 구슬도, 자신이 보유한 수많은 능력들을 사용할 수 없었다.

심지어 수많은 눈 중에 단 하나도 세한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철컥, 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파일벙커가 뒤로 당겨졌다.

“그게 바로, 공포다.”

모든 불멸자들이 그러하듯.

니알라토텝은 죽음의 공포라는 걸 알지 못했다.

알아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그런 건 미물들이나 느끼는 하찮은 것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지금 그는 ‘죽음’을 느꼈다.

죽음에서 솟아나는 공포를 깨달았다.

인간으로 치면 무거운 물건이 전신을 누르는 것 같았다.

눈 하나 깜박이는 것도, 숨을 쉬는 것도 어려웠다.

극심한 무력감에 육신이 떨리며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죽음이란, 그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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