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204화 (204/332)

# 204

204. 끝나지 않은 꿈(4)

이드라는 늘 궁금했다.

1회차의 자신은 어떻게 된 걸까.

몽상의 던전에서 보내진 1회차 이드라의 기억과, 세한으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들.

그것들을 들을 때면 의문은 점점 더 커져갔다.

‘내가 세한을 떠났단 말인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세한은 그렇게 말했다.

메인 퀘스트가 진행되어 인류가 멸망에 가까워졌을 때 이드라는 자신을 떠났다고.

처음에는 그 말도 이해할 수 있었다.

확실히 이드라, 자신은 인류를 사랑했다.

단순한 호기심이 아닌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며 이 게임에서 인류가 반드시 살아남기를 바랐다.

하지만 역시 이상했다.

세한이 인류를 구하지 못했다고 그를 떠났다니.

설령 자신이 세한에게 실망했다고 한들 떠나야 했을 이유는 되지 않는다.

하지만 1회차의 자신은 분명 세한을 떠났으며 그가 2회차 패키지로 회귀하던 순간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때 자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그 답을 며칠 전에 알 수 있었다.

의식이 시작되기 시작했을 때, 먼 곳에서 그것을 지켜보던 이드라는 하나의 신격을 느낄 수 있었다.

거대한 요그 소토스의 신격에 가려져 있는 너무나 익숙한 신격을.

그 신격은 아플 정도로 상냥하게 이드라의 전신을 훑으며 하나의 기억을 전달했다.

그것은 이드라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자신의 기억이었다.

「방법을 찾아야 해」

인류가 멸망으로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을 때, 이드라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대로라면 자신의 아바타는 죽게 될 것이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곳까지 와버린 이상 애초에 남은 방법은 몇 가지 없었고, 그중 생각한 건 바로 ‘과거로의 회귀’였다.

「요그 소토스의 힘을 사용하면 될지도 몰라」

요그 소토스는 모든 시공에 간섭할 수 있는 힘을 지녔다.

현재, 미래, 과거.

만약 요그 소토스의 힘을 사용한다면 과거로 회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기엔 크나큰 문제가 있었다.

요그 소토스가 이드라의 말에 따를 리가 없다는 점이다.

아무리 같은 아우터갓이라도 요그 소토스는 명백히 이드라보다 강한 신이었기에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만약 과거로 돌아가도 문제야」

분명 세한이 곧 도달하게 될 엔딩은 배드엔딩이 될 것이다.

그것을 해피엔딩으로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할 산이 있었다.

열쇠의 반쪽을 가진 거인왕 이미르.

놈은 아우터갓과 마찬가지로 죽음이란 개념이 없는 초월적인 존재다.

거기에 지구에 남아 있는 니알라토텝도 문제였다.

만약 미래가 바뀌게 되면 놈들이 그것을 모를 리가 없을 테고 필연적으로 세한과 부딪치게 되리라.

이드라는 그런 여러 가지 가정을 생각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는 과거로의 회귀가 불가능하다면 애초에 실현될 수 없는 문제였다. 인간의 수명은 짧고 남은 퀘스트도 몇 남지 않았으니 그 사이에 과거로 돌아갈 방법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그런 이드라의 고민은 아주 우습게도 해결되었다.

세한이 자신의 힘으로 회귀해 버린 것이다.

「저것이 세한이 지닌 특성이었구나.」

정확히 무슨 능력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세한이 특별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알았다.

이드라는 그의 신이었으며, 그의 모든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세한에게 일어난 변화를 바로 알아차렸다.

1회차가 아닌 2회차.

즉, 세한은 새로운 세계로 도약해서 나아간 것이다.

「마지막 인사를 못 했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정보를 찾고 여러 가지 방법을 궁리하다보니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이미 이 세상에서 사라진, 빈껍데기에 불과한 세한의 시체를 바라보며 이드라는 걱정을 떨칠 수 없었다.

과거로 회귀해서 이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

이미르를 쓰러트릴 수 있나?

열쇠는 어떻게 사용하려는 거지?

그 답은 어렵지 않았다.

「내가 하면 돼.」

이미 세한이 과거로 간 시점에서 시간제한은 사라졌다.

이드라에겐 무한한 시간이 있었고, 방법만 찾아내어 과거로 전달하면 된다.

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언제나 그가 말하지 않았던가, 인내심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수십, 수백, 수천, 수억.

인간이 상상도 못할 긴 시간이 흐를 동안 이드라는 자신의 둥지에 틀어박혀 힘을 모았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불멸자── 아우터갓을 죽일 방법을 연구했다.

억겁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을 때, 이드라는 하나의 물건을 만들 수 있었다.

그건 아무리 긴 시간이 지났어도 잊혀 지지 않은 물건이었다.

세한이 가장 처음 만들고 애용했던 무기.

그것에 이드라는 하나의 힘을 부여할 수 있었다.

그 하나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시간이 흘렀고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고 숭배하던 이들은 모두 사라졌다.

「이제 마지막이야」

자신이 만든 것을 과거로 전달한다.

이미 멸망해 사라진 과거의 지구로, 수십억 년 전의 세계에 보내면 된다.

그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 답은 이미 오래 전에 생각해둔 상태였다.

「요그 소토스」

그렇게 이드라는 온 시공을 지배하는 전능한 신에게 도전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바로 눈앞에 있었다.

“설마, 그럴 리가.”

니알라토텝은 스스로가 이렇게 당황할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깨달았다.

이드라가 이야기한 이젠 존재하지 않는 과거.

세한이 회귀하며 사라졌다고 생각한 또 다른 세계의 이야기를 들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과거는 사라진 게 아니다. 단지 과거로 회귀하며 새로운 분기점이 생겨났지. ‘나’는 그 분기점을 넘어 이 시공으로 넘어온 것이다. 무려, 요그 소토스를 쓰러트리고.”

물론 요그 소토스가 죽은 건 아니다.

존재는 부서져 사라졌지만 그 힘은 남아있었고 시일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부활하리라.

1회차의 이드라도 마찬가지다.

아마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다. 요그 소토스와의 싸움은 치열했고 본인의 존재에도 큰 타격을 받았다. 어쩌면 요그 소토스보다 더.

신으로서의 한계를 아득히 넘은 상태였기에, 어쩌면 우주가 끝나는 날까지 회복할 수 없을지 모르지.

단순히 상처를 입어서가 아닌, 요그 소토스를 쓰러트리기 위해 자신의 힘을 지나치게 사용했기 때문이다.

영원히 눈을 뜨지 못하는 잠이란, 죽음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드라는 본인이기에 그 사실을 더욱더 잘 알 수 있었다.

“그런, 그럴 리가 없다! 아무리 너라도 요그 소토스를 어떻게……!”

쿠웅!!

하늘에서 거대한 고깃덩어리가 떨어지며 니알라토텝을 깔아뭉갰다.

마치 방해하게 둘 수 없다는 듯이.

“────.”

갈라진 하늘에서 옅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마 1회차의 이드라가 내는 소리겠지. 세한은 녀석이 무슨 말을 하는지 조금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있었다.

“이드라.”

작은 중얼거림에 1회차의 이드라는 기쁜 듯 눈을 깜박였다.

그러고 보면 1회차에서는 이렇게 이름으로 부른 적이 거의 없었지.

“────.”

균열에서 완전히 몸을 꺼내지 않고, 그녀는 가느다란 촉수 같은 고깃덩어리를 나를 향해 내려 보냈다. 상처투성이인 그것을 세한은 조심스럽게 만졌다.

이드라는 언제나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만을 세한에게 보였다.

크툴루 신의 모습은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 평범한 인간을 미치게 만들 정도로 끔찍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모습만이 아니라 언어도 지구의 것으로만 대화하곤 했다.

그러니 세한이 이드라의 본 모습을 본 것은 지금이 처음이었다.

아마, 지금의 그녀는 인간의 형태를 한 환상을 만들 수 없을 정도로 나약해진 걸 테지.

요그 소토스를 쓰러트리는 건 아무리 이드라라도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스르륵.

그때, 가느다란 촉수가 풀리며 안에 묻혀있던 은색의 기둥이 모습을 드러냈다.

끝은 뾰족하며, 적당한 굵기를 가진 금속기둥.

“파일벙커…….”

세한이 가장 처음에 만들었던 무기이자, 자주 애용하는 물건.

이것은 분명 파일벙커에 쓰이는 금속 기둥이었다.

“그건 단순한 금속덩어리가 아니다.”

이드라는 세한의 양손에 쥐어진 금속 기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죽음’을 부여할 수 있는 말뚝이지.”

“죽음을 부여한다고?”

“그래, 너도 알다시피 니알라토텝과 같은 존재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죽일 수 없다. 본인의 힘이 남아 있다면 얼마든지 금방 되살아나곤 해.”

잘 아는 사실이다.

당장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니알라토텝이 그것을 이용해 자신을 죽이려했으니까.

“한마디로 이건…….”

세한은 이드라가 말하는 바를 바로 깨달았다.

“우리의 죽음이라 할 수 있지.”

이드라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과연 ‘이드라’란 존재는 저것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을 했을까.

자신은, 이드라는 줄곧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지금, 끝나지 않은 꿈을 이렇게 손에 쥐는 순간까지.

이건 정말, 집착이 심하다는 말 정도로 정의할 수 없잖은가.

“그러니 보여 주거라.”

콰직, 콰지직!

이드라는 세한의 등 뒤를 바라보았다.

거대한 고깃덩어리에 깔려있던 니알라토텝이 그것을 찢어발기며 기어 나오고 있었다.

“신을 죽이는 것을.”

거미의 다리처럼 갈라진 여덟 갈래의 촉수가 니알라토텝의 등에서 뿜어져 나왔다.

자신의 몸을 깔아뭉갠 고깃덩어리를 찢어발기며 이드라의 앞에 서있는 세한을 향해 덤벼들었다.

“이드라──!!”

니알라토텝의 얼굴에는 조금 전과 같은 여유가 남아 있지 않았다.

이드라가 나타난 이후부터 당황하던 그는 필사적으로 세한을 노리며 달려들었다.

분명 느낀 것이다.

세한이 들고 있는 그다지 크지 않은 은색의 기둥.

거대한 몸집을 지닌 크툴루의 신들에게는 바늘보다도 가는 쇳덩이에 불과했지만 저것에 찔리게 된다면 자신들조차 위험하다는 것을.

평소의 니알라토텝이라면 이곳에서 물러났어야만 했다.

하지만 갑작스런 상황에 그는 제대로 생각할 수 없었다.

요그 소토스가 일시적으로 소멸했으며, 의식에서는 1회차의 이드라가 나타났다.

그것도 말도 안 되는 물건을 가지고.

이미 니알라토텝에게 침착함이란 남아 있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그런 니알라토텝의 모습은 마치 인간과 닮아 있었다.

콰콰콰콰!!

여덟 갈래의 촉수는 방금 전은 마치 장난이었던 것처럼 무차별적으로 주변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그 길이도 수십, 수백 미터를 넘게 성장하며 피해를 확산시켰다.

‘이제 어떡한다,’

세한은 들고 있던 금속 기둥을 허수공간에 던져 넣으며 니알라토텝의 촉수를 피했다.

속도도 전보다 빨라졌고 담겨있는 힘도 훨씬 강해졌다.

아마 본인의 신격을 한계까지 사용하기 시작한 모양이다.

‘이대로라면 이수린은 물론, 르뤼에에 있는 다른 플레이어들에게까지 피해가 미칠 거야.’

약이 바짝 오른 니알라토텝의 눈에는 오직 세한만이 비치고 있었다.

그때였다.

균열 안에서 이쪽을 바라보던 거대한 눈동자가 반짝인 것은.

“이건!”

이드라의 신격이 주변을 넘실거리며 공간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환상으로 덮여 하나의 새로운 세계로서 구성됐다.

쿠구궁!!

지면이 솟아오르며 마치 작은 산맥이 만들어졌고, 오직 세한과 니알라토텝만을 위한 새로운 대지가 창조된다.

물론 진짜는 아니다.

이건 모두 환상.

세한도 이미 몇 번 사용했던 전승 스킬이었다.

상대를 자신이 다룰 수 있는 환상 속에 집어넣는 기술이며 아바돈에게도 한번 사용한 적이 있었다. 다만 상성 빨로 어떻게든 집어넣을 수 있었던 아바돈과 달리 니알라토텝은 격이 너무 높아 사용할 수 없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도 1회차의 이드라에겐 하등 문제가 없었다.

‘근데 뭔가 이상한데?’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드라가 만든 환상 속에는 그녀의 신격이 가득 차 있었고, 그 힘들은 놀랍게도 세한의 신격에 더해지고 있었다.

‘그런가.’

2회차의 세한은 신의 아바타가 아니다.

하지만 1회차의 이드라는 그를 자신의 아바타로서 여전히 인식하고 있었다.

1회차의 세한과, 2회차의 세한의 힘이 완벽하게 합쳐진 순간이었다.

거기에 세한은 여태 아껴두었던 스킬을 사용했다.

「초월의 증명」

신을 상대할 때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는 스킬.

이드라의 신격과 나의 신격이 전신에 격류가 되어 몰아쳤고, 내 오른쪽 금안은 한층 강렬한 빛을 머금었다.

이것이 현재 사용할 수 있는 전력(全力)이었다.

“이드라, 대체 넌 뭘 만든 것이냐!”

니알라토텝의 격한 외침이 들렸지만 그의 목소리가 이드라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이 세계에 남아있는 생명체는 단둘뿐이었으니까.

‘도움을 너무 많이 받았는걸.’

신을 죽일 수 있는 무기를 받았고, 싸울 수 있는 공간마저 만들어줬다.

이렇게까지 해줬는데 받아먹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병신이었다.

“니알라토텝.”

세한은 조용히 그를 불렀다.

오른팔에 파일벙커를 착용하면서.

이드라의 이름을 부르짖던 그의 시선이 세한에게로 향했다.

그의 눈에 떠오른 선명한 당혹감에 세한은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너 이제야 조금 인간다운 모습을 하네. 마음에 들어.”

“네놈!”

노여워하는 니알라토텝의 모습은 이전과 전혀 달랐다.

언제나 무미건조하던 이전과 달리 몇 개나 되는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지금 네가 배운 감정이 몇 개냐? 꽤 많은 것 같은데.”

“……무슨 의미지?”

“아니, 그냥.”

철컹.

기존에 시우가 만들어준 금속 기둥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세한은 그곳에 이드라가 넘겨준 금속 기둥을 천천히 끼워 넣었다.

“알려주고 싶어서.”

니알라토텝의 시선이 세한의 오른팔로 향했다.

여태까지와 달리 그의 손에는 죽음이 들려있었다.

“공포라는 감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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