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3
203. 끝나지 않은 꿈(3)
콰콰콰쾅!!
거대한 촉수가 대지를 부수며 세한을 짓뭉개기 위해 움직였다.
단순한 질량을 넘어, 니알라토텝의 신격이 담긴 촉수는 닿는 것만으로 생물의 형상을 흐트러트렸다.
고대의 사람들은 그런 니알라토텝의 촉수를 보며 혼돈이 마치 기어오는 것 같다, 라고 표현했다.
‘언제나 인간은 우리를 두려워했다.’
이드라는 거대한 촉수에 맞서는 세한을 바라보았다.
등 뒤에 열린 허수공간에서 프라가라흐가 날아가며 드릴처럼 회전했다.
맹렬하게 회전하는 프라가라흐와 격돌한 니알라토텝의 촉수는 원형으로 커다란 구멍이 생겼고, 세한은 그 구멍으로 뛰어들어 촉수를 피해냈다.
두려움 따위는 느껴지지 않는 용맹한 모습이었지만, 이드라는 알았다.
세한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게 아니다.
단지 그것을 뛰어넘는 의지가 있을 뿐.
그는 누구보다 크툴루의 신들이 가진 위험성을 알았다.
‘크툴루의 신들은 다른 신들과 다르니.’
보통의 신들은 숭배의 대상이다.
인간들의 막연한 희망을 상징하는 존재들이며, 그들이 살아가는데 도움을 주는 절대적인 존재들이다.
반면 크툴루의 신은 다르다.
다른 신들이 인간의 희망을 상징한다면 크툴루의 신은 절망이다.
인간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 알려주는 이들.
그런 괴물들을 숭배하는 인간도 존재하지만, 그것은 미래의 희망을 위해서가 아닌 모든 것의 파멸을 바라서인 경우가 많다.
크툴루의 신들은 모든 존재를 하찮게 보았고, 실제로 그들을 제외한 생명체는 먼지와도 같다.
훅 불면 바스러지는 나약한 존재들.
니알라토텝도 분명 여태까지 그렇게 생각했으리라.
‘너도 이제야 감정을 깨달았구나.’
세한과 싸우는 니알라토텝은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언제나 무미건조한 그답지 않은 얼굴이다.
그리고 그 미소 속에 숨겨진 초조함도, 그리고 감출 수 없는 분노도 이드라는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이제 조금이로군.’
하늘에 생긴 거대한 균열을 이드라는 그저 멍하니 응시했다.
먼 곳에서부터 느꼈지만, 가까이서 느끼니 더더욱 명확했다.
요그 소토스의 잔향에 섞여 있는 기운은 이드라에게 너무나 익숙한 것이었으니까.
‘나를 제외하면 아무도 모르겠지.’
세한도, 그리고 니알라토텝조차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것은 자신을 부르고 있었으니까.
그런 이드라의 생각처럼 세한은 균열에 대해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정확히는 신경 쓸 틈도 없었다.
“한 대만 맞아도 뒤지겠는데…….”
세한은 재차 이드라가 있는 방향을 힐끗 보았다.
몸을 숨기고 있는 탓에 뭘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최대한 떨어져야만 했다.
‘죽어도 살아나기야 하겠지만.’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균열을 막는 것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
그런 세한의 고민을 알 리가 없는 니알라토텝은 그가 자신의 앞에서 여유를 부린다고 생각했다.
감히 자신과 싸우는 와중에도 한눈을 팔다니!
“확실히 나는 인간을 너무 하찮게 본 것 같군.”
구멍이 뚫린 촉수를 빠르게 회수하며 더욱 많은 숫자의 촉수가 허공을 가르며 뻗어졌다.
세한은 인벤토리에서 두 자루의 검을 꺼내 양손에 쥐었다.
마치 비처럼 쏟아지는 촉수의 모습에 내심 혀를 내둘렀지만 피할 수는 없었다.
광범위로 쏟아지는 촉수를 피했다가는 자칫 이드라나 이수린에게도 피해를 미칠 수 있었다.
그러니 정면에서 받아내야만 했다.
‘결전의 시간!’
가장 처음 익혔던 스킬 중 하나.
순간적으로 몸을 가속시키고 주변의 사물을 느려진 시간 속에서 볼 수 있는 스킬.
까득!
양손에 쥔 검에서 마력이, 그리고 신력이 나선으로 회전했다.
동시에 세한의 양 눈이 각각 금색과 적색으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혈천수라공의 힘과 여태까지 쌓아온 신격이 전신을 타고 흐르며 보다 신체를 강화시켰다.
카카카카캉!!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정면으로 쏟아지는 촉수를 모조리 튕겨냈다.
위로, 아래로, 왼쪽과 오른쪽.
뒤통수와 등을 노리는 공격까지 회전하며 튕겨낸다.
“……!”
니알라토텝의 눈이 커졌다.
세한이 강해진 건 알았지만 설마 저 정도일 줄은 몰랐다.
폭우처럼 쏟아지는 촉수의 비를 가르며 세한의 발이 점차 앞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쿵!
니알라토텝의 양손에 특이한 모양의 지팡이가 각각 잡혔다.
그리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세한을 향해 느릿하게 겨눴다.
‘검은 파라오.’
세한의 붉은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검은 파라오는 니알라토텝이 지구에 현계할 때 나타내는 모습 중 하나다.
‘아바타(화신)’라고 부를 수 있으며 니알라토텝의 분체다.
“하긴 그 정도는 되어야 진천백을 이겼을 테지.”
니알라토텝의 작은 중얼거림과 함께 지팡이의 앞에 작은 구체가 생겨났다.
구체는 그리 빠르지 않은 속도로 날아가 세한의 머리위에서 멈췄다.
쿠구구궁!!
검은 구체는 세한의 머리 위에서 멈추자마자 크기가 단숨에 부풀어 올랐다.
‘공기가…….’
생각은 길지 않았다.
구체가 부풀어 오르는 동시에 세한은 앞으로 몸을 날렸다.
그건 정확한 판단이었다.
콰과광!!
방금 전까지 세한이 서있던 지면이 뭉개지며 가라앉았으니까.
‘중력을 증가시킨 건가?’
가만히 있었다면 그대로 쥐포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니알라토텝은 설마 그것을 피할 줄은 몰랐는지 눈썹이 꿈틀거렸고, 재차 양손에 쥔 지팡이를 움직여 대여섯 개의 구체를 세한을 향해 쏘았다.
하지만 혈천수라공의 보법과, 결전의 시간을 동시에 사용한 세한을 쫓기엔 구체의 속도는 지극히 느렸다.
‘어째서.’
니알라토텝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닿는 것만으로 생명체의 틀을 부수는 촉수를 쏘아냈지만 세한에게 통하지 않았다.
검은 파라오의 힘을 이용해서 짓누르려고 했지만 간단히 회피했다.
물론, 그게 이상한 건 아니다.
니알라토텝도 녀석이라면 그 정도는 하리라 생각했다.
단지 거슬리는 건 세한의 얼굴이었다.
‘겨우 이게 다인가?’
라는 얼굴.
“너……!”
속에서 무언가가 끓어올랐다.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로 일갈하려던 순간 세한의 검이 니알라토엡의 머리를 꿰뚫었다.
수라(修羅)
작은 점이 번쩍이며 금색과 적색, 두 개의 힘이 회전하며 뻗어졌다.
극한으로 응축되어 작은 점의 형상으로 뻗어진 빛줄기는 니알라토텝의 머리를 꿰뚫은 것으로 모자라 후방에 있던 딥원 도시의 건물들을 모조리 갈아버렸다.
‘성가신 놈.’
세한은 짧게 혀를 차며 뒤로 물러섰다.
머리에 구멍이 뚫린 니알라토텝의 몸이 뭉개지며 검은 연기로 변해 흩어졌다.
기어 다니는 안개, 그 역시 니알라토텝이 현계할 때 사용하는 화신체 중 하나였다.
“아무래도…….”
흩어졌던 안개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뭉치며 인간의 형상을 취했다.
미간에는 작은 핏방울이 흘러내렸다. 세한의 검을 완벽히 피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착각을 했던 모양이군.”
“착각?”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세한은 몸을 긴장시키며 니알라토텝을 응시했다.
녀석의 힘은 변칙적이며 터무니없는 것들이 많았지만 상대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었다.
방금 전에 사용한 힘들만으로 현재 사용할 수 있는 신격의 양이 줄어든 게 눈에 훤히 보일 정도다. 이대로 계속 싸운다면 니알라토텝을 르뤼에서 격퇴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신격을 가졌다고 해도 인간, 가볍게 밟아 죽이리라 생각했었다.”
“근데 예상보다 발버둥이 강해서 놀랐나 보네.”
“그게 아니다.”
녀석은 사방으로 뻗어졌던 촉수를 갈무리하며 자신의 발아래에 똬리를 틀었다.
“너를 죽일 방법을 바꿔야겠다는 거다.”
공허만이 보이는 니알라토텝의 눈 속에는 고요한 노여움이 잠들어 있었다.
처음과 크게 다르지 않은 눈이다.
인간을 죽이지 못했다는 당혹감은 여전했지만, 그건 처음과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이곳에서 너를 죽이려 했다. 하지만 지구에서 사용할 수 있는 내 힘으로는 너를 당장 죽이지는 못할 것 같군.”
“그래서, 얌전히 물러나시겠다?”
“아니, 목표를 바꾼다.”
녀석의 그제야 답을 찾았다는 듯 웃었다.
“이번에는…… 그래. 팔이나 손 하나 정도로 만족하마.”
“……뭐?”
“지금 내가 목숨을 바쳐 얻을 수 있는 건 그 정도일 것 같군. 너는 싸움에 익숙하고, 나는 인간의 모습으로 힘을 발휘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으니까. 첫 목표를 너무 높게 잡았던 모양이야.”
고요하게, 니알라토텝의 촉수가 세한을 향했다.
조금의 빈틈이라도 보이면 당장에라도 덮치려는 듯이.
“고로 르뤼에에서도 물러날 수밖에 없겠어. 나는 우선 한번 죽을 터이니.”
그렇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 아쉬움은 없었다.
하지만 세한은 그가 말하고자하는 바가 무엇인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미 이드라가 한번 보여주지 않았던가.
불멸자의 사냥방식을.
“나는 죽음이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곳에서 형태를 잃고 사라져도 금방 다시 되살아나지. 한번으로 안 된다면 몇 번이고 덤벼들면 된다. 수십, 수백, 수천, 수만. 과연 너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궁금하군.”
그들에게 패배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죽음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되살아나니 ‘죽음’이라는 말도 옳지 않다.
잠시 낮잠을 자고 일어나는 것처럼 니알라토텝은 세한을 죽일 때까지 몇 번이나 덤빌 것이다.
그 약해빠진 이드라가 수십, 수백 번을 죽어가면서 끝내 던전을 정복했던 것처럼 니알라토텝도 똑같은 방법으로 덤벼 오리라.
“다만.”
마치 삐에로의 얼굴처럼 니알라토텝의 입고리가 광대까지 치켜 올라갔다.
인간이 지을 수 없는 기괴한 웃음이 세한의 눈동자에 선명히 박혔다.
“모든 건 네가 살아남을 수 있을 때의 이야기지만.”
기기긱.
‘균열이!’
미세하게 갈라지던 균열이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있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요그 소토스가 소환될 게 분명했다.
‘이드라는 대체 뭘 하는 거지?’
정말 이대로 요그 소토스가 소환되는 걸 내버려두려는 걸까?
세한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드라를 믿는다고 해도 요그 소토스 같은 존재를 소환하게 내버려둬도 되는 건가 의문이 들었다.
“경계에 도사리는 자. 모든 시간과 공간, 어떤 곳에도 존재하는 신. 우둔한 아버지를 제외한다면 그를 막을 수 있는 자는 없지. 너는 이 상황에서도 저것이 소환되는 걸 막을 수 있는가?”
없다.
세한에게 요그 소토스가 소환되는 걸 막을 방법은 없었다.
점차 커지기 시작한 균열은 지구의 하늘 전체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직선으로 쭉 그어져, 마치 떠지기 전의 눈동자처럼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니알라토텝.”
그때였다.
여태 숨어 있던 이드라가 모습을 드러낸 것은.
“역시 너도 이곳에 있었군, 이드라. 아아, 과연 네가 있다면 저 균열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니알라토텝은 이드라를 보며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
설령 문을 닫게 된다고 해도 아쉬움 따위는 없는 것 같았다.
“샤이닝 트라페조헤드론을 사용한다면, 가능한 일이지. 다만 그렇게 된다면 너 역시 무사하지 않다는 걸 알 텐데?”
시스템실도 아닌 이곳에서 샤이닝 트라페조헤드론을 사용한다면 지금의 이드라로선 모든 걸 바쳐야 한다. 어쩌면 죽음, 아니 소멸에 가까운 타격을 받으리라.
설령 그렇게 된다고 해도 이드라라면 되살아나겠지만, 지금까지와 달리 수십, 수백 년의 시간이 흘러서야 되살아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현재 세한이 가진 모든 전승스킬은 봉인될 테고, 니알라토텝으로선 세한을 죽이기 쉬워지기 때문에 그렇게 나쁜 일도 아니었다.
옅은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는 니알라토텝을 향해 이드라는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닫지 않는다.”
“……음?”
“닫지 않는다고 했다.”
이드라의 눈에는 알 수 없는 감정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니알라토텝은 마치 인간과도 같다고 생각했다.
하찮은 주제에 너무나 복잡한 인간의 감정, 그것이 선명하게 나타나고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이 별과 함께 멸망할 생각이로군. 하긴 인간에게 지나치게 집착하는 면이 있으니 버리고 싶어질 때도 됐다고 생각했다. 나로선 조금 아쉬운 일이다만…….”
“아니다. 나는 이 별을 버리려는 게 아니야.”
“그럼 어쩌겠다는 거지? 소환된 요그 소토스를 쓰러트리겠다?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라. 같은 아우터갓이라고 요그 소토스의 힘은 우리와 전혀 다르다. 네가 그걸 모를 리 없을 텐데?”
그 말대로다.
요그 소토스는 이드라보다 상위의 존재다.
동등한 아우터갓이라는 위치에 있지만, 지닌 바 힘은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모든 시공을 아우르는 요그 소토스와 달리 이드라는 꿈과 환상을 다루는 마녀일 뿐이니.
“니알라토텝, 뭔가 이상하지 않느냐. 이미 의식은 끝났고 요그 소토스라면 저 정도 균열쯤은 가볍게 부수고 나와야했을 거다.”
“…….”
그제야 니알라토텝은 균열을 보았다.
하늘은 언제라도 부서질 것처럼 거미줄처럼 갈라져 있었다.
이드라의 말처럼 요그 소토스라면 이미 모습을 드러냈어야 한다.
‘그렇다면, 요그 소토스가 아닌 다른 존재가 소환됐다는 건가?’
설마 그럴 리가.
바르자이의 언월도와 네크로노미콘을 사용해 시공의 좌표를 찾았다.
경계의 도사리는 자가 아니라면 그 좌표를 쫓아 움직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설령 다른 존재가 찾았다고 해도 요그 소토스는 ‘문지기’다.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시공의 균열에 접근하면 용서 없이 소멸시키리라.
“정말이지 우스워…….”
이드라는 자조하며 이쪽을 조용히 지켜보는 세한을 바라보았다.
요그 소토스가 언제 소환될지 모르니 그의 낯빛은 무척이나 창백했다.
하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눈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이드라를 믿고 있었다.
그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그녀는 알고 있었다.
“니알라토텝, 그거 아느냐? 아무래도 나는 생각보다 집착이 심한 모양이다.”
“집착이라니?”
“이래서야 앞으로는 그 계집아이에게 함부로 집착하지 말라고 지적할 수 없겠구나.”
천천히, 이드라의 손이 하늘로 향했다.
마치 하늘을 손에 쥐려는 것처럼 활짝 펼친 손바닥을 느릿하게 구부렸다.
콰차차차창!!
하늘이 부서졌다.
새까만 어둠만이 있으리라 생각했던 균열에서 무수한 빛줄기가 쏟아지며 어두워지던 세상을 밝혔다.
아마 르뤼에만이 아닌 전세계에 있는 모든 사람이 이 광경을 보고 있을 것이다.
‘어디 있지?’
별똥별처럼 쏟아지는 빛줄기를 바라보며, 세한은 눈을 좁히며 균열에서 빠져나올 요그 소토스를 찾았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부서진 공간 안에서 깜박이는 거대한 눈동자를.
‘눈동자?’
저것이 요그 소토스인가?
세한은 그렇게 생각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무릎이 굽혀질 것 같은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내뿜으며 부서지는 공간 속에서 신체의 일부를 비집고 나오는 거대한 무언가.
어째서인지 그것의 전신에는 수많은 상처가 있었으며, 생명이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다.
당장 목숨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을 형상이었다.
징그럽다고도 할 수 있는 모습이었지만, 세한은 어째서인지 그것이 아름답다 느꼈다.
“뭐야.”
찬연한 빛 속에서 아주 미약한 신음이 들렸다.
니알라토텝은 하늘을 보며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마치, 겁에 질린 것처럼.
“대체 왜…….”
그의 모습을 볼 때 소환된 건 요그 소토스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소환된 것일까.
‘어?’
균열이 일어나면 일어날수록.
그곳에서 등장한 무언가가 점차 모습을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세한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익숙해.’
믿을 수 없지만 세한은 이 힘이 누구의 것인지 알고 있었다.
마치 안개처럼 강대한 무언가가 저 ‘존재’의 힘을 가리고 있었지만 모습을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건…….”
하늘의 틈에서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눈동자.
터무니없이 거대한 무언가의 눈이 세한과 마주친 건 그때였다.
그 눈에 담겨있는 감정은 마치 인간 같았다.
기쁨, 슬픔, 그리고 그리움. 반가움. 원망과 행복마저 담겨있는 눈에 세한은 할 말을 잃었다.
그제야 세한은 깨달았다.
오히려 이제까지 저 존재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 자신을 탓하고 싶었다.
“……이드라.”
1회차에 자신을 이끌어주었던 신.
세계가 멸망하고 자신을 떠나갔던 그녀가, 지금 이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