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202화 (202/332)

# 202

202. 끝나지 않은 꿈(2)

니알라토텝은 언제부터인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자신이 왜 이런 것인지 그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신이었다.

그것도 보통 신이 아닌 외우주의 신.

본디 이 세계를 지배하는 신들은 기본적으로 불로불사를 타고난다.

그것을 불멸성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이 세계의 불멸자는 니알라토텝과는 다르다.

일반적인 방법으로 죽일 수 없는 건 맞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들의 신화가 그렇듯, 방도만 찾는다면 설령 신이라도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그에 반해 자신은 어떤가.

애초에 그는 ‘죽음’이라는 개념을 지니지 않았다.

니알라토텝만이 아니다.

외신들이라면 응당 타고난 절대적인 불멸성이었다.

이 세계에 그런 외신들과 동등한 불멸성을 지닌 존재는 오로지 거인왕 이미르뿐이었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그렇게나 위대한 자신이 아득바득 힘을 사용해가며 하찮은 인간과 승부를 벌였다.

외신의 힘이라기엔 조족지혈에 불과했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웬만한 신들은 꺾어 누를 수 있는 힘을 사용했다.

그런데도 압도하지 못했다.

도리어 압도당하고 있었다.

자신을 따르는 딥원들을 희생시켜 아자토스를 소환하려고 할 만큼.

그는 그런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가슴속에 느껴지는 묘한 초조함도.

두근거리며 몸을 뜨겁게 만드는 분노도.

하나같이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단지, 그러하다…… 라고 생각할 뿐이다.

그런 스스로에 대한 의문을 가진 채, 니알라토텝은 제단을 떠나 움직이기로 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

수많은 인간들이 자신에게 무기를 겨누고 있었다.

한국 서버 출신의 플레이어들이라던가.

맨 앞에 서서 바르자이의 언월도를 자신에게 겨누는 인간의 모습에 니알라토텝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대체 어떻게 저것을 쥔 거지?’

인간이 바르자이의 언월도를 쥘 수 있을 리가 없건만, 저 사내가 가진 건 바르자이의 언월도가 분명했다. 딥원들의 왕이 쓰러졌기에 언월도만 회수하려고 했건만 그조차 상당히 성가셔졌다.

‘우습군.’

먼지 같은 존재에게 벌써 몇 번이나 계획이 틀어진 건지.

“바르자이의 언월도를 내놔라.”

바르자이의 언월도를 회수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다만 플레이어들의 수도 수고, 언월도를 쥔 사내를 쓰러트리려면 그 역시 상당한 힘을 발휘해야만 했다.

이드라가 그랬듯, 격하의 존재가 되어 인간의 형상을 취한 니알라토텝으로선 그 정도가 한계였다.

상대가 언월도를 얌전히 주리라 생각하진 않았다.

지금까지 그가 만난 인간들을 밟으려하면 더욱 강하게 반발해 왔으니까.

방금 자신의 적이었던 자에게 신물을 내주는 것도 서슴지 않던 진천웅의 모습은 아직도 잊을 수 없었다.

“어떡하죠? 아무래도 그가 말했던 코알라…… 무슨 신 같은데요.”

“니알라토텝입니다.”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홍가은에게 창우는 가볍게 정정했다.

그리 긴 이름도 아닌데 외우지 못하다니.

뇌까지 근육이라는 말은 결코 허명이 아니었다.

“싸울 텐가? 인간들이여.”

니알라토텝의 목소리는 지극히 고요했다.

어떤 희로애락도 느껴지지 않는 그의 목소리는 그가 인간이 아닌 초월적인 존재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는 결코 유리하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한국의 플레이어들이 덤벼든다면 상당한 힘을 소모하게 될 테고 르뤼에에서 더 이상 머물 수 없게 될 것이다.

문제는 자신들도 모두 목숨을 잃게 될 것이 분명했다.

“언월도를 내어준다면 물러가실 생각입니까?”

“허면, 그 외에 너희에게 무슨 가치가 있나?”

그의 말은 마치 비꼬는 것 같지만 진심이었다.

니알라토텝의 눈에 한국의 플레이어들은 바르자이의 언월도에 붙은 먼지뭉치에 불과했다.

먼지를 털기는 꺼려지지만 단지 그뿐이다.

니알라토텝에게 한국의 플레이어들은 고작 그 정도였다.

창우는 잠시간 고민하다가 차분히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창우 씨!”

대체 무슨 말이냐는 듯 소리치는 가은에게 창우는 조용히 검지를 자신의 입술에 가져다 대었다. 조용히 하라는 표시였다.

“의외군.”

니알라토텝은 그런 창우의 모습이 도리어 신선한 것 같았다.

“신의 말씀인데 저희가 어찌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너희는 나의 의도를 알고 있다. 그렇다면 그것을 반드시 사수해야 할 텐데?”

“이곳에서 당신과 싸워도 죽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더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는 게 옳지요.”

“그 시간이 찰나에 불과할 텐데도?”

“인간이란 단 1분을 더 살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존재입니다.”

창우는 니알라토텝에게 자신이 쥐고 있던 언월도를 내밀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니알라토텝은 조용히 응시했다.

‘신격도 없는 존재에 불과하다.’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본래 인간들의 모습이 그렇다.

세한이나 진천웅이 특이한 것이지 본래 인간들은 니알라토텝의 모습만 보더라도 미치거나 오줌을 지리고 공포에 떨었다.

“좋다.”

그는 창우가 건넨 언월도를 손에 쥐었다.

얌전히 내놓겠다는데 굳이 건드릴 필요는 없었다.

지금 자신이 손을 쓰지 않아도 어차피 죽게 될 존재였으니까.

스스슥!

언월도를 건네받자마자 니알라토텝의 모습은 자신의 그림자 속에 천천히 가라앉으며 순식간에 사라졌다.

“허억, 허억.”

니알라토텝이 사라지자마자 플레이어들은 저마다 거친 숨을 내쉬었다.

최상급의 신격을 지닌 존재가 앞에 있는 것만으로 숨이 멎을 뻔했으니까.

대부분은 안도했지만 현균과 가은은 창우를 질책성이 담긴 눈으로 노려보았다.

“대체 왜 언월도를 얌전히 넘긴 거죠?!”

“가은 씨의 말이 맞습니다. 지금 대체 무슨 짓을 한 겁니까!”

“세한 씨가 넘기라고 하더군요.”

“예?”

황당하다는 듯 바라보는 둘에게 창우는 싱긋 웃었다.

“언월도를 넘긴 후, 며칠 정도 휴식을 취하고 천천히 제단으로 오라더군요.”

“……뭔가 방법이 있는 걸까요?”

“모릅니다. 하지만 세한 씨가 아무 생각 없이 그런 말을 했을 것 같지는 않군요.”

그 말대로다.

홍가은은 굴러가지 않는 머리를 열심히 굴려봤지만 마땅한 답은 찾을 수 없었다.

그건 현균도 마찬가지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세한이의 말대로 좀 쉬다가 제단으로 향하죠.”

한결 가벼워진 얼굴이 된 현균의 모습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제단이 있는 방향을 응시했다.

‘별일 없을 거라 믿습니다.’

창우는 세한을 믿었다.

놀이공원에서 그와 자신의 동생을 구했을 때부터, 세한은 그가 생각하는 최고의 영웅이었으니까.

***

“이대로 정말 괜찮을까요?”

창우로부터 언월도가 탈취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지도 꼬박 하루가 지났다.

그동안 나와 이드라, 그리고 이수린은 제단이 있는 마을 근처에 몸을 숨기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살아남은 소수의 스타스폰과 딥원들이 의식을 진행하고 있군. 저 두 종족이 함께하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이야.”

“희귀한 일인가요?”

“흔한 일은 아니로다. 둘 다 호전적인 성격이니까.”

“하지만 신의 말은 거스를 수 없잖아.”

“그건 그렇다.”

이드라는 그렇게 답하고는 제단 방향을 계속 보았다.

그녀는 의식이 끝나고 문이 열리는 순간에 습격을 해야 된다고 했다.

“근데 문이 열리면 다 끝나잖아요.”

“우리가 가게 되면 니알라토텝과 교전을 피할 수 없다. 혹은 살아남은 딥원들이나 스타스폰과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그건 당연한 거 아냐?”

“당연한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는 의식을 막게 될 테지. 허나 결코 의식을 막아서는 안 된다.”

이수린은 그런 이드라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눈치였다.

“당연히 의식을 막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바르자이의 언월도를 내어달라고 했을 때부터 이상했는데, 혹시 이드라님은 니알라토텝과 모종의 계획을 꾸민 거 아니에요?”

날카롭게 쏘아붙이는 이수린의 말에 이드라는 뭐라 답을 못하고 입술을 달싹였다.

“그건 절대 아니다. 하지만 말하고 싶지는 않구나.”

그런 그녀의 모습에 도리어 궁금해졌다.

도대체 무엇이 이드라를 이렇게 약하게 만드는 것일까.

언제나 당당하고 뻔뻔한 그녀가 뭣 때문에 대답을 회피하는 것인가.

“……흐음.”

모리안 역시 그런 이드라의 태도가 걸리는 듯 함부로 추궁하지 못했다.

덕분에 답답한 마음에 잔소리를 하는 건 이수린의 몫이었다.

“됐다.”

그렇게 대략 두 시간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무렵. 굳게 닫혀 있던 이드라의 입술이 살며시 열렸다.

“곧 문이 열릴 거다. 그때 나는 할 일이 있으니 그대 둘은 나를 지켜줬으면 한다.”

“할 일이 뭔데?”

“대화다.”

“누구와?”

“그건 보는 순간 바로 알게 될 것이다.”

요그 소토스를 말하는 건가?

하지만 그렇다면 이드라가 이렇게 망설이거나 대답을 회피할 리가 없었다.

뭔가 다른 존재가 이번 일에 개입된 게 분명했다.

니알라토텝도, 그리고 아자토스도 아닌 전혀 다른 존재가.

그리고 니알라토텝이 눈치채지 못한 걸 보면 녀석보다도 강한 존재일 가능성이 높았다.

‘아자토스인가?’

설마……. 그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불안하긴 했지만 이드라를 믿기로 했다.

“먼저 마법을 크게 한 방 날리는 건 어때요?”

“그것도 나쁘지 않지. 너는 딥원들과 스타스폰을 상대해 줘. 이드라의 보호와 니알라토텝은 내가 맡도록 하지.”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요. 신과 싸우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우리는 굳이 조용히 움직일 필요 없이 마을의 정면으로 다가갔다.

그래야 더더욱 눈에 띌 테니까.

이드라는 우리와 떨어져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지만, 나는 녀석이 어디로 움직이는지 또렷하게 알 수 있었다.

그야 이드라는 나의 아바타였으니까.

“캬샤샤샤!”

“가야야야!!”

마을의 입구를 향해 접근하자, 우리를 향해 딥원과 스타스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심해어의 머리를 단 딥원과, 거대한 촉수덩어리의 형태를 한 스타스폰의 무리는 보는 것만으로 속이 안 좋아졌다.

“갑니다!”

이수린의 머리위로 십여 발의 화염구가 나타나며 일제히 괴물들을 향해 쏘아졌다.

콰콰콰쾅!!

미사일처럼 쏟아진 불덩이에 마을은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었고, 나는 그 틈을 노려 딥원 제사장과 니알라토텝이 있는 제단을 향해 달렸다.

‘저건가!’

제단이 어디에 있는지 헤맬 일은 없었다.

하늘에 새겨져 있는 거대한 균열 때문이었다.

쩌적, 쩌저적!

부서진 달걀처럼, 서서히 커져가는 균열의 아래에 제단이 있었다.

드림랜드의 문을 열었던 제단보다 몇 배는 거대하며 핏물이 호수처럼 차올라있었다.

저건 단순한 피가 아니었다.

섬 전체에서 긁어모은 생명의 흐름 그 자체였다.

“예상보다 늦었군.”

단정한 검은 머리칼에,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

실눈처럼 눈을 옅게 뜬 터라 표정을 알기 힘든 저 남자가 바로 니알라토텝이었다.

“이렇게 제대로 보는 건 처음인걸.”

“언월도를 빼앗기자마자 바로 들이닥치리라 생각했는데, 꽤나 여유를 부렸구나.”

“신중하게 움직였을 뿐이다.”

“신중?”

니알라토텝은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이었다.

“문을 여는 방법과, 열쇠가 모두 있는데 신중하게 움직였다는 것부터가 여유를 부렸단 것이지.”

“언제부터 그렇게 인간에 대해 잘 알게 됐대?”

“인간이 아니라도 당연히 알 수 있는 이야기다.”

녀석은 천천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파랗던 하늘은 점차 어두워지고 한번 부서지기 시작한 균열은 점차 세를 확장해가고 있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아무렇게나 하늘을 향해 낙서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이드라는 어디 있지?’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거리는 가까웠다.

분명 이 근처에 몸을 숨기고 균열을 향해 어떤 짓을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니알라토텝은 모르나?’

녀석이라면 분명 이드라에게 접근하거나 태연히 말을 걸었을 것이다.

‘즉, 녀석은 이드라가 이 근처에 있다는 걸 몰라.’

이드라가 환상으로 몸을 숨긴 건지, 아니면 니알라토텝의 힘이 그만큼 약해진 건지.

또는 이드라가 인간으로서 타락했기에 다른 인간들이 그렇듯, 먼지처럼 느꼈을 수도 있다.

나야 아무래도 좋다.

이대로 놈을 막으면 그만이니까.

“소환은 이미 시작됐다.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건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지.”

“그런가? 흠, 나야 상관없다. 아니…… 오히려 괜찮을 것 같군.”

무미건조한 어조로 말하던 니알라토텝이 천천히 나를 향해 한걸음을 내딛었다.

그뿐이 아니다. 반쯤 감겨 있던 눈이 천천히 떠졌다.

‘오우, 시벌…….’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는 나조차 녀석의 눈을 보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본디 눈이 있어야 할 장소에 시커먼 어둠만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건 끝이 없는 공허이며 어둠이었고 뒤섞인 혼돈과도 같았다.

기어오는 혼돈.

놈의 눈을 본다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으리라.

“나는 인간의 감정을 여태 알 수 없었지만…… 지금은 조금 알 것도 같구나.”

가면을 쓴 것처럼 딱딱하던 녀석의 입가가 비틀어지며 삐뚜름하게 올라갔다.

그건 분명 ‘미소’였다.

“그래, 이게 기쁨이로군.”

그는 양팔을 천천히 좌우로 펼쳤다.

등 뒤에서 수십 미터에 이르는 촉수가 넘실거리며 제단을 깔아뭉개고 딥원 신전장을 쥐포로 만들어버렸다.

그건 단순한 힘의 과시가 아닌, 자신이 열어젖힌 문을 닫는 건 불가능하다는 증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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