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200화 (200/332)

# 200

200. 기어오는 혼돈(3)

‘단순한 무기가 아니야.’

심안 스킬을 보유한 창우는 본능적으로 바르자이의 언월도의 위험성을 파악했다.

눈이 보이지 않기에 더욱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창우는 언월도에서 흐르는 흉악한 기운을 선명히 느낄 수 있었고, 세한이 말하던 바르자이의 언월도라는 걸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이드라님의 말로는 시공을 가를 수 있는 힘을 지녔다던가.’

너무 거창한 힘이라 현실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시공을 가르다니.

바르자이의 언월도가 요그 소토스를 소환하는 데 필요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아우터갓 중에서도 특출나게 강한 요그 소토스는 어떤 시간이나 공간, 그리고 차원에도 접촉할 수 있는 힘을 지녔다.

그렇기 때문에 바르자이의 언월도와 네크로노미콘의 비술을 사용한다면 요그 소토스를 소환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

“호오.”

언월도를 막은 창우의 모습에 딥원들의 왕, 케르가의 입에서 옅은 감탄이 흘러나왔다.

심해어와 닮은 얼굴을 한 탓에 표정은 읽기 힘들었지만 미묘하게 올라간 입꼬리는 그가 웃고 있다는 걸 알려줬다.

“제법, 이다.”

부웅!!

케르가는 창우의 검에서 떨어진 뒤, 크게 뒤로 뛰었다.

동시에 세로가 아닌 가로로 언월도가 휘둘러졌다.

“모두 허리 숙여요!!”

언월도에서 모여드는 힘을 확인한 창우가 황급히 외치며 허리를 숙였다.

그런 창우의 외침에 플레이어들은 반사적으로 허리를 깊이 숙였고, 동시에 머리 위로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서거걱!!

“……맙소사.”

마력 반응은 느껴지지 않았다.

허나 그 위력은 가공할 정도였다. 언월도가 휘둘러진 궤적에 따라 수백 미터에 있던 사물이 모조리 잘려나간 것이다.

다행히 플레이어들은 대체로 뛰어난 실력을 지닌 이들이었기에 피해는 없었지만, 창우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딥원들의 상체가 가로로 갈라지며 쓰러졌다.

“샤. 샤아아아!”

딥원들이 크게 동요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케르가는 일그러진 눈을 꿈틀 거릴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저, 저게 뭐죠?”

천천히 허리를 들어 올리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은 씨? 여기는 왜?”

“창우 씨의 눈에는 차지 않을지 몰라도 저도 간부예요. 도와드리러 온 게 당연하잖아요.”

날카롭게 쏘아붙인 그녀였지만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이런 걸 보면 자신감이 사라지긴 하지만요.”

단순히 검기(劍氣)의 문제가 아니다.

이건 공간자체를 절삭해 버린 것이다. 물리적인 방법으론 무슨 짓을 해도 막을 수가 없었다.

오로지 피하거나, 힘이 발동하기 전에 막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아뇨, 잘 됐습니다. 확실히 저 혼자서는 무리였거든요.”

창우는 언월도의 움직임을 살피며 홍가은에게 속삭였다.

가은은 그런 창우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쓰러트릴 건가요?”

“예. 그러려고 온 게 아니었습니까?”

“하지만…….”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언월도의 힘을 본 후론 오직 피해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이건 언제나 홍가은이 바라던 전투나 결투가 아니었다.

저것과 싸우게 된다면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게 되리라.

“상대하는 법은 어렵지 않습니다. 방금처럼 거리를 벌리게 만들지만 않으면 되요.”

“그게 무슨 소리죠?”

“말 그대로입니다. 제가 언월도가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막을 테니, 가은 씨는 놈이 거리를 벌리지 않도록 견제해 주세요.”

“그걸로 되는 건가요?”

“충분하고도 넘칩니다.”

바르자이의 언월도의 힘은 막강했다.

저것 앞에서는 어떤 방어도, 거리조절도 무의미했다. 휘둘러지기만 하면 모든 걸 무시하고 상대를 베어버리니까.

‘하지만 사용자는 그렇게 뛰어나지 않아.’

방금 검을 부딪쳤을 때 느꼈다.

무기는 강력할지언정, 그것을 사용하는 케르가는 한참 부족했다.

육체의 스펙의 문제가 아니다.

기술의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가은은 최고의 도우미였다.

‘지수 씨에 비하면, 그다지 무섭지도 않으니.’

괴물은 흉측했으며 육체적 능력도 무시무시했다.

검을 쥔 손이 아직도 저릴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지수에 비하면 우스울 정도였다.

케르가는 모습은 괴물이지만 괴물이 아니다.

창우는 진짜 괴물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런 이들과 매일같이 겨루며 성장했다.

“언월도는 제가 막겠습니다. 녀석이 도망치지 않도록 막아주세요.”

“……알겠어요.”

창우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가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케르가를 향해 덤벼들었다.

“다른 괴물들이 두 분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막으세요!”

현균은 주변의 딥원들이 케르가를 돕지 못하도록 플레이어들에게 지시했다.

거기에 박동권도 나서 최면을 걸 듯, 딥원들의 행동을 제한시켰다.

“우둔,한. 인간놈들!!”

케르가의 입장에서는 우스울 뿐인 행동이었다.

확실히 이곳에 있는 플레이어들은 강했지만 딥원들의 숫자를 커버할 만큼 많은 것도 아니었다.

‘신의 힘을 우습게 보는구나!’

부하들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었다.

정면에서 덤벼드는 두 명의 플레이어 따위는 단번에 동강낼 자신이 있었다.

“나약한, 존재가, 발버둥, 쳐봐야. 소용없다!”

그는 딥원들의 왕이다.

위대한 신. 니알라토텝이 직접 바르자이의 언월도를 맡겼을 만큼 강한 힘을 지녔다.

한번 손속을 겨뤘을 때 창우가 가진 힘은 이미 어느 정도 파악한 상태였다.

‘인간답게 약해빠진 신체.’

창우의 능력치는 자신에 비해 비할 데 없이 약했다.

거기다 니알라토텝이 말하지 않았던가.

너의 힘이라면 까마귀만 조심하면 된다고.

신격을 지닌 까마귀만이 자신에게 대적할 수 있다.

케르가는 그렇게 믿었다.

카앙!!

“……?”

하지만 그 믿음이 깨어지는 것에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카앙! 캉!

언월도의 힘이 집중되어 반원을 그리려는 찰나에 창우의 검이 언월도를 가격했다.

그다지 큰 충격은 아니었지만, 창우의 마력은 언월도의 힘을 옅게 흐트러트렸기에 제대로 힘을 사용할 수 없었다.

“이, 놈!”

감히 왕인 자신의 공격을 인간 따위가 방해를 해?

단 한 번만 휘두를 수 있어도 이 건방진 인간뿐이 아니라 주변의 인간까지 몰살시킬 수 있는 힘을 자신은 지녔다.

그런데 건방지게 자신의 공격을 막다니!

카가가각!!

언월드의 날과 창우의 검이 미끄러지며 시뻘건 불꽃을 튀겼다.

수직으로 떨어지던 검은 순식간에 힘을 잃고 뒤로 튕겨졌다.

분명 놈보다 강한 힘으로 내리쳤건만 튕겨나간 건 도리어 자신이었다.

“역시 세한 씨만 신경 쓴 모양이군요.”

“뭐, 라?”

“우리가 접근하는 걸 모를 리가 없죠. 언월도의 힘이라면 미리 공격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는 건 우리를 위협이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겁니다.”

세한은 말했다.

니알라토텝이 견제하는 건 자신뿐이라고.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바르자이의 언월도를 가진 놈에게 다가가 빼앗으라고 했다.

“인간을 얕본다. 그 말대로입니다. 인간을 전혀 몰라요.”

한 번은 두 번이 되고, 두 번은 열 번이 된다.

열 번은 수십 번이 되어 케르가의 공격은 모두 무위로 돌아갔다.

“우리는 스스로의 약함을 알기에, 강자를 굴복시키는 법을 알죠.”

능력치는 분명 떨어진다.

한 단계? 아니 두 단계는 떨어질 것이다.

그럼에도 창우가 그를 정면에서 맞설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다.

“기술을 모르는 괴물 따위에게 질 만큼 인간은 녹록치 않습니다.”

“……!!”

창우의 눈은 공허했다.

심안 스킬을 지닌 그는 시각에 의존하지 않았고, 케르가가 무엇을 하려는지 훤히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딥원도 제 나름대로 기술을 지니고 있긴 했다.

하지만 태생부터 강자이며 천적이 없는 그들은 강함에 집착하지 않았다.

케르가는 말할 것도 없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왕이었다.

거기에 지금 그의 손에는 니알라토텝이 쥐어준 바르자이의 언월도가 있었다.

“샤아아아!”

더 이상 인간의 말을 할 여유는 없었다.

케르가의 마음속에 알 수 없는 공포가 침투했고, 그는 아까처럼 거리를 벌리려 했다.

“어딜!”

서걱!

그러나 그런 그의 행동을 견제하던 가은이 검격에 도리어 다리에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단 한 번도 휘두를 수 없는 건가?’

단 한 번.

그 한 번이면 이 상황을 역전할 수 있다.

“캬샤샤샤샤!!”

케르가가 딥원의 언어로 소리쳤다. 더 이상 왕의 위엄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샤악! 샤야야야!!”

케르가의 말에 반응한 딥원들의 눈이 붉게 물들며 자신을 가로막는 플레이어들을 피해 창우에게 달려들었다.

몸에 상처를 입건 말건 왕을 구하기 위해 움직이는 딥원들의 움직임에 플레이어들은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속지 마라! 방금 외침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들기 위함이다! 왕을 돕지 말고, 눈앞의 플레이어들을 쓰러트려라!]

하지만 그것도 동권의 ‘선동’ 스킬이 사용되자 발을 멈췄다.

모두 막을 수는 없었지만, 그 정도는 플레이어들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인간, 인간 따위가!’

다급해질수록 케르가에게는 빈틈이 점점 늘어났고, 창우는 그 빈틈을 결코 놓치지 않았다.

카앙!!

언월도가 창우의 검에 튕겨나가며 하늘로 치솟았다.

케르가는 튕겨져 날아간 언월도를 향해 필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안 돼!’

이미 처참할 정도로 밀리는 상황에서 무기가 없어진다면 더 이상 승산이 없었다.

바르자이의 언월도는 이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으니까.

‘잠깐.’

공중에서 회전하며 떨어지는 언월도를 향해 손을 뻗은 건 케르가만이 아니었다.

현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유일한 경우의 수인 언월도를 향해 창우도 손을 뻗었다.

‘이 방법이라면……!’

케르가는 일부러 언월도를 창우가 쥘 수 있도록 뻗던 손의 속도를 조금 늦췄다.

바르자이의 언월도는 평범한 물건이 아니다.

네크로노미콘에서 파생된 외계의 신물.

평범한 플레이어가 그것을 쥔다면 정신이 파괴되어 목숨을 잃게 된다.

‘어서 쥐어라!’

이렇게 간단히 저 인간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을 줄이야.

케르가는 충혈된 눈으로 창우의 손이 바르자이의 언월도에 닿는 걸 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꽉 움켜쥐었을 때 자신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크, 크크크크!!! 멍, 청한. 인간. 놈! 주제도, 모르고. 그것에 손을, 데다니!!”

케르가의 판단은 나쁘지 않았다.

분명 평범한 인간은 바르자이의 언월도를 쥔다면 미치거나 죽는다.

‘어?’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바르자이의 언월도를 손에 쥔 창우는 별다른 반응도 보이지 않고 케르가를 향해 몸을 돌렸다.

말도 안 된다.

인간이.

어찌 인간이 저것을 쥐고도 멀쩡할 수 있단 말인가.

케르가는 비명처럼 창우를 향해 외쳤다.

“어, 째서. 그것을, 쥘 수 있는. 것이냐!”

“……흐음.”

바르자이의 언월도를 손에 쥔 창우도 이상하긴 마찬가지였다.

세한이 말하길 분명 자신은 바르자이의 언월도를 쥘 수 있는 정신력을 지녔다고 말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조금의 이상도 생기지 않은 건 이상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이걸 무모하게 쥐었던 건 홍가은이 자신이 정신을 되찾는 동안 케르가를 막을 수 있으리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저도 모릅니다.”

“그, 그런.”

창우가 바르자이의 언월도를 쥘 수 있는 이유는 지극히 간단했다.

세한과 창우는 멀티 플레이어 패키지를 통해 ‘파티원’이라는 특수한 연결고리를 지닌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한은 아우터갓인 이드라를 자신의 아바타로 두고 있었다.

덕분에 창우는 알게 모르게 연결되어 있는 세한의 힘으로 언월도의 영향력을 지워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케르가는 물론, 창우조차 알지 못했다.

“대충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알 것 같고…….”

언월도를 쥐는 순간 사용방법은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거기에 방금 전까지 케르가가 휘두르는 모습을 보며 대략 힘의 유동은 파악해 둔 상태였다.

철컹!

언월도를 높이 치켜드는 창우의 모습에 케르가는 막을 생각도 못하고 멍하니 그것을 보았다.

‘기어오는 혼돈이시여…….’

인간이라는 존재를 우습게 보면 안 된다 전하고 싶었다.

신의 생각처럼 인간은 결코 먼지 같은 존재가 아니었다.

결코 얕보아서는 안 됐다.

쿵!

하얗게 갈라지는 세계를 보며 케르가는 눈을 감았다.

자신의 신에게 전하는 마지막 기도를 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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