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199화 (199/332)

# 199

199. 기어오는 혼돈(2)

민아는 순간순간이 긴장의 연속이었다.

여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모습으로 변했던 민아였지만 괴물로 변해 괴물 틈에 낀 건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샤아아아!”

“샤아아아아아!”

바람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은 괴성이 사방에서 들렸다.

현재 민아는 딥원들의 무리에 섞여 이동 중이었다.

‘으으, 무서워.’

크게 두근거리는 심장소리를 듣고 딥원들이 당장 자신에게 달려들 것 같았다.

마음 같아서는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근데…… 제대로 따라가는 건 맞겠지?’

민아는 흉측한 딥원의 눈동자를 굴려 하늘을 보았다.

하늘에는 어릿광대의 옵저버가 졸졸 쫓아오고 있었다. 그녀가 별말을 하지 않는다는 건 계획대로 되고 있다는 뜻이다.

‘바르자이의 언월도. 지금 이것을 운반하고 있는 장소에 네크로노미콘이 있다고 했어.’

아까 전, 세한으로부터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다.

곧 바르자이의 언월도를 가지고 딥원들이 이동할 것이며, 그것이 도착한 장소에 네크로노미콘이 있다고.

「어차피 위에서 일어난 사태만 마무리하고 까마귀도 합류할 테니 걱정마.」

불안해하는 민아의 생각을 마치 읽은 것처럼 어릿광대가 귓속말로 속삭였다.

「아니에요. 일을 해결해도 이곳에 바로 온다고 안했어요. 르뤼에 이본이라는 마도서를 찾은 다음에 온다던데요. 니알라토텝은 분명 네크로노미콘이 있는 곳에 있을 테니 지금이 기회라고 했거든요」

「뭐? 그럼 바르자이의 언월도는 누가 막아? 이거 도착하면 그냥 게임 끝 아니야?」

「그건 따로 다른 사람에게 부탁한다고……」

다른 사람이라는 말에 어릿광대는 의아했다.

세한이 아닌 다른 플레이어가 바르자이의 언월도를 탈취할 수 있을까?

‘혹시 우리 민아에게 위험한 일을 시키려는 건 아니겠지?’

괜히 불안해졌다.

딥원들 사이에 숨어드는 것 정도야 어릿광대의 입장에서 큰 위험이 아니다.

설령 딥원들이 알아차려도 민아는 얼마든지 도망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바르자이의 언월도는 다르다.

저것은 신의 아바타라고 할지라도 감히 쥐어서는 안 되는 물건이다.

아니, 오히려 신의 아바타일수록 반발력이 심할 게 분명했다.

바르자이의 언월도는 외우주의 물건이었고, 신의 아바타는 하나의 신에게 속한 존재이니 외신의 물건은 독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이것을 쥘 수 있는 건 어떤 신의 아바타도 아닌 세한이 적절했다.

찌릿.

깊이 생각에 잠겨 있던 어릿광대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에 퍼득 정신을 차렸다.

비록 옵저버에 불과했지만 예민한 신의 감각에 막대한 신격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건?’

바닥을 타고 막대한 신격이 흐르기 시작했다.

세한이 말했던 제물로 일어난 변화가 아니다.

이건 니알라토텝의 신격이다.

‘아주 칼을 갈았네.’

어릿광대는 혀를 내둘렀다.

이 정도의 신격을 소모한다면 아무리 니알라토텝이라도 타격이 클 게 분명했다.

그나마 르뤼에이기에 어느 정도 시스템의 눈을 속이고 신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리라.

물론 어릿광대의 입장에선 게임에 목숨을 건 한심한 놈일 뿐이었지만.

‘아니, 겨우 게임은 아닌가.’

이미 이 세계는 자신이 알던 게임과 달라졌다.

애초에 이 세계를 지배하는 건 퍼블리셔가 아닌 외신과 한 명의 플레이어였고 단순한 오락이 아닌 생존을 위한 세계가 되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어릿광대도 이전과 같은 마음은 아니었다.

단순한 유희가 아닌 자신을 따르는 신도를 대하는 느낌으로 민아를 대하게 된 것이다.

‘민아는 나의 대사제가 될 만해.’

재능도 있고 아름답다.

뭣보다 자신의 능력을 다루는 것에 탁월한 재능이 있으니 어찌 이쁘지 않겠는가.

「거의 다 온 것 같네.」

「네?」

「네크로노미콘이 있는 곳. 그리고 니알라토텝이 있는 곳 말이야.」

어릿광대의 말에 민아는 가슴이 철렁했다.

바닥에서 기분 나쁜 느낌이 퍼져간다 했더니 근처에 외신이 있단다.

이정도면 긴장하지 않는 게 이상했다.

‘바닥에 흐르는 힘이 한곳으로 몰려들고 있어.’

분명 섬 아래에 마법진이 그려져 있는 게 분명했다.

어떤 에너지를 모으기 위한 마법진이었고, 퍼져나간 신격은 그 에너지들을 회수해서 한곳으로 모으고 있었다.

‘제물이야. 제물을 바쳤구나.’

어릿광대도 신이다.

신화시대에 수없이 많은 제물을 받았기에 이 힘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깨달았다.

생명이 죽을 때 발생하는 엔트로피. 그것이 우주로 환원되기 전에 회수하는 것이다.

‘시스템을 따라했군.’

이 세계의 신도 아닌 외신이 그것을 흉내 낼 줄이야.

어릿광대는 새삼 니알라토텝이 얼마나 대단한 신인지 깨달았다.

시스템이 게임을 다양한 행성에서 발생시키는 것도 고착화된 세계를 움직여 막대한 엔트로피를 발생시키기 위함이다.

문명이 낙후된 행성은 생명이 빠르게 태어나며 또한 빠르게 사라진다.

그렇기에 엔트로피의 순환은 빠르며 시스템이 신경 쓸 필요가 없다.

하지만 문명이 발전할수록 생명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태어나지도 않는다.

고로 시스템은 그것을 움직이기 위해 문명이 발전된 세계에 게임을 발생시키는 것이다.

신화시대의 저물고 문명의 발달을 지켜봐야만 했던 신들은 그런 시스템에게 환호했고, 오락을 즐기는 입장이 되었다.

바로 자신처럼.

니알라토텝의 마법진은 그런 시스템을 따라한 것이다.

르뤼에에서 사망한 생명의 힘을 집중시켜 더욱 거대한 기적을 발현하기 위해서.

‘그것이 요그 소토스의 소환이란 말이지.’

자신은 그냥 미스틸테인만 얻으면 그만이었지만 일이 이렇게 됐으니 내버려둘 수 없다.

예전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지구가 멸망하길 바라지 않았으니까.

“샤아! 샤아아!!”

그때였다.

걸어가던 딥원들의 무리가 크게 술렁이며 저마다 무기를 꺼내들기 시작했다.

‘뭐지?’

민아는 갑자기 이상해진 주변의 반응에 다른 딥원들처럼 무기를 손에 쥐었다.

“샤샤! 샤아아악!”

저마다 무기를 쥔 딥원들은 무기를 높이 치켜 올리며 소리를 내질렀다.

“사, 샤샤! 샤아아악!”

민아는 눈치를 살피며 그런 딥원들의 행동을 따라했다.

다행히 민아를 의심하는 딥원들은 보이지 않았다.

「플레이어들이야!」

어릿광대의 말에 민아는 화들짝 놀랐다.

여기서 플레이어와 마주치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

‘도망쳐야 하나?’

아마 어릿광대는 딥원들이 향하는 위치는 대략 파악했을 것이다.

아마 그곳이 네크로노미콘이 있는 장소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고민하는 순간,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의 플레이어들을 이끄는 블루에일의 길드장, 윤현균이었다.

‘한국의 플레이어라면, 이건 세한 오빠가 시킨 거구나!’

예정대로라면 한국 플레이어들은 다른 방향으로 움직여야했다.

하지만 그들이 이곳에 있다는 건 현균을 움직인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세한일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민아는 긴장한 얼굴로 주변을 살폈다.

한국 플레이어들의 수준이 높은 건 맞지만 딥원들도 만만치 않았다.

우선 숫자가 한국 플레이어보다 압도적으로 많았고, 뭣보다 바르자이의 언월도를 지닌 딥원 대장이 문제였다.

「조심해요, 딥원 대장이 바르자이의 언월도를 가지고 있어요! 아마 그 능력도 사용할 수 있을 테니 조심하세요!」

민아는 황급히 현균에게 쪽지를 보냈다.

딥원들을 바라보던 현균의 눈동자가 대각선 아래로 움직였다.

분명 민아가 보낸 쪽지를 확인한 것이리라.

“샤아아아! 샤샤샤샤!”

한국 플레이어들과 대치한 딥원들은 점차 움직이며 한국 플레이어들을 포위하기 위해 움직였다. 반면 한국 플레이어들은 가만히 서서 긴장된 낯빛으로 그것을 지켜봤다.

‘왜 가만히 있지?’

딥원들을 따라 움직이던 민아는 차분한 눈으로 이쪽을 응시하는 현균의 모습에 점차 의아해졌다. 아무리 한국 플레이어들이 딥원과 싸우는데 익숙하다지만 이곳에 있는 딥원들은 정예중에 정예였으며 바르자이의 언월도를 든 딥원 대장과 전투병들이 다수 포진해있었다.

「민아 씨. 딥원들을 혼란시켜주실 수 있습니까? 작은 소란이라도 좋습니다.」

그 순간, 현균으로부터 쪽지가 도착했다.

작은 소란을 일으키는 건 어렵지 않았다.

‘조금 무섭긴 하지만…….’

뭔지는 모르겠지만 방법이 있겠지.

그렇게 생각한 민아는 손에든 무기를 바닥에 떨어트렸다.

“샥?”

“샤아악?”

갑자기 돌발행동을 한 민아의 모습에 주변 딥원들의 시선이 쏠렸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푸푹!!

“캬아아악!!”

민아의 양손이 움직이며 근처에 있던 딥원들의 가슴을 꿰뚫었다.

그녀의 양손은 이미 날카로운 칼로 변모해 있었다.

“샤, 샤아아악!!”

당황했던 딥원들은 일제히 민아의 몸에 자신의 무기를 내리치고 찔렀다.

캉캉캉!

그러나 그들의 공격은 민아의 외피를 꿰뚫지 못했다.

불가사리의 능력을 지닌 민아는 몸을 자신이 먹은 금속으로 경화시킬 수 있었다.

지금가지 그녀가 먹은 금속들 중에는 오리하르콘도 존재했고, 주변에 있는 딥원들의 힘으로는 오리하르콘에 기스도 낼 수 없었다.

‘괜히 약한 녀석들이 모여 있는 장소로 이동한 게 아니지!’

그녀가 있는 장소는 딥원 정찰병들이 모여 있는 장소였다.

전투병이나 대장과는 동떨어진 위치. 하지만 가장 많은 병력이 모여 있는 곳이기에 혼란은 크게 확산되기 시작했다.

“샤아아악!”

푸욱, 푹!

날뛰는 민아를 향해 딥원 정찰병들이 무기를 내지르며 공격했다.

하지만 비슷한 모습을 한 딥원들 틈에 섞여 종횡무진 움직이는 탓에 같은 아군을 찌르는 경우도 빈번하게 발생하기 시작했다.

“좋아. 동권아!”

“옙, 형님.”

현균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딱딱한 얼굴로 플레이어들 틈에 숨어있던 동권은 갑자기 혼란스러워진 딥원의 진영을 향해 소리쳤다.

[지금 우리의 모습으로 변한 자들이 섞여 있다! 지금 무기를 들고 서로를 겨누고 찔러라! 어떤 동료도 믿지 마라! 모두 적이다!]

박동권의 외침은 공기를 울리며 순식간에 주변으로 확산됐다.

반면 민아는 그런 동권의 외침에 황당해졌다.

‘얘네들 한국말 모를 텐데?’

딥원들에겐 딥원들의 언어가 있었다.

한국말을 한다 해도 놈들이 알아들을 리 없었다.

“샤아아아아!”

‘어라?’

하지만 예상외로 반응은 극적이었다.

한국말을 알아들을 리 없는 딥원들이 서로에게 무기를 겨누고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파테는 기만의 여신. 녀석의 전승스킬은 상대를 기만하는 데 특화되어 있어. 언어가 문제가 아니야, 심령을 뒤흔들고 현상을 발생시키는 거지. 예전에는 그냥 동요시키는 정도였는데 제법인 걸. 저놈도 나름 재능있는 플레이어라는 건가?」

곧바로 어릿광대의 설명이 뒤따랐다.

그제야 민아는 갑자기 소란스러워진 주변을 납득할 수있었다.

‘그냥 쓰레기는 아니었구나.’

하긴 그러니 세한이 굳이 살려뒀던 거겠지.

민아는 납득하며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는 작은 벌레로 변해 날아올랐다.

이대로 있으면 혼란에 집어삼켜질 수도 있었으니까.

“자, 모두 지금입니다!!”

현균이 무기를 빼어들며 소리쳤다.

플레이어들은 그 말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저마다 병장기를 꺼내들고 딥원들을 향해 덤벼들었다.

“놈들이 귀한 물건을 가지고 있다! 모두 빼앗아라!”

“저놈들을 죽이면 보상은 전부 우리 차지다!”

말만 들으면 마치 도적떼가 약탈을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플레이어들에겐 저만 한 이유가 없으리라.

현균도 그것을 알기에 어떤 대의를 말하기보단 명확한 보상을 플레이어들에게 설명했고, 이렇게 끌고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이곳에 있는 딥원들은 다양한 무기는 물론, 촌락에서 이동해오며 가지고 온 각종 지보들을 지니고 있었다.

“샤악!”

“키샤아아아!”

가뜩이나 혼란스러운 딥원의 진형에 플레이어들이 난입하자 마치 허수아비처럼 당할 수밖에 없었다.

싸움이라기 보단 마치 학살이다.

그나마 제정신을 차린 전투병들이 플레이어와 맞서기 시작했지만 상황은 이미 기운 상태였다.

‘위험해!’

하지만 일이 쉽게만 진행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하자, 딥원 대장을 비롯한 몇몇 거대한 덩치의 딥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릿광대가 말하길 딥원 투사라고 말하는 괴물들이었다.

“뭐, 뭐야?! 이런 건 들어본 적 없는데?”

딥원 투사들의 전투력은 막강했다. 무려 다섯이 넘는 플레이어가 달라붙어야 하나를 겨우겨우 상대할 수 있을 정도였다.

숫자에서 밀리는 플레이어들로선 투사들이 나타난 것만으로 전황이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진짜 문제는 딥원들의 대장이었다.

“샤샤샤, 인간, 들이여. 제법, 머리를, 썼구나.”

놈은 뚝뚝 끊어지는 목소리로 플레이어들을 비웃었다.

사람의 말을 할 수 있는 딥원이 모습에 플레이어들의 표정이 일변했다.

“지능은, 그대들, 만이, 가자고 있는, 것이, 아니지. 나는, 위대한 왕, 케르가. 네놈들은, 모조리, 죽이고, 혼돈에게, 바치겠다.”

스스로를 케르가라고 소개한 딥원들의 대장, 아니 왕은 거대한 언월도를 손에 쥐고 천천히 위로 들어 올렸다.

‘안 돼!’

민아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저것이 휘둘러지면 위험하다는 것을.

지금 간신히 균형을 이룬 전장의 균형이 단번에 깨어지고 말 것이라는 걸.

“영광, 으로, 생각해라.”

그것은 마치 세상이 둘로 쪼개지는 것 같았다.

민아가 황급히 모습을 변해 그것을 막으려던 순간, 그보다 빠르게 접근한 자가 있었다.

카아아앙!!

“……아슬아슬했군요.”

바르자이의 언월도를 가로막은 건 다름 아닌 창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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