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197화 (197/332)

# 197

197. 마도서를 찾아서(2)

나와 시선을 마주친 이드라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는 차분히 입을 열었다.

“하늘을 보면 알 수 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뭔가가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것은 새와 같았지만 자세히 보면 머리가 말의 머리와 닮아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저건 샨타크다.”

“샨타크?”

처음 듣는 이름이었는지 어릿광대가 하늘을 응시하며 눈을 가늘게 좁혔다.

“아자토스와 니알라토텝을 숭배하는 괴물들이지. 저것들이 날아다닌다는 건 근처에 니알라토텝이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다. 놈들은 하늘에서 지상을 관찰하며 니알라토텝에게 중요한 정보를 보낼 것이다.”

그중 가장 신경 쓰는 건 나다.

그러니 민아는 나와는 따로 떨어져서 움직이는 게 형편에 좋았다.

“……의외네. 놈이 한 행성에 이토록 관심을 보이는 경우는 없다고 들었는데.”

“그대들의 생각하는 것보다 니알라토텝은 인간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특히 르뤼에에는 인간이 만든 최대의 기물이 잠자고 있으니까.”

네크로노미콘, 아니 알아지프를 말하는 것이리라.

그건 아우터갓이 아닌 인간이 집필한 마도서임에도 아우터갓의 영역에 닿아 있는 기이한 마도서였다.

“그렇다면 서둘러야겠네. 우리는 바르자이의 언월도를 감시하고 너희들은 네크로노미콘을 탈취한다 이거지?”

“그게 최선이지만 말처럼 쉽게 풀릴지는 모를 일이죠. 이드라가 아는 장소에 네크로노미콘이 그대로 있으리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1회차에서 보았던 장소에 그대로 있다면 좋겠지만 아닐 확률이 더 높았다.

“……정말 싫은데 내게 다른 선택지는 없는 것 같네.”

민아는 시무룩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런 민아의 모습에 어릿광대가 황급히 그녀를 달랬다.

“걱정 마렴, 이민아. 내가 곁에 있잖니. 이 어릿광대님이 만일의 사태가 일어나도 보호해 줄 게.”

“정말요?”

“그럼, 그럼.”

어릿광대는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어릿광대도 1회차와는 많이 달라졌군.’

이전의 옵저버였다면 단순히 쪽지로 대화하거나, 지켜보기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형 스킨을 씌워 직접적으로 스킨쉽을 하거나 눈을 마주치고 대화를 하니 정이 붙어버린 것 같았다.

마치 신화시대에 자신의 신도를 비호하는 신처럼.

‘의도는 제대로 먹혀들어갔군.’

장난을 좋아하는 신이지만 어릿광대는 상당히 인간적인 신이다.

분명 민아에게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으면 직접 도와주리라.

“대충 이야기는 정리된 것 같으니 바로 이동하도록 하죠. 어릿광대님, 민아를 부탁드립니다.”

“알겠어. 근데 만약 네가 간 곳에 네크로노미콘이 없다면 어쩔 거야? 우리야 미스틸테인이라도 건진다지만 넌 헛걸음한 거잖아?”

“그래서 각국의 플레이어들을 르뤼에 전역으로 퍼트린 겁니다.”

가볍게 답했지만 어릿광대는 도리어 인상을 찡그렸다.

“순진하네. 넌 그놈들이 제대로 보고할 것 같아?”

“꼭 보고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뭐?”

어릿광대는 알쏭달쏭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북유럽 신화 최대의 모사꾼이라고 할 수 있는 그녀라도 모르는 건 있는 모양이다.

“다 아는 법이 있으니까요.”

***

꺼지지않는불길 : 르뤼에에서 뭐 좀 찾은 놈있냐?

익명 45672 : 이쪽에 쓸 만한 약초 존나 많음.

꺼지지않는불길 : 약초?

익명 45672 : 엘릭서 만들 때 쓰는 거 있잖아.

꺼지지않는불길 : 헐 너네 어디냐. 아니 어느 국가출신이냐?

익명 45672 : 러시아 븅딱아.

그림자조심 : 딥원 애들과 마주친 놈은 없어?

갈아마신신 : 우리 이미 촌락 하나 정리함.

그림자조심 : 얻은 거 있음?

갈아마신신 : 대단한 건 없고 지도가 그려진 가죽들만 잔뜩 얻음.

금성내꺼임 : 그거 까마귀가 말한 네크로노미콘 관련 정보 아냐?

갈아마신신 : 그건 모르겠는데 이상한 표시가 잔뜩 되어 있긴 함.

그림자조심 : 보고해야 되는 거 아냐?

갈아마신신 : 우선 중요한 보물일지도 모르니 따로 이동 중임. 가보고 별거 아니면 보고하려는 것 같은데.

금성내꺼임 : 진짜 네크로노미콘이면 어쩌려고.

갈아마신신 : 어차피 도망칠 수 있는데 어때? 혹시 인간 중에 네크로노미콘의 주인이 나올지도 모르고.

금성내꺼임 : 이거 미친놈이네. 니 어디출신이냐. 딱 봐도 존나 어린 신 같은데.

갈아마신신 : 아 틀딱냄새 개오지네 ㄲㅈ

거기까지 채팅을 읽던 나는 커뮤니티를 닫았다.

이후 두 명의 신이 키배를 벌이기 시작한 탓에 정보를 얻기엔 난감한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채팅방에서 읽은 내용처럼 내게 보고를 한 플레이어는 아직 없었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나 간단히 무시할 줄은 몰랐다.

내게 커뮤니티를 보는 능력이 없었다면 꽤나 난감해졌을 게 분명했다.

‘지도라…….’

채팅에서 언급된 것처럼 네크로노미콘과 관련된 걸지도 모르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적었다.

“함정이다.”

그런 내 심정을 읽은 것처럼 이드라가 말했다.

아마 녀석도 나와 같은 채팅을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플레이어들은 외계의 문자를 모른다. 신들도 마찬가지지. 그런 중요한 비밀이라면 조금 귀찮아도 문자로 적었을 것이다. 그림으로 그리면 플레이어나 신도 쉽게 알아차릴 테니 바보같이 그런 짓을 벌일 리가 없지.”

“니알라토텝이 마련한 함정이라는 건가?”

“분명 그럴 거다. 그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느냐.”

나와 이드라는 가까이에 붙어 앉아 여태까지 커뮤니티에서 들은 정보를 정리했다.

벌써 3일이 지났다.

그동안 우리는 네크로노미콘이 있는 장소로 나아가고 있었고, 몇 번이나 딥원들과 싸웠다.

물론, 나나 이수린에게 피해를 줄 만한 놈들이 있을 리가 없었기에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오늘은 시간도 늦은 터라 적당히 모닥불을 피우고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녀석이 노리는 바가 뭔지 정말 모르겠어.”

“요그 소토스를 소환하려는 게 아니라는 거냐?”

“그게 가장 확률이 높지만, 굳이 요그 소토스를 소환하지 않아도 세계의 흐름을 망가트릴 수 있는 건 몇 가지나 있으니까.”

“으음, 난감한 일이로구나. 그나저나 그 아이는 잘 있는 게냐?”

“그 아이? 아, 민아? 민아는 투덜거리긴 하지만 특별한 문제는 없는 모양이야. 애초에 딥원들이 머리가 좋은 애들은 아니잖아.”

“하긴 그렇구나. 인간들보다 머리가 좋은 종족은 그다지 많지 않으니…… 앳췽!”

싱긋 웃으면서 말하던 이드라가 갑자기 재채기를 했다.

꽤나 경쾌한 재채기 소리였다.

“감기 걸렸어?”

“감기? 그건 아니다. 단지 내가 추위에 익숙하지 않을 뿐이야.”

인간의 몸에 익숙하지 않은 이드라에게 추위란 상당히 낯선 것이었다.

그간 편안한 장소에만 있다가 야생에 나왔으니 몸이 안 좋아지는 건 당연했다.

“흠, 그럼 이거라도 잠깐 걸쳐라.”

내가 늘 걸치고 다니던 암야의 외투를 이드라의 어깨위에 걸쳤다.

사용한지 꽤나 오래된 물건이었지만 지속적으로 시우를 통해 강화한 탓에 무려 S급 장비에 도달한 상태였다.

방어도는 말할 것도 없고, 신체를 최적의 상태로 만들어주도록 보온을 비롯해 다양한 기능들이 외투에 집약되어 있었다.

“고맙긴 하다만, 그대는 외투가 없어도 괜찮은 게냐?”

내가 건넨 외투를 바라보던 이드라가 망설이는 눈으로 나를 올려보았다.

“내 능력치가 몇인데 추위에 영향을 받겠어. 빨리 걸치기나 해라.”

“그, 그렇다면야.”

녀석은 잠시 망설이다가 천천히 외투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 손이 외투에 닿기 전 움찔거리며 멈췄다.

“왜 그래?”

이번엔 또 뭔가 싶어 이드라를 보자, 녀석의 시선이 외투가 아닌 다른 곳에 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시선의 끝에는 무표정하게 앉아있는 이수린이 있었다.

덤으로 기가 찬 얼굴을 한 모리안은 덤이었다.

“참 놀고들 있네요.”

“내 말이.”

참으로 같잖은 걸 본다는 눈빛이었다.

특히 모리안은 작은 인형의 형상을 한 옵저버였음에도 무척이나 매서웠다.

“……뭐가 잘못 됐나?”

“설마요, 특별히 뭔가 잘못 된 건 없죠.”

평소에도 날카로운 이수린이었지만 지금은 그 배는 되는 기분이었다.

이유를 몰라 당황하자 모리안이 씹어뱉듯 중얼거렸다.

“설마 이런 곳에서 연애놀음을 볼 줄 몰랐을 뿐이다.”

“무, 무슨 말을 하는 게냐.”

모리안의 말에 이드라가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왜 아주 그냥 신혼방을 차리지 그러냐. 너는 항상 달고 다니던 그 미치광이 계집애와 연인사이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모양이야? 절조가 없구나, 자기 신을 꼬시다니.”

“오해입니다.”

“오해?”

모리안이 피식 웃으며 이드라를 보았다.

이드라는 최대한 근엄한 얼굴로 앉아있었지만 볼이 상당히 붉었다.

바로 앞에 모닥불이 활활 타오른다 해도 눈에 띌 만큼.

“그래, 그런 걸로 쳐주마.”

뭐라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여기서 무슨 말을 해봤자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이드라에게 마저 외투를 건넸다.

“고, 고맙구나.”

“네가 아프면 여러모로 상황이 복잡해지니까.”

“알고 있다.”

그렇게 말했지만 괜히 분위기가 머쓱해졌기에 서로 시선을 피했다.

아무래도 모리안과 이수린이 지적을 한 탓에 뻔뻔한 이드라라도 부끄러워진 모양이었다.

‘지수를 안 데려와서 정말 다행이다.’

만약 지수가 이것을 봤다면 단순히 비꼬는 걸로 끝나지 않고 이드라의 머리가 반대로 꼬아졌을 게 분명했다.

***

그렇게 며칠을 더 이동하자, 우리는 딥원들의 구역에 진입할 수 있었다.

이곳까지 오며 지나쳐온 어떤 구역보다도 가장 광범위한 크기였다.

대여섯 개의 촌락이 사방에 퍼져있었고, 그 중심에는 몇 개의 촌락을 합친 것보다 큰 딥원들의 ‘도시’가 세워져 있었다.

“저 건물들을 딥원이 세운 건가요?”

“건물이라기 보단 거대한 괴물의 뼈를 이용한 거다.”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하는 이수린에게 나는 가볍게 설명했다.

대체 어떤 괴물이 저렇게 큰 뼈를 지녔는지는 몰라도 르뤼에니까 넘어가기로 했다.

“마력 반응은?”

“잠시만요…….”

이수린을 데려온 건 마도서의 위치를 탐색하기 위해서다.

땅에 나뭇가지로 작은 마법진을 그린 그녀는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마법진 위에 놓여 있는 마석들이 은은한 빛을 내며 마력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괜히 플레이어 최고의 마도사가 아닌걸.’

지면을 훑으며 퍼져나가는 마력파장에 내심 혀를 내둘렀다.

마력의 움직임은 놀랍도록 섬세했다.

“뭔가 있어요.”

지그시 눈을 감고 있던 이수린의 눈에 떠진 건 대략 5분 후였다.

“마력의 형태를 볼 때 당신이 말했던 네크로노미콘인 것 같아요.”

“네크로노미콘이 저곳에 있다고?”

예상외였다.

분명 니알라토텝은 1회차의 정보를 조금 얻은 것 같았으니 네크로노미콘의 위치를 옮겨둘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곳에 그대로 남아 있을 줄이야.

“네. 그리고…….”

날카로운 이수린의 눈이 조금이지만 흐려졌다.

아무래도 그녀가 찾은 건 네크로노미콘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인간들이 있어요.”

“뭐? 우리 말고 벌써 이곳에 도착한 플레이어가 있다고?”

커뮤니티에서 그런 정보를 본 기억은 없는데?

거기다 우리는 곧장 이곳에 온 터라 우리보다 다른 플레이어가 먼저 도착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플레이어가 아니라 평범한 인간이에요.”

“평범한 인간이 이곳에 있을 리가…….”

잠깐만.

나는 한 가지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

딥원들이 문자를 적는데 사용한 인피는 어디서 구한 것인가.

놈들이 인피를 사용하는 건 이상하지 않았지만, 본디 르뤼에는 심해에 가라앉아 있던 도시다.

그런 곳에 인간이 살 리가 없었다.

“미리…… 재물을 공수하고 있었다는 건가.”

니알라토텝의 힘이라면 인간들을 몰래 납치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 놈이 힘을 쓰지 않아도 해변 근처의 마을이나 배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들을 습격하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을 테지.”

“여태 그런 사건이 있었다는 소문은 들은 적이 없어요.”

“있을 리가.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일반인 몇 명이 실종된다고 이슈가 될 것 같아?”

“……확실히.”

언제 몬스터가 튀어나올지 모른다.

아무리 사회가 수습이 되어가고 있었지만 여전히 몬스터의 습격은 활발했고 사망자나 실종자는 수없이 많았다.

그중 딥원에게 습격당했다고 해도 이슈가 되지 않은 건 당연했다.

“사람들의 반응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어요.”

이수린이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이곳은 네크로노미콘이 있는 곳이자 재물을 바치는 재단이 있는 장소다.

이미 한번 와본 터라 익히 알고 있었다.

‘민아가 분명 바르자이의 언월도도 제자리에 있다고 했는데?’

만약 바르자이의 언월도가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면 민아로부터 연락이 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색은 없었다.

“설마, 외신을 소환하는 걸까요?”

“아니야. 그 정도의 힘은 느껴지지 않아. 거기다 저 정도의 숫자의 사람들로는 소환할 수 없어.”

1회차에 요그 소토스가 소환된건 르뤼에에 탐사를 위해 온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재물로 바쳐졌기 때문이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많은 수의 플레이어들이 몇 번에 걸쳐 몰려들었고, 놈들은 그런 플레이어들을 잡아 재물로 바쳤다.

일반인들과 달리 플레이어는 강력한 마력을 지닌 존재다.

이런 말을 하긴 좀 그렇지만 격이 더 높았다.

그런 플레이어들을 계속해서 재물로 바치니 요그 소토스를 소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놈들은 지금 우리가 온 걸 알고 있다.”

“그런 거 같아요. 우리가 오자마자 의식을 시작했으니, 함정이라고 봐도 좋겠죠.”

구구궁.

기이한 소리가 울렸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날아가 막고 싶었지만 거리도 멀었고, 이미 늦은 상태였다.

“이드라,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겠어?”

“……그래. 그다지 좋은 상황은 아니구나. 되도록 당장 몸을 빼는 걸 추천한다.”

이드라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짜증이 치밀어 오른 얼굴로 중얼거렸다.

“설마 드림랜드로 통하는 문을 열어버릴 줄이야.”

거대한 검은 공간이 나타난 건 바로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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