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195화 (195/332)

# 195

195. 그림자를 조심하라(3)

네크로노미콘.

그리고 그곳에 기록된 모든 건 하나하나가 세상을 뒤흔들 수 있는 물건이었다.

예를 들자면 요그 소토스를 소환할 수 있는 바르자이의 언월도가 대표적이었다.

‘귀찮게 됐어.’

이븐가지의 분말이 지닌 능력은 물질과 비물질의 경계를 볼 수 있게 해주는 것.

하지만 방금 딥원의 공격을 볼 때, 단순히 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 경계에 발을 디딜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았다.

‘놈이 공격하는 동시에 공격하면 되려나?’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공략법이다.

세한은 대검을 든 놈의 양팔이 실체화하며 공격하는 동시에 허수공간에서 프라가라흐를 사출했다.

가장 빠른 비검은 놈의 검이 미처 휘둘러지기도 전에 딥원대장의 양팔을 꿰뚫었다.

쉬익!

“뭔, 이런 말도 안 되는 게 다 있어?”

프라가라흐는 녀석의 팔을 그냥 통과했고, 놈의 공격은 바닥을 산산이 부숴 버렸다.

동시에 일어난 일이다.

이것은 눈에 보이게 실체화하는 순간일지라도 자신에게 해가 되는 피해는 입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원리인지 모르겠다.

‘하기야 네크로노미콘에서 튀어나온 물건에 상식을 바라면 안 되지.’

외우주에 속한 놈이니 이런 얼토당토 않는 법칙이 통용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방금 공격에는 신격과 마력을 동시에 담았는데도 불구하고 경계 속에 숨은 놈을 공격할 수 없었다.

“캬샤, 캬샤샤샤!”

가만히 서 있는 세한을 놈이 비웃었다.

절대적으로 안전하다는 확신이 웃음 속에서 느껴졌다.

확실히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쓰러트릴 수 없으니 녀석이 웃는 것도 당연했다.

“캬샤…… 캬?”

물론, 일반적인 방법일 때의 이야기였다.

“캬, 캬샤샤샤. 캬샤샤샤샤!!”

웃음소리만 들려오던 딥원 대장의 모습이 나타났다.

놈은 전신을 덜덜 떨며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때 저장해 두길 잘했군.”

세한의 주위에는 새까만 무언가가 퍼지고 있었다.

이건 신격도, 마력도, 그렇다고 물리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뭔가도 아니다.

이건 단순한 악의다.

아흐리만의 육신이 무너지며 허수공간에 넣어두었던 악의.

그것을 아주 일부만 꺼내 주변에 퍼트렸을 뿐이었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녀석의 몸이 녹아내리고 있었으니까.

“차단하고자 하는 것만 차단하는 거군.”

일반적으로 자신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마력이나, 신격.

그리고 물리적인 피해를 차단하도록 설정해 둔 것이다.

반면 그곳에 속하지 않은 감정의 결정체.

아흐리만의 악의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캬………!”

딥원 대장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땅을 굴렀다.

녀석뿐이 아니다. 주변에 세한을 포위하고 있던 딥원들은 이미 한줌의 액체가 되어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세한은 아흐리만의 악의를 더 퍼지지 않도록 허수공간으로 집어넣은 후, 점차 녹아 사라져가는 딥원 대장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5분 후, 완전히 녹아 사라진 딥원 대장의 시체에는 작은 유리병만이 남아있었다.

***

딥원 대장을 쓰러트린 후에는 일사천리였다.

숫자가 많아 성가시긴 했지만, 네크로노미콘의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 놈들은 내 상대가 되지 못했다.

“저, 정말 그 괴물들이 전부 죽은 겁니까?”

“적어도 이 촌락에 있는 놈들은 다 죽었죠.”

“아…….”

감옥을 부수자 갇혀있는 플레이어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그들은 경계 어린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딥원들이 죄다 시체로 변해 있다는 걸 깨달았는지 경악한 얼굴이 되었다.

“혼자서 이 많은 괴물들을 쓰러트리다니.”

“혹시 이놈들을 이끌던 대장도 죽였습니까? 놈은 결코 상처를 입힐 수 없을 텐데요?”

“상처는 입히지 못했지만 죽이는 건 어렵지 않더군요.”

나는 그들의 앞에 작은 유리병을 내밀었다.

딥원 대장의 목에 걸려있던 유리병이다.

이븐가지의 분말이 담겨 있는 유리병이었다.

“그 괴물을 쓰러트리다니 맙소사!”

“우린 정말로 살았어. 살았다고!”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연신 고개를 숙이고 감사를 표현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니 조금 부담스러웠다.

그들이 나를 보는 눈은 흡사 희대의 영웅을 보는 눈빛이었으니까.

‘근데 이거 어떻게 사용하는 거야?’

물끄러미 손에 든 유리병을 바라봤지만 어떤 창도 떠오르지 않았다.

시스템의 영향을 받지 않는 외우주의 물건이기 때문이리라.

아까 딥원 대장이 사용하던 모습을 보면 목에 걸고 있는 것만으로 충분했던 것 같은데…….

‘뚜껑을 열어봐?’

마음 같아서는 그렇게 하고 싶었지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으므로 우선 허수공간에 던져넣었다. 사용법은 이드라에게 물어보면 되겠지.

“그럼 우선 합류하러 가죠.”

“합류요?”

“예, 해변에 지금 한국의 플레이어들이 진을 치고 있습니다.”

“그건…….”

내 말에 유럽 플레이어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돌아가지 않는 편이 좋을 겁니다.”

“딥원들의 군대가 향했기 때문이군요.”

“그, 그걸 어떻게.”

“제게 도움을 청한 이가 알려줬으니까요.”

태평한 내 모습에 유럽 플레이어들은 의아한 얼굴이었다.

“걱정되지 않는 겁니까?”

“예.”

걱정이 될 리가 없다.

한국 플레이어들은 녹녹치 않을뿐더러 딥원들에게 카운터나 마찬가지인 창우가 그곳에 있었으니까.

***

“……맙소사.”

연합의 플레이어들을 한국 플레이어들이 만든 캠프를 보자마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캠프 주변에 딥원의 시체가 어마어마하게 널려 있었으니까.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탓에 캠프는 조악하기 그지없었지만, 그런 조악함만으로 딥원들을 모조리 막아낸 것이다.

“역시 배 위에서 싸우는 것보다는 낫네.”

“그치? 역시 땅이 좋다니까.”

한국 플레이어들은 별것도 아닌 얼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딥원들에게 붙잡혀 있다가 구출된 유럽 플레이어들의 입장에선 놀랍도록 비현실적인 광경이었으리라.

“한국 플레이어들의 수준이 이렇게 높았습니까?”

연합 플레이어들의 대표로 앤더슨이 세한에게 물었다.

딥원과 싸우는 과정에서 기존 연합의 리더였던 플레이어가 목숨을 잃었기에 앤더슨이 대신 그 역할을 맡은 상태였다.

“수준 차이는 그렇게 크지 않죠.”

“그럼 대체…….”

“경험의 차이입니다. 그리고 스킬 유무의 차이죠.”

한국 플레이어들은 이드라의 스킬을 통해 딥원들과 싸우는 법을 이미 익혀둔 상태였다.

배 위에서 싸울 때는 아무래도 처음이라 당황한 부분도 있었지만 지상에서 싸우면 간단할 뿐이었다.

“하.”

앤더슨의 입에서 한탄이 흘러나왔다.

세한이 말한 스킬이 무엇인지 안 거겠지.

“암시안 같은 스킬 따위는 필요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침통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아마 연합의 플레이어들은 암시안을 익히라는 이야기를 단순히 타국의 견제라 생각한 모양이다.

“실례지만 하나만 물어도 되겠습니까?”

다른 국가의 플레이어들이 도착할 때까지 세한은 이곳에서 편히 지내라고 했다.

덕분에 겨우 한숨 돌리는 연합 플레이어들과 달리 앤더슨은 다른 한국 플레이어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어, 유럽에서 온 양반이구만. 고생했다고 하던데, 뭐든 물어보쇼.”

“대체 저 괴물은 무슨 방법으로 쓰러트린 겁니까?”

“저 괴물? 아아…….”

앤더슨에게 질문을 받은 중년의 사내는 정찰병 틈에 끼어 있는 딥원 전투병을 보고는 머리를 끄덕였다.

“확실히 강한 놈이었지. 하지만 단지 그뿐이었어.”

“단지…… 그뿐이었다고요?”

“저 괴물들은 우리가 나서기도 전에 간부들이 전부 처리했거든. 특히 저자가 죄다 도살해 버렸지.”

“저자? 그럼 혼자서 죽였다는 겁니까?”

앤더슨의 말에 사내는 어깨를 으쓱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거든 저쪽에게 직접 물어보는 게 빠를 거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앤더슨은 사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가 가리킨 남자에게 다가갔다.

‘맹인?’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앤더슨은 이질감을 느꼈다.

그 남자는 눈을 뜨지 않고 걷고 있었다.

마치 눈이 보이는 것처럼 태연히 돌아다니는 모습에 앤더슨은 멍하니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입니까?”

“예, 예?”

“계속 저를 보고 계시던데요.”

“아.”

그는 자신이 지켜보고 있던 걸 귀신 같이 알아차렸다.

눈도 보이지 않을 텐데 대체 어떻게 알아차린단 말인가?

“그, 그게 묻고 싶은 게 있어서…….”

“묻고 싶은 거라니요?”

“딥원들을 쓰러트리는 비법 같은 게 있나 싶어서 말입니다.”

그렇게 말한 앤더슨은 얼굴을 붉혔다.

스스로가 무척 바보 같다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상대는 황당하다는 얼굴이었다.

“비법? 딱히 그런 건 없습니다.”

“그럼 저 괴물들을 어떻게 죽인 겁니까?”

“그냥 검으로 베면 죽던 걸요?”

이게 지금 무슨 소리지.

앤더슨은 사내의 말이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 거짓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저 괴물들이 그냥 베면 죽는다고?’

그 말이 사실이라면 유럽 연합의 플레이어들이 그리 쉽게 패배할 리 없잖은가.

“가죽은 두껍고 신체능력은 일류 플레이어를 상회하는 괴물을 어떻게 그냥 벤다는 겁니까?”

“으음.”

추궁하듯 묻는 앤더슨의 말에 맹인 사내, 창우는 난감해졌다.

‘일류 플레이어 수준이라니 과장이 심하네.’

창우가 느끼기에 딥원들은 조금 성가신 몬스터에 불과했다.

확실히 능력치는 기존 몬스터보다 압도적으로 강했지만 기술적으로 허접하여, 조금 튼튼한 허수아비 정도로 느껴졌다.

창우는 스스로를 그다지 강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딥원들이 얼마나 강한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냥 되던데요.”

그것이 창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설명이었다.

***

유럽연합의 플레이어들이 휴식을 취할 무렵.

나는 이드라에게 다가가 작은 유리병을 내밀었다.

“호오, 이건 또 재밌는 걸 주워 왔구나.”

“이게 뭔지 알아?”

“모를 리가 있나. 이븐가지의 분말이지 않느냐.”

역시 이드라는 한눈에 이것이 무엇인지 파악했다.

“맞아. 딥원 대장이 지니고 있었어. 덕분에 상당히 성가셨지.”

“꽤나 분에 넘치는 걸 지니고 있었구나.”

분말이 들어 있는 유리병을 흔들며 이드라가 웃었다.

그 말처럼 딥원 대장이 지니기엔 지나칠 정도로 대단한 물건이었다.

“근데 내가 사용하려고 해도 안 되더라고.”

“그야 그렇겠지.”

“왜?”

“이건 이 세계의 법칙에 속하지 않은 이만이 다룰 수 있으니까.”

즉 외우주의 존재만이 다룰 수 있다는 뜻이다.

“네크로노미콘에서 나온 물건들은 전부 그런 거냐?”

“아니, 이븐가지의 분말 자체가 경계를 다루는 물건이라 그렇다. 바르자이의 언월도나, 이그의 달걀, 너트의 용광로 같은 것들은 사용할 수 있을 게다.”

“아까운데…….”

나머지 물건들은 애초에 사용하면 대형참사가 나는 것들이라 그림의 떡이었다.

차라리 이븐가지의 분말을 사용할 수 있었다면 좋을 텐데 정말 아쉬웠다.

“물론 편법도 있다.”

“뭐?”

“완벽하게 사용할 수는 없어도 제한적으로 사용할 수는 있을 테지. 샤이닝 트라페조헤드론을 사용해서 이쪽 시스템에 맞게 개량을 해보마.”

“가능한 거야?”

“완벽하게 사용은 불가능하겠지만 방어적으로는 사용이 가능할 테지.”

딥원 대장이 사용하던 걸 보면 그 힘은 무궁무진했다.

일부만 사용할 수 있어도 비장의 카드로 사용할 수 있으리라.

“부탁할게.”

“흠흠, 맡겨둬라. 그렇지 않아도 할 게 없어서 심심했으니.”

이드라는 손에든 이븐가지의 분말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네크로노미콘에서 나온 물건은 언제든 내게 가져 오거라. 대신 마음껏 분석할 수 있게 해줬으면 하는군.”

역시 사상최강의 마도서는 아우터갓에게 있어서도 꽤나 신기한 물건인 모양이었다.

나는 그런 녀석을 바라보다가 허수공간에 손을 집어넣었다.

볼일은 그것 말고도 하나 더 있었다.

“그리고 이거.”

나는 허수 공간에서 돌돌 말려있는 가죽을 하나 이드라에게 건냈다.

녀석은 그것을 의아한 얼굴로 받아들었다.

“이건?”

“딥원 대장이 머무는 거처에서 발견했어.”

“으음…….”

이드라는 손에 쥔 물건을 무척이나 찝찝하다는 얼굴로 보고 있었다.

“이게 무엇인지 아느냐? 이건…….”

“인피(人皮)지.”

“알고 있는 것치고는 무척 태연하구나.”

“나는 네가 그렇게 찜찜해하는 게 놀라운데.”

진심으로 놀랍다는 듯이 말하자 이드라의 눈이 찌푸려졌다.

“인간으로 치면 애견가에게 개 가죽에 글자를 새겨 준 건데 당연하지 않느냐?”

“그 이야기는 우리를 개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건가?”

“비, 비유다 비유!”

당황한 것처럼 손을 내젓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피식 웃었다.

“알고 있어. 장난친 거야.”

“…….”

장난이라는 말에 이드라의 표정이 기묘해졌다.

어쩐지 기뻐 보이는 얼굴이었다.

“어느새 그대가 내게 장난을 칠 수 있게 되었구나.”

“왜, 하면 안 되냐?”

“아니다.”

마치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천진하게 웃는 이드라의 모습에 나는 조금 부끄러워졌다.

확실히 1회차의 나라면 하지 않았을 말이며 태도였다.

그런 내 생각을 읽었는지 이드라는 웃던 걸 멈추고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대가 이걸 내게 내밀었다는 건, 인피에 적혀 있는 글자를 해독해 달라는 거겠지?”

“맞아.”

딥원들의 쓰는 문자는 나라도 알지 못했다.

“알겠다. 이븐가지의 분말을 개조하며 겸사겸사 이것도 해독하도록 하마.”

자신의 허수공간에 인피를 던져 넣으며 이드라는 씩 웃었다.

그 웃음은 천진하기 그지없었다.

무심코 내가 녀석의 머리에 손을 올려 쓰다듬을 만큼.

“……무슨 짓인 게냐.”

“아.”

갑자기 자신의 머리에 손을 올린 것에 놀랐는지 이드라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러고 보면 여자들은 머리를 만지는 걸 싫어한다고 하던데.’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이드라는 신이니 나는 지금 신의 머리에 손을 올린 게 된다.

“아, 그게.”

“됐다.”

변명을 하려고 했지만 이드라는 게슴츠레 떴던 눈을 초승달처럼 부드럽게 휘었다.

“이런 경험도 나쁘지 않지. 다만 정성을 담아 쓰다듬어라.”

“…….”

그 말에 나는 한동안 녀석의 머리를 조용히 쓰다듬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외우주 신의 머리를 쓰다듬은 최초의 인간이 된 것이다.

전이라면 기겁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내 손길에 고양이 같이 나른한 얼굴로 가만히 있는 이 신이.

바보 같을 정도로 헌신적인 나의 아바타가.

조금 귀여워 보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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