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194화 (194/332)

# 194

194. 그림자를 조심하라(2)

“우리가 운이 좋다고……?”

세한의 말에 사내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섬에 발을 디디기도 전에 딥원들에게 패배했고, 많은 이들이 죽었으며 살아남은 이들은 딥원들에게 잡혀있었다.

이런 자신들이 운이 좋다니.

마음 같아서는 윽박지르며 뭐라 하고 싶었지만, 눈앞의 사내는 자신들을 구해준 자였다.

‘거기다 엄청난 강자.’

세한은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플레이어중 한 명이었지만, 유럽에서만큼은 그다지 유명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유럽에서 활동할 일이 없었으니까.

길드랭킹에 디어사이드가 표시되지만 5위 안에 드는 것도 아니었고, 세한 본인은 중국이나 미국을 주로 돌아다닌 탓에 유럽에서 세한의 이름은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았다.

“제 말을 납득할 수 없는 모양이시군요.”

한숨을 내쉬는 그의 모습에 그들은 그저 입을 다물었다.

그런 묘한 대치 상황에 끼어든 건 뒤늦게 세한의 뒤를 따라온 이수린이었다.

“웬일이에요? 근엄한 컨샙 안잡고 이야기하고. 평소라면 ‘너희는 운이 좋군.’ 이런 식으로 말했을 거면서.”

“컨셉이라니…….”

아무래도 이수린의 머릿속에서 세한은 근엄한 척하는 이상한 플레이어 정도로 기억된 모양이다.

“딱히 무게를 잡을 필요가 없을 것 같았으니까.”

“하긴. 방금 그런 광경을 봤는데 덤비고 싶은 마음이 생길 리가 없죠.”

그 말대로다.

만약 방금 세한이 보여준 어마어마한 힘이 아니었다면 그들은 운이 좋다고 떠드는 세한의 말이 끝나자마자 검을 빼들고 덤볐을 것이다.

“아무튼 당신들 유럽 연합의 플레이어들이군요.”

“예, 예. 맞습니다.”

“딥원들에게 패배하고 붙잡힌 겁니까?”

“……예.”

과연, 예상한 그대로였다.

“녀석들의 본거지에 잡혀있는 플레이어의 수는 얼마나 되죠?”

“대, 대략 150명일 겁니다. 절반 정도 밖에 살아남지 못했으니까요.”

“맙소사.”

세한은 방금 전보다 한층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확실히 150명이면 큰 피해를 입긴 했네요. 당신이 놀라는 것도 이해가 가요.”

“큰 피해? 내가 놀란 건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야.”

“네?”

“정말로 운이 좋았기 때문이야. 무려 절반이나 살아남다니.”

탈출한 플레이어들의 수준과 숫자를 보고 유럽 연합은 사실상 거의 괴멸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지금 저희를 조롱하는 겁니까?”

하지만 그런 세한의 생각을 알 리가 없는 유럽 연합의 플레이어들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분노가 나타났다.

“설마요. 저는 진심으로 놀란 겁니다.”

“그걸 말이라고…….”

“잠깐만요. 제가 생각하기에도 당신들은 운이 좋아요.”

가만히 사태를 관망하던 이수린까지 끼어들자 플레이어들은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역시 이수린은 영특했다. 처음에는 세한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조금 고민해 보자 답을 찾은 모양이었다.

“암시안 스킬도 익히지 않고 딥원들과 싸웠으며, 그레이트 올드원도 만나지 않은 채 르뤼에에 도착했다라. 150명이나 살아남은 건 천운이라고 할 수 밖에 없네요.”

“암시안? 그레이트 올드원?”

“분명 유럽에도 전달했을 텐데요? 암시안 스킬을 익혀야 한다고.”

날카롭게 이야기하는 이수린의 모습에 그들은 기가 죽은 기색이었다.

“세한, 당신이 유럽에도 정보를 퍼트렸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랬지. 근데 무시한 모양이네.”

“네, 저도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도 절반이나 살아남다니, 운이 정말로 좋았다고 밖에 할 수 없죠.”

“덤으로 우리가 만난 그레이트 올드원도 피해갔고 말이야.”

“그렇죠. 그 괴물을 만났으면 한 끼 식사가 되었을 테니까요.”

날카로운 이수린의 성격은 이런 때 도움이 되었다.

칼날처럼 쏘아대는 이수린의 말에 그들은 어버버 거리며 제대로 대꾸조차 못했다.

거기다 그들 중 아바타도 있었는지, 그레이트 올드원에 대한 걸 알게 됐을 때는 그야말로 안색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되었다.

***

결국 그들은 나와 이수린의 맹공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다.

“북서쪽 방향에 있는 촌락이라…….”

말이 촌락이지 딥원 수천 마리가 모여 있는 장소였다.

“수가 상당히 많아 보이는데 우선 대표에게 말해야겠네요. 저희도 위험하겠어요.”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왜죠?”

“우리가 섬에 발을 디뎠을 때 놈들도 그걸 알았을 거야. 그리고 바로 군대를 보냈겠지.”

“이렇게 빨리 보냈다고요?”

나는 바닥에 쓰러져있는 딥원 전투병을 향해 눈짓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놈이 왜 여기에 따로 떨어져있겠어? 그리고 이들이 도망칠 수 있던 것도 그것 때문이지.”

“마, 맞습니다. 갑자기 정찰병과 전투병들이 우르르 떠났어요. 저희는 그 틈을 노려 빠져나온 겁니다.”

유럽 플레이어들의 안색은 그리 좋지 않았다.

아마 지금 르뤼에 온 다른 플레이어들이 자신들과 같은 꼴이 되리라 생각한 모양이다.

“이, 이번에 온 플레이어들은 몇 명입니까?”

“60명 정도입니다.”

“그, 그런.”

마치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얼굴에 무심코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쪽은 신경 쓰지 마시고, 우리는 우리가 할 일을 합시다.”

“예?”

“군대가 빠져나간 틈을 노려 사람들을 구출하자는 거죠.”

겸사겸사 정보도 좀 얻고.

네크로노미콘이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뭔가 단서가 있을지도 몰랐다.

‘이전에 그곳은 그다지 큰 촌락이 아니었으니까.’

사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우리를 습격한 딥원들의 수는 내 예상보다 많았다.

분명 니알라토텝의 손길이 닿았으리라.

“갑시다.”

“예? 어딜 가, 간다는 겁니까?”

“당연히 촌락이죠. 안내하세요.”

내 말에 연합의 플레이어들은 저마다 시선을 돌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겨우겨우 탈출했는데 돌아가고 싶을 턱이 없었다.

“알……겠습니다.”

힘없이 답하는 그들의 얼굴에는 절망이 떠올라있었다.

그렇다고 거부하지 않는 것을 보면 그들도 과연 연합의 대표 플레이어라고 할 만했다.

“이 풀숲을 지나면 금방입니다.”

자신을 앤더슨이라고 소개한 플레이어는 우리를 홀로 인도하고 있었다.

도망친 다섯의 대표로서 자신만 가면 안 되겠느냐 말했기 때문이다.

나야 길만 안내해 주면 충분했기에 가볍게 승낙했다.

‘볼만했지.’

앤더슨이 홀로 가겠다고 말하자 나머지 넷은 구원이라도 얻은 것처럼 활짝 웃었다.

우리를 따라가면 당연히 목숨을 잃으리라 생각한 거겠지.

반명 앤더슨은 결연한 얼굴이었다.

‘괜찮은 플레이어야.’

잡힌 건 둘째 치고 도망친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다.

암시안도 없이 딥원들의 경계를 뿌리치고 나왔다는 거니까.

“쉿.”

앞서 걸어가던 앤더슨이 긴장한 얼굴로 검지를 입가에 대었다.

그는 무성하게 자란 풀숲에 몸을 숨기며 말했다.

“바로 저깁니다. 정찰병들이 입구를 돌아다니며 지키고 있어요.”

촌락이라기보단 마을, 마을이라기보단 도시와 같은 규모였다.

단지 문명 수준이 낙후되어 나무와 풀로 집을 짓고, 괴상한 무기들을 지녔을 뿐.

특이한 마석으로 이루어진 장벽을 세워뒀고, 입구 근처의 정찰병들은 다섯 명씩 조를 짜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저 장벽에 가가이가면 마력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마법사들은 결코 빠져나올 수 없죠.”

“그건 별로 반갑지 않은 소리네요.”

“에스더를 이용한 장벽이군.”

“에스더요? 그 마력 반응이 좋다는 광석?”

“맞아. 정확히는 마력자체를 흡수하는 성질이 있지. 그래서 마법 내성이 강하고, 마력을 잘 받아들여.”

간단히 말해 마력을 이용한 공격으로는 파괴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에스더는 강도자체는 미스릴과 크게 다를 것 없지만, 마법으로는 결코 파괴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 우스운 건, 마법무기를 만들 때 가장 뛰어난 것도 에스더라는 것이다.

“즉, 이 근처에 에스더가 묻혀 있는 광산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야.”

디어사이드에서도 하나 가지고 있었지만, 그곳에서 나오는 에스더의 양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은 다르다. 수천 명의 딥원들이 사용하는 무기와 장벽이 전부 에스더로 되어있는 것으로 보아 보통 큰 광산이 아니리라 추측됐다.

“그럼 이제 어떡하실 겁니까?”

앤더슨이 딱딱한 얼굴로 물었다.

“들어가야죠. 아, 여기서 기다리고 계세요. 우선 정리하고 올 테니까.”

“……예?”

가볍게 일어서는 내 모습에 앤더슨은 멍청한 얼굴이 되었다.

나는 그에게 굳이 길게 말할 생각이 없었다.

직접 보여주면 그만이니까.

쿵!!

“샤아아아! 샤아아악!”

나는 가볍게 발을 굴러 정면을 향해 달렸다.

그런 내 모습을 발견한 정찰병들이 저마다 무기를 움켜쥐며 덤벼들었다.

‘이제 이런 놈은 우습지.’

먼저 덤벼드는 놈을 향해 가볍게 발을 차올리자, 가장 앞에서 덤벼들던 정찰병의 머리가 터졌다.

“샤악?!”

단 한방에 동료가 죽자 정찰병들은 크게 당황한 기색이었다.

‘이런 일을 겪어봤을 리가 없으니까.’

딥원들은 결코 약하지 않다. 정찰병이라고 해도 전투를 위해 태어난 이들이었다.

모든 능력치가 최소 C는 넘는 괴물들.

1회차의 나는 딥원들과 싸울 때 몇 번이나 생사를 넘나들어야 했다.

‘내가 강해지긴 강해졌구나.’

몸에 몰아치는 마력.

그리고 마력과는 반대로 회전하는 신격.

영구동력처럼 순환하는 힘의 결정을 주먹에 집중시킨다.

한쪽 눈에서 붉은 혈광이 터져 나오는 동시에 주먹이 뻗어졌다.

콰콰콰콰!!

정면에서 주먹을 얻어맞은 딥원의 몸이 산산이 찢겨나갔다.

그리고 녀석의 뒤에 서 있던 딥원들까지 일직선으로 터졌다.

딱히 초식을 사용한 건 아니다.

단지 마력과 신격을 집중해 나선으로 회전시켜 쏘아냈을 뿐이다.

마치 드릴처럼.

단 한 번의 주먹질에 수십 마리의 딥원들이 산산이 부서졌다.

‘이젠 1회차보다 쌜지도 모르겠어.’

중원에 가기 전이었다면 1회차의 내가 더 강했을 것이다.

하지만 혈천수라공을 극성으로 익힌 지금은 달랐다.

지금의 나는 1회차의 나보다 확실히 강했다.

***

“무, 무슨 소리지?”

“싸움이라도 난 것 같은데?”

딥원 촌락의 구석, 포로로 잡혀있는 유럽 연합의 플레이어들은 긴장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자신들을 감시하던 전투병과 정찰병들이 뭐라 소리치며 뛰쳐나간 게 방금 전이다.

그리곤 연신 폭음과 비명이 울려 퍼지며 땅을 흔들었다.

“설마 탈출한 녀석들이 다른 플레이어들을 불러온 건가?”

그들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희망적인 추측이었다.

“그럴 리가 없지. 우리가 싸웠던 괴물들의 힘을 몰라? 설령 다른 지역의 플레이어들을 불러왔다 해도 모두 죽을 뿐이야.”

“그, 그래도.”

“알잖아. 특히 그 괴물들의 대장은 이상한 힘을 지녔어. 어떤 플레이어라도 놈을 이기지는 못할 거야.”

“…….”

희망을 가졌던 플레이어들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 남자의 말대로 괴물들의 대장은 기이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잠깐, 저기 좀 봐!”

“왜?”

“저, 저기 싸우고 있는 거 플레이어 아냐?”

한 플레이어가 손을 들고 외치자 감옥 밖으로 한 플레이어가 싸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덤벼드는 딥원들을 단 한 방에 모두 격살시키고 있었다.

“마, 말도 안 돼.”

그들은 딥원이 얼마나 강한지 안다.

어둠이 오면 놈들이 나타나고, 놈들은 어둠속에서 플레이어들을 찢어발겼다.

‘이곳에서는 어둠을 내리지 못하나?’

에스더 때문에 사용하지 못하나 싶었지만 그건 아니었다.

딥원들과 싸우는 플레이어의 주변엔 검은 안개가 짙게 껴 있었다.

저것이 플레이어의 시야를 빼앗는 주술임을 그들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잠깐만, 저거 괴물들의 대장 아냐?”

처음에는 단순히 정찰병이나 전투병과 싸우고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는 전투병과 정찰병은 물론, 놈들의 대장과 한꺼번에 싸우고 있었다.

저게 과연 말이 되는 것일까.

‘말도 안 돼.’

마침 세한도 그들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눈앞에 있는 덩치 큰 딥원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이 촌락을 이끄는 딥원들의 대장이라 생각했지만 저건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캬샤샤샤샤.”

딥원 대장이 세한을 보며 웃었다.

촌락이 개박살 나는 광경을 눈앞에서 봤음에도 이상할 정도로 여유로웠다.

세한은 그 이유를 알았다.

“캬…….”

웃음이 안개처럼 흩어지며 대장의 모습이 뿌옇게 흐려지며 사라졌다.

기척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력과 신격을 동시에 사용하여 주변을 탐지해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뭔지 알기 쉬운데.’

세한은 마른 입술을 핥으며 정신을 집중했다.

쉬이익!!

등 뒤에서 갑자기 기척이 나타나자 세한은 황급히 몸을 앞으로 굴렀다.

콰직!

방금 전까지 세한이 서있던 장소에 딥원 대장이 날카로운 대검을 박아 넣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그 모습을 확인하기 무섭게 놈의 모습이 흩어지듯 사라졌다.

‘역시…….’

이건 딥원이 가진 능력이 아니다.

세한은 이 힘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이분가지의 분말(Powder of Ibn-Ghazi)인가.’

그것은 네크로노미콘에 기록된 마법도구 중 하나를 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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