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192화 (192/332)

# 192

192. 외계(外界)의 도시(3)

“조심해요!”

대화를 나누고 있을 틈은 없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경고에 홍가은은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미, 미안해요. 제가 바보같이…….”

“아닙니다. 큰 일이 난 건 아니었으니까요. 그보다 잠시 함께해 주실 수 있습니까?”

“네?”

창우는 검을 곧게 세우며 말했다.

그 모습이 마치 잘 벼려진 한 자루의 검과 같아서 홍가은의 가슴이 크게 뛰었다.

‘내, 내가 왜 이러지?’

방금 전까지 공포로 굳어 있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홍가은은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저는 이 어둠속에서도 한낮처럼 행동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 혼자 실력만으론 이 많은 괴물들을 베어버릴 수 없죠.”

창우는 자신의 부족함을 잘 알았다.

세한은 어째서인지 보이지 않았지만 아마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분명 자신을 데려온 건 이 괴물들을 위해서다. 그러니 자신은 그 역할을 철저히 수행해야만 했다.

“홍가은 씨. 제가 앞장설 테니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혼자서는 무리다.

그렇다면 도움을 받으면 된다.

그리고 이곳에서 창우의 검을 쫓아올 수 있는 건 단 한 명뿐이었다.

디어사이드의 검귀가 송창우라면 제네시스를 대표하는 검귀는 홍가은이다.

“……좋아요.”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홍가은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굳이 진정시키지 않으며 창우의 뒤에 섰다.

“가겠습니다.”

창우는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발을 뗐다.

그리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평범한 속도로 창우는 갑판 위를 달렸다.

‘세상에!’

홍가은은 이곳에 오기 전 창우와 대련을 한 적이 있었다.

시험관으로서 그와 대련했을 때도 그의 검 실력은 확실히 훌륭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보이는 모습은 단순히 훌륭하다는 말로 끝나지 않았다.

“샤아아아!!”

어둠속을 찢으며 한 자루의 검이 휘둘러졌다.

질풍이 되어 플레이어들과 괴물들의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

그가 한번 지나갈 때마다 하나의 딥원들이 쓰러졌다. 그리고 그가 미처 처리하지 못한 딥원들은 홍가은의 칼날에 쓰러졌다.

단 몇 초 만에 수십의 괴물들이 우수수 쓰러졌다.

‘이끌어주고 있어.’

홍가은의 실력은 확실히 뛰어났지만 지금의 연계는 그녀의 실력을 뛰어넘은 것이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그 이유를 몰랐겠지만 누구보다 검을 사랑하는 홍가은은 그 이유를 알았다.

창우는 바람이다.

바람에게 사각은 없었다.

어둠은 그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둠속이라도 바람이 불지 않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홍가은은 그 바람을 탄 하나의 연이었다.

바람을 타고 밤하늘을 가르는 연처럼 가볍게 검을 휘둘렀을 뿐이다.

사각이 없기에 창우는 자신의 뒤에 있는 홍가은을 눈으로 보는 것보다 세세하게 느낄 수 있었고, 자신이 벨 수 없지만 홍가은이 벨 수 있는 것을 찾았다.

그렇다면 다음은 간단했다.

벨 수 있는 것만 베고 나머지는 홍가은에게 넘긴다.

훤히 열려 있는 길을 홍가은이 가만히 보고만 있을 턱은 없었다.

‘마, 말도 안 돼.’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홍가은이 더 잘 알았다.

그가 ‘심안’이라는 희귀 스킬을 보유하고 있는 건 알았지만 이건 단순히 심안만으로 가능한 게 아니었다.

‘디어사이드에 있는 이들은 전부 괴물뿐인가?’

단순한 검 실력이라면 홍가은과 창우는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전투에서는 단순한 검 실력이 문제가 아니었다.

“샤악, 샤아아악!”

“키야아아아!!”

어둠은 더 이상 그들의 방패가 될 수 없었다.

딥원들은 바람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동료들을 보며 후퇴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공성을 하는 입장이었다.

배를 기어 올라오는 속도보다 쓰러지는 속도가 빠르다면 계속해서 전투를 벌이는 건 바보짓이었다.

뭣보다 심해에는 ‘그것’이 올라오고 있었다.

“……왔군.”

세한은 그다지 만나고 싶지 않았던 적이 배 아래를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하늘 위에서 혹시 다른 존재가 오지는 않는지 지켜보던 세한은 황급히 갑판으로 내려왔다.

“이드라!”

“자, 잠깐 기다려라, 이것만!”

이드라는 자신에게 덤벼드는 딥원의 공격을 데구르르 굴러 피했다.

덤으로 구르며 검을 휘둘러 딥원의 다리에 깊은 상처를 냈다.

“캬아아아!!”

분노한 딥원이 이드라에게 덤벼들고 검을 내리찍었지만 이드라의 몸이 분열하며 흩어졌다.

환상이다.

“되다만 괴물의 아이여. 이 몸을 여기까지 몰아붙인 걸 칭찬…….”

푸샥!

근엄한 얼굴로 딥원의 머리를 내리치려던 이드라는 갑자기 무언가에 꽂혀 날아가 버리는 딥원을 보며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무엇에 공격당한 건지는 바로 옆에 열려있는 허수공간이 알려주고 있었다.

“내, 내 건데.”

“쫄병 따위한테 뭘 그리 근엄하게 말하냐?”

“나름 내 데뷔식이었다만 너무하구나.”

이드라는 진심으로 억울한 얼굴이었다.

세한은 조금 찔끔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따라와.”

“힉!”

갑자기 허리를 껴안고 하늘을 날아가자 이드라가 바람 빠지는 것 같은 괴상한 비명을 냈다.

“힉?”

“자, 잘못들은 것이다. 나의 신이여.”

이드라는 자신을 짐짝처럼 들고 올라간 세한을 보며 부루퉁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래서 갑자기 무슨 일인 게냐.”

“마력은 내 말대로 최대한 아꼈지?”

“물론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무리 허접한 몸뚱이라도 딥원들에게 고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게 왔다. 준비해.”

“하여간 귀찮은 일만 맡아서는.”

그것이 이곳에 온 건 우연이 아니었다.

모두 세한의 안배였다.

이드라는 크툴루의 신이었고, 그들을 숭배하는 괴물들을 불러 모으는 물건을 몇 개나 가지고 있었다.

“음, 여기 있군.”

이드라는 자신의 허수공간에 손을 집어넣고 뒤적여 작은 피리를 꺼냈다. 피리가 꺼내지는 순간 작은 촉수가 튀어나와 이드라에게 뻗어졌지만 이드라는 그것을 찰싹 때리는 것으로 다시 집어넣었다.

“……허수공간에 생물을 집어넣을 수 없는 거 아니었나?”

“그건 이쪽 우주에 속한 존재니 그런 것이다. 타우주의 존재라면 전부 우리의 지배하에 있으니 허수공간에 넣는 건 어렵지 않지.”

과연 그런가.

세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그것은 이드라의 내음을 맡고 이곳까지 왔다.

이드라는 크툴루의 정점에 선 아우터갓 중 하나였기에 그것이 이곳에 온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냄새는 얼마든지 숨길 수 있는 것이었지만 세한은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

철썩, 철썩!

바다가 몰아치며 배가 크게 흔들렸다.

“키게게게엑!!”

딥원들은 무언가를 느꼈는지 도망치던 것을 잊고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마치 광기에 휩싸인 신도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뭐, 뭐야?”

플레이어들의 공격을 맞건 말건 그들을 무릎을 꿇고 연신 기도를 올렸다.

암시안을 통해 그런 딥원들의 광기를 느낀 플레이어들이 공격을 멈췄다.

뭔가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콰아아아아!!

“모, 모두 떨어지지 않게 꽉 잡으십시오!”

현균은 이미 세한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목소리가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야 당연하다.

지금 그들이 타고 있는 배는 상당한 크기의 배였다.

바다의 괴물들을 상대하기 위해 튼튼하고 거대하게 만들어진 대괴물용 군함이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나타난 존재는 그런 군함이 왜소해 보일 정도로 거대한 괴물이었다.

「───.」

인간의 귀로는 명확히 판별할 수 없는 괴음이 허공에 울렸다.

바다에서 튀어나온 건 간단히 말해 거대한 지렁이 같은 몸통과, 물고기의 비늘, 그리고 초롱아귀와도 같은 머리를 지닌 괴생명체였다.

지렁이와도 같은 몸통에는 무수한 주름이 져 있었지만, 플레이어들은 그것이 단순한 주름이 아님을 깨달았다.

저건 눈꺼풀이다.

“당장 모두 눈을 감으셔야 합니다! 절대 눈뜨지 마세요!!”

현균은 세한에게 들었던 경고를 떠올렸다.

다급한 그의 외침에 대다수의 플레이어들은 눈을 감았다.

하지만 미처 눈을 감지 못한 자들도 있었다.

「가가가가가가가!」

기괴한 울음소리와 함께 거대한 괴물의 눈꺼풀이 열렸다.

전신의 주름, 그것은 수십 수백, 수천 개의 눈이었고 눈의 시선은 잠시 배에 머물렀다가 허공으로 향했다.

하지만 찰나에 불과한 순간, 수많은 괴물의 눈에 마주쳤던 플레이어들은 전신을 사시나무처럼 떨며 자리에서 자지러졌다.

“끄, 끄르르륵!”

“뭐야, 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야?!”

눈을 하얗게 뒤집으며 쓰러진 사람들은 가볍게 경련했다.

죽은 건 아니었지만 시선을 마주친 것만으로 정신을 잃었다.

“젠장, 진짜 더럽게 생겼군.”

신격을 지닌 세한은 저 괴물을 보며 인상을 잔뜩 찡그렸지만 다른 플레이어들처럼 정신을 잃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곤…….”

딥원들이 숭배하는 그레이트 올드원.

보이는 외견과 달리 중하급 신격을 지닌 괴물이었다.

‘신격은 중하급에 그치지만……, 애초에 크툴르의 존재는 신격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신격은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권리다.

다곤은 그런 신격은 필요 없을 정도로 강력한 육신을 지닌 괴물이었다.

저것에 상처를 입히려면 최소한 알데바란의 주먹은 되어야 할 것이다.

당연히 세한으로서도 상당한 힘을 사용해야만 쓰러트릴 수 있었다.

과거 르뤼에에서 다곤은 최대의 적이었지만, 지금도 그러리란 법은 없다.

적이 무엇이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모든 패를 꺼내는 건 좋은 일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보니 제법 귀여운 녀석이로구나.”

“귀여워?”

“그대는 주인을 보며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가 징그러운가?”

“……대충 이해가 가지만 납득할 수는 없는 비유야.”

저 외계생명체를 강아지와 비교할 수 있는 건 이드라와 같은 아우터갓뿐이리라.

“아무튼 남의 집 강아지이니 쫓아내도록 하마.”

이드라는 손에 쥔 피리를 천천히 불기 시작했다.

피리에서 나오는 소리는 흔히 세한이 아는 음악이 아니었다.

‘마치, 사람의 비명 같은걸.’

물론 자세히 들으면 다르다.

하지만 그건 마치 인간, 혹은 생명체가 내지르는 비명과도 같았다.

「그가가가가가…….」

이드라의 마력이 피리를 타고 흐르며 변환된 소리는 다곤에게 닿았고, 놈의 전신에서 깜박이던 눈들이 천천히 감겨지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궁.

거대한 거체가 천천히 뒤로 넘어가자 커다란 파도가 치며 플레이어들이 탄 배가 연신 출렁거렸다.

만약 배가 조금만 작았다면 파도에 쓸려 침몰했을 것이다.

“됐다. 서둘러 가자꾸나.”

“그걸로 된 거냐?”

“아마 한동안은 깨어나지 않을 것이다. 대략 이틀?”

“그 정도면 충분하군.”

그 정도면 다른 나라의 배들이 전부 지나간 후일 것이다.

이드라가 분 피리는 다곤을 잠들게 만드는 물건이었다. 물론 상처를 입으면 깨어나겠지만 감히 바다에서 누가 다곤을 건드릴 수 있겠는가.

최소 같은 그레이트 올드원이 아니면 무리니 그건 걱정할 일이 아니었다.

“마력을 많이 사용했더니 피곤하구나.”

“한숨 자라. 깨어났을 때쯤이면 도착해 있을 거다.”

“알겠다.”

이드라는 작게 하품하며 눈을 감았다.

고로롱거리며 순식간에 잠든 이드라를 보며 세한은 피식 웃었다.

“끄, 끝난 거냐, 세한아?”

하늘에서 내려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현균이 다가왔다.

현균의 곁에는 박동권도 함께였다. 불안한 얼굴로 보아 어지간히도 방금 등장한 다곤이 충격적이었던 모양이다.

“아뇨.”

세한은 그런 현균에게 빙그레 웃었다.

다곤은 잠들었을 뿐, 사라진 건 아니다. 이틀이 지나면 다시 다곤은 깨어나 활동을 시작할 것이다.

피리로 잠들게 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계속 사용하면 먹히지 않을 것이다.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그들은 이제야 르뤼에에 발을 디딜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에 불과했다.

***

갑판에 남아 있는 딥원들을 처리하자, 하늘을 뒤덮던 어둠은 사라졌다.

그 후에는 특별한 일없이 배는 순항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르뤼에의 해변에 다다를 수 있었다.

“다행히 해변은 크게 다르지 않네.”

모래사장을 밟으며 현균은 차분히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이곳까지 오며 만난 딥원이나 다곤은 그의 입장에서 상당히 충격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피해는 어떻죠?”

“다행히 사망자는 없어. 하지만 부상자는 열둘, 그리고 실신해서 깨어나지 않은 사람이 여덟이야.”

무려 60명 중 스물이다.

비율로 따지면 삼분의 일이니 상당한 피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세한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사망자가 한 명도 없는 겁니까?”

“응, 부상자들도 치유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플레이어들이 치료 중이니 금방 움직일 수 있을 거다.”

“……그거 놀랍네요.”

정말로 놀랐다.

1회차에서 르뤼에에 당도할 당시에는 100명이 승선했으며 그중 서른 명이 죽었다.

그것도 르뤼에에 도달하기도 전에.

‘사실 그것도 운이 좋은 거였지.’

1회차의 한국은 다곤을 마주치지 않았다.

다곤을 마주친 건 러시아의 플레이어들이 탄 배였고 그들은 모두 바닷속에 수장되었다.

‘플레이어들은 내 예상보다 훨씬 강해졌는지 몰라.’

시기로 따지면 르뤼에에 온 것은 6년은 빨랐다.

그럼에도 수준은 훨씬 높았다.

여태 내가 해온 일이 확실히 효과가 있다는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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