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
190. 외계(外界)의 도시(1)
“으허허허헉! 이게 대체 뭐야!”
형환은 어둠속에서 습격해 오는 기괴한 괴물들의 모습에 자지러지게 놀랐다.
게임이 시작된 이후 여러 괴물들을 만나왔지만 이토록 끔찍한 괴물들은 처음이었다.
“샤아아아…….”
더 무서운 점은 도구를 사용할 줄 알며 서로 대화가 된다는 점이다.
머리는 심해어와도 같은 외견을 하고 있었지만 팔과 다리는 인간의 것이었다.
“이봐! 안에서 뭐하는 거야?! 뒤에 순서가 밀렸다고!”
“예, 옙.”
형환이 방으로 들어간지 3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자, 밖에서 재촉하는 소리가 들렸다.
‘네놈들도 이놈을 보면 그런 말이 나오지 않을 거다.’
고작 30분에 불과했지만 형환은 그 짧은 시간동안 열 번은 넘게 죽었다.
처음에는 어둠에 적응하지 못하여 서너 번 죽었고, 그 후로는 놈들의 외형에 놀라 죽었다.
지금은 이렇게 방어전을 펼칠 수는 있었지만 놈들을 제대로 공격하는 것조차 버거웠다.
‘이게 정말 마법이라고?’
이렇게 실감나는데 전부 거짓이라니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하긴 환상이 아니라면 난 이미 저승에 있겠지.’
[눈에 의지하지 말고 정신에 집중하십시오.]
허공에서 메시지가 들렸다.
시스템이 그를 보조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게 대체 무슨 조화인지 형환은 알 수 없었다.
‘정말로 이 세계를 디어사이드가 손에 쥐었다는 건가?’
그는 기자다.
여러 가지 정보를 접했고, 그중에서는 말도 안 되는 것도 있었다.
대표적인 게 디어사이드와 관련된 정보다.
게임관련 업종에 종사하던 민간인들을 대량으로 길드에 채용했다는 소식은 이미 수많은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소문이 자자했다.
문제는 ‘어째서’ 라는 것이다.
대부분이 그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암암리에 떠도는 소문은 이 세계의 게임을 디어사이드가 탈취했으며, 기존 게임을 운영하던 사람들을 모아 운영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신들에게 물어봐도 반신반의하거나 대답하지 않는 터라 의문은 계속 증폭되었다.
“그건 나중에 밝히고 우선 지금은 이걸 극복하는 거다.”
이번 조사에는 디어사이드도 참여한다고 들었다.
함께 활동을 하면 뭔가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지 모른다.
형환은 의욕을 불태우며 눈앞의 괴물들을 향해 덤벼들었다.
하지만 그는 남은 제한시간 30분을 더 소모했음에도 환상 속 괴물들을 모두 쓰러트릴 수 없었다.
***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군.”
아직 ‘스킬’을 익힌 사람은 등장하지 않았지만 그건 하루 이틀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우선은 현재 전투에 익숙해지는 게 먼저였다.
“야.”
“…….”
“박동권. 너 내 말 씹냐?”
“아, 아닙니다.”
나는 딱딱하게 굳어있는 박동권을 보며 쯧쯧 혀를 찼다.
녀석은 바쁜 현균을 대신해 지속적으로 조사대에 관련된 일들을 내게 보고하고 있었었다.
‘역시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 구나.’
혹시나 사람이 달라졌나 싶었지만, 박동권은 내가 아는 박동권 그대로였다.
놈은 이번 조사대에 당연히 참여하지 않았다.
‘현균이 죽으면 길드장 자리를 얻으려는 거겠지.’
나와 계약을 했으니 나쁜 짓은 할 수 없을 테니 자연스럽게 현균이 죽기를 바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르뤼에는 박동권에게 천운과도 같았다.
아마 누구보다 현균이 죽기를 바라는 건 이놈일 거다.
“너도 갈 거니 안심하지 마라.”
“예?!”
박동권은 펄쩍 뛰며 다급하게 떠들었다.
“그, 그럼 저희 길드는 큰일 납니다. 길드장이 조사대에 참여한 덕에 길드의 실무를 볼 사람이 없는데 저까지 가면…….”
“대신해서 봐줄 사람은 내가 마련해 주지. 분명 너보다 길드를 배는 잘 돌볼 거야.”
“그, 그런.”
절망이 깃든 놈의 얼굴에 나는 피식 웃었다.
사실 놈이 행동이 마음에 안 들어서 데려가는 건 아니다.
딥원들을 상대할 때 박동권의 스킬은 발군의 힘을 발휘한다.
어설프게 지능을 가진 괴물들에게 ‘선동’은 그야말로 무엇보다 날카로운 창칼이 될 것이다.
“그럼 나가봐.”
“……예.”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나가는 놈을 보며 나는 굳이 위로하지 않았다.
애초에 놈이 벌인 일을 생각하면 살려둔 것만 해도 자비로운 일이다.
‘아무튼 이드라의 스킬은 정말 쓸 만하다니까.’
진짜에 한없이 가까운 환상.
미리 예습을 하기엔 이보다 좋은 스킬이 없었다.
어느 정도 기본을 갖춘 이후, 이드라는 포인트를 투자하여 최대한 능력치를 올렸다.
플레이어의 능력치는 시련……, 간단히 말해 메인 퀘스트를 극복한 만큼 한도가 올라간다.
이드라의 경우에는 클리어한 메인 퀘스트가 몇 개 되지 않았지만 나의 아바타인 덕인지, 비교적 일반적인 플레이어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능력치를 올릴 수 있었다.
체력만 빼고.
‘대체 왜 랜덤으로 올라가는 건데!’
예상가는 이유가 없는 건 아니다.
아마 이드라가 이쪽 우주에 속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아바타가 포인트를 얻어도 외우주에서와 같이 자연스럽게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이정도면 딥원들에게 죽을 일은 없겠지.’
죽어도 살아나긴 하지만, 주변에서 보는 눈도 있고 죽었다가 살아나는 그 짧은 틈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지속적으로 몸의 활용법을 익혔으니 홍가은에게 했던 것과 같은 바보짓은 하지 않으리라.
아마.
***
그 후 3주가 흘렀다.
조사대의 파견까지 앞으로 3일이 남은 상황.
나는 최종인원을 확인한 후, 한숨을 내쉬었다.
“60명인가…….”
본디 100명에 달하는 숫자였지만 ‘스킬’을 익힌 건 60명뿐이었다.
“왜 그래, 오빠? 너무 적어?”
내 한숨을 초조한 얼굴이 된 민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 딱 좋아.”
오히려 많다.
내가 한숨을 쉰 건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안도의 한숨이었다.
‘암시안(暗視眼).’
어둠 속에서 이드라가 만들어낸 환상과 싸우며 익히게 된 스킬.
1회차에서는 내가 익히기 위해 사용했던 방법이었다.
암시안의 효과는 간단하다.
어둠속에서 보다 상대를 뚜렷하게 볼 수 있는 것.
이름 그대로 어둠을 꿰뚫어보는 눈이다.
스킬등급도 C급으로 대단치 않은 스킬이지만 이것이 있느냐 없느냐로 르뤼에에서 생존능력이 달라진다.
익히기가 그다지 어렵지 않은 스킬임에도 그다지 보유한 이가 없는 건 어둠속에서 몬스터와 싸울 일이 없기 때문.
던전들조차 내부가 밝은 탓에 플레이어들은 그다지 익힐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우리 중에 못 익힌 사람은 없지?”
“응, 없는 것 같아. 창우 오빠는 안 익힌 것 같은데…….”
“창우 씨는 심안이 있으니 익힐 필요 없어.”
최상위 스킬인 심안이 있는데 암시안 따위를 익힐 필요가 있을 리가.
아무튼 이제 대충 준비는 된 것 같았다.
“형, 여기 목록에 있는 사람들을 위주로 조사대를 다시 짜주세요.”
“스킬을 익히지 못한 사람은 아예 빼달라?”
“예.”
탈락한 플레이어들도 하나 같이 이름 있는 플레이어들이었다.
심지어 3대 길드의 핵심 간부들도 개중에 섞여 있었다.
“고작 스킬 하나로 조사대에서 탈락했다고 하면 상당한 반발이 나올 텐데.”
“고작 스킬이 아닙니다. 그 스킬이 없으면 살아남지 못해요. 최소한의 조건입니다.”
현균은 곰곰이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하지.”
“감사합니다.”
나는 꾸벅 고개를 숙인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대충 조사대 인원이 선발되었으니 나도 바삐 움직여야만 했다.
“오빠 또 어디가?”
“조사대에 꼭 포함시킬 사람이 한 명 있거든.”
“어? 설마 지원조차 안 한 거야?”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일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이라서 말이야.”
“흐음, 알았어. 나는 이드라 님과 르뤼에를 대비해서 준비하고 있을게. 연금술 도구 챙기면 되지?”
“어.”
르뤼에에는 연금재료도 대량으로 존재했다.
도착하면 그곳의 재료로 엘릭서를 만들 생각이었다.
‘지금의 민아라면 완벽하게는 안 되도, 대충 비슷하게는 만들 수 있을 거야.’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성녀 신유화를 데려가면 좋았겠지만, 신성한 기운을 마구 뿜어내는 신유화가 르뤼에에 가면 딥원들의 먹이가 될 게 분명했다.
그러니 민아의 연금술은 이번 조사에 필수 요소였다.
“그럼 다녀올게.”
나는 말을 끝내자마자 날개를 펼치고 날아올랐다.
하필 상대가 서울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 있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
지금으로부터 3주 전.
그러니까 조사대의 훈련이 막 시작할 무렵 나는 천안으로 날아갔다.
조사대에 지원한 플레이어들의 목록에 ‘그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속해 있는 길드는 서울에 내가 자리를 마련해 줬음에도 이곳에서 계속 똬리를 틀고 있었다.
내가 찾아간 곳은 바로 한국, 아니 세계 최강의 길드 중 하나인 아가트람의 본거지였다.
“아.”
건물의 입구에 다가가자 마침 문을 열고 나오던 이수린과 마주쳤다.
“오랜만이군.”
“……또 무슨 일이에요? 그리고 이제 무게 잡지 말라니까요?”
아무래도 강준식과 있었던 사소한 다툼을 그녀는 아직 잊지 않은 모양이었다.
‘전생에는 이런 적 없었는데.’
왜 하필 그런 모습을 이 여자에게 들킨 걸까.
“길드장님 불러드려요? 어차피 길드장님에게 볼 일이 있어서 온 거잖아요.”
“아니야.”
“그럼 준식이? 준식이는 어딨는지 몰라요. 전 바쁘니까 알아서 찾아주세요.”
그녀는 심드렁한 어조로 말했다.
아가트람은 현재 이 세계에 대해 파악하고 있는 몇 안 되는 길드였다.
내가 이드라를 아바타로 삼고, 이 게임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또한 상위에 가까운 신격을 지녔다는 것도.
그런데도 이수린은 이런 태도였다.
‘마법 말고는 정말 아무 것에도 관심이 없는 여자니.’
애초에 아가트람은 자신이 관심이 있는 것 말고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만약 천상환이 아니었다면 엇나가도 한참 엇나갔을 사람들이다.
“이번에는 네게 볼 일이 있어서 온 거다.”
“저요?”
예상외였는지 이수린의 눈이 가늘어졌다.
“저는 그 이상한 여자에게 스토킹당해서 죽고 싶지 않은데요.”
“……지수를 알아?”
“그럼요, 가끔 아가트람에 방문하실 때 몰래 쫓아오는 걸 몇 번이나 봤으니까요. 제가 가까이가면 죽일 듯이 노려보곤 했죠.”
“미, 미안하군.”
스토킹 스킬 탓에 나는 지수가 쫓아와도 기척을 느낄 수 없었다.
신격을 사용해도 마찬가지다. 까마귀의 눈으로 계속 관찰하지 않으면 결코 볼 수 없었다.
“이번에는 지수가 함께 갈 일이 없으니 걱정할 필요 없어.”
“그 여자의 이야기를 하는 걸 보니, 이번 목적은 저인 모양이군요. 그것도 제가 함께 갈 곳이 있는 건가요?”
“그래, 이번에 나타난 신대륙이지.”
이수린은 턱을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본 적 있어요. 하지만 전 관심 없어요. 그곳에 있는 새로운 재료나 몬스터는 마법에 하등 도움이 되는 게 아니니까요.”
“너의 신이 그렇게 말했나?”
“네.”
모리안이라면 이수린에게 그 사실을 숨겼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였다.
그녀는 적에겐 냉혹하지만 아군에게는 마음이 약한 신이니까.
‘걱정 마시죠. 제가 보호할 테니.’
언제 왔는지 이수린의 머리 위에서 날 노려보고 있는 모리안을 향해 빙긋 웃은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마법과 관련된 것도 그곳에 있어.”
“그래요? 그럼 조금 솔깃하지만…… 당장 특별한 소재가 필요한 건 아니라서.”
그녀는 전혀 관심이 없는 얼굴이었다.
계속 대화하는 것조차 귀찮아졌는지 그만 좀 말을 걸어달라는 오오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소재가 아니야. 마도서…… 컥!”
빠악!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옵저버가 날아와 내 이마를 때렸다.
모리안의 옵저버도 어릿광대처럼 희귀 스킨을 착용하고 있었다.
“이 나쁜 자식아! 남의 아바타에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어릿광대가 그랬듯, 작은 요정의 모습을 한 모리안이 빽 소리쳤다.
등 뒤에 달린 네 쌍의 검은 날개가 빠르게 퍼덕거리고 있다.
“……갑자기 왜 그래요, 모리안.”
“아아, 나의 아이야. 걱정 마렴. 내가 저 더러운 까마귀의 마수로부터 지켜줄 테니.”
대충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내가 이수린에게 네크로노미콘을 제어하게 하리라 생각한 거겠지.
이미 르뤼에에 네크로노미콘이 있다는 사실은 커뮤니티 전체에 퍼진 상황이었다.
그걸 떠들고 다닌 사람은 당연히 어릿광대였다.
“네크로노미콘을 이수린에게 줄 생각은 아닙니다.”
“그곳에 있는 마도서가 네크로노미콘 말고도 있다는 것이냐?”
“예. 하나 더 있습니다.”
네크로노미콘은 딥원들이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르뤼에에는 스타스폰이라는 종족이 존재했다. 그들 역시 하나의 마도서를 지니고 있었다.
“나인성교본이죠.”
다른 이름으로는 ‘르뤼에 이본’이라 불리는 마도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