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189화 (189/332)

# 189

189. 조사대(2)

“예, 예. 정말로 괜찮습니다. 따로 오실 필요 없습니다. 그럼.”

세한은 제네시스의 길드장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끊으며 한숨을 쉬었다.

‘트라우마를 준 것 같은데.’

홍가은이 설마 시험관이었을 줄이야.

이래저래 그녀와는 몇 번 엮인 적이 있는 터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전이야 어쩔 수 없었다지만 이번에는 자신의 아바타의 명백한 잘못이었기 때문이다.

“이드라.”

“음, 왜,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게냐.”

“왜 굳이 상대의 검을 향해 달려들어?”

“전략이었도다. 참으로 기발하지 않느냐?”

기발하다마다.

이런 전략을 사용할 수 있는 건 너나 지수 정도겠지.

대부분은 이런 자살행위를 전략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냥 전승스킬을 사용하지 그랬어?”

“전승스킬 사용해도 되는 것이었느냐?”

“당연한 거 아냐?”

그럼 마법을 주력으로 삼는 플레이어도 검으로 싸우라는 소린가?

아무래도 내가 최근 계속 접근전을 연습시킨 탓에 이드라가 단단히 착각했던 모양이다.

“나는 또 당연히 지금까지 익힌 기술로 쓰러트려 봐라, 이런 의도라 생각했다만.”

“……말이 되냐.”

내가 이드라에게 접근전을 익히게 한 건 어디까지나 르뤼에의 특성 때문이다.

신인 이드라라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아바타인 이드라는 평범한 플레이어와 다를 것이 없었다.

딥 원들이 습격하게 되면 필경 접근전을 할 일이 생길 것이다.

말하자면 최소한의 호신을 위해 익혀두게 한 것이다.

덤으로 이드라에게 인간의 싸움을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태생이 신이니 분명 인간과의 괴리가 발생하리라 생각했고, 그 생각처럼 이드라는 죽음을 하찮게 보았다.

그것을 미리 알고 수정하고자 했지만…….

‘결국 상황이 이렇게 꼬였군.’

게슴츠레한 눈으로 이드라를 빤히 바라보자 이드라는 찔끔한 얼굴로 말을 둘러대었다.

“어차피 전승스킬은 사용할 수 없었다. 상대를 죽일 수도 있지 않느냐?”

환상이나 꿈을 다루는 이드라지만, 그것만으로 평범한 인간은 가볍게 제압할 수있었다.

능력치가 낮아도 숙련도가 다른 것이다.

“허수공간 같은 거 있잖아. 거기서 아무 물건이나 사출해서 날려버려도 되는 거 아니야?”

“그게 제일 최악이다. 내 허수공간에는 나도 뭐가 있는지 모른다.”

“왜?”

“외우주에서 대충 쓰레기통처럼 썼기 때문이지.”

자칫하면 씹다 뱉은 그레이트 올드원이 튀어나올 수 있다, 라고 말하는 이드라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에서 대련이 마무리 지어진 게 오히려 행운이었군.’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사소한(?) 문제가 생기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이드라는 조사대에 포함됐지 않은가?

덤으로 다른 일행들은 당연히 합격이었다.

특히 창우는 홍가은에게 상당히 호감을 산 모양이었다.

“다음에 따로 만나자고 했다더니, 약속은 잡았습니까?”

“하하, 아뇨……. 대체 왜 저를 만나고자 하는지 도통 몰라서 말입니다.”

반면 창우는 그렇게 말하며 얼버무렸다.

“그 언니 창우 오빠한테 반한 거 아냐?”

“저 같은 맹인의 뭘 보고 반하겠습니까.”

“검이겠죠.”

“네?”

“홍가은 씨는 창우 씨의 검이 마음에 들었던 거라 생각합니다.”

“제 검이…….”

창우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주변에 워낙 강한 자가 많으니 자신의 실력이 일천하다 생각하는 모양이다.

물론 그건 터무니없는 오해다.

태생이 재능의 화신인 린의 검은 간단한 검격도 자연스럽게 극의에 도달한다.

최적의 일검으로 완성되는 검격은 신의 영역.

지수는 또 어떤가?

지수는 인정하지 않겠지만, 지수는 태생이 강자다.

말하자면 아자젤과 비슷하다. 리미트 브레이크 스킬이 없는 아자젤이라 할 수 있다.

린과 달리 지수의 행동은 낭비가 많을지 모르지만 압도적인 능력치로 만들어내는 공격은 평범한 인간의 인식을 한참 넘어선다.

그런 것들을 옆에서 비교해 왔으니 상대적으로 자신이 허접하다 생각하게 된 모양이다.

“창우 씨의 검은 제가 본 플레이어의 검 중에 가장 깔끔합니다.”

“그, 그렇습니까?”

“예, 무공을 익힌 것도 아니며, 순수하게 단련해 온 실전검술은 낭비란 없죠. 분명 가은 씨도 그걸 알아차렸을 겁니다.”

홍가은은 검에 미친 여자다.

당연히 창우에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녀가 바라는 건 신에 이르는 것이 아니니까.

“아무튼 슬슬 돌아가죠. 조사대에 합격했으니 남은 시간동안 철저히 준비해야 되니 말입니다.”

“준비요?”

“예.”

세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둠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걸 배워야 하니까요.”

물론 우리만이 아니다.

조사대 전원에게도 같은 훈련을 시킬 생각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조사대는 르뤼에에 발을 디딜 수도 없을 것이다.

***

‘어떻게든 들어올 수 있었다.’

며칠 전 디어사이드 길드에 찾아갔던 한 남자.

헤르메스의 아바타이자, Tkbs에서 기자의 일을 하고 있는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계획과는 조금 다르지만 조사대에 결국 참여했으니 아무렴 어때?”

본래는 디어사이드에게 부탁해 참여할 생각이었지만, 입구에서 쫓겨난 탓에 따로 지원서를 낼 수밖에 없었다.

“형환 씨도 오셨군요.”

“아, 안녕하세요, 진환 씨.”

심형환, 그것이 그의 이름이었다.

“조사대에 참여하는 플레이어들을 모두 모아서 뭘 하려는 걸까요? 어차피 출발일은 아직 3주가 넘게 남아있을 텐데 말이죠.”

“분명 뭔가 있습니다.”

진환도 형환과 마찬가지로 플레이어 출신 기자였다.

거기다 같은 소속의 기자였던지라 둘의 사이는 상당히 친한 편이었다.

‘조사대의 수는 대략 100명.’

한국에서 모은 엘리트 중의 엘리트들이다.

100명이라는 숫자는 그리 많지 않지만, 다른 국가의 플레이어들까지 르뤼에로 온다고 생각하면 결코 적은 수가 아니었다.

‘전부 다 아는 사람들이구만.’

푼수끼가 있지만 그는 나름 유능한 기자였다.

이곳에 있는 플레이어들은 하나 같이 이름난 길드 소속의 플레이어들이었고, 설령 길드에 속하지 않았어도 유명한 플레이어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이런 플레이어들을 과연 누가 통제하게 될지.’

제네시스의 길드장인 박성혁일까?

아니면 피안화의 이아영?

아웃라이징의 강태성은 이런 플레이어들을 이끌기엔 적합하지 않다.

제멋대로 일을 진행하다가 큰 마찰을 일으킬 수도 있었으니까.

“아아, 안녕하십니까.”

그대 한 남자가 단상에 오르며 입을 열었다.

비교적 부드러운 인상을 지닌 남자였다.

“누구지? 정부 소속의 사람인가?”

대다수의 플레이어들이 남자를 보며 웅성거렸다.

그가 누구인지 알아차린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저는 이번 조사대의 리더로 여러분을 이끌게 된 윤현균입니다.”

꾸벅 허리를 숙이는 그의 모습은 지극히 예의바른 모습이었다.

‘블루에일의 길드장, 윤현균!’

형환은 그가 누구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수도권에서는 그다지 유명하지 않았지만, 지방이나 충청권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자였다.

대단한 무력을 지닌 플레이어가 아님에도 충청권, 나아가 한국의 5분지 1을 자신의 영역에 둔 블루에일은 명백히 한국 대표의 길드 중 하나였다.

실제로 윤현균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웅성거리던 주변이 조용해졌다.

블루에일의 길드장이라면 충분히 조사대의 리더를 할 자격이 있었다.

“우선 여러분들과 같이 대단한 플레이어분들과 함께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는 그렇게 말한 후,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아마 이렇게 갑작스런 모임을 가지게 된 것에 대해 의문을 가지시겠죠. 여러분을 불러 모은 건 간단한 인사와 몇 가지 훈련을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훈련이요? 이렇게 갑작스럽게 사람들을 불러모은 것도 이상한데 왜 훈련을 한다는 겁니까?”

“거기다 아무리 블루에일이라도 갑자기 조사대의 리더가 되었다고 냅다 발표하는 건 이상한 것 같은데…….”

현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변에서 말이 나왔다.

물론 그런 반응은 이미 예상하던 바였다.

“조사대의 리더는 현재 한국에 존재하는 상위 100위 이내의 길드를 이끄는 길드장, 그리고 랭킹 100위 이내의 플레이어들의 투표로 정해졌습니다. 이곳에도 분명 투표한 플레이어분들도 계실 겁니다.”

현균의 말에 상당한 숫자의 플레이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훈련은 이번에 가게 될 대륙, ‘르뤼에’에 대한 대책입니다.”

“르뤼에?”

“대륙의 이름이 정해진 건가?”

이들은 새롭게 나타난 대륙을 신대륙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몇몇 아바타인 플레이어들은 르뤼에라는 이름에 반응한 신들로부터 정보를 얻고 있었다.

“하나 물어도 되겠습니까?”

팬을 손에 들고 작은 수첩을 꺼낸 형환이 입을 열었다.

“얼마든지요. Tkbs의 기자님이시군요.”

“예, 예. 그렇습니다. 이번에 취재차 르뤼에에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무엇이 궁금하신지요?”

“이번에 생긴 신대륙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대책을 마련한다는 겁니까?”

그런 형환의 말에 현균은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좋은 질문이군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해당 대륙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는 분에게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죠.”

“예?”

“디어사이드의 길드장. 그는 외신(外神)과 연관이 있는 자라는 걸 아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평범한 플레이어들을 잘 모르지만, 아바타인 플레이어들이라면 공공연하게 알고 있는 사실이다.

입이 가벼운 신들이 자신의 아바타에게 떠들었기 때문이다.

“설마 디어사이드의 길드장이 직접 이야기한 겁니까?”

“예, 아무래도 르뤼에라는 장소는 저희의 예상보다 훨씬 위험한 모양입니다. 그러니 되도록 훈련을 함께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말한 현균은 빙긋 웃었다.

“아, 물론 강요하진 않습니다. 생각이 없으신 분들 지금 바로 퇴실해 주셔도 됩니다.”

‘나가겠냐?’

사실상 반 협박이나 마찬가지다.

디어사이드의 길드장에 대한 소문을 모르는 자는 이곳에 없었다.

“그럼…… 모두 이해하셨으리라 생각하고 훈련을 시작하도록 하죠.”

“지금 바로?”

“예, 지금 바로 시작할 겁니다.”

현균은 빙긋 웃었다.

참으로 부드러운 미소였지만 그것을 본 형환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었다.

***

며칠 전, 나는 박성혁을 통해 조사대의 리더와 만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예상외였던 점은, 조사대의 리더가 익히 내가 아는 자였다는 것이다.

“오랜만이다, 세한아”

“설마 형이 조사대의 리더가 되실 줄이야 정말 놀랐네요.”

“어쩌다보니 이렇게 됐지.”

싱긋 웃는 현균의 미소는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미소 속에 감춰진 얼굴은 그가 상당히 변했음을 느끼게 만들었다.

‘상당히 세력을 키우리라 생각하긴 했지만 설마 충청 지역을 다 먹었을 줄이야.’

여태 그쪽은 관심을 가지지 않아 몰랐지만, 블루에일은 서울의 3대 길드보다 더 거대한 길드였다. 그야 지방 지역에 있는 대부분의 길드를 연합하여 만든 초거대 길드였으니 당연하다.

전생에 없었던 건 아무리 나라도 모른다.

“동권 씨는 잘 있습니까?”

“그럼, 툴툴 거리긴 해도 사람다루는 실력은 일품이거든. 우리 길드의 부길드장이야.”

하기야 그 정도의 권력을 얻었으니 박동권이 조용한 거겠지.

녀석이 1회차에 저질렀던 짓을 생각해서 간간히 아파테를 통해 확인하고 있었지만, 현균의 말처럼 특별한 사고를 친 경우는 없는 것 같았다.

“이렇게 조사대의 리더를 지명하여 만나고자 한 걸 보면, 뭔가 부탁이 있는 거지?”

“역시 형은 눈치가 빠르시네요.”

“하하,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지금 이 세계는 눈치가 빠르지 않으면 뒤쳐질 수밖에 없잖아.”

이미 알던 지인인데다 현균의 눈치가 워낙 빠른지라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훈련?”

“예, 그다지 어려운 건 아닙니다. 감각을 키우는 훈련이죠.”

“감각이라…….”

“르뤼에에 가려면 기본적으로 어둠에 익숙해져야 되기 때문이죠.”

“좋아, 알겠어.”

그는 어째서인지 묻지 않았다.

이전의 일 때문인지 그는 여전히 내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고 있었다.

“세한이의 말이라면 확실하겠지. 당장 내일 사람들을 소집할게.”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만 훈련을 어떻게 진행할지 알 수 있어? 단순히 어둡게 하는 정도로는 훈련이 되지 않을 것 같은데.”

“물론 그런 방법은 아닙니다.”

나는 단순히 어둠에 익숙해지는 것뿐 아니라, 르뤼에에 익숙해지도록 할 생각이었다.

그렇지 않은 플레이어들은 살아남을 수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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