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188화 (188/332)

# 188

188. 조사대(1)

“그럼 테스트는 지금 바로 볼 수 있는 겁니까?”

대충 민아가 진정되자 나는 접수원에게 물었다.

“테스트는 언제든 볼 수 있습니다. 원하신다면 오늘 바로 보셔도 괜찮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바로 보도록 하죠.”

“예, 많은 도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접수원은 꾸벅 고개를 숙인 후, 우측으로 가면 나오는 노란 문으로 들어가라고 설명했다.

접수대에 나와서 이동하자, 주변의 시선들이 우리에게 꽂혔다.

특히 특이한 복장을 하고 있는 이드라나, 민아를 보는 시선이 많았다.

“뭐야, 왜 나를 보는 거야?”

“교복을 입고 왔으니까.”

“고등학생 처음 보나?”

플레이어를 전문적으로 육성하는 교육기관도 생겼지만, 그렇다고 이런 장소까지 교복을 입고오는 플레이어는 드물었다.

애초에 고교생 플레이어는 극히 드물고 실전에 나서는 경우가 적으니 민아가 눈에 띄는 건 당연했다.

“교복말고 다른 거 입으면 안 되냐?”

“이게 제일 편해.”

1회차에서는 다른 옷 입고 잘만 돌아다니더구만.

대체 무엇이 민아를 저렇게 만든 것인가.

“여기인가 봅니다.”

노란색 문 앞에는 상당한 숫자의 플레이어들이 줄을 서서 들어가고 있었다.

딱 보기에도 상당한 숫자의 플레이어들이다.

“수준이 부족한 플레이어가 너무 많구나.”

플레이어들을 훑어본 이드라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흔히 A급이라 부르는 플레이어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도리어 이번 조사단을 통해 이름을 알리고자하는 플레이어가 많았다.

아마 테스트 장에는 따로 플레이어들을 수용하는 공간이 있는지, 줄은 금방금방 줄어들었다.

문 앞에 다가가자, 입구에서 플레이어들을 체크하던 남자가 고개를 숙였다.

“어서오십시오, 테스트를 하러 오셨습니까?”

“예.”

“아, 방금 전 연락오신 디어사이드 길드의 분들이시군요.”

아마 접수원이 전화했던 사람이 이 남자였던 모양이다.

그는 선글라스를 손가락으로 올리며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테스트는 대략 1시간에서 2시간 정도 걸립니다.”

“저도 들어가서 봐도 됩니까?”

“죄송하지만 테스트 장소에는 테스트 플레이어만 입장할 수 있습니다.”

역시 그런가.

혹시 입장하게 해주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무래도 안 되는 모양이다.

“걱정 마, 오빠. 금방 끝내고 올게!”

민아는 자신만만하게 말했지만 애초에 창우나 민아는 걱정하지 않았다.

‘문제는 이드라.’

하품을 하며 긴장감 없는 얼굴로 서 있는 나의 아바타가 가장 큰 문제였다.

나 없다고 괜히 이상한 일을 벌이지는 않겠지?

“그럼 다녀올게!”

손을 붕붕 흔들며 문 안으로 들어가는 세 명을 보며 나는 착잡한 얼굴로 배웅해 줄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라면 수능 보러 들어가는 자식을 지켜보는 부모의 심경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

테스트 장에는 대략 100명이 넘는 플레이어들이 모여 있었다.

지금이 상당히 늦은 시간인 걸 생각하면 상당한 숫자였다.

“서울에 있는 플레이어 대부분이 지원한다더니 정말이네.”

소식에 밝은 민아는 이미 시험에 대한 정보를 들은 상태였다.

서울 3대 길드는 이미 모두 참여의사를 표했으며, 악마와 관련된 플레이어가 아닌 이상 대부분 이 조사에 참여한다고 봐도 좋았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아바타들이 자신의 신들로부터 새로운 대륙에 대한 정보를 들었기 때문이다.

자세한 내용은 신들도 몰랐지만, 강렬한 신격이 느껴지는 신대의 땅이라는 건 확실했다.

당연히 신대의 땅이라면 그만큼 대단한 장비를 얻을 수 있었고, 잘만하면 특별한 스킬을 익힐 수도 있다.

장비가 아니더라도 특수한 광물이나, 혹은 소재만 손에 넣어도 수많은 포인트를 벌어들일 수 있으니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지원하는 건 당연했다.

특히 대형 길드들의 경우에는 신대륙에 있는 광산이나 대지 일부를 차지하기 위해 발 빠르게 나서는 것도 있었다.

“다음 시험은 앞으로 10분 후에 시작됩니다, 시험에 참여하실 지원자들은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무래도 일정 시간마다 시험이 치러지는 것 같았다.

이드라는 주변에서 느껴지는 플레이어들의 열기를 느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음, 역시 인간이란 강렬한 욕망을 지니고 있는 존재로다. 그것이 선의든 혹은 악의든 정말 인상적이지.”

“이드라 님은 크툴루의 신이지? 그쪽 신들은 인간을 벌레처럼 생각한다던데 특이하네.”

“부정하지는 않으마. 나를 제외한 모든 신들은 인간을 먼지보다 못한 존재로 보는 게 사실이니. 사실, 우리들은 인간만이 아니라 신격을 지니지 않은 모든 존재를 그렇게 본다.”

크툴루의 신들은 하나 같이 우주적 존재라고 할 수 있다.

한 별에서 탄생하여 신격을 얻은 신들보다도 어찌 보면 고차원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이 적어도 ‘먼지가 아닌 것’ 정도로 취급을 하는 최저한의 기준은 신격이 있느냐 없느냐다.

“그런 의미에서 이 별은 특별하지. 인간만이 아니다. 지구 출신의 신들은 특출하게 뛰어나. 최상위 신격을 지닌 신들이 이렇게 많은 별은 상당히 드문 편이다.”

“그런 거야?”

“그대의 신인 어릿광대도 최상위 신격을 지녔지. 최상위 신격을 지닌 존재는 아우터갓과 동렬로 봐도 된다.”

“아니, 아니거든? 뭘 동렬로 봐? 가만히 듣고 있자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네.”

민아의 어깨 위에서 작은 인형이 기어 올라왔다.

수많은 포인트를 투자해 얻은 어릿광대의 인간형 옵저버다.

“외우주의 신들은 같은 최상위의 신격이어도 격이 달라. 신격을 측정하는 게 최상위가 끝이라 그렇게 분류할 뿐이지. 당장 니알라토텝 같은 녀석은 일반적인 최상위 신격의 신 열은 붙어야 비슷해.”

“이런, 그대는 한 가지 간과하는 게 있군.”

“뭐?”

“우리는 수가 적다. 그것도 엄청나게. 열이면 무슨 상관인가. 최상위 신격을 지닌 신은 족히 수십은 되지 않나.”

당장 지구에서만 봐도 열이 넘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물론 어릿광대의 입장에서는 기가 찰 노릇이다.

“반대로 말하면 너희 아우터갓들을 상대하려면 우리 우주에서 이름난 신들이 총출동해야 된다는 거야.”

“나는 스케일이 너무 커서 대략적인 느낌밖에 안 오네.”

민아는 둘의 대화에 그저 어깨를 으쓱였다.

최상위 신격 몇 명이 아우터갓과 비슷하니 떠들어도, 평범한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그냥 그런가보다 싶기만 할 뿐이다.

“그보다 정말이야? 르뤼에에 미스틸테인이 있다는 거.”

“나의 신이 그렇다면 그런 걸 게다.”

“걔는 정말 그런 걸 어떻게 아는 거야?”

“덤으로 알 아지프도 있다더군.”

“뭐어?”

어릿광대는 이드라의 말에 뒤통수가 얼얼해졌다. 지금 뭐가 있다고 한 거지?

알 아지프? 설마 네크로노미콘?

“지구 멸망시키려고?”

“그래서 지금 이렇게 내가 온 게 아니냐.”

“난 또 네 독특한 취향 때문에 기행을 벌이는 줄 알았는데.”

“그동안 내가 얼마나 굴려졌는지 그대는 모를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이드라는 답지 않게 우울했다.

이번 일을 위해 대체 몇 번을 죽은 건지 모르겠다.

특히 그 시건방진 계집애에게 머리만 수십 번은 잘린 터라 분한 마음도 있었다.

“곧 시험이 시작합니다! 지원하신 플레이어분들은 순서에 맞게 앞으로 나와 주세요!”

그때 시험관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어릿광대는 짧게 혀를 차며 인간의 모습에서 작은 뱀으로 변했다.

“나중에 자세히 말해줘. 이건 그냥 넘어가기 힘드니까.”

“지구는 이미 그대들이 버린 별이 아니었나?”

“흥, 뭐래. 원래 신들은 변덕쟁이야.”

길쭉한 혀를 날름거린 뱀은 점차 투명해지더니 사라졌다.

아마 옵저버에서 로그아웃한 모양이다.

“우리는 상당히 후순위니 한참 기다려야 할 것 같군요.”

백 명에 가까운 플레이어들이 앞에 있으니 한참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시험은 간단히 세 단계로 치러졌다.

첫 번째는 기본적인 지식시험.

시험관이 묻는 것에 답하면 됐고.

두 번째는 자질시험.

본인의 특기와, 특기에 맞는 행동을 하는 것을 하면 충분했다.

세 번째는 대련담당 시험관과의 대련이었다.

대련에서 이기거나, 혹은 훌륭한 실력을 보인 사람만이 합격이었다.

시험이 간단하다보니 생각보다 숫자는 금방금방 줄었다.

하지만 합격자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100명 중 통과자는 고작 다섯 명에 불과했으니까.

“젠장, 무슨 시험관을 저런 괴물로 갔다 놨어? 우리 같은 평범한 플레이어들은 기회조차 없다는 거냐?!”

“그래, 맞아! 저런 괴물을 상대할 만한 플레이어가 몇 명이나 된다고!”

항의를 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련담당 시험관이 눈을 부라리자 다들 조용해졌다.

그도 그럴 게 입을 함부로 놀렸다가는 정말 반토막이 날 수도 있었으니까.

‘제네시스의 홍가은을 왜 시험관으로 부른 거야?’

누구 죽일 일 있나?

플레이어들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차마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아, 저 언니 나도 아는데.”

민아는 홍가은을 보며 중얼거렸다.

“저번에 세한 오빠에게 박살 난 언니잖아. 딱 전투력 측정기 맞네.”

그다지 크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몇몇 귀가 밝은 플레이어들은 민아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미친년인가?’

감히 누가 제네시스의 행동대장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어디 길드에서 온 이들인지는 몰라도 겁을 상실한 게 분명했다.

‘외모는 평범…… 하지는 않군.’

평범하다기보단 지나치게 예뻤다.

눈 감은 이상한 남자놈은 넘어가도 상큼한 인상에 귀여운 여고생과, 검붉은 이상한 드레스를 입은 여성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피안화의 이아영을 본 플레이어들도 있었지만, 그녀보다 아름다운 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였다.

미의 여신의 아바타를 넘는 외모라니!

“저희 순서군요. 갑시다.”

주변 플레이어들의 시선이 몰려든 가운데 일행이 움직였다.

대체로 시험은 어렵지 않았다.

이론은 말할 것도 없고, 민아의 변신 스킬이나 창우의 검 실력은 가히 놀라운 수준이었다.

이드라의 경우엔 딱히 보여줄 게 없어 허수공간을 열고 닫았을 뿐이지만 워낙 레어한 스킬인지라 통과할 수 있었다.

“하필 우리 중에 처음으로 대련하는 게 이드라 님이네.”

“이기실 수는 있습니까?”

하지만 문제는 세 번째, 대련이었다.

그간 지수와 상대하며 실력을 키웠다는 걸 알았지만 단 한 번도 지수에게 생체기를 내지 못했다는 사실도 알았다.

이드라가 이번 조사대에 꼭 필요한 존재라는 걸 알고 있는 둘로선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떨어지면 세한이 수를 써서 어떻게든 데려가겠지만 기왕이면 정식으로 가는 게 좋지 않겠는가.

“불경한 말을 하는 구나.”

이드라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신의 위엄을 보여주고 오겠다.”

‘불안한데.’

민아의 걱정 어린 시선을 뒤로 하며 이드라는 당당히 대련장 위로 올라갔다.

“당신이 125번 플레이어 이드라, 맞습니까?”

“맞다.”

거만한 이드라의 모습에 홍가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 모습에 대련을 지켜보는 플레이어들도 식겁할 수밖에 없었다.

‘이거 큰 사단이 나겠는걸.’

뇌까지 근육인 홍가은은 사소한 말에도 쉽게 도발 당하곤 했다.

저런 건방진 태도는 말할 것도 없었다.

“아무래도 버릇을 고쳐 줘야할 것 같군요.”

칭!

검을 든 홍가은은 날카로운 눈으로 이드라를 응시했다.

얼마나 실력이 뛰어난지는 몰라도 아주 혼쭐을 내줄 생각이었다.

‘생각해 보니 마법을 익혔으면 더 편했을 것 같군.’

이드라는 그런 홍가은을 보며 태연하게 그런 생각을 했다.

다른 능력치는 몰라도 마력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중이니 마법 스킬을 익혔으면 훨씬 다양한 대처가 가능했을 것이다.

물론 세한은 몸 쓰는 법부터 익혀야 한다고 했지만, 이런 대련까지 그럴 필요는 없었다.

“……선공을 양보했지만 오지 않는군요. 그렇다면 이쪽이 먼저 가도록 하죠.”

가만히 서 있는 이드라의 모습에 홍가은의 눈이 한층 찌푸려졌다.

무릎을 살짝 굽힌 후, 대지를 박차며 순식간에 이드라의 코앞까지 접근했다.

쉬이익!!

바람을 가르며 휘둘러진 검을 이드라는 살며시 몸을 틀어 피했다.

확실히 빠른 검이었지만 지수가 집요하게 목을 노린 탓에 피하는 것만큼은 이골이 난 상태였다.

‘하지만 딱히 공격할 틈은 보이지 않는 구나.’

지난 몇 주간 속성으로 기술을 익혔지만 홍가은을 이길 정도는 아니었다.

계속 피하고 있었지만 제대로 한 대라도 얻어맞으면 바로 뻗을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홍가은이 휘두르는 검의 궤적을 관찰한 뒤, 이드라는 앞으로 몸을 내밀었다.

“무, 무슨 짓을?!”

번쩍이는 검의 궤적.

보통이라면 이드라의 팔을 노렸을 각도였지만 이드라는 그곳에 자신의 목을 가져다대었다.

당연히 홍가은으로선 기겁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검의 방향을 급히 틀을 수밖에 없었고 몸의 균형은 단번에 무너졌다.

“읏차.”

채앵!!

이드라는 균형을 잃은 홍가은의 검을 강하게 쳐냈다.

갑작스럽게 가해진 충격에 홍가은의 검이 바닥을 굴렀다.

“아.”

설마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지 홍가은이 황망한 얼굴로 이드라를 보았다.

이드라의 목에서는 붉은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급히 검을 피했어도 상당히 깊이 박혔던 것이다.

“어때, 내가 이기지 않았느냐.”

그렇게 말한 이드라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출혈이 심해 몸에 힘이 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근데 너무 깊이 찔렸…….”

별것 아닌 것처럼 말하던 이드라가 뒤로 발라당 넘어졌다.

미동도 없는 것으로 보아 마치 죽은 것처럼 보였다.

“어, 어어. 어어.”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던 홍가은은 창백해진 얼굴로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의, 의료반!!”

시험은 당연히 중단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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