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
187. 신을 육성하는 방법(2)
“자 오늘은 여기까지.”
내가 짝짝 박수를 치자, 바닥에 쓰러져 있던 이드라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내가 몇 번쯤 죽었는지 아느냐.”
“서른 번 이후로는 안 세서 모르겠네.”
“정말 너무한 계집애로다. 무슨 목만 찔러!”
이드라가 분개한 얼굴로 소리치며 구부정하게 앉았다.
아무리 죽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도 목에 서른 번 정도 검에 찔리거나 절단되면 찜찜한 것도 당연했다.
그런 이드라를 붉은 눈동자로 내려다보던 지수는 짧게 혀를 찼다.
“정말로 안 죽네요.”
“죽으면 안 되지. 정말 큰일난다고.”
“나름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는데요.”
대체 무슨 좋은 기회인지 나는 차마 묻지 못했다.
이드라는 그런 지수를 올려다보며 씩 웃었다.
“후후후, 본래 싸움이란 살아남는 자가 이기는 거다. 난 죽지 않으니 결코 패배할 수 없다는 거다.”
“이런 말을 한 녀석들은 보통 영원히 봉인 속에 가둬지는 법이죠.”
“신격도 없으면서 봉인은 무슨. 그거 아느냐? 신격이 없으면 결국 평범한 인간의 수명을 넘을 수 없다.”
“……!”
지수의 눈이 가늘어지며 이드라를 보았다.
“그럼 세한 오빠는요?”
“알다시피 상위 신격을 얻었으니…… 수명이 어느 정도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군. 인간보다야 길 게 분명하다. 다만 플레이어인지라 정확히 모르겠도다.”
이드라의 말에 나는 세삼 신격이라는 게 얼마나 만능인지 깨달았다.
신격이 높아지면 능력치를 뻥튀기시킬 수도 있고, 물건을 강화시키거나 마법과도 같은 기적도 일으킬 수 있다.
인간이라면 수명도 늘어나니, 괜히 인간이 신이 되려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월자가 되면 신격을 얻을 수 있나요?”
지수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방금 이드라의 말이 신경 쓰인 모양이다.
“초월자가 되지 않아도 얻을 수 있어.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마. 너도 앞으로 조금이니까.”
혈천수라공을 극성으로 익히게 되면 신격을 얻을 수 있으리라.
혈마 진천웅이 그랬고, 진천백도 마찬가지였다.
신격은 준 초월자만 되도 얻을 수 있다.
지금 내가 딱 그 정도지.
초상계에 스스로 발을 내디딜 수 있는 초월자는 내가 알기로 단 하나뿐이었다.
‘바룬다르크.’
페트로이아 출신의 초월자.
마왕을 무찌르고 세계를 하나로 통일한 용자.
이런 게임에 빠진 세계 중에 현재 가장 해피엔딩에 가까운 자.
‘나중에 콜라보 퀘스트를 하게 되면 볼 수 있겠지.’
그렇게 되면 분명 든든한 아군이 되어줄 것이다.
그는 뼛속까지 정의감이 넘치는 자이니까.
“아무튼 이드라도 오늘 느꼈지? 공격을 피하지 않으면 제대로 공격도 못하는 거.”
“으음, 이해했다. 아무리 죽지 않는다고 해도 상대의 일격에 쓰러지면 아무런 의미가 없구나.”
“거기다 지수 같이 자연치유력이 뛰어난 상대론 네가 하는 것처럼 조금 상처내고 죽는 방식도 통하지 않아.”
“이해했다.”
워낙 단순하게 싸우는 이드라지만 그건 이드라가 아직 인간의 신체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계속 반복하다보면 금방 실력이 늘게 되리라.
어쨌든 신이니 한 달 정도면 평범한 플레이어정도는 되지 않을까?
“그런데 세한 오빠. 그 르뤼에라는 곳에는 저도 가는 거죠?”
“이번엔 안 돼.”
나는 단호히 고개를 흔들었다.
단순히 위험하기 때문은 아니다. 그렇다면 다른 플레이어들이 르뤼에로 조사하려가는 걸 내가 막았을 것이다.
위험한 것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다.
“어째서요?”
“르뤼에에는 스타스폰이라는 종족이 있어. 녀석들은 별의 기운을 품은 자에게 민감하거든.”
“……그게 무슨 문제가 있나요?”
큰 문제가 있다.
특히 지수에게는.
“넌 천살성을 타고났잖아. 이것도 말하자면 별의 힘의 일종이지. 말하자면 네가 그곳에 가게 되면 스타스폰들이 너를 잡으려고 우르르 몰려올 거다. 어디로 가더라도 너의 기운을 맡고 올테니 숨어서 이동할 수도 없어.”
“그럴 수가…….”
지수는 심히 낙담한 얼굴이었다.
설마 천살성 때문에 그렇게 되리라고는 생각 못한 모양이다.
“그럼 오빠는요? 저와 스킬을 공유했으니 안 되는 것 아닌가요?”
“난 내가 타고 난 게 아니잖아.”
“으으.”
난 어디까지나 지수에게 스킬을 공유 받은 거지, 내가 타고난 게 아니다.
별의 힘을 품을 일은 없었다.
“아무튼 내일도 이드라의 훈련을 도와줄 수 있지?”
“네. 이건 꽤 스트레스도 풀리니까요.”
“난 쌓이기만 하는데.”
일방적으로 살해당하는 이드라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분했던 모양이다.
놈은 반토막나서 떨어져 있는 자신의 철검을 보며 씩씩하게 일어섰다.
“내일은 결코 쉽지 않을 거다.”
“부디 분발해 주세요. 오늘은 너무 쉬워서 지루했으니까요.”
당당하게 말하는 이드라의 모습에 지수도 싱긋 웃으며 답했다.
둘의 눈싸움을 지켜보던 나는 슬그머니 밖으로 나왔다.
“훈련 끝났어요, 형?”
밖으로 나오자 마침 시우가 이쪽으로 걸어오며 말을 걸어왔다.
땀으로 젖은 옷을 보니, 방금 전까지 장비를 만든 모양이다.
“오늘은 상당히 만들 게 많았나 봐?”
“네. 아무래도 조사대를 파견하는 것 때문인지 대략의 무기 발주가 들어왔거든요. 예비용을 잔뜩 챙겨가려는 모양이에요.”
“그래? 혹시 다른 이야기는 들은 것 없어?”
“다른 이야기요?”
시우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곧 플레이어들을 모을 거 같아요.”
“아직 날짜는 정해지지 않은 것 같아요.”
그나마 다행이었다.
생각해 보니 조사는 한 달 뒤여도, 플레이어들을 소집하는 건 그 전일 가능성이 높았다.
빠르면 앞으로 일주일이나 이주일 후.
‘좀 더 급하게 진행을 해야겠군.’
하지만 가능하려나?
이드라가 열심히 해주고 있지만, 솔직히 장담하기 힘들었다.
그래도 최악의 경우에는 능력치라도 어떻게 올려 밀어붙이는 수밖에 없었다.
부디 그렇게 되지는 않기를 바라지만 말이다.
***
그로부터 며칠 후, 뉴스를 통해 정부에서 새로운 대륙에 갈 플레이어들을 모집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평균능력치가 C급 이상의 헌터들만이 지원이 가능하며, 신의 아바타의 경우에는 가산점이 붙는다는 설명이 나왔다.
‘어차피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겠지.’
디어사이드 길드에서 가장 할 일이 없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아무도 대답하지는 않겠지만 창우는 알고 있었다.
바로 자신이라는 걸.
‘나름 능력치는 올려두고는 있지만, 지수 씨처럼 특출하게 강한 것도 아니니.’
그렇다고 민아처럼 다양한 유틸 스킬을 보유한 것도 아니다.
창우가 할 수 있는 일은 전부 지수가 할 수 있으며, 어마어마한 재생스킬을 보유한 지수는 안정성도 뛰어났다.
당연히 창우는 이번 일에도 지수나 민아가 세한을 따라가리라 생각했다.
루크의 경우에는 린이나 백설이를 돌봐줘야 했으며 중국의 아레나를 비롯하여, 길드 대표로 다른 길드들과 회담을 가지는 경우가 잦았다.
연륜에서 흘러나오는 지혜는 물론, 아바타로서 비할 데 없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특히 린이 정의의 여신이 된 이후에는 포텐셜이 더욱 늘어났다.
아스트라이아인 동시에 자신의 딸이 되어버렸으니, 적성도가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린이 사용할 수 있는 대부분의 스킬은 루크도 사용할 수 있다봐도 됐다.
리브라를 쥐는 것만 뺀다면 말이다.
“아, 창우 씨. 여기 계셨군요.”
뉴스를 보고 있던 창우의 어깨를 누군가 두드렸다.
시선을 돌리자 완전무장을 한 세한이 서있었다.
“아, 세한 씨. 이드라 님과 훈련은 끝났습니까?”
“예, 이제 대충 평범한 플레이어 흉내는 낼 수 있을 정도는 됩니다. 다만 저희와 달리 능력치를 자유롭게 찍을 수가 없더군요. 포인트로 능력치를 올리려고 하면 랜덤으로 올라가는 모양입니다.”
“랜덤이요?”
“네, 올라가는 수치는 일반 플레이어보다 압도적으로 높은데…….”
세한은 난감한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체력수치가 안 올라갑니다. 아직도 F 50 정도에요.”
F(50)이면 너무 낮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다른 능력치가 상당히 높아 커버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건 어떻게든 제가 보조하면 될 것 같고. 그보다 창우씨도 어서 준비하세요.”
“예? 준비라니요?”
자신이 뭔가 할 일이 있었던가?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자 세한이 피식 웃었다.
“이번에 디어사이드에서 움직이는 건 저와 이드라, 그리고 민아와 창우 씨입니다.”
“저, 저 말입니까? 그럼 지수 씨는…….”
“지수는 집 봐야죠, 뭐. 이번에 가는 곳은 지수에게 영 안 맞거든요.”
도리어 창우에게는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르뤼에는 시각에 의지하지 않는 자일수록 유리했다.
“우선 길드에 접수 신청을 해야 되니 준비해 주세요. 아마 거기서 테스트도 하고 올 것 같습니다.”
“아, 예! 알겠습니다.”
그동안 나름 할 일이 있기는 했지만 세한의 곁에서 싸우는 건 사실 처음이다.
창우는 기쁜 마음에 고개를 끄덕였고, 세한은 어쩐지 양심에 찔렸다.
‘그동안 좀 함께 다닐 걸 그랬나.’
중국에는 함께 가긴 했지만 사실상 린의 독무대였다.
그 외에는 대부분 지수가 해결했으니 사실상 창우가 나설 일은 거의 없었던 셈이다.
세한의 입장에서는 위험한 일을 할 필요가 없으니 좋다고 생각했지만, 창우의 입장에선 꽤나 거북한 상황이었던 건지도 모른다.
‘딥 원들과 싸우려면 창우 씨가 제격이지.’
전체적으로 능력치도 높다.
가장 낮은 게 B급인 마력이다.
지수나 린과 같은 괴물들에게 빛이 바래서 그렇지.
창우도 충분히 강한 플레이어였다.
***
본래 서울역이 있던 장소에는 플레이어 관리본부가 세워졌다.
다른 지역을 이용하기 위해선 대부분 기차를 이용해야 했고, 플레이어들을 관리하기 이해선 역에서 만드는 편이 용이했기 때문이다.
다른 교통수단이 거의 먹통이 되어 가능한 일이다.
플레이어 관리본부는 정부에서 플레이어들을 관리하기 위한 수단이었고, 플레이어들도 대부분 그런 정부의 의도에 따랐다.
질서가 없으면 악마의 계약자와 같은 무법자들이 판치게 될 테니까.
그렇다고 정부가 플레이어들을 강압적으로 대할 수는 없었다.
애초에 플레이어는 갑의 입장이었고, 정부의 말에 맞춰주고 있을 뿐이니까.
괜히 성질을 돋우면 반발이 일어나 정부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었다.
맨손으로 탱크를 뒤집어버리는 괴물들을 무슨 수로 막겠는가.
“어서 오십시오, 플레이어님.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접수창구에 다가가니 제복을 입은 여직원이 우리를 맞이했다.
“이번 대륙조사건으로 왔습니다.”
그녀는 우리를 조심스럽게 살핀 후, 입을 열었다.
“네 분 모두 이신가요?”
“예, 네 명 모두 지원할 생각입니다.”
접수원의 눈이 내 뒤에 있는 민아와 이드라에게 잠시 머물렀다 떨어졌다.
비교적 외형이 어려보이는 민아나 긴장감이 없는 이드라는 눈에 띄는 존재였으리라.
“우선 플레이어분의 성함과 소속 길드를 적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접수원은 우리에게 조사단에 대한 여러 가지 설명을 시작했고, 테스트를 통과해야만 조사단에 들어갈 자격을 얻는다고 말했다.
그런 설명을 들으며 대충 이름과 소속 길드를 작성해서 내자, 친절한 미소를 짓고 있던 접수원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기, 김세한 플레이어님이셨습니까?! 전부 디어사이드 길드의 분들이신가요?”
“예. 뭔가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아아아뇨! 그건 아니고…….”
접수원은 망설이다가 전화를 들고 누군가에게 연락했다.
잠시 기다리고 있자, 전화를 마친 접수원이 심히 죄송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김세한 님은 따로 테스트를 볼 필요가 없으시다고 합니다.”
“예?”
“감히 저희가 어떻게 테스트를 할 수 있겠습니까.”
연신 허리를 숙이며 말하는 접수원의 모습에 괜히 무안해졌다.
최근 이름을 좀 과하게 날렸으니 이런 반응이 이상한 건 아니었다.
‘테스트를 안 해서 좋긴 한데…….’
과할 정도로 저자세로 나오는 접수원의 모습에 다른 접수대에 있던 플레이어들이 우리를 보는 게 느껴졌다.
“어흠. 그러면 저희는 모두 조사대에 들어갈 수 있는 겁니까?”
“아, 그, 그건 아니에요. 김세한 님은 테스트를 안 보셔도 괜찮습니다만, 다른 분들은 테스트를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접수원은 그렇게 말한 후, 내 뒤에 있는 다른 세 명에게 죄송하다는 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다지 정보가 없는 플레이어분들이셔서 테스트를 봐야 한다고…….”
“네에?! 제가 정보가 없다고요?”
민아가 크게 분개하며 앞으로 나섰다.
“제가 여태 얼마나 많은 일을 한 줄 알아요? 한번은 세상도 구했다고요!”
하긴 민아는 억울할 만했다. 여태 민아가 처리한 일이 좀 많았어야지.
심지어 마마잭 때는 민아가 없었으면 정말 세상이 멸망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꼭 테스트를 봐야 한다고…….”
난감한 얼굴로 설명하는 접수원의 모습에 나는 민아를 말릴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너라면 테스트 금방 통과할 수 있잖아.”
“그, 그건 그렇지만 억울하잖아. 오빠만 유명하고. 씨잉.”
울상을 짓는 민아의 모습에 접수원은 한층 미안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반면 민아와 달리 창우는 초탈한 얼굴로 서있었다.
마치 저런 접수원의 반응이 당연하다는 듯이.
덕분에 나는 창우에게 더욱 미안해질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