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6
186. 신을 육성하는 방법(1)
고블린을 쓰러트린 이드라는 꽤나 기고만장해진 상태였다.
열두 번이나 죽었다는 사실은 녀석에게 아무래도 좋은 일 같았다.
하기야 불멸자의 입장에서 죽음은 일개 수단에 불과한 건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게 문제야.”
“응? 뭐가 말이냐?”
이드라는 손에든 미스릴 검을 휘적휘적 휘두르며 나를 돌아보았다.
검을 쥔 방법이나 자세,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었다.
아무리 이드라가 마법사 타입이라고 해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공격을 피하는 법을 모르냐?”
“어차피 맞고 죽어도 살아나는데 피할 이유가 없지.”
“그 생각이 문제라는 거다.”
“어째서??”
이드라는 진심으로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죽고 살아나는 건 문제가 아니지만 시간낭비가 너무 심해. 뭣보다 네가 죽었다 살아나는 사이 상대가 도망가면 어떡할래?”
“그, 그건 그렇군.”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건 상처를 입지 않는 거야. 상처를 입으면 몸이 둔해지지. 그게 타격이든 절단이든 상처를 입으면 인간의 몸은 반응이 온다. 너도 느껴지잖아?”
“확실히 피를 흘리면 어지럽고 시야도 제대로 보이지 않더구나. 인간의 몸이 연약하다는 건 알았지만 좀 불편하군.”
그래도 머리는 나쁘지 않은 녀석인지라 내가 무얼 말하고자 하는지는 이해한 모양이다.
“이번에야 머리가 나쁜 고블린이었으니 네가 살아나는 동안 남아 있었지만 다른 녀석들은 그런 일 없을 거다. 그러니 최대한 죽지 않고 쓰러트리도록 해.”
“알겠다! 의욕이 타오르고 있도다!”
미스릴 검을 붕붕 휘두르는 녀석을 보며 나는 옅은 한숨을 쉬었다.
정말 갈 길이 멀었다.
“우선 무기도 이걸로 바꿔.”
“……이건 단순한 철검이지 않느냐.”
현재 이드라가 들고 있는 미스릴 검에 비하면 쓰레기에 가까운 무기다.
이드라는 그런 걸 자신에게 건넨 내가 이해되지 않는 모양인지 눈을 깜박거렸다.
“닭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쓸 필요는 없지. 뭣보다 무기가 너무 좋아서 네 허접한 칼질로도 고블린이 죽잖아. 넌 무기빨이 아니라 제대로 몸을 쓰는 법을 익혀야 한다고.”
“상당히 엄하구나. 만약 그대가 내가 아닌 평범한 플레이어를 아바타로 삼았다면 지옥을 봤을 게다.”
애초에 평범한 플레이어는 죽었다 살아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튼 이드라는 순순히 미스릴 검과 철검을 교환했다.
“지수는 검을 처음 잡았을 때 고블린을 학살했는데 말이야.”
“으윽.”
지수를 언급하자 처음으로 이드라의 표정이 구겨졌다.
“천, 천살성 스킬을 가진 플레이어와 비교하지 말거라.”
“너는 그렇게 치면 태생이 신이잖아?”
“…….”
이드라의 표정이 단번에 뚱해졌다.
아무래도 타인과 비교하는 건 싫은 모양이다.
나는 그런 이드라의 모습에 한숨을 쉬며 머리를 긁적였다.
“……좋아. 당분간은 기본을 익히도록 해야겠네. 아침에는 던전에 드나들고, 저녁에는 플레이어를 상대하는 걸로 하자.”
“쉬는 시간은 없는 게냐?”
“시간이 한 달밖에 안남았는데 쉬긴 뭘 쉬어.”
“애, 애초에 내가 왜 가야 하는 건지 모르겠도다. 평소처럼 그대가 동료랑 일을 뚝딱 해결하면 되잖나.”
마음 같아서는 나도 그러고 싶다.
하지만 차마 그럴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르뤼에에 알 아지프가 있다.”
이드라의 눈이 단번에 둥글어졌다.
“그게 왜 거기에 있지?”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알 아지프. 다른 이름으로는 네크로노미콘이라 부른다.
크툴루 신화에 등장하는 마도서이며 동시에 최강최악의 마도서라고 할 수 있다.
원전의 이름은 알 아지프. 사본으로 번역되며 네크로노미콘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 자체만으로 재앙이라고 부를 만한 마도서지만, 내가 이드라를 르뤼에로 데려가려는 이유는 하나 더 있다.
“거기에 바르자이의 언월도도 있지.”
“……허.”
네크로노미콘은 아무래도 좋다.
평범한 인간은 감히 다루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물건이니까.
진짜 문제는 바로 바르자이의 언월도였다.
“너라면 알겠지? 두 물건이 함께 있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말이야.”
“알다마다. 두 개가 같이 있다면 최악이로구나. 터무니없는 무기와, 설명서가 함께 있는 것이니.”
바르자이의 언월도는 그 자체로 강력한 무기이지만 알 아지프와 함께 있다면 더더욱 큰 문제가 생긴다.
바로, 요그 소토스를 소환하는데 쓰이는 물건이었으니까.
***
크툴루 신화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란 누구인가?
인간에게는 아마 니알라토텝이라 부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니알라토텝을 가볍게 즈려밟을 수 있는 존재가 두 명 존재한다.
하나는 아자토스.
크툴루 신화의 정점이라 부를 수 있는 신.
다른 아우터갓조차 아자토스에 대해선 명확히 알지 못할 정도로 강대한 신이다.
그리고 그런 아자토스에게 유일하게 조금이나마 비빌 수 있는 존재가, 요그 소토스다.
실질적인 아우터갓의 1인자라 부를 수 있는 신.
‘경계에 도사리는 자(Lurker at the Threshold).
“요그 소토스는 나라도 좀 껄끄럽다.”
“알고 있어. 그러니 소환하지 못하게 막을 필요가 있다는 거야.”
“아무리 니알라토텝이라도 바르자이의 언월도와 알 아지프를 사용해 공허를 소환하리라 생각되지는 않는다만…….”
“그건 일반적인 니알라토텝일 경우지. 네가 생각하기에 평소의 니알라토텝이 자신의 아바타에게 샤이닝 트라페조헤드론을 주리라 생각하냐?”
이드라의 입이 꾹 다물어졌다.
최근 니알라토텝의 행동은 뭔가 이상하다.
아마 스스로도 갈피를 잡기 힘든 것이리라. 이드라를 보고 니알라토텝은 인간의 모습을 보다 가깝게 흉내내게 됐다.
때문에 그는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고 이전이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을 하고 있었다.
“놈은 지금 너를 질투하고 있다. 질투라는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 터라, 터무니없는 일을 벌일 수도 있어.”
“공허를 소환하게 되면 지구는 파멸한다.”
공허는 요그 소토스를 의미한다. 모든 시간과 공간에 편재에 있는 존재를 뜻하는 것이다.
“니알라토텝에겐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야. 지구가 파멸한다고 외우주에 무슨 일이 생기나?”
“그렇다면 애초에 인간들을 르뤼에로 가지 못하게 막는 편이 낫다고 본다만.”
“그게 옳을지도 몰라. 하지만 알 아지프…… 그러니까 네크로노미콘은 필요해. 거기에 우리가 가지 않는다고 니알라토텝이 가만히 있으리라는 법도 없지.”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었다.
“샤이닝 트라페조헤드론에 이어 네크로노미콘이라. 그대는 아우터갓마저 사냥하려는 것이냐?”
“사냥이 아니라 지키기 위해서지. 거기다 이미르는 아우터갓과도 연결되어 있을 확률이 높아. 뒷일을 생각하면 놈들을 상대할 수단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 둬야 해.”
입술을 엄지로 슬슬 문지르며 깊이 고민하던 이드라는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확실히 내가 갈 수밖에 없겠구나. 설령 문을 연다 해도 샤이닝 트라페조헤드론이라면 문을 닫을 수 있을 테니까.”
“그래, 맞아. 문제는 네가 거기까지 별일 없이 가야 한다는 거지.”
적어도 스스로의 몸을 지킬 수준은 되어야 한다.
문을 닫기 전에 몬스터에게 아작 나기라도 하면 웃을 수도 없으니까.
“그럼 다시 고블린부터 잡아보자.”
나는 이드라를 데리고 던전을 좀 더 깊이 내려갔다.
간간히 보이는 고블린 순찰병 무리는 연습 상대로 충분했다.
세 명이서 몰려다니는 녀석 중, 두 명은 내가 죽인 후 남은 하나를 이드라가 상대하는 식이었다.
“이번에는 죽는 횟수를 3번 이내로 줄여봐.”
“좋다!”
이드라는 기세등등한 얼굴로 검을 빼며 달려갔다.
사실 달려가는 게 아니라 조깅하는 수준이었지만 차마 뭐라 할 수 없었다.
딴에는 최선을 다해 달려가는 걸 테니까.
“그륵?!”
갑작스런 동료의 죽음에 두리번거리던 고블린이 이드라를 보며 달려들었다.
손에 든 곤봉을 마구 휘두르며 자신에게 달려오는 이드라를 향해 휘둘렀다.
“하지만 어림없지!”
이드라는 휙 고개를 숙여 피했다. 그래도 겁이 없다보니 공격을 보고 쫄아서 눈을 감는 일은 없었다. 단순히 휘두르는 정도는 햄스터라도 피할 수 있는 모양이다.
“에잇!”
텅 빈 틈을 노려 이드라가 고블린의 옆구리에 검을 박아 넣었다.
팍 튀어나오는 초록색 피에 이드라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봐라, 나도 하면 하는…….”
콰직!
“키에에엑!!”
어설프게 검에 찔린 탓에 분개한 고블린이 곤봉으로 이드라의 머리를 찍었다.
빠각 소리를 내며 이드라의 머리가 반쯤 없어졌다.
체력이 1이라 방어력이 푸딩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감히, 고블린 따위가!”
되살아난 이드라가 재차 고블린에게 덤벼들었다.
내가 보고 있는 앞에서 꼴사나운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했는지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키에엑!!”
되살아나서 덤벼드는 이드라의 모습에 고블린도 비명을 질렀다.
방금 머리가 사라졌던 인간이 다시 덤벼드니 몬스터라도 놀라는 게 정상이다.
이드라는 방금 검을 찔렀던 고블린의 허리에 검을 찔렀고, 고블린은 곤봉으로 이드라의 머리를 때렸다.
그것을 한 여섯 번쯤 반복하자 견디지 못한 고블린이 결국 죽고 말았다.
“어떠냐! 이번엔 여섯 번밖에 안 죽었도다.”
“목표로 한 세 번보다는 부족하지만 그래도 많이 나아지긴 했네.”
집요하게 같은 곳만 검으로 쑤신 탓이다.
부족한 체력과 힘을 생각하면 좋은 선택이었다.
‘숟가락 살인마 같은 녀석.’
아무리 그래도 곤봉에 머리를 맞아가며 허리를 쑤시다니.
죽음을 모르는 인간이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지 새삼 깨달았다.
“공격 방법은 나쁘지 않았어. 다만 좀 피해라. 다시 말하지만 넌 피하는 걸 익혀야 해.”
“다음번에는 그렇게 해보도록 하마.”
“적당히 피하는 걸 익히면 쩔을 해서 능력치를 올릴 거야.”
“알겠다. 그럼 상대도 더욱 강한 녀석과 싸우겠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블린 다음에는 오크나 리자드맨 같은 몬스터를 상대할 생각이었다.
“그건 아마 내일이 될 것 같고……, 오늘은 고블린으로 끝. 저녁에는 지수와 싸워야 할 거다.”
“……음? 왜 하필 그 아이와 싸워야 하는 게냐.”
“플레이어와 싸우는 것도 익혀야 되는 게 당연하잖아.”
“아니, 아니. 플레이어라면 다른 녀석도 많다만. 요즘 잘 보이지도 않는 맹인이라거나. 린의 아비 되는 자도 충분할 텐데?”
확실히 루크나 창우도 이드라를 상대해 줄 수 있었다.
“하지만 둘은 너를 봐줄 거 같아서. 지수라면 가차 없이 공격하겠지.”
“하긴 고 계집애라면 나를 당장 칼로 쑤시고 싶을 테지.”
“……아무리 지수라도 그 정도는 아니다.”
“너는 모르겠지만, 가끔 단둘이 마주치면 내 목을 물끄러미 보곤 한다. 분명 머릿속으론 내 목을 세 번쯤 땄을 게다.”
이드라는 그렇게 말하며 흥! 하고 코웃음 쳤다.
“좋다. 나도 바라는 바로다. 이 기회에 계집아이의 버릇을 고쳐줘야겠다.”
의욕에 불타는 이드라를 보며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버릇을 고치기 전에 과연 이드라가 몇 번이나 죽을지 궁금했으니까.
***
태평양 연안.
본래라면 이스터섬이 있을 장소에는 거대한 대륙이 솟아 있었다.
“그륵, 그르륵.”
그곳에는 마치 심해어를 닮은 인간들이 걸어 다니고 있었다.
몸은 인간과 닮았지만 가슴부터 얼굴까지는 심해어처럼 흉측한 외형이었다.
“딥 원들의 수가 생각보다 많군.”
그런 그들의 사이를 거니는 한 남자는 느긋하게 주변을 살폈다.
딥 원은 물고기의 머리를 한 인간들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심해에 살며 인가보다 아득히 강한 능력을 지닌 존재들이었다.
이 정도의 숫자의 딥 원이 세계를 침략하게 되면 몇 개의 나라는 쑥대밭이 되고 말 것이다.
과연 르뤼에의 절반을 차지한 종족다웠다.
‘바르자이의 언월도가 분명 이곳에 있을 텐데.’
얼핏 본 ‘다른 미래’에 대한 정보를 생각하면 확실하다.
아무리 니알라토텝이라도 지금의 르뤼에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았다.
유일하게 알고 있던 건 검은, 혹은 빛나는 부등변다면체라 불리는 샤이닝 트라페조헤드론의 위치뿐.
그것도 스타 스폰들을 통해 알게 된 것이다.
아무리 그라도 외우주도 아닌 이란 외딴 행성.
그 심해에 가라앉아 있던 대륙의 정보를 다 알지는 못했다.
느긋하게 살펴보면 언젠가 알게 될 일이라 생각하고 내버려 뒀던 탓이다.
‘다른 시스템이 지배하는 세계에 머무는 건 성가신 일이군.’
신의 힘을 사용할 수 없으니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그래도 딥 원들의 의식 정도는 지배할 수 있는데다, 스타 스폰은 니알라토텝의 말에 충성하니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다.
그리고 바르자이의 언월도를 찾는다면…….
“특별히 생각해 둔 건 없다만.”
어쩐지, 공허를 부르고 싶어질 것만 같았다.
그 이유가 어째서인지 니알라토텝은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