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183화 (183/332)

# 183

183. 아흐리만(3)

아흐리만의 형태는 완성된 건 아니었다.

마치 기체가 한데 뭉쳐 어그러진 것처럼 계속해서 꿈틀거리는 육체는 기괴하기 그지없었다.

문제는 의식이 없고 본능만이 남아 있던 아흐리만이 점차 의식을 갖춰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마 아스모데우스를 흡수한 영향이 점차 나타나고 있는 것 같았다.

‘완전히 의식을 가지게 된다면 크나큰 재해가 될 거야.’

지금 놈을 이렇게 막고 있는 것도 덩치만 큰 어린애이기 때문이다.

상급 신격을 지닌 인공신이 완전히 본인의 힘을 통제할 수 있게 된다면 지구에서 놈을 막을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사실상 알데바란 이상의 괴물이 되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찾았어요!”

초조하게 아흐리만을 살피고 있으니 린이 소리쳤다.

린의 눈동자가 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아스트라이아가 린을 도와 신격을 완벽히 통제하고 있다는 증거다.

린과 아스트라이아는 이제 한 몸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찾았어? 어딘데?”

“목 바로 아래예요. 단지 조금 문제가 있어요.”

“문제?”

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대한 마력으로 핵이 보호받고 있어요. 다른 부위는 거대한 감정의 결정체인데 그 부분만 어마어마한 마력이 뭉쳐 있어요.”

“……아마 아스모데우스의 힘을 이용한 모양이군.”

분노가 상승할수록 마력이 증가하는 아스모데우스의 전승스킬.

그것을 아흐리만은 백분 활용하고 있었다. 끝없는 악의로 뭉쳐진 감정 생명체나 마찬가지인 아흐리만은 자신의 육체에 담겨있는 인간의 끝없는 분노를 마력으로 환원하고 있는 것이다.

아흐리만의 육체가 계속 강해지고 진화하는 것도 분명 그 때문일 것이다.

“강력한 마력장을 꿰뚫을 공격이 필요한 건가.”

“네, 아무래도 그런 거 같아요.”

“넌 할 수 없어?”

“지금의 전 무리예요. 오빠라면 어떻게 될 것도 같지만…… 알다시피 마력장을 뚫은 후 핵까지 부셔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마력장은 금방 복구될 거예요.”

린은 계속 핵을 응시하며 말했다.

애초에 형태가 없으니 마력장을 뚫는다고 일이 해결되는 게 아니다.

무한정으로 마력이 솟아나니 설령 파괴한다고 해도 일시적일 뿐, 금방 복구가 되는 것이다.

‘수라를 사용한다면 마력장은 뚫겠지만 핵까지 관통하기엔 힘이 부족해.’

그리고 핵도 핵이다.

적어도 마력장을 부수는 것과 동등한 힘이 필요할 것이다.

현재 이곳에 있는 플레이어 중 그 정도의 화력을 가진 플레이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죄송해요, 제가 좀 더 강했으면 됐을 텐데…….”

“아니야. 충분해. 오히려 짧은 시간에 이정도로 신격을 다룰 수 있다는 것만으로 대단한 거야.”

세한은 울상이 된 린을 위로했지만 시무룩해진 얼굴은 펴질 줄 몰랐다.

‘지수는 가까이 가는 것도 안 될 테고.’

마인에 가까운 지수는 아흐리만의 내부에 들어가게 되면 그대로 흡수될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다면…….’

한 가지 방법을 알고 있었다.

다만 그것을 아자젤이 들어줄지는 미지수다.

“으, 으오오. 으오오오오!!”

콰직, 콰직!

아흐리만의 등 뒤에서 두 개의 팔이 추가적으로 생겨났다.

총 네 개의 팔이 생겨난 아흐리만은 마치 불교에서 나오는 아수라와 같은 모습이었다.

콰과광!!

거대한 손으로 근처의 빌딩을 쥐자, 콘크리트가 마치 모래성처럼 부스러져 흩어졌다.

플레이어들도 어떻게 저항하고 있었지만, 이제 더 이상은 무리이리라.

“아자젤.”

“음, 왜 그러니, 까마귀.”

여태 조용히 생각에 잠겨 있는 아자젤을 나는 조용히 응시했다.

분명 그녀라면 한 가지 방법이 있었다.

정확히는 신자운에게.

내가 아는 것을 아자젤이 모를 리가 없었다.

“……그 얼굴은 아무래도 알아챈 모양이네. 아니, 알고 있었던 걸까?”

“그건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지. 다만 네가 그럴 마음이 있느냐가 중요해.”

“그럴 마음이라.”

아자젤은 그녀답지 않게 불안한 눈으로 신자운을 보았다.

이건 1회차부터 아자젤을 알고 있었던 세한으로선 굉장히 놀라운 모습이다.

저 녀석이 남을 걱정하는 모습을 볼 줄이야!

‘생각해 보면 악마를 잡으러 미국에 온 것부터가 이례적이야.’

‘나태’의 위(位)에 앉아있는 악마가 자신의 아바타를 죽이려한다는 소식을 듣고 미국까지 날아왔다. 1회차라면 우스갯소리조차 되지 않을 거다.

지수는 타인에게 무관심하지만 아자젤은 그 반대다.

타인을 오로지 호기심의 대상으로만 봤다.

그리고 호기심이 사라지면 가차 없이 버린다. 지루하니까.

그런 그녀가 이런 표정을 지을 정도면 신자운이 그녀에게 생각보다 훨씬 소중한 존재라는 뜻이다.

‘대체 뭔짓을 한 거야, 저놈은?’

멀뚱멀뚱 서 있는 신자운은 혼자 상황파악을 못하는 눈치였다.

아자젤은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다가 말했다.

“아무래도 다른 방법은 없겠네. 저거 내버려두면 미국만이 아니라 이 별 자체가 위험해지겠지?”

“시스템을 통해 어떻게 조치를 취할 수 있겠지만 그동안 미국은 쑥대밭이 되겠지. 물론 이곳에 있는 우리도 무사하긴 힘들 거다.”

“그래, 그러네. 맞아. 그렇지.”

아자젤은 중얼중얼 거리다가 푹 한숨을 쉬었다.

“알겠어. 구멍을 뚫는 건 내게 맡겨둬. 대신 너희가 뭘 해야 되는지는 알지?”

“물론, 아주 큼지막한 녀석으로 안내해 주마.”

“마력장을 뚫으면 핵은 네가 꿰뚫어야 할 거야. 까마귀, 넌 할 수 있겠어?”

그런 아자젤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마력장만 부순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좋아.”

아자젤은 고개를 끄덕이며 턱짓으로 아흐리만을 가리켰다.

이제 알아서 할 테니 아흐리만으로 가보라는 소리다.

“린, 가자.”

“네? 뭐가 된 거예요?”

세한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검은 날개를 펼쳤다.

“넌 악의를 가진 존재에게 최대의 적이나 마찬가지니까.”

“말은 좋은데, 결국 미끼가 되라는 거죠?”

투덜거리는 린의 말에 세한은 어깨를 으쓱였다.

이전처럼 겁을 집어먹은 건 아니지만, 역시 아직 어리다보니 긴장이 되는 모양이다.

솔직히 상황이 아니면 린을 이런 싸움터에 부르고 싶지 않았다.

“알겠어요. 대신 잘 보호해 주셔야 되요.”

“맡겨둬.”

세한은 한쪽팔로 린을 허리춤에 안아든 뒤, 날개를 펼치며 날아올랐다.

린은 아직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는 능력이나 스킬이 없다보니 이렇게 세한이 안아들 수밖에 없었다.

“그으으──.”

린을 안고 세한이 하늘로 날아가자 아흐리만의 시선이 점차 위로 올라갔다.

동시에 아흐리만의 손도 천천히 하늘로 향했다.

촤아아악!!

아흐리만의 손가락이 촉수처럼 변형되며 길쭉하게 늘어났다.

길게 늘어진 촉수는 린을 노리고 뱀처럼 날아들었다.

“빠르게 날 테니 정신 바짝 차려!”

등에 펼쳐진 궁기의 날개에 세한의 신력이 집중됐다.

그러자 속도가 한층 빨라지며 촉수의 사이로 빠르게 빠져나갔다.

순간적으로 시야가 흰빛으로 물들더니 세한의 몸에서 큰 충격파가 일어나며 촉수들이 튕겨져 나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비행하는 세한을 쫓아 촉수들이 쫓아왔다.

서걱! 서걱!

빠르게 뒤쫓아 오는 촉수들을 향해 린의 손이 휘둘러지자 촉수들이 잘려나갔다.

린이 지금 쥐고 있는 검은 리브라. 굳이 마력을 담거나 신력을 담을 필요도 없는 현존 최강의 무기다.

아무리 아흐리만이라고 할지라도 리브라에게 닿게 되면 두부처럼 썰려나갔다.

‘이 속도로 비행하는 와중에 정확히 촉수만 노리다니.’

심지어 허리춤에 매달려 불안정한 자세를 취하고 있음에도 이 정도다.

린의 실력이 얼마나 빨리 늘고 있는지에 대한 반증이나 마찬가지였다.

“오──오오오오!!”

아흐리만의 얼굴에 ‘표정’이 생겼다.

제대로 된 눈과 입이 생겼고, 시꺼먼 불길로 타오르는 안구에서는 명백한 분노가 느껴졌다.

세한은 그 광경을 보며 피식 웃었다.

녀석이 진화한 덕에 도리어 유인하기가 쉬워졌다.

본래의 아흐리만은 분노를 느낄 수 없기에 본능적으로 린을 쫓다가 그만뒀을 확률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아스모데우스의 영향을 받아 분노의 감정을 얻은 아흐리만은 하늘에서 날아다니는 세한을 죽이기 위해 계속해서 손을 뻗고 있었다.

“그아아아────!!”

아흐리만의 입이 쩍 벌어지며 보라색 빛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세한은 그것을 빠르게 선회하며 피해냈지만, 빛줄기가 지나간 충격파만으로 근처의 빌딩의 벽에 충돌할 뻔했다.

“아저씨, 저건?!”

“넘치는 게 신력과 마력이니 저 정도는 간단하겠지.”

“마, 맞으면 죽을 거 같아요.”

“죽지.”

하지만 맞지는 않을 거다.

세한은 방금 보았던 아흐리만의 패턴을 되새겼다.

‘저거면 되겠어.’

마침 방출계 공격이니 아자젤의 전승스킬로 상대하기도 쉬울 거다.

저건 마이너스 감정을 끌어 모아 신력과 마력을 뭉쳐 쏘아내는 거대한 악의.

인간이라면 스치는 것만으로 죽는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선물이지.”

“네?”

린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지만 세한은 답하지 않았다.

아흐리만의 공격이 사방에서 몰아쳐왔기 때문이다.

“프라가라흐!”

세한의 눈이 왼쪽은 적색으로, 오른쪽은 금색으로 타올랐다.

등 뒤에서 열린 허수공간에서 프라가라흐가 튀어나오며 금색의 빛이 되어 촉수들을 꿰뚫었다.

쾅쾅쾅쾅!!

아음속, 음속을 넘어 마치 빛과 같은 속도로 비행하는 프라가라흐의 위용은 마치 신의 징벌과도 같았다.

‘촉수가 끝이 없어.’

끊임없이 증식하는 촉수는 점점 더 빨라졌고 수도 많아졌다.

심지어 지상에서 공격하는 플레이어들에게도 몇 가닥이 향해 있음에도 이 정도 수였다.

모조리 세한을 향해 몰려들었다면 아무리 프라가라흐라도 모두 막지 못했으리라.

“그으으──.”

아까 세한을 향해 쏘았던 것처럼 아흐리만의 입에 보라색 빛이 점차 응축되기 시작했다.

촉수들로 세한이 피할 수 없도록 점하는 것만 봐도 점차 지능이 상승해가고 있다는 걸 증명하고 있었다.

‘아자젤은 어디지?’

빠르게 주변을 훑자. 샌프란시스코 베이 근처에 있는 샌프란시스코 브릿지의 철골 위에 아자젤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아자젤의 곁에는 신자운이 서 있었다.

긴장으로 굳어있는 놈의 얼굴로 보아 방금 전 아자젤로부터 전승스킬을 받았을 게 분명했다.

“아저씨, 뒤!!”

“알고 있어!”

만개하는 꽃처럼 사방으로 펼쳐진 촉수는 우리가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사각을 점했다. 방금 전처럼 옆으로 피하려고 해도 촉수를 뿌리칠 수는 없으리라.

“아아아───!!”

콰아아아!!

방금 전보다 한층 강렬해진 보라색 광체가 쏘아졌다.

쏘아진 충격파만으로 샌프란시스코의 도로가 뒤집혔고, 건물이 무너져 내렸다.

단숨에 등 뒤까지 접근해온 광체를 보며 린은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세한은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허리춤에 안고 있던 린을 아자젤을 향해 던지며 빠른 속도로 신자운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뒤에 있는 것을 맡긴다는 듯이.

‘놈은 어째서 내가 할 수 있을 거라 믿는 거지?’

신자운은 그런 세한의 행동을 믿기 힘들었다.

‘하긴 나를 믿는다는 것보다, 아자젤을 믿는 거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바로 옆에 아자젤이 있으니 설령 신자운이 막지 못하더라도 아자젤이 튕겨낼 수 있으리라.

아까 전 녀석의 공격을 막아냈던 것처럼.

후우.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주먹을 뒤로 당겼다.

이미 몇 번, 몇 십, 몇 백, 몇 천, 몇 만 번이나 취했던 자세다.

신자운이 가장 잘하는 건 상대방의 힘을 역이용해서 카운터를 날리는 것이었다.

그는 린이나 지수와 같이 대단한 재능을 지닌 플레이어가 아니다.

그렇기에 언제나 의문을 가졌다.

아자젤은 어째서 자신을 계약자로 택한 것인가.

분노의 악마도 그에게 자격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코앞까지 다가온 보라색 광체를 향해 신자운은 주먹을 뻗었다.

미친 짓이다.

악의로 뭉쳐진 열량의 덩어리에 주먹을 내질러봤자 불타사라지는 게 정상이었다.

그럼에도 신자운에게 두려움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의 곁에 있는 아자젤의 눈은 그가 반드시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으니까.

아자젤은 이상한 녀석이지만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콰아아아아아!!

보라색 광체를 향해 신자운의 주먹이 뻗어졌다.

백색의 광체가 아흐리만의 목을 꿰뚫은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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