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182화 (182/332)

# 182

182. 아흐리만(2)

‘어이가 없을 정도군.’

신자운은 아자젤이 방금 아흐리만의 에너지방출을 튕겨내는 걸 보고는 헛웃음을 지었다.

대체 어떤 방법으로 그런 신기에 가까운 기술을 사용할 수 있었던 건지 모르겠다.

정말 아자젤은 굉장한 악마였다.

아스모데우스의 말처럼 어째서 자신을 계약자로 삼았는지 모를 만큼.

“우오───오오오!!”

에너지방출이 전혀 피해를 주지 못하자 아흐리만은 상당히 화가 난 것 같았다.

길쭉한 팔을 위로 치켜들고 크게 팔을 휘저었다.

그것만으로 덤벼들던 플레이어 대부분이 하늘로 치솟아 날아갔다.

“으아아악! 살려줘!”

“살았으니까 비명 그만 지르고 다시 싸워! 지금 버프 때문에 웬만한 걸로는 상처입지 않는 거 같으니까!”

“어? 진짜네?”

하늘로 날아갔다 바닥을 구른 플레이어는 수없이 많았지만 큰 상처를 입은 플레이어는 없었다.

이드라가 지속적으로 막대한 버프를 플레이어들에게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큰 상처가 아니라면 지속적으로 회복되고 있었다.

“저놈을 죽여!!”

덕분에 용기를 얻은 플레이어들은 거대한 거신의 몸에 달라붙으며 저마다의 무기를 꺼내 아흐리만의 몸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큰 상처는 없었지만 자그마한 플레이어들이 계속해서 공격하니 아흐리만의 시선이 계속해서 분산됐다. 만약 이성이 있는 존재였다면 짜증을 내며 분노를 표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버프가 아무리 대단해도 즉사에 이르는 상처를 막아줄 수는 없었다.

아흐리만이 오른팔을 치켜들어 지면을 향해 강하게 내리찍었다.

쿠아아앙!!

“우아아악!!”

아흐리만의 주먹이 지면에 격돌하자, 지반이 무너지며 터진 하수도관이 비처럼 물을 뿌렸다.

단 한방에 수십 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구덩이가 생긴 것이다.

“어, 어떻게 살아 있는 거야?”

방금 주먹에 깔리기 직전이었던 플레이어는 멀쩡한 자신의 몸을 만지며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었다. 물론 그가 피한 건 아니다.

세한이 허수공간을 열고 물건을 사출해 그의 몸을 옆으로 튕겨낸 덕이다.

“구멍이 뚫리는 정도로 안 된다면…….”

무너져 내리는 도로를 질주하며 가로등을 밟고, 건물을 밟으며 뛰어올랐다.

세한의 등에서 검은 날개가 생기며 찰나의 순간에 아흐리만의 코앞까지 날아갔다.

서걱!!

손에 쥔 다인슬라이프를 사용해 크게 반원을 그리자 아흐리만의 오른팔이 잘려 바닥을 굴렀다. 하지만 잘려나가기 무섭게 지면에 잘린 오른팔이 먼지가 되어 흩어졌고, 새로운 팔이 자라났다.

“크오오오오오!!”

심지어 자르기 전보다 한층 단단하고 강해 보이는 외형이었다.

‘함부로 육체를 소실시키면 안 되겠어.’

재생이라기 보단 단순한 물리피해를 아무리 줘봤자 아흐리만에게는 타격이 없는 것 같았다.

그것은 아흐리만이 정신체에 가까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역시 핵을 노려야 해.”

저건 거대한 원념의 덩어리다.

신격을 이용해 형태를 구축했을 뿐인 망령.

세한은 플레이어들이 싸우는 동안 아흐리만의 육신에서 이동되는 신격의 흐름을 보았다.

이곳에 모인 플레이어들은 나보다 약하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한가닥하는 플레이어들이었기에 아흐리만의 육신에 상처를 주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발생하는 신격의 소실과, 소실된 신격을 채워 넣는 에너지의 흐름을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일반적으론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아흐리만은 몽상(夢想)에 가까운 존재이기에 이드라의 힘으로 간섭이 가능했다.

만약 핵만 찾을 수 있다면 녀석을 죽이는 것도 가능하리라.

‘핵을 찾아도 그곳에 도달하는 게 문제다만.’

방금 전에 팔을 잘랐던 것이나, 몸에 구멍을 뚫었던 건 기습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흐리만의 신격은 견고해졌고 육신도 점차 완성되어 갔다.

이대로 플레이어들의 수로 밀어붙여 시간을 버는 것도 분명 한계가 있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세한이 모든 힘을 다한다고 해도 일말의 피해도 입지 않으리라.

“음?”

그때 하늘이 반짝였다.

천체의 움직임이 멈추고 하나의 별자리가 이곳을 향하고 있었다.

황도 12궁 중 하나, 천칭좌의 빛이 샌프란시스코를 비췄다.

“이제야 왔나.”

그것이 누구를 뜻하는지는 명백했다.

천칭검 리브라의 주인.

정의의 여신의 강림이다.

***

‘짜증나.’

공격하고, 아무리 공격해도 조금의 피해도 줄 수 없었다.

정확히는 피해를 주더라도 상대는 금방 모습을 회복했다.

이게 자신을 공격하는 적들의 심정이었을까?

지수는 손에든 흉성의 학살자를 내리며 투덜거렸다.

세한은 자신에게 혹시 남아 있을지 모를 일반인들이 피해를 막거나, 플레이어들이 큰 상처를 입지 않도록 보호해 달라고 말했다.

전과 같이 함께 싸워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건, 이번 전투에서 자신이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짜증나.’

지수는 그것이 더 짜증났다.

중원에서 혈천수라공의 경지도 세한이 역전했다. 지수도 혈천수라공이 거의 극성에 다다른 상태였지만 아직 자신의 것으로 완성하지는 못한 상태였다.

마음이 조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다른 사람과 달리 잘하는 게 전투밖에 없었기에 세한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버려질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이다.

물론 세한이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는 건 알지만 불안한 건 어쩔 수 없다.

“빛이……!”

그때 주변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하늘이 하얗게 물들었고, 무언가가 떨어지는 게 보였다.

처음엔 별똥별인가 싶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자세히 보면 그것은 한 자루의 검이었다.

그것도 지수가 익히 알고 있는 검.

“설마.”

천칭검 리브라.

콰아아아아!!

하늘에서 떨어진 검은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는 아흐리만의 바로 앞에 꽂혔다.

그리고 그 검 위로 금색의 기둥이 떨어졌다.

황금색으로 형형히 빛나는 금빛.

빛을 뚫고 걸어 나온 건 금색의 소녀였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눈동자와 머리카락.

소녀의 머리 위에는 금색의 왕관이 번쩍이며 눈부신 후광을 내뿜었다.

‘어째서.’

그녀가 이곳에 있다는 건 세한이 불렀다는 이야기다.

즉, 자신이 아닌 그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

‘내가 지금은 더 강한데.’

형형히 빛나는 정의의 여신은 바닥에 꽂혀 있는 리브라를 천천히 뽑아들었다.

지닌바 힘은 아직 지수가 더 강했다.

‘아직’은.

하지만 그럼에도 세한이 도움을 요청한 건 자신이 아닌 린이었다.

그건 분명 린만이 할 수 있는 어떤 일이 있기 때문이겠지만, 지수의 마음속에 생긴 불안은 점점 커져만 갔다. 지금은 자신이 더 강하지만 린의 재능이라면 곧 자신을 앞지를 수도 있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린도 할 수 있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안 돼.’

천천히 금색의 검을 치켜드는 린을 보며 지수는 속으로 되뇌었다.

‘이대로는 안 돼.’

세한이라면 설령 자신이 쓸모가 없어져도 버리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지만, 지수는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이대로 라면 그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싸울 수 있는 이유를 빼앗기게 된다.

‘뭔가, 방법이 필요해.’

신의 힘을 넘을 수 있을 정도의 힘이.

지수의 시선은 천천히 다른 소녀에게로 옮겨갔다.

세한의 말에 따르면 린과 동등한 재능을 지녔다는 여성.

아자젤.

자신은 신이 될 수 없다.

린과 같은 선한 마음 따위 가지고 있지 않다.

지수가 가진 도덕성은 평범한 인간을 모방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혹시 악마라면 될 수 있지 않을까?

지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곤 화들짝 놀랐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한 거지?

‘아냐, 진정해.’

지수는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그건 세한이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나쁜 아이’가 되어버려선 본말정도다.

린에게 질투심이 생기긴 했지만, 분명 다른 방법으로 쫓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미래의 린도 그러지 않았던가.

그녀는 미래의 자신을 이기지 못한다고 했다.

그거면 됐다.

가끔씩 이렇게 생각이 폭주하게 되는 터라 지수는 스스로가 걱정될 때가 많았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 조금해하면 할수록 자신은 엇나가게 될 게 분명했다.

폭주해서 세한을 공격했던 일은 지수에게 트라우마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자신은 착한아이가 되어야만 했다.

「가끔은 나쁜 아이가 되셔야 해요」

어째서인지 미래의 린이 했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지수는 고개를 흔들어 애써 그것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

리브라를 든 린은 단번에 아흐리만의 양팔을 절단했다.

세한 자신이 자르던 것보다 한결 수월하게 자르는 모습에 내심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실력이 또 늘었네.’

단순한 검 실력이 아니라 신력을 다루는 방법이 한층 능숙해졌다.

신력 자체는 중하위급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정의의 여신이 가지는 권능이 담겨 있어, 악의가 뭉쳐진 것이나 마찬가지인 아흐리만에겐 천적이나 마찬가지였다.

“아저씨, 저 왔어요.”

“오빠라고 부르라니까.”

아흐리만이 재생하는 것을 지켜보던 린은 폴짝 뛰어올라 세한의 곁으로 다가왔다.

자세히보면 키도 좀 큰 것 같았다.

여전히 아이이긴 했지만 성장해가는 게 눈에 띄었다.

“근데 저는 솔직히 저거 못 이길 거 같은 데요…….”

린은 질린 눈으로 이미 재생을 끝낸 아흐리만을 보며 말했다.

아흐리만은 린에게 공격받은 후, 한층 강해진 모습으로 포효하고 있었다.

“쓰러트리라고 부른 거 아니야. 너라면 아흐리만의 몸에서 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을 뿐이지.”

“핵?”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는 권능을 얻지 않았어?”

명색의 정의의 여신이다.

기본 중에 기본인 권능을 지니지 않았을 리가 없다.

말이 권능이지, 아스트라이아로부터 받은 전승스킬이니까.

“이, 있긴 한데요. 저건 악의로만 똘똘 뭉쳐 있어서 악을 구분하기가 좀…….”

“악을 구분하라는 게 아니야.”

“네?”

“선함을 찾아야 해.”

잘못된 방식으로 만들어진 탓에 겉으로 보이는 건 악의 뿐이지만, 명색의 스펜타 마이뉴와 앙그라 마이뉴 두 명의 신을 모방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애초에 저런 형태조차 남지 않았을 것이다.

순수한 악의가 되어 조로아스터교를 집어삼켰을 테지.

“아, 이해했어요.”

린은 역시 세한의 말을 단번에 이해한 모양이었다.

“저것의 안에 있는 선의의 조각을 찾으면 디는 거죠?”

세한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린은 아흐리만의 전신을 훑었다.

하지만 말처럼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당장 아흐리만의 육신이 계속해서 진화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기가 더 커지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신격과 마력이 부풀었고 지능을 얻어가기 시작했다.

“죽──이겠다. ──전부. 전부── 죽이겠다──.”

그르릉 거리며 말을 하기 시작한 아흐리만의 모습은 세한조차 예상치 못한 일이다.

1회차에서 아흐리만이 말을 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었으니까.

“설마.”

세한은 천천히 아자젤을 돌아보았다.

아자젤은 어째서인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방금 세한과 린의 대화를 듣고 무언가가 생각난 모양이다.

그녀는 세한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는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맞아, 분노의 악마를 삼켰기 때문이야. 저것의 감정이 격해지면 격해질수록 점점 더 강해지겠지.”

콰아아앙!!

아자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흐리만의 전신이 변화했다. 검은 안개와도 같은 형태를 취하던 외피가 갑각이 둘러진 두터운 형태로 변했다.

전신에는 움푹 들어간 형태로 구멍이 만들어졌고, 그 속에서 보라색 광체가 뭉쳐지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입으로 사출하던 에너지를 전신으로 쏘아내려는 것이다.

고오오오.

원리는 간단하다.

신력과 마력을 뭉쳐 발사하는 아주 심플하고 간단한 공격이다.

문제는 놈의 몸에 뭉쳐진 마력과 신격이 말도 못하게 많다는 점이다.

“죽어───!!”

그 목소리는 아까 들었던 아스모데우스의 것과 닮아 있었다.

아자젤의 말처럼 아스모데우스를 흡수한 영향이 점차 뚜렷하게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시간을 두게 되면 놈은 점점 더 강해질 테고, 손쓸 도리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콰콰콰콰!!

아흐리만의 전신에 생긴 구멍에서 보랏빛 광체가 사방으로 쏘아졌다.

샌프란시스코에 높이 솟아 있는 건물들을 꿰뚫고, 지상과 하늘에 있는 존재를 구분하지 않고 난사하기 시작했다.

“젠장!!”

뭐 이딴 놈이 다 있어?!

세한은 목구멍까지 차올라온 욕을 삼키며 사방으로 떨어져 내리는 광체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이전이라면 감히 정면에서 막을 생각 따위는 하지 못했겠지만, 중원에서 익힌 혈천수라공으로 이 정도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피, 피해! 으아아악!!”

이번만큼은 플레이어들도 버프로 막아낼 수 없었다.

광체에 맞은 플레이어는 한줌의 재도 남기지 못한 채 깔끔하게 소멸되었다.

린은 그런 플레이어들이 생기지 않도록 최대한 많은 광채를 막아내고 있었지만 한계가 있었다.

“콜록, 콜록.”

사방으로 떨어진 포격에 사방이 뿌연 연기로 휩싸였다.

날개를 펄럭여 바람을 일으키자 곧게 직립을 하고 있는 아흐리만의 모습이 보였다.

이젠, 완연한 악마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린, 아직 못 찾았어?!”

“자, 잠시만요. 조금만 시간을 주세요!”

린은 울상인 얼굴로 금색 눈동자를 반짝였다.

아무래도 권능을 사용하는 건 익숙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조금만이라고 해도…….”

이성이 없는 괴물에 불과했던 존재의 얼굴에는 조금씩 지성이 깃들고 있었다.

1회차와는 달리 점차 완성되어가는 아흐리만의 모습에 세한은 점점 초조해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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