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180화 (180/332)

# 180

180. 만들어진 신(2)

“네놈, 아자젤. 아자젤!”

아스모데우스가 분노에 찬 외침을 내질렀다.

그런 외침에 아자젤은 살며시 눈을 찌푸렸을 뿐이다.

“왜 소리를 지르니?”

“네년의 그런 태도 때문이다. 너는 나를 아주 같잖게 보고 있잖아!”

“아니야. 제법 흥미롭게 보고 있어. 악마가 이 정도로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건 보기 힘들거든. 역시 ‘분노’를 담당하는 악마라 그런 걸까?”

아자젤은 진심으로 신기한 눈치였다.

하지만 신자운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지금 상당히 화가 나있다.

왜지?

아자젤은 왜 화가 난 거지?

“당장 죽여주마!”

감정이 격해질수록 마력이 부풀어 올랐다.

에단의 몸을 빌린 것에 불과함에도 마력의 운용이나 스킬의 활용이 차원이 달랐다.

아까 대단하다고 느꼈던 에단의 마력운용과 스킬도 지금 아스모데우스가 사용하는 것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했다.

부우웅!!

발을 박차며 날아온 아스모데우스는 아자젤을 향해 불과 얼음이 맺힌 주먹을 내질렀다.

그것을 아자젤은 춤을 추듯 빙글 회전하며 피했다.

아자젤의 현재 능력치는 신자운의 3분의 1정도다.

평범한 인간보다는 이제 확실히 강해졌다고 할 수 있지만, 아스모데우스와 싸우기엔 턱 없이 부족하다.

짝!

경쾌한 소리와 함께 아스모데우스의 얼굴이 돌아갔다.

빙글 회전하면서 아스모데우스의 공격을 피한 아자젤의 그의 얼굴에 따귀를 날린 것이다.

말 그대로 따귀다.

특별한 힘이나 효과는 존재하지 않았다.

짝짝짝!!

그것도 한 대로 끝나지 않았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아스모데우스의 얼굴이 소리가 날 때마다 흔들렸다.

결국 아스모데우스는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크, 크으윽!”

“왜?”

아스모데우스는 붉어진 얼굴로 이를 부드득 갈았다.

얻어맞은 뺨을 놀랍게도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아자젤은 분노하는 아스모데우스를 보며 귀엽게 머리를 기울였다.

“더 맞고 싶니?”

“아자젤───!!”

신자운은 황급히 시리스의 귀를 막았다.

그의 고친 포효는 평범한 인간의 귀를 상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실제로 신자운의 귀에선 작은 핏방울이 흘러내렸다.

아자젤도 눈을 찌푸리며 귀를 막고 있던 손가락을 천천히 뺐다.

그런 아자젤을 아스모데우스는 벌게진 눈으로 노려봤지만, 덤벼들지는 않았다.

그저 심호흡을 하며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뿐이었다.

“깜짝이야.”

“여유를 부리는 것도 거기까지다. 곧 마몬이 씨앗을 가지고 올 거다.”

“어머나.”

아자젤은 이제야 쓸 만한 정보를 내뱉는 아스모데우스를 보며 웃었다.

“씨앗을 가져와서?”

“그것을 조종할 것이지. 우리 계약자들은 그것을 이용해 세계를 지배할 모양인 모양이지만, 그건 표면적인 이유다. 그건 내 음식이지.”

“먹는 건 벨제붑이 하는 일 아니었나?”

“나도 가능하다. 그건 감정덩어리. 분노의 악마인 내게는 아주 좋은 양식이지.”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아스모데우스에게 아자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스모데우스가 지금 떠들기 시작한 건 침착함을 되찾기 위해서였다.

“너라면 기다리겠지? 내가 얼마나 강해지는지 보고 싶지 않나?”

“궁금해.”

“크, 크크크. 그럴 줄 알았다. 네년은 나태가 아니라 오만이 어울려.”

뺨을 얻어맞고 이성을 반쯤 일었던 아스모데우스이지만 그도 7대 악마다.

이 상태로 싸워봐야 아자젤의 놀림감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그는 알았다.

그 역시 본래 힘에 비하면 약해진 상태지만 지금의 아자젤은 그보다 훨씬 약했다.

그럼에도 이렇게 장난감처럼 다뤄진다는 건 그와 자신의 실력 차이를 명백히 드러내고 있기 대문이다.

분하다.

정말로 분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이렇게 지구에 온 것이다.

‘이 게임을 우연히 보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세한과 이드라의 홍보는 마계에도 흘러갔고, 아스모데우스는 지구에 대해서 조금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아스모데우스는 에단과 계약을 맺게 된 것이다.

정확히는 이미 육성된 ‘진행계정’을 넘겨받았다는 게 맞다.

자신의 영역에 존재하는 상위악마가 데리고 있던 우수한 아바타를 아스모데우스가 빼앗은 것이다.

그건 마몬도 마찬가지였다.

계정 거래는 커뮤니티에서 그다지 좋은 취급을 받지 못했지만 악마인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마몬과 함께 새로운 세력을 구축한 뒤, 정보를 모으던 그는 한 정보를 얻게 된다.

바로 ‘씨앗’에 대한 정보.

처음에는 대단치 않게 생각했지만, 조로아스터교에 조사한 것과, 커뮤니티에 가끔 나타나는 아후라 마즈다에게서 얻은 정보로 볼 때 분명 진짜였다.

‘그것을 집어 삼킨다면 나는 지금보다 한 단계 강해질 수 있을 테지.’

그렇다면 지금처럼 아자젤에게 결코 당할 리 없었다.

아니, 분명 이길 수 있으리라.

지금쯤이면 마몬이 씨앗을 거래해서 본거지로 가지고 가고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 마몬의 마법과 주술을 통해 씨앗에 아스모데우스의 혼을 옮겨 담는 작업을 하게 될 예정이었다.

“그러니 우선 이곳에서는 물러나겠…….”

하지만, 아스모데우스의 말을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콰콰콰쾅!!

갑자기 어마어마한 신격과, 마력의 격류가 느껴진 것이다.

이건 분명, 씨앗의 기운이다.

“뭐야?”

저게 왜 발아한 거지?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아스모데우스가 내딛고 있던 콘크리트 바닥이 부서지며 새까만 무언가가 건물 전체를 집어삼킨 것이다.

“이런.”

아자젤은 순식간에 검은 빛기둥에 집어삼켜진 아스모데우스를 보며 양산을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순식간에 퍼져나가던 검은 빛들이 일시적으로 크게 흩어졌다.

“피해야 해. 당장 나를 따라와!”

콰콰콰콰!!

그녀 답지 않게 다급한 목소리로 외친 후, 시리스와 신자운을 데리고 피했다.

빛의 기둥은 이곳에 있는 모든 존재를 단숨에 집어삼키며 반경 수백 미터에 있는 존재를 눈 깜박할 사이에 소거시켰다.

마치 신의 징벌처럼.

새까만 어둠의 기둥이 하늘을 꿰뚫으며 솟아올랐다.

***

“하.”

나는 그 광경을 하늘에서 바라보며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신격과 마력이 섞인 혼돈의 폭풍.

공허조차 집어삼키는 막대한 힘의 격류는 하늘에 구멍을 뚫었고, 새까만 어둠을 지상에 흩뿌렸다.

1회차에는 이것이 강림할 때 한국에 있었다.

먼 거리에 떨어져 있었음에도 숨이 멎을 것 같은 힘을 느꼈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느끼니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상급, 신격인가.”

이제 막 깨어난 탓에 신격은 아직 상급에 머물러 있었지만, 조금씩 증가하고 있었다.

조로아스터교의 만들어진 신.

검은빛의 기둥은 점차 일그러지며 새까만 형상의 인간의 모습을 취하기 시작했다.

팔과 다리도, 얼굴도 몸도. 마치 어린아이가 검은 크레파스로 낙서한 것처럼 기괴한 형태로 이루어져 있었다.

“저게 씨앗인가요?”

내 품에 안겨 있는 지수도 얼굴이 굳어 있었다.

웬만한 일에선 긴장하지 않는 지수가 이런 얼굴을 할 정도면 저곳에서 느껴지는 힘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었다.

아마 조금만 있으면 지구에 있는 모든 플레이어가 저것의 힘과 신격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저렇게 완벽히 발아해 버렸으니 더 이상 씨앗이라 부를 수 없을 거 같다.”

“그럼 뭐죠?”

“아후라 마즈다의 자식들을 모방한 괴물.”

절대 선, 스펜타 마이뉴.

절대 악, 앙그라 마이뉴.

그것을 조로아스터교는 모방하고자 했다.

아후라 마즈다의 두 아이를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내고 한 것이다.

수많이 많은 선량한 사람들을 제물로 바치고, 그들에게 끝없는 악의를 선사했다.

놀라운 점은 정말로 그들은 그렇게 하여 초상의 영역에 닿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다만, 결과가 생각과 달랐을 뿐이다.

“우리가 본 시체는 그것들이 담긴 그릇이야. 단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을 뿐이지. 조로아스터교에서는 저것을 아흐리만이라 부른다.”

스펜타 마이뉴가 아닌 앙그라 마이뉴에 한없이 가까운 괴물.

그리고 그것이 지금 깨어졌다.

“오오──오오오.”

그 크기는 족히 수십 미터에 달했다.

거대한 크기였지만, 문제는 계속해서 커지고 있었다.

악의가 커져갈수록, 저것의 신격과 마력도 계속해서 늘어났다.

쿠쿵, 쿠구구궁!

“오빠, 저기 손에 뭔가 잡혀있어요!”

거대한 거인이 되어버린 유해, 아흐리만의 손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플레이어?”

아흐리만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신격에 가려 알기 힘들었지만, 악마의 계약자다.

아니, 저 모습을 보면 계약자가 아니라…… 악마 본인이 플레이어의 육체를 빼앗은 건가?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마몬 녀석이 씨앗을 발아시킨 건가?”

손에 잡혀 있는 악마는 비교적 여유로운 태도였다.

말하는 걸 보아하니 아마 탐욕이 아닌 분노의 악마. 아스모데우스인 게 분명했다.

“이성을 잃은 괴물이여, 나의 양식이 되어라!”

아스모데우스의 몸에 짙은 마기가 흘러나오며, 막대한 마력이 길쭉한 촉수처럼 뭉쳤다.

그것들을 식물의 넝쿨처럼 자신을 붙잡고 있는 아흐리만의 오른팔에 얽히며 파고들었다.

‘바보 같은 짓을.’

나는 그런 아스모데우스의 행동을 보며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아흐리만을 직접 삼키려는 건가?

“저 악마가 아흐리만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 것 같은데 막아야 하지 않아요?”

“못 막아.”

이미 늦었다.

‘마몬은 저것을 노린 건가?’

아흐리만의 몸에서 흘러나온 신격과 마력은 넝쿨을 타고 아스모데우스에게 전해졌다.

막대한 힘이 점차 자신의 몸에 흡수되자 아스모데우스는 크게 웃었다.

“좋아, 생각한 것처럼 훌륭한 먹이로구나. 이대로라면 아자젤을…….”

아흐리만의 손이 움직이며 아스모데우스를 위로 들어올렸다.

팔에 얽혀 있던 넝쿨들이 우지직 끊어져나갔다.

마치 아스모데우스의 힘은 전혀 영향이 없다는 것처럼.

“뭐지?”

아스모데우스는 크게 당황했다.

아흐리만은 대단한 신격과 마력을 지녔지만, 분명 아스모데우스보다는 낮은 신격을 지녔다.

그러니 자신의 힘에 얌전히 굴복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흐리만은 손에 쥔 아스모데우스를 천천히 자신의 입에 가져갔다.

‘위험하다.’

본능적으로 아스모데우스는 이 상황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오만하지만 결코 무모한 성격은 아니었다.

위험하다고 판단을 내리자마자 빼앗았던 에단의 몸에서 자신의 영혼을 빼내려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마치 혼이 넝쿨에 얽혀버린 것처럼.

“설마.”

묶인 건 놈이 아니라 자신이었나.

아스모데우스는 자신의 코앞까지 다가온 아흐리만의 입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마몬, 네놈은 이걸 노렸구나.”

만약 이곳에 있는 게 본체였다면 아흐리만도 이렇게 쉬이 아스모데우스를 속박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힘의 제약이 걸리는 인간의 육신에 들어가 있는 탓에 자신의 힘을 백분 활용하지 못한 탓이다.

물론, 감정이 격해질수록 큰 힘을 발휘하는 아스모데우스는 보다 강한 정신력을 지닌 악마였고, 그것을 바탕으로 아흐리만을 굴복시킬 생각이었다.

허나, 그가 착각했던 건 아흐리만은 강한 정신력이 아닌 거대한 감정과 정신이 응집된 사악의 본질 그 자체였다는 점이다.

으지직.

아흐리만은 아스모데우스를 한입에 집어삼켰다.

7대 악마라는 건 아흐리만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

기이한 괴성이 녀석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거대한 거인의 육신은, 점차 공중에 떠올랐고.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던 팔과 다리는 놈의 몸통으로 구겨지며 거대한 구(球)의 형태를 이루었다.

검은 구술과도 같은 모습이었지만, 흘러나오는 신격과 마력이 표면에서 불타올라 검은 태양과도 같은 형상이 되었다.

“……조용해졌는데요?”

“소화를 시키고 있는 거야. 아스모데우스를 집어삼켰으니 완전히 소화시켜 자신의 양분으로 삼으려는 거지.”

“그럼 지금 공격하면…….”

“소용없어. 지금 공격하면 바로 깨어날 뿐이야. 그러면 지금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죽겠지.”

완전해지기 전에 공격하는 편이 승산은 높았지만, 그럼 피해가 너무 컸다.

우선 저것이 소화시키는 동안 이 근방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대피시켜야만 했다.

“이거 조금 난감하게 됐네, 그렇지?”

지수를 안고 지상으로 내려오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아자젤이 말을 걸어왔다.

그녀의 뒤에는 신자운과 크리스와 닮은 여성이 있었다.

‘크리스의 동생이 저 여자인가?’

쌍둥이라고 했으니 아마 맞을 것 같았다.

“언제쯤 깨어날 거 같아?”

“앞으로 네 시간, 아니 세 시간인 거 같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시리스라고 했나? 너도 색욕의 악마의 계약자겠지?”

“맞아요.”

“그렇다면 스킬을 사용해서 이 근방에 있는 사람들을 최대한 멀리 대피시켜.”

그렇게 말하며 시리스를 바라보자, 그녀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색욕의 악마의 계약자인 크리스와 시리스를 이용한다면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저게 다른 곳으로 벗어나지 못하게 최대한 붙잡아줬으면 좋겠어.”

“그건 어렵지 않지만……. 그렇게 해서 처리할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이 있나?”

“일반적으론 무리지.”

이전이라면 1회차처럼 저것이 자연소멸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플레이어가 쓰러트리기엔 터무니없는 적이었으니까.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