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179화 (179/332)

# 179

179. 만들어진 신(1)

조로아스터교의 인물들은 마틴의 눈치를 살폈다.

상대적으로 전투력이 떨어지는 그들로선 당연한 일이다.

“먼저 씨앗을 보여라.”

“그대가 먼저 방법을 말해준다면, 우리도 씨앗을 보여주겠소.”

조로아스터교 주교의 말에 마틴은 피식 웃었다.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우리는 동등하지 않아.”

“그게 무슨!!”

“딱 보니까 무척 불안한 마력이 새어 나오고 있어. 얼마 안 남았지?”

“…….”

마틴의 말에 조로아스터교의 인물들을 말을 잃었다.

그의 말처럼 씨앗을 내버려두면 큰 문제가 발생할 게 분명했다.

그러니 조로아스터교는 그 전에 이 씨앗을 자신들의 힘으로 컨트롤하든지 다시 봉인할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다만 씨앗을 조종할 수만 있다면 세계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 테니, 후자 쪽을 바라고 있는 것 같았다.

“저, 정말 당신이라면 이것을 다룰 수 있나?”

“그건 내 악마님만이 알겠지. 악마님의 말로는 가능하다고 했다.”

탐욕의 악마는 마계에서 가장 주술과 마법에 밝았다.

특히 정신계열에선 누구도 따라올 자가 없었다.

“으음.”

신음을 삼킨 조로아스터교의 인물들은 대주교의 결단을 기다렸다.

“알겠네.”

대주교는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는 천천히 일어나 뒤에 서있는 다른 사제들에게 말했다.

“관을 가져 오거라.”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른 사제들이 움직였다.

그들은 창고 밖으로 나갔고, 잠시 후, 하나의 관을 밀고 들어왔다.

그것을 본 마틴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이것이…….”

주교는 마음에 걸리는 눈치였지만, 그는 철저하게 을의 입장이었다.

마틴은 포기한다고 해도 큰 리스크를 지니지 않았지만, 그들은 씨앗을 처리하지 못할 시 파멸이다. 심지어 포기할 수도 없었다.

씨앗은 조로아스터교에 남아 있는 유일한 유물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덜컹.

“호오.”

마틴의 눈이 관에 고정됐다.

관에는 일전에 내가 보았던 유해가 들어있었다.

시간이 그다지 흐르지 않았음에도 그때 보았을 때와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마력의 농도가 더 짙어졌네요.”

아무래도 지수도 느낀 모양이었다.

마틴은 관 내부를 보며 고개를 연신 주억거렸다.

“진품이군. 너희들이 바라는 건 이것을 다시 봉인하거나, 이것을 다룰 수 있게 해달라는 거겠지?”

“그렇소.”

“내가 받을 수 있는 건 뭐지?”

조로아스터교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만들어진 신만 있다면 조로아스터교는 세계를 손에 넣게 될 것이요. 온 인류가 조로아스터교를 찬양하게 될 테지. 그대는 그런 조로아스터교를 등에 업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요.”

“과연.”

마틴은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금은 아무것도 줄 게 없다는 뜻이군.”

“돈…… 이나 포인트라면 당장이라도 줄 수 있소.”

“너희들이 가진 건 나도 있다. 그것도 더 많이.”

대주교는 할 말이 없어진 모양이다.

그야 사실이었으니까.

아무래도 상황이 이러니 대주교의 안색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마틴이 자신의 요구를 거절하리라 생각한 모양이다.

“만약 내가 이것을 정상적으로 부활시킨다면 그것을 통제할 수단이 있나?”

“조로아스터교의 경전에는 만들어진 신을 움직이는 법이 나와 있소. 단지, 그것에 족쇄를 채우는 법만 유실되었을 뿐이요.”

“그래, 그래. 알겠다.”

마틴은 턱을 검지로 쓸었다.

그는 웃고 있었지만 조금 생각이 잠긴 모습이었다.

“저자가 과연 조로아스교의 말처럼 신에게 족쇄를 채울 수 있을까요?”

“그건 저놈의 말처럼 악마가 알고 있을 거야. 탐욕의 악마라면 확실히 가능할 일이긴 해.”

마틴의 말에 이상한 구석은 없었다.

도리어 조로아스터교가 뻔뻔하게 보일 정도였다.

“오빠는 봉인 시킬 수 없어요?”

“못해, 저건 현재 죽은 상태니까. 죽은 상대는 꿈을 꿀 수 없지.”

“그렇다면 깨어난다면 손을 쓸 수 있다는 거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건 그다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이다.

내가 굳이 마틴을 막지 않고 지켜보는 것도, 그가 저것을 봉인시키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놈이 노리는 건 저것을 빼앗아 악마의 영혼을 넣어 신위를 가진 존재를 이 세계에 불러들이는 일일 거야.’

여태까지 했던 행동을 생각하면 그것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유해의 쓰임세란 그다지 많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족쇄가 채워진 유해는 조로아스터교의 주술에 의해서만 조종된다고 하니 그가 저것에 족쇄를 필요는 없었다. 고로 그대로 봉인하려 할 게 분명했다.

얻을 수 없다면 묻어버리는 게 제일이다.

“알겠다. 수락하지.”

하지만 세한의 생각과 달리 마틴은 흔쾌히 조로아스터교의 말을 수락했다.

‘혹시 탐욕의 악마라면 족쇄를 채우고도 유해를 빼앗아 올 수 있는 건가?’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런 선택을 할 수 없었다.

그건 그다지 바라는 일이 아니었기에 나는 고민했다.

이대로 그들을 덮쳐 유해를 빼앗을지, 아니면 지켜볼지.

빼앗아도 문제다.

씨앗은 어차피 시간이 지르면 자연스럽게 폭발하며 신을 일으켜 세울 것이다.

허나 내게는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이드라조차 무리일 것이다.

현재 이드라가 발휘할 수 있는 힘은 내가 모두 알고 있으니 분명하다.

‘우선 본거지로 저것을 가져가려 할 테지. 그동안 고민을 해봐야겠군.’

유해를 자신의 쪽에 두거나, 혹은 숨기려는 걸 수도 있다.

나는 상황을 지켜보며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처할 준비를 했다.

“오, 오오! 그렇다면 그것에 족쇄를 채우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 알 수 있겠소? 우리는 한시가 급하오.”

“마음이 급하군, 뭐 이해해. 하지만 그 전에 계약이 성립됐다는 의미로 악수 한번 하는 건 어떤가?”

“악수? 음, 알겠소.”

대주교는 가볍게 내민 마틴의 손을 천천히 쥐었다.

마틴은 그런 대주교의 손을 꾹 잡고 몇 번 흔든 뒤 놓았다.

그리곤 한번 심호흡을 한 뒤, 말을 이었다.

“저것에 족쇄를 채우는 일은 지금 당장이라도 할 수 있다. 원한다면 바로 해줄 수 있는데, 어때?”

지금 바로?

녀석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몸을 경직시켰다.

그럴 리가 없다.

아무리 탐욕의 악마라고 해도 그건 이 자리에서 바로 조치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는 건 이놈이 노리는 건……!

내가 깨달았을 때, 녀석의 손은 이미 씨앗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난 그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녀석이 유해에 손을 댔다간 대참사가 일어날 게 분명했다.

딱!

나는 숨어 있던 장소에서 가볍게 손을 튕겼다.

허공에 검은 공간이 열리며 관을 향해 다가가던 마틴의 등에 날아가 꽂혔다.

“헉!!”

조로아스터교의 인물들은 갑자기 날아온 검에 마틴의 등에 꽂히자 헛바람을 들이키며 경악했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에 멈추지 않고 열린 공간에서 몇 자루의 검을 더 사출해 마틴의 몸에 꽂고 양팔을 잘라냈다.

“이, 이게 대체…….”

갑자기 일어난 참사에 조로아스터교의 인물들이 몸을 떨었다.

나는 마틴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것을 확인한 후, 숨어 있던 장소에서 나왔다.

마틴의 뒤에 있던 악마의 하수인들은 어째서인지 마틴이 죽기 무섭게 자리에 쓰러져 움직이지 못했다.

마치 건전지가 다 된 장난감 같았다.

‘마틴에게 조종당하고 있었나.’

정신계열 마법에 능통한 그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마틴의 시신을 살피던 조로아스터교의 인물들은 그제야 나를 발견하곤 소리쳤다.

“다, 당신이 어떻게 여기에!”

“애초에 마틴과 거래하라고 한 게 나였다는 걸 잊었나?”

“그, 그건 그렇지만 설마 쫓아올 줄은 몰랐소.”

하물며 이렇게 마틴을 죽일 줄은 더더욱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왜 그런 거요! 이자를 죽이면 씨앗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잖소!”

“당신들의 야망은 아주 잘 들었다.”

내 말에 그들은 크게 움찔했다.

방금 대화는 그다지 건전한 내용이 아니었으니 찔릴 수밖에 없지.

“너희들도 이 죽은 놈과 크게 다르지 않아. 단지 내가 이놈을 죽인 건 놈이 저것에 족쇄를 걸려는 게 아니라 폭주시키려 했기 때문이다.”

“……허?”

그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아무리 7대 악마라고 해도 저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족쇄를 채울 수는 없다. 상당한 시일이 걸리며 큰 힘을 요구하지. 그런데 이 자리에서 바로 저것에게 족쇄를 채운다? 말도 안 돼. 그렇다면 지금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서, 설마.”

“그 설마야. 놈은 저것을 폭주시켜 신을 깨우려고 한 거다.”

대주교는 말이 없었다.

그는 관에 있는 유해를 보며 작은 한숨을 쉬었다.

“그렇다면 이걸 어떡하면 좋소.”

그는 망연한 얼굴로 마력이 짙게 흘러나오는 유해에 손을 뻗었다.

“내가 그것이 터지기 전에 방법을 찾겠다.”

“터지기 전에?”

“그래.”

대주교는 고개를 숙였다.

“……그건 무리요.”

“왜지?”

그는 몸을 떨었다.

처음에는 씨앗이 발아하며 모두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몸을 떠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조금 달랐다.

저건, 웃을 때 나타나는 떨림이다.

“지금 터질 거니까.”

“……!!”

고개를 든 대주교의 입에는 짙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 미소는 마틴의 것과 무척 닮아 있었다.

‘탐욕의 악마의 전승스킬인가?’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나는 마계 무투제…… 그러니까 마계 대연회에서 7대 악마를 본 적이 있다.

아자젤과는 직접 대화를 해봤었고, ‘폭식’과는 싸운 적도 있다.

하지만 모든 악마의 능력을 아는 건 아니다.

내가 아는 7대 악마의 능력은 오직 폭식뿐이다. 그 외에는 제대로 아는 게 없었다.

심지어 아자젤조차도.

정신 쪽에 능통하다는 대략적인 정보만 알뿐이다.

설마 저런 것도 가능할 줄이야.

‘하지만 정신계 마법이나 스킬이 발동하는 건 느끼지 못했는데?’

마법을 사용하거나, 스킬을 사용하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어느 쪽이나 마력의 유동이 발생하니 내 눈을 속일 수 있을 리 없었다.

‘잠깐.’

생각해 보면 단 한 번 기회가 있었다.

마틴이 대주교에게 의뢰를 승낙한 직후, 악수를 하던 순간.

둘의 손이 겹쳐졌던 그때라면 가능했다.

“알아차렸나 보네. 악수를 겹쳤을 때 내 의식을 옮겼지. 그다음부턴 대주교를 연기했고, 내 몸은 꼭두각시처럼 내가 조종하는 대로 말을 내뱉었을 뿐이야.”

“대, 대주교님?”

주변 사제들은 갑작스런 대주교의 변화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미 대주교의 손은 유해에 닿아 있었다.

허수공간을 열고 공격하더라도 나는 마틴을 막을 수 없었다.

“그것이 깨어나면 너도 무사하지 못해.”

“알고 있다. 알고서 하는 짓이야.”

마틴은 낄낄 웃었다.

아니, 그건 마틴이라고 할 수 없었다.

기이하게 빛나는 주교의 눈동자는 선홍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마몬, 본인이로구나.”

“정답이다, 까마귀. 마틴은 내가 조종하는 꼭두각시일 뿐이지. 이렇게 접촉하는 것만으로 실을 잇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야.”

“처음부터 이걸 노린 건가?”

“오, 아니야. 나는 중간부터 마틴의 몸을 빼앗았어. 굳이 말하자면 이 종교쟁이들이 자신들의 술법으로만 조종한다고 했을 때지.”

그는 태연히 말했다. 나는 그때 마틴이 뒤바뀌는 걸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야 당연해. 유해에서 이런 강한 신격과 마력이 흘러나오는데, 눈치 채는 게 이상하지 않나? 아무리 그대가 대단해도 무리야. 뭣보다 다른 장소에서는 아스모데우스와 아자젤이 싸우고 있으니, 모를 수밖에.”

“당신의 계약자도 무사하지 못할 거다.”

“계약자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어. 하지만 이건 지금 당장이 아니면 이용할 수 없지. 마틴은 제법 뛰어난 계약자였으니 나로서도 정말 슬프군. 야망도 있는 젊은이였는데 말이야.”

그의 말에 나는 그가 노리는 바가 무엇인지 생각했다.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다.

이곳에서 저것이 터질시 발생할 수 있는 이점은 하나뿐이다.

“네 위에 있는 것들을 처리하려는 거군.”

“음, 거의 비슷해.”

그는 그렇게 말하며 유해에 가져다댄 손가락에 마력을 집중했다.

“아무튼 계속 떠들 시간은 없으니 질문은 여기까지 받도록 하마. 그럼 다음에 보자고.”

싱긋 웃는 그의 미소에 나는 지수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황급히 날개를 펼치고 날아올랐다.

전속력으로 도망치지 않는다면 아무리 나와 지수라도 목숨이 위험했다.

“살아남는다면 말이야.”

마틴의 몸에 들어가 힘에 제약에 걸린 그가 어떻게 유해를 폭주시킬 수 있는가.

그건 굳이 묻지 않았다.

거센 불꽃은 아주 작은 불씨만으로도 만들 수 있는 법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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