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178화 (178/332)

# 178

178. 가치 있는 자(2)

천장이 부서지며 뿌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자운은 그런 연기를 유심히 응시했다. 선명한 기척이 그곳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또한 흘러나오는 불길한 마력에 피부가 따끔거렸다.

“그자예요.”

“에단말인가?”

태연히 답하는 자운의 말에 시리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알고 있었나요?”

“계속 지켜보고 있었으니 알 수밖에 없지.”

단지 자운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다.

시리스도 자운의 대답에서 그것을 유추했는지 조용히 입을 닫았다.

지금 그런 대화를 나누는 것보단 연기 속에서 걸어 나오는 자에게 집중해야만 했으니까.

“혹시 몰라서 왔더니만, 쥐새끼가 있었을 줄은 몰랐군.”

분노의 악마와 계약한 남자.

에단, 그의 이름과 힘은 그동안 들은 정보로 대략 알 수 있었다.

“보아하니 네가 그 ‘나태’의 계약자로군. 나의 악마님께서 당장 네놈을 죽이라고 하신다.”

그가 손을 흔들자, 뿌연 연기가 단번에 갈라졌다.

놀라운 수준의 마력운용이다.

신자운은 그 간단한 동작으로 그가 마력을 다루는 것에 대단한 재능을 지녔다는 걸 깨달았다.

저것은 단순히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조심해요. 저자의 실력은 거지같은 성격과 달리 굉장해요.”

거지같은 성격이라니.

신자운은 저도 모르게 웃을 뻔했다.

차분한 인상을 가진 그녀의 입에서 나온 것치곤 심히 어울리지 않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겁을 상실했나 보구나. 죽고 싶은 거냐?”

에단도 그 말을 들었는지 비웃고 있던 입꼬리가 내려갔다.

“어차피 죽일 생각이었잖아요?”

“너…….”

“어떻게 해도 죽는다면 할 말은 하고 죽을래요.”

차분한 말로 쏘아붙이는 그녀의 말에 신자운은 내심 감탄했다.

말주변이 그다지 없는 그로선 그런 시리스가 대단해 보였다.

“그렇다면 소원대로 죽여주마.”

고오오.

이를 아득 깨물며 말한 에단의 몸에서 마력이 넘실거리며 피어올랐다.

넘실거리는 마력은 적어도 신자운의 몇 배는 되었다.

비탄의 가면으로 인해 마력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그의 몇 배이니 얼마나 막대한 마력을 지녔는지 알 수 있었다.

그건 분명히 일반적인 마력양이 아니었다.

아무리 강한 악마와 계약했다고 해도 그는 플레이어.

플레이어가 현재 지닐 수 있는 마력 수치는 이렇게 높지 않았다.

‘이것이 분노의 악마가 그에게 준 전승스킬.’

아자젤의 말에 따르면, 일시적으로 본래 가진 마력을 몇 배로 증폭시킬 수 있다.

그것도 단순한 마력 증폭이 아닌, 그의 감정기복에 따라 그 양이 달라진다. 그의 분노가 커지면 커질수록 증가하는 마력의 양도 많아진다.

어찌보면 신자운의 얼굴에 붙어 있는 비탄의 가면과 동일한 효과다.

하지만 네비로스의 유물인 비탄의 가면로는 분노의 악마가 지닌 전승스킬을 능가할 수 없었다.

말하자면 하위호환이라는 뜻이다.

“하찮은 놈들, 죽어라.”

그가 가볍게 손을 흔들자, 허공에 바람이 몰아치며 날카로운 칼날이 되었다.

에단은 아주 우수한 공격형 마법사였다.

모든 원소를 다룰 수 있는 그에게 막대한 마력은 무한한 탄환과도 같았다.

쉬이익!!

“꺄악!!”

신자운은 급히 시리스의 허리를 잡아당겨 바람의 칼날을 피했다.

“저는 두고 싸우세요!”

“그러기엔 너를 노리고 있다.”

“비, 비겁해!”

만약 신자운이 데리고 피하지 않았다면 시리스는 단번에 두 동강이 났을 것이다.

에단은 신자운이 결코 시리스를 두고 피하지 않으리라는 걸 단박에 깨달았고, 그것을 노려 공격한 것이다.

“큭큭큭! 둔하고 어리석은 놈이로구나.”

뜨거운 불길이 신자운의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크기는 그다지 크지 않은 화염구였지만, 그것이 날아오는 속도는 보통의 화염구의 몇 배였다.

일반적인 화염구 스킬을 자신의 마력통제로 개량한 것이다.

‘진짜 거지같은 성격 주제에 실력만큼은…….’

시리스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에단의 마법 기술은 정말 놀라울 정도였다.

이 정도로 대단한 마력 컨트롤은 본 적이 없었다.

단순히 그가 분노의 악마와 계약한 자라서가 아니다. 이건 순전히 그가 가진 재능이었다.

반면 신자운은 모두 신체에 마력을 회전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에단에 비하면 그의 마력 컨트롤은 보잘 것 없었다.

신자운도 타 플레이어에 비하면 대단한 수준이었지만, 그것을 넘을 수 없는 재능의 격차가 분명히 존재했다.

기본적인 능력치도 에단과 신자운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으니, 사실상 둘의 싸움은 누가 더 마력을 잘 다루냐의 싸움이다.

시리스는 이 승부가 그다지 오래가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물론, 좋지 않은 방향으로.

“하! 이런 녀석이 나태의 악마와 계약한 놈이라니 어이가 없네.”

상대는 자신의 마법에 그저 피하기만 할 뿐이다.

설령 자신이 시리스를 공격하지 않았다해도 상황은 크게 다를 수 없었다.

“재능도 없고, 특별할 것도 없다. 너 같이 가치 없는 놈을 왜 ‘나태’가 계약자로 삼았는지 모르겠어.”

나태는 7대 악마 중 3위.

분노의 악마는 4위다.

순위만 따지면 순위는 단 한 계단 차이였지만 둘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했다.

3위에서 1위까지의 악마는 그 이하의 악마와는 ‘틀’ 자체가 달랐다.

에단은 그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언제나 자신의 악마가 떠들던 걸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그것이 그는 화가 났다.

자신과 계약한 ‘분노’를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나태의 계약자가 이토록 재능 없고 무능한 존재라는 건 억울한 일이다.

「놀지 말고 당장 죽여라.」

분노의 악마, 아스모데우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어서 신자운을 죽이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하지만 에단은 간단히 죽이고 싶지 않았다.

저 시리스라는 년이 지껄인 말도 있었고, 그는 자신보다 약한 자를 가지고 놀다 죽이는 것을 좋아했다.

“오.”

신자운은 날아오는 다섯 개의 불덩이를 피한 후, 시리스를 근처 장애물에 숨기며 에단을 향해 덤벼들었다.

순식간에 뻗어진 주먹에 에단은 작게 감탄했다.

그래도 제법 재주는 있군, 그렇게 생각하며 가볍게 마력장벽을 쳐서 막았다.

쿵!!

생각보다 마력장벽을 두드리는 힘이 강했다.

썩어도 나태의 계약자인 모양이다.

“제법…….”

제법이구나, 라고 여유 있게 말하려던 에단은 코앞까지 다가온 주먹에 눈을 크게 떴다.

‘어느새?!’

방금 마력장벽을 막았는데 이렇게 빨리 다음 공격이 들어온다는 말인가?

그가 지닌 신체능력과 마력운용만으로는 결코 이런 속도가 나올 수 없었다.

“칫.”

그렇다 해도 자신이 마력을 움직이는 게 더 빨랐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당황했지만, 그는 몸을 뒤로 빼며 왼손을 통해 강한 바람을 일으켰다.

덕분에 덤벼들던 신자운의 몸이 크게 휘청거리며 자세가 무너졌다.

“멍청한 놈!!”

잠시 당황했던 스스로를 감추며 에단은 전신에 마력을 빠르게 순환시켰다.

마력은 그의 신체능력을 강화시켰고, 그가 지닌 능력치를 강화시키며 단숨에 신자운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그는 마법도 뛰어났지만, 접근전도 대단히 뛰어났기에 그의 주먹이 빗나가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신자운의 속도로는 결코 피할 수 없는 일격이었으니까.

우득!

어?

에단은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시야가 빙글 돌아가며, 몸이 붕 떠올랐다.

‘나, 맞은 건가?’

자신이 신자운의 주먹에 얻어맞았다는 걸 깨달은 건 수 미터를 날아가 몇 개의 화물을 부수며 처박혔을 때였다.

“커억! 대, 대체…….”

마치 귀신에 홀린 기분이다.

신자운은 아주 가볍게 그의 공격을 머리를 흔들어 피했다.

볼을 스치기는 했지만 단지 그뿐이다. 동시에 신자운의 오른팔은 빠르게 휘둘러져 에단의 얼굴을 강타했다.

그의 장기인 카운터였지만, 에단을 그것을 알 리가 없었다.

“제, 제길!”

머리를 제대로 얻어맞은 탓에 몸을 가누기 힘들었다.

그뿐인가? 마법은 마력을 다뤄야 하기에 뇌의 연산이 필요하다.

뇌가 크게 흔들린 에단은 마법조차도 사용할 수 없었다.

그 틈을 신자운이 놓칠 리가 없었다.

발을 단 두 번 굴러 에단이 있는 곳까지 접근한 그는 에단의 머리를 주먹으로 강타했다.

한 방, 두 방.

연속해서 주먹을 얻어맞은 에단의 의식은 단번에 흐려졌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접근전 실력은 자신보다 훨씬 우위라는 것을.

마법이 아니라도 그를 가볍게 이기리라고 생각한 건 자신의 착각이었다는 걸.

‘역시 계약자라 몸이 튼튼해.’

신자운은 의식을 잃기 직전인 에단을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이 상태로 완벽히 끝을 내야 했다.

주먹에 마력을 모으고 크게 심호흡을 들이켰다.

단 한 방에 온 힘을 실어 에단의 머리를 파괴하기 위해서다.

쉬이이익!!

바람을 가르는 파공음과 함께 자운의 검은 주먹이 에단의 머리를 향해 휘둘러졌다.

“멍청한 새끼.”

에단의 입에서 짧은 욕설이 튀어나왔다.

“……!”

그것을 듣는 순간 신자운은 에단을 향해 내리치던 주먹을 회수하며 크게 뒤로 뛰었다.

시리스가 숨어있는 장소까지 크게 물러난 그는 부서진 화물에 처박혀 있는 에단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왜 끝장을 내지 않으셨죠?”

시리스에게는 놀라운 상황의 연속이었다.

설마 분노의 계약자를 이렇게 쉽게 쓰러트리리라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분명 그의 마력은 에단에 비해 보잘 것 없었다.

능력치도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단번에 에단을 쓰러트렸다.

그리고 결정타를 날리기 직전에 물러났다.

시리스로선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신자운은 그런 시리스의 의문에 대답하지 않은 채, 에단을 조용히 응시했다.

“무능하지만 감은 대단한 녀석이군. 하긴, 약자라면 본디 감이 좋은 법이지.”

에단의 몸이 삐걱삐걱 움직였다.

평범한 푸른색 눈이던 에단의 눈이 점차 붉은빛이 섞인 금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마치 황혼의 하늘과도 같은 색이다.

저것과 비슷한 걸 신자운은 이미 한번 본 적 있었다.

정확히는 한번 겪어봤다.

“피해라.”

신자운은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과연 그렇게 말한다 해도 시리스가 살아서 도망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저건, 분노의 악마 아스모데우스 본인이었기 때문이다.

“쯧.”

그는 짧게 혀를 차며 천천히 손을 들어올렸다.

마력은 에단과 크게 다를 건 없었지만 모든 것이 달랐다.

죽는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살기가 창고 내부를 가득 채웠다.

시리스도 그 살기를 느끼며 점차 몸을 떨기 시작했다.

그때.

“정말, 우스워.”

또각, 또각, 하얀 구두를 신은 소녀가 살랑이는 나비처럼 신자운의 앞에 섰다.

하얀 머리카락에 화려한 고딕 프릴 드레스.

거기에 어울리는 새하얀 양산을 쓴, 그림 같이 아름다운 소녀.

탁.

양산을 접은 소녀의 입에는 옅은 미소가 걸려있었다.

하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이게 네가 말하던 계약자간의 싸움이니?”

나태의 악마, 아자젤.

그녀는 지금 조금 화가 난 상태였다.

***

“혼자 보내도 괜찮을까요?”

아까 아자젤이 사라졌던 방향을 보며 지수가 중얼거렸다.

묘한 일이지만, 지수는 아자젤에 조금 관심이 있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돌멩이처럼 보더니 아자젤과 며칠 함께하고는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누구를? 아자젤을?”

“네, 아자젤은 지금 평범한 인간과 크게 다를 것 없지 않나요?”

아자젤의 상대를 걱정하는 건가 싶었지만 아무래도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확실히 지수의 말처럼 아자젤이 발휘할 수 있는 힘은 일반적인 플레이어 수준에 불과했다.

그나마 신자운이 강해진 탓에 사용할 수 있는 한도가 약간 더 늘지 않았을까 추측할 뿐이다.

“넌 아자젤과 알데바란이 싸우던 걸 잊었냐?”

“아.”

“걔는 능력치 따위는 크게 문제가 되지도 않아. 그런 존재야.”

지수는 그제야 알데바란의 손에서 한강의 플레이어들을 지키던 존재가 누구인지 떠올랐다.

분명 아자젤은 알데바란에 비하면 먼지와도 같은 능력치였음에도 정면에서 싸웠다.

비록 모르간의 도움도 있긴 했지만, 그것만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아자젤을 걱정하는 건 연예인 걱정보다도 쓸데없는 일이지. 우리는 저거나 보면 돼.”

현재 나와 지수가 있는 장소는 조로아스터교와 마틴이 거래하는 곳이었다.

‘저놈이로군.’

조로아스터교의 맞은편에는 안경을 쓴 남자가 있었다.

탐욕의 악마의 계약자 마틴.

그는 뒤에 자신의 하수인을 거느리고 거만하게 앉아 있었다.

‘우선 그의 말을 듣고 어떻게 할지 결정해야겠어.’

대략적인 목적은 짐작이 간다.

추측이지만 유해의 몸을 이용해 자신의 혼을 강림시키려는 게 아닌가 추측 중이다.

단순히 유해가 폭주하는 게 위험한가, 아니면 7대 악마를 강림시키는 게 위험한가.

그건 솔직히 모른다. 보통이라면 후자지만, 과연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으니까.

‘분명 1회차에서 그때 느꼈던 힘을 생각하면 7대 악마가 저것을 집어삼키는 건 아마 힘들어.’

지구 전역에 울렸을 정도의 힘이다.

아무리 7대 악마라도 저것을 온전히 삼키리라고 생각하기 힘들었다.

단순히 유해에서 느껴지는 힘은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내 기억으론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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