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172화 (172/332)

# 172

172. 점핑 이벤트(2)

샤이닝 트라페조헤드론을 제대로 이용하기 위해 나는 게임 운영팀과 회의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회의에는 길드원들이 아닌, 오직 게임 운영에 참여하는 일반 사원들과 이드라만이 참석했다.

그들은 상석에 앉은 이드라를 쭈뼛거리는 눈으로 보며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다들 어쩐지 말이 없으시군요.”

“아무래도 여신님이 있는 장소이니 다들 조심하는 모양입니다.”

내 말에 답한 건 그나마 우리와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눴던 김경수 팀장이었다.

영 안색이 좋지 않은 다른 사원들과 달리 김경수 팀장은 제법 여유가 있어 보였다.

“걱정 말거라. 나는 이곳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앉아 있을 뿐이니까.”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었지만 지금은 내버려두기로 했다.

최근 샤이닝 트라페조헤드론을 다루느라 피곤하겠지. 회의 정도는 쉴 수 있도록 해주자.

“흠흠, 그러면 알겠습니다.”

김경수 팀장은 작게 헛기침을 한 후 말을 이었다.

“현재, 게임은 크게 문제없이 순항 중이며 매출도 꾸준히 나오는 편입니다. 이드라 님이 알려주신 게임 순위에 따르면 현재 저희 게임의 순위는 3위로,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나쁘지 않군요.”

“예, 하지만 문제가 없는 건 아닙니다. 현재 새롭게 유입된 신들의 경우 적응을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유입된 신들도 이탈될 확률이 늘어난다.

그건 그다지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갭이 있기 때문이겠지.’

모든 게임이 그렇다.

고인물이 판을 치는 게임에 신규 유저가 들어오기란 힘든 법이다.

특히 최근 우리가 운영을 시작한 이후, 어느 정도 이름이 있던 플레이어나 길드들은 앞으로 빠르게 치고나가기 시작했다.

시스템의 억제도 줄어들었고, 플레이어들을 억제하는 퀘스트들도 사라졌으니 그럴 수밖에.

조심할 점은 아직 필드에 남아있는 센티넬 정도밖에 없었다.

“그 차이를 줄이는 게 중요하겠군요.”

“예, 하지만 마땅한 방법이…….”

김경수 팀장은 심히 난감한 얼굴이었다.

그건 다른 사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점핑 퀘스트 같은 건 어떻습니까?”

점핑 퀘스트, 온라인 게임에서 중반이나 후반에 새로운 신규 유저들을 모으기 위해 실행하는 대표적인 이벤트다.

신규 유저들이 어려워할 만한 벽이나, 기존에 어렵게 얻었던 아이템을 쉽게 얻게 해줘 게임에 대한 재미를 붙여주는 이벤트다.

“확실히 좋은 의견입니다. 저희도 점핑 퀘스트를 생각했지만, 솔직히 불가능하다고 판단을 내렸습니다.”

“불가능하다?”

“예, 점핑 퀘스트를 할려면 생각보다 건드리는 게 많습니다. 우선 어떤 식으로 신규 유저에게 적절한 보상을 줄 것인지, 그리고 기존 유저들이 양산된 점핑 플레이어들에게 탈력감을 느끼지 않도록 적절한 보상을 줘야만 합니다.”

점핑 퀘스트로 순식간에 성장하게 되어 기존의 유저를 따라잡게 된다면, 기존에 플레이 하던 유저는 그저 허망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사장님도 알다시피 이 게임은 저희가 건드릴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아, 솔직히 실행하기 어렵다고 사료됩니다.”

“그렇군요.”

김경수 팀장의 말에 주변 사원들의 얼굴도 그리 밝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기존에 자신들이 관리하던 게임과 달리, 이 게임은 안 되는 게 너무 많다.

제한이 수없이 걸려있으니 운영팀에서 이렇게 하면 좋겠다, 라고 결론을 내려도 할 수 있는 건 극히 적다.

그러니 점핑 이벤트 같은 대규모 이벤트는 불가능하리라 판단한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

적어도 내가 중원에서 귀환하기 전이라면 분명 맞는 말이었다.

“그럼 어떻게 할지 자세하게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군요.”

“예?”

김경수 팀장은 크게 당황한 얼굴로 이드라의 눈치를 살폈다.

“이미 이전에 이드라 님께 말씀드린 내용입니다.”

“이전이라면 언제죠?”

“한 2주 전쯤…….”

그때라면 아직 내가 돌아오기 전이었다.

“괜찮습니다. 다시 말해보세요. 이전보다 저희가 할 수 있는 게 훨씬 많아졌거든요.”

“저, 정말입니까?”

“예, 어떤 눈치 없는 신 덕에 말입니다.”

만약 니알라토텝이 진천백에게 샤이닝 트라페조헤드론을 주지 않았다면, 아무리 나라도 불가능했을 일이다.

어쩌면 올림포스에 있는 린을 데려와야 했을지도 모르지.

그런 점에서 나는 니알라토텝에게 한없이 고마웠다.

‘점핑 이벤트는 반드시 필요해.’

단순히 신규 유저를 잡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샤이닝 트라페조헤드론이 우리 손에 있는 이상, 니알라토텝이 어떤 수를 쓸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그곳’과 관련이 있을 확률이 높았다.

태평양에 가라앉아 있는 고대도시, 르뤼에와.

***

르뤼에, 혹은 무 대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는 무 대륙 안에 르뤼에라는 도시가 있다는 말도 있다.

태평양 아래에 가라앚아 있는 그곳은 그곳만의 문명과 종족들이 존재했다.

그저 밖으로 나오지 않았을 뿐.

그들이 숭배하는 그레이트 올드원과 공생하며 살아가는 신대의 땅이다.

현재 지구에 남아 있는 유일무이한 신화적 지대라고 봐도 좋다.

문제는 이게 지구에게 있어 이점이 아니라는 점이다.

외우주의 주민들이 지구에 숨어 있었다는 이야기에 불과하니까.

그들은 인류에게 적대적이며, 일반적인 몬스터와 크게 다를 것도 없다.

거기다 그레이트 올드원 같은 건 인류적 재앙이다.

아우터갓만큼은 아니지만, 그레이트 올드원들은 하나하나가 상위의 신격을 지닌 존재들이었으니까.

‘1회차에서 내가 보았던 건 하나.’

해신(海神) 다곤.

녀석 하나가 아시아로 넘어와 날뛴 것만으로도 수없이 많은 플레이어들이 죽었다.

1회차에 르뤼에 떠올랐던 건 족히 5년 정도 이후였던 터라, 살아남은 플레이어의 수도 상당히 줄어 있는 상황이었다.

신들도 슬슬 떠나기 시작해 흔히 말하는 ‘망겜’의 징조가 보이던 시점.

르뤼에를 결정타로 인류는 멸망의 길을 착실하게 밟게 된다.

‘설마 다른 놈이 또 있지는 않았으면 한다만…….’

니알라토텝이 무슨 수를 쓰면 다른 그레이트 올드원이 등장할 확률도 있었다.

그러니 최악의 경우를 모두 생각해 둬야 하겠지.

똑똑.

방에 혼자 앉아 생각을 하고 있으니,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지수냐?”

“지수 언니는 잠깐 어디 간 거 같던데?”

지수가 아니라 민아였다.

최근 내가 부담스러워하는 걸 느꼈는지 지수도 조금 조심하는 눈치였다.

이전처럼 스토킹을 사용해서 쫓아다니거나, 내 방문 앞에서 서성거리는 걸 되도록 자제하는 눈치였다.

‘진작 좀 그렇게 하지.’

사실 나는 그런 것에는 무딘 성격인지라 크게 신경쓰지도 않았다.

그래도 지수가 신경 쓴다는 건 나쁜 게 아니지.

되도록 지수의 특성인 ‘착한 아이’가 더 열일을 해줬으면 좋겠지만.

“네가 나를 찾아오고, 어쩐 일이냐?”

“그게 만나고 싶다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민아의 얼굴에는 귀찮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혜미한테 연락이 왔거든. 그쪽에서 상담하고 싶다는 게 있다는 모양이야.”

“상담?”

혜미라면 민아의 친구다.

신자운이 보호해주는 악마의 계약자.

아자젤과 연관이 있으며 미래를 보는 소녀 민수아와 연관이 있는 그룹이다.

‘뭐야, 불안하게.’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민수아와 아자젤은 불안했다.

미래를 볼 수 있는 녀석이 나를 찾으면 십중팔구 안 좋은 일이었으니까.

“바로 간다고 전해줘.”

“알겠어. 나는 같이 안 가도 괜찮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쪽에서 특별히 민아를 부르지 않았다면 굳이 데려갈 필요는 없었다.

나는 곧바로 아자젤이 있는 인천 방향으로 날아갔다.

자주 장소를 옮겨다는 녀석들이었지만, 까마귀의 눈을 통해 지속적으로 감시를 하고 있는 터라 찾아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어, 엄마야!”

녀석들이 머무는 건물의 옥상 위에 내리서자, 마침 옥상에서 양치질을 하고 있던 소녀가 비명을 질렀다. 민아의 친구인 지선이다.

“아자젤은 어디에 있지?”

“아, 까, 까마귀 씨죠?”

“김세한이다.”

“네, 네! 알고 있어요. 아래층에서 자운 오빠와 수아가 기다릴 거예요.”

까마귀라는 호칭이 싫은 건 아니지만 어째 내 이름보다 자주 불리는 기분이다.

애초에 나는 까마귀자리를 넘겨받은 인간이지 정말 까마귀가 아니다.

신들이야 그러려니 하지만, 어째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도 나를 이름이 아닌 까마귀라고 부르는 경우가 잦았다.

“어머, 일찍 왔네. 까마귀.”

“그래.”

“하긴, 마녀님이 열심히 일하시는데 네가 뭔 할 일이 있겠니.”

아자젤은 그렇게 말하며 낄낄 웃었다.

뭐라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차마 할 수 없었다.

현재 점핑 이벤트는 샤이닝 트라페조헤드론을 이용하여 준비 중이라 내가 끼어들 여력이 없었다.

“어서 오세요. 세한 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유일하게 나를 공손하게 맞아준 건 민수아였다.

그녀는 정중하게 절을 올리며 나를 반겼다.

“아니, 왜 절을 해?”

“이젠 거의 신이시지 않나요? 아자젤 님이 그러시던데.”

“아니 격을 말하자면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민수아는 어쩐지 나를 보며 경외심이 깃든 눈으로 보았다.

원래부터 민수아는 나를 높이 치는 경향이 있었지만 중원에 다녀온 이후로는 그게 더 심해졌다.

거의 중상격의 신격을 얻긴 했지만, 그건 내가 스스로 올린 게 아니라 이미 있는 신격을 훔쳐서 내 것으로 만든 것에 가깝다.

카라스, 마마잭, 아카터스, 그리고 최근에는 진천백까지.

차근차근 신격을 흡수한 탓에 내 신격은 중상위급 신격에 이르렀다.

신격만 치면 알데바란과 동급이다.

물론, 신격에 비해 능력치는 한없이 떨어졌지만 말이다.

“아무튼 지금 뭔가 준비하고 계신 건 알고 있습니다.”

민수아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런 민수아의 뒤에는 언제 왔는지 신자운이 조용히 섰다.

‘이놈도 더 강해졌군.’

그래도 지수보다는 떨어진다. 대략 아서와 동급.

나쁜 건 아니지만 아자젤의 계약자에다가 특출한 포텐을 가진 녀석이니 좀 아쉽다.

“당장은 큰 문제가 없지만, 이벤트가 시작할 때쯤 문제가 터질 거예요.”

“왜지?”

“게임에 유입된 건 신만이 아니니까요.”

민수아의 말이 무슨뜻인지 나는 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악마로군.”

“네, 그것도 아주 강한 악마들입니다. 거기에 좀 성가신 게 꼬였어요.”

“7대 악마들인가?”

민수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분노와 탐욕, 어쩌면 색욕까지 함께하게 될지도 몰라요.”

뭐 이렇게 많이 넘어왔어?

‘그런데 색욕은 내가 죽이지 않았나?’

이벤트 퀘스트 당시 내가 죽였던 크리스 브라이트.

그녀가 분명 내 기억에 색욕의 계약자였다.

‘하긴 새로 구했을 수도 있지.’

황당한 마음에 아자젤이 바라보자, 그녀는 싱긋 웃었다.

“원래 악마들은 욕망에 충실하지. 재미난 게임판이 보이면 바로바로 끼어드는 편이야.”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녀석이 숨기고 있는 걸 알았다.

“분노와 탐욕, 모두 너랑 사이 안 좋은 악마들이잖아.”

“……어떻게 알았니?”

“하아, 됐다. 아마 알데바란과 네가 싸우는 모습을 보고 혹해서 온 걸 테지.”

“틀린 말은 아니네.”

“그럼 맞는 말인 거지.”

아자젤은 부드럽게 웃었지만 묘하게 뾰루퉁해진 기색이었다.

대충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아자젤의 말도 맞았지만, 그 세 악마들은 기본적으로 아자젤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현재 이 게임을 즐기고 있는 아자젤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거겠지.

어째서 나를 불러왔는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보호가 필요한 거군?”

“비슷해. 하지만 너에게도 나쁜 소리는 아니야. 네가 준비 중인 이벤트를 위해서도 녀석들은 막아두는 게 좋을 걸? 지금 그놈들 미국에서 귀찮은 녀석들과 접촉중이거든.”

“미국? 귀찮은 놈들이라면…… 잠깐.”

“어머, 이것만 듣고도 아는 거야?”

알다마다.

미국에 있는 녀석들 중 귀찮은 놈들이라면 딱 생각나는 족속이 있었으니까.

거기에 악마들이 접촉했다면 분명 확실하다.

“조로아스터교인가?”

“와우, 정답.”

아자젤은 진심으로 놀란 듯, 박수를 짝짝 쳤다.

“어떻게 알았어? 조로아스터교는 이슬람 쪽이라 미국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진 못할 텐데?”

“다 아는 법이 있지.”

1회차에 만나봤으니 당연하다.

그때는 자기네들끼리 싸우다 자멸했지만, 악마들이 관여되면 또 달라질지도 모른다.

그곳에는 악의 씨앗이 존재하니까.

“서둘러 가봐야겠군.”

“혼자?”

“아마도.”

지수가 쫓아올 수도 있지만 최근 나를 자신이 속박하려한다고 생각했던 탓에 한번은 넘어갈 수도 있다. 물론 지수의 마음에 따라 달라지니 확답은 할 수 없었다.

“그럼 나랑 우리 버러지도 같이 가도 되니?”

“버러지?”

“그래, 내 계약자 말이야.”

아자젤이 신자운의 허리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신자운은 영 못마땅한 얼굴이었지만 뭐라 반박하지는 않았다.

최근 이리저리 깨지기만 한 탓에 자신감이 많이 죽은 모양이다.

‘어쩐다.’

신자운이나 아자젤은 애초에 그다지 친한 사이도 아닌지라 혼자 가는 편이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이전에 나를 도운 것도 있었고, 아자젤은 워낙 강한 악마이니 친해져서 나쁠 건 없었다.

거기다.

“좋다. 대신 방해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걱정 마렴. 이번엔 나도 무료로 도와줄 테니.”

고풍스럽게 호호호, 거리며 웃는 아자젤의 생각이 뭔지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 미국에 있는 악마들, 아마 그들에게도 계약자가 있겠지.

그들과 신자운을 싸우게 만들 생각인 모양이다.

조로아스터교는 아자젤에게 그냥 덤이었다.

하기야 조로아스터교에 뭐가 있는지는 아자젤도 모를 테니 당연한 일이다.

‘솔직히 나도 잘 모르지만.’

1회차에서는 자멸했으니 나도 전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1회차에 악마의 개입이 없었다는 건 알고 있다.

만약 조로아스터교에 악마들이 접촉한 게 그것을 알고 접촉한 것이라면…….

‘이벤트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겠어.’

민수아의 말처럼 일이 상당히 성가셔질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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