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169화 (169/332)

# 169

169. 핏빛하늘을 가르다(5)

대지는 불탔다.

그것은 초식, 이라기보단 거대한 에너지의 방출이었다.

신검 일광.

그 이름처럼 빛이 번쩍인 순간 대지가 불타며 지수의 뒤편에 있던 성벽마저 녹아내렸다.

“마, 말도 안 돼.”

멀리서 그 광경을 본 무림인들은 혈천신교, 무림맹할 것 없이 겁에 질렸다.

만약 저것이 이곳으로 휘둘러졌다면 비명 한번 지르지 못하고 죽었을 테니까.

극양의 무공.

그것을 무형의 묘에 담아 휘두른다.

말하자면 질량을 지닌 불의 검을 휘두르는 것 같다.

‘신들의 싸움이로구나.’

남궁천오는 마른침을 삼켰다.

태양을 닮은 검뿐이 아니다.

조금 떨어진 장소에서 싸우고 있는 소교주의 사형도 어마무시 했다.

다만 진천백이 대지를 가른 이후, 진천백과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같았지만 워낙 거리가 멀어 자세히 보기가 힘들었다.

그렇기에 무인들은 대부분 비교적 가까운 장소에서 싸우고 있는 일광과 지수의 싸움을 주목했다.

‘아무리 소교주라도 이건…….’

남궁천오는 마른침을 삼키며 그것을 지켜보았다.

방금 일검을 견뎌낼 수 있는 자는 기껏해야 무림맹주나 천마 정도일 것이다.

초절정을 넘어 화경에 이른 절대고수나 일광의 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곳에 있는 모두는 방금 일격에 혈교의 소교주가 죽었다고 확신했다.

그건 검을 휘두른 일광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

마치 쇠가 긁는 것 같은 기이한 소리가 들렸다.

쾅!!

열기로 녹아내린 대지를 내딛으며 하나의 소사체가 몸을 일으켰다.

넝마가 된 옷을 입고 있는 소사체는 놀랍게도 살아 있었다.

“으, 으으으!”

새까만 신체 위로 붉은 선이 그어지며, 발광하기 시작했다.

쇠를 긁는 것 같은 소리는 점차 여성의 포효로 변했다.

새살이 돋아나며 새까만 머리칼이 길게 자라고 빛이 사라졌던 붉은 눈동자가 불꽃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다.

“실로 놀랍구나.”

일광의 말은 상황을 지켜보는 모든 무림인이 공감했다.

죽은 자가 부활했다.

그렇게밖에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 그으으으!”

절명에 가까운 상처를 입은 탓에 지수의 심장이 강하고, 더욱 빠르게 뛰며 전신의 혈류를 가속시켰다. 천살성의 힘이 극도로 발현됐고, 거기에 버서크가 발동되자 전신에 기이한 문양이 떠올랐다.

“이성을 내어준 짐승이라. 무공이라기보단 그냥 잡기로군.”

지수는 혈천수라공의 초식을 사용하지 않았다.

오직 혈천수라공의 본질만을 이용하여 자신만의 형태로 공격을 구현했다.

이성을 최소한으로 남기며 오직 본능과 광기의 사슬을 해방했다.

눈앞의 존재에게 착한아이일 필요는 없으니까.

“───!”

거대한 둔기를 든 지수가 일광을 향해 달렸다.

일광은 그것을 보며 검을 가로로 휘둘렀다.

백색의 섬광이 뿜어져 나오며 대지를 불태웠다.

“오.”

지수는 그것을 대지를 후벼 파며 최대한 낮게 전진해 피했다.

순식간에 정면으로 다가온 지수의 모습을 발견한 일광이 옅은 감탄사를 내었다.

콰아아앙!!

거대한 둔기가 일광의 몸에 격돌하자 천둥이 치는 것 같은 굉음이 울리며 재차 성벽에 처박혔다. 날아간 일광을 향해 달려간 지수는 그가 몸을 일으키기 전에 마치 야구배트를 휘두르듯 그의 몸을 횡으로 휘둘러 후려쳤다.

콰콰콰콰!!

성벽을 부수고 찢어발기며 일광이 날아갔다.

“도, 도망쳐!!”

하남의 성벽을 지키던 병사들은 재해와 같은 싸움에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도망쳤다.

하남 내의 사람들도 성벽에서 최대한 멀리 대피하고 있었다.

지수는 그것을 확인하며 내팽겨진 일광의 머리를 잡고 성벽의 바닥에 일광의 머리를 처박은 뒤 온힘을 다해 달렸다.

두터운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성벽이 지수가 일광의 머리를 잡고 문대며 달릴수록 버터처럼 뭉개졌다.

“굉장한 힘이로구나.”

지수의 손에 잡힌 채 끌려 다니던 일광의 다리가 올라가며 지수의 턱을 후려쳤다.

크게 뒤로 밀려난 지수를 향해 일광의 손이 번뜩이자 지수의 양팔이 큰 상처를 내며 벌어졌다.

“……자를 수 없나?”

아까는 단번에 잘렸지만 지금은 반쯤 박히고 말았다.

신체의 강도가 한층 올라가버린 것이다.

본디 버서크를 사용하면 방어력이 취약해져야 하지만, 지수는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다른 스킬을 익혔다.

‘필사의 기회’

스킬의 효과는 상처를 입을수록 피해가 감소하게 되는 스킬이다.

당연히 일정 이상의 상처를 입어야 발동되고, 웬만한 상처면 효과가가 미미한 터라 평범한 플레이어가 사용하기엔 무리가 있는 스킬이었다.

이것이 이렇게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건, 오직 지수가 가공할 만한 재생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흡!”

차창!!

순식간에 지수의 양팔이 재생하며 일광을 향해 돌진했다.

일광은 성벽 위에 널려있던 무기걸이를 검으로 후려쳤다.

그러자 무기걸이에 걸려 있던 다섯 자루의 공중으로 떠오르며 지수를 향해 쇄도했다.

푸푸푸푹!

“──갸악!”

팔과 다리, 그리고 복부를 다섯 자루의 검이 관통하자 달려들던 지수의 몸이 꺾였다.

“바로 불태워 주마.”

어검이 사지에 틀어박히자 지수의 몸이 버벅 거리며 움직이지 못했다.

그것을 확인한 일광은 검을 치켜들고 일륜을 사용하기 위해 내공을 집중했다.

“……!”

그러나 그것은 일광의 오판이었다.

지수는 사지에 박힌 어검을 뽑지도 않은 채 그대로 달렸다.

어검의 힘으로 몸을 제어해보려 했지만 오히려 어검은 지수의 팔과 다리의 살점을 찢으며 분리되고 말았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사지의 근육이 찢겨진 충격으로 쓰러져야겠지만 지수는 그 상태로 달렸다.

일광의 코앞에 도달했을 때는 이미 모든 상처가 나은 후였다.

콰아앙!!

일광의 머리에 지수의 머리가 격돌하자 그의 몸이 뒤로 크게 밀려났다.

“큭!”

이번만큼은 충격을 받았는지 일광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코에서는 미약한 핏줄기가 흘러내렸다.

“짐승 따위가!!”

일륜의 빛이 하남성의 성벽을 불태웠다.

정면으로 달려가던 지수는 그 빛을 보며 크게 뛰었다.

열기가 지수의 허리 아래를 태웠지만, 이미 정면으로 뛴 지수의 상반신은 일광의 머리를 잡고 반쯤 녹은 성벽의 바닥에 머리를 찍었다.

쾅! 쾅! 콰콰쾅!!

성벽을 부수며 지상으로 떨어진 일광은 충격에 머리가 아찔해짐을 느꼈다.

“대체 왜……!”

일광은 이해할 수 없었다.

아프지 않을 리가 없다.

고통스럽지 않을 리가 없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싸우려고 하는 것이냐!”

인간이란 돌멩이뿐이다.

뛰어난 자를 질투하고 시기할 뿐인 성가신 돌멩이.

누군가를 위해 싸운다는 건 여태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니알라토텝의 힘에 부활하여 진천백의 말을 따를 때도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할 게 없으니까.

그리고 다시 검을 휘두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르르르.”

쿵, 쿵.

날아갔던 하반신이 재생된 지수가 일광의 목을 잡고 집어던졌다.

반파된 성벽을 꿰뚫으며 수 백 미터 밖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그것을 쫓아 발을 구른 지수의 앞에, 번쩍이는 일광의 검이 코앞에 있었다.

“죽어라.”

하얀 빛이 대지를 긁으며 위에서 아래로 크게 그어졌다.

지수의 전신을 불태우고 수백, 수천의 무인을 길동무로 삼으며 단단한 대지를 녹여 버렸다.

투둑, 투둑.

“허억, 허억.”

아무리 일광이라도 일륜을 몇 번이나 사용할 수는 없다.

내공을 많이 사용한 탓에 호신강기의 두께도 상당히 얇아져 있었다.

일광은 흐릿해진 눈으로 새까맣게 불타 말라비틀어진 시체를 보았다.

시체의 손가락이 까딱이며 움직였다.

“……그만.”

까딱이던 손가락은 점차 손으로, 손목으로. 그리고 팔로. 그리고 몸으로 퍼져나갔다.

마치 죽은 자가 부활하듯, 녹아서 날아간 뼈가 재생되고 새살이 돋아나며 완연한 인간의 모습으로 변했다.

“제발, 그만……!”

앞으로 일륜은 몇 번 더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방금 일격이 최대 출력이었다.

일륜은 강한 만큼 사용한 후에 한동안 움직이지 못한다.

그래도 문제될 건 없었다.

신검이라 불린 일격을 맞고 살아남은 무인은 없었으니까.

“나와 너는 동족이다. 이 정도면 됐지 않느냐? 그만, 그만 멈춰라. 너에겐 나와 싸워야 할 이유가 없어!”

“그걸.”

이젠 옷이 완전히 불타버려 알몸이 된 지수가 일광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왜 네가 정해요?”

“…….”

“네가 뭔데.”

지수가 손을 뻗자, 옆에 떨어져 있던 흉성의 학살자가 손에 잡혔다.

하지만 이미 이리저리 녹아 있어 무기로 사용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잠시 그것을 보던 지수는 왼손을 뻗었다.

그러자 멀리서 작은 손도끼가 날아와 잡혔다.

“그리고 싸워야 할 이유는 없어도, 당신을 죽일 이유는 있어요.”

“큭!!”

손도끼를 쥔 지수는 일광을 향해 달렸다.

일광은 신음을 삼키며 검을 쥔 양손을 우측으로 뻗었다.

일륜.

정면으로 달려드는 지수의 코앞에서 우측에서 좌측으로 검을 휘둘렀다.

시린 백광이 지수를 불태웠다.

왼팔만 제외하고.

콰직.

“아.”

일광의 호신강기는 강호제일이라 부를 만큼 두텁다.

그가 지닌 신공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지만, 결국 호신강기도 내공으로 발동되는 것.

지속된 내공의 사용에 얇아진 호신강기를 꿰뚫으며 지수의 손도끼가 일광의 이마에 박혔다.

털썩.

신검이라 불리던 무림의 고수가, 도끼에 머리가 쪼개져 허무하게 숨을 거뒀다.

왼팔을 제외하고 죄다 불타 버렸던 지수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중얼거렸다.

“진짜 말이 너무 많아.”

그래서 말을 하지 못하게 만들어줬다.

단지, 그뿐이었다.

***

“이상해.”

니알라토텝은 이변을 느꼈다.

이건 자신이 예상하지 못한 수였다.

설마 단 석 달 동안 혈천수라공을 극성으로 연마했다고?

‘김세한의 재능은 그렇게 뛰어나지 않을 텐데?’

김세한이 강함은 상정에 뒀다.

거기서 더 강해진다고 해도 진천백이 여유 있게 죽일 수 있었다.

그래서 니알라토텝은 당연히 세한이 지구로 돌아가리라 생각했다.

거기서 정비를 하고, 다시 무림으로 돌아오는 게 효율적이었으니까.

니알라토텝이 아는 김세한은 신중했고, 도박을 하지 않는 자였다.

그런데 설마 남아서 무공을 익힐 줄이야.

‘만약 지구로 돌아갔다면 무림을 정복한 후, 나의 신도로 만들어 지구를 침공할 계획이었는데.’

아우터갓의 사도.

말이 사도지 노예나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아우터갓에게 인간과 같은 생물은 벌레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작은 통에 넣고 구경하는 개미.

니알라토텝은 단지 개미를 구경하는 걸 좋아하는 특이한 신이었을 뿐이다.

하물며 개미를 위해, 개미가 있는 통 속에 들어간 신은 어불성설이다.

‘어쩐지…….’

기분이 나쁘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개미 따위에게 기분이 나빠지다니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혈천수라공을 극성으로 익혔다고 하더라도, 분명 불완전할 거다. 진천백이 패배할리는 없어.’

진천백은 그에게 제법 흥미를 가져다주던 인간이었다.

혈마를 증오한 주제에 두려워하고, 또한 동경했던 인간.

혈마를 죽였을 때 그가 보인 얼굴은 기쁨이라기 보단 절망에 가까운 얼굴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이런 것인가?’ 그런 마음이 진천백의 얼굴에서 나타났다.

그런 그의 고뇌도, 애써 태연한 척 말하는 모습도 니알라토텝에겐 즐거움이었다.

희로애락.

인간이 가진 복잡하면서도 간단한 감정.

그것이 또렷하게 나타나는 순간을 니알라토텝은 사랑했다.

“설마.”

세한의 한쪽 눈이 붉게 빛나며 타올랐다.

혈천수라공을 익힌 증거와도 같은 빛이다.

반면 다른 눈은 금색으로 빛났다.

저건 주로 선신(善神)에게서 나타나는 신위의 빛이다.

당연히 혈천수라공과는 맞지 않는다.

만약 혈천수라공을 익힌 채, 신격을 얻었다면 금색의 빛을 낼 수 없었다.

좀 더 탁한 색이 되었겠지.

근데 지금 세한의 몸에는 두 개의 힘이 양립하고 있었다.

“인간이 저런 게 가능하다고?”

놀란 건 니알라토텝만이 아니다.

바로 앞에 있는 진천백은 경악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다.

“그건 무어냐.”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 진천백에게 세한은 가볍게 답했다.

“혈천수라공.”

“그건 혈천수라공이 아니다. 혈천수라공은 결코 그렇지 않아.”

혈천수라공은 엄연히 마공이다.

천살성을 기반으로 한 무공이니 당연한 일이다.

초식에 내제된 살기나 위력은 정파의 그것과는 궤를 달리한다.

그런데 세한의 왼쪽 눈에서는 금색의 빛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저건 마기가 아니다.

충만한 선기가 느껴졌다.

“두 가지 힘을 완벽하게 섞다니…….”

“완벽? 아니지, 불안정해.”

초월의 증명을 이용한 도핑으로 겨우겨우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이전에 오존, 패악광마를 상대로 실험해봤던 게 처음이며, 제대로 사용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초월의 증명이 꺼지게 되면 자연스럽게 지금 사용하고 있는 힘의 균형도 무너지게 되리라.

그러니 그전에 끝을 낸다.

세한에게 남은 방법은 그것 하나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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