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161화 (161/332)

# 161

161. 수라(修羅)(1)

사방으로 퍼진 까마귀를 통해 도망간 신투를 찾았다.

아무리 경신법이 빠르다고 아직 이 숲을 벗어나지는 못했을 터.

그물처럼 촘촘히 퍼진 까마귀를 통해 시야를 전달받던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막 산을 하나 넘던 신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찾았다.”

궁기의 날개를 움직인다.

본디 궁기의 날개의 최대속도는 대략 400km.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빠르지만 신위를 사용한다면 그 이상의 출력을 내는 것도 가능했다.

그 속도는 거의 1000km.

음속에는 조금 미치지 못하지만, 사실상 아음속의 영역에 도달한 속도였다.

쿠아앙!!

속력을 내자 주변의 시야가 일그러지며 폭음이 울렸다.

날아가며 충격파가 발생한 것이다.

덕분에 도망가던 신투도 이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늦었어, 새끼야.”

인벤토리에서 기병용 창을 꺼내 정면으로 겨눴다.

신투가 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아음속으로 날아가는 나를 뿌리치고 달아나는 건 무리였다.

콰과과광!!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며 깊은 산속을 뒤흔들었다.

***

“미친 놈 아녀?”

신투는 식은땀을 흘렸다.

겨우겨우 피할 수는 있었지만 자칫했으면 산산조각이 날 뻔했다.

‘대체 나를 어떻게 쫓은 겨?’

혈교가 있는 장소는 산세가 험하며 쉽게 길을 찾을 수 없다.

그런 장소에서 이렇게 빨리 자신을 쫓아왔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심지어 하늘을 날아오다니!

얼핏 보았을 때 등에 날개도 달려 있었다.

등에 날개가 달린 인간이라는 건 들어본 적도 없었다.

‘까마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자 주변에 몰려든 까마귀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설마 이 까마귀들을 전부 조종해서 자신을 뒤쫓았던 건가?

‘이런 이야기는 듣지 못했는데…….’

신투에게 있어 세한이란 정체불명의 고수일 뿐이었다.

장기간 혈교에 숨어 있던 신투는 세한의 정보를 진천백에게 전달받지 못했다.

아무튼 신투는 이곳에서 서둘러 벗어나기 위해 발을 놀렸다.

“미안하지만 보내줄 수 없다.”

그 말이 들리는 순간, 숲이 변했다.

눈앞에 보이던 나무와 흙이 사라지며 대지가 이상한 알록달록한 돌로 변했다.

거기다 거대한 돌과 유리로 만들어진 건물들이 사방에 솟아올랐다.

“헉!”

갑자기 그의 옆으로 달려오는 쇳덩이로 이루어진 마차의 모습에 신투는 급히 몸을 굴려 피했다.

“이게 대체 무슨 조화여? 숲은 어디로 사라진 겨?”

방금 전까지 깊은 산속이었던 장소가 괴상망측한 무언가로 변해 버렸다.

“여기도 숲은 숲이지. 빌딩숲. 너희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초록색과 붉은색으로 깜박이는 등 아래에는 방금 전 자신을 향해 날아왔던 세한의 모습이 보였다. 손에 들린 랜스가 빛에 반사되어 반짝였다.

“이건 내 상상으로 만들어진 단순한 환상이다. 너희들 말로 따지자면 진법과 같은 원리지.”

아카터스나 아바돈을 가둘 때 사용했던 기술은 아니었다.

그건 아예 이계를 만들어 가둬 버리는 것이지만, 이것은 말 그대로 주변을 환상으로 덮어 씌웠을 뿐이다.

하지만 현대의 도시를 알지 못하는 신투에겐 이계나 마찬가지일 테지.

“재주껏 도망쳐 봐라. 덤벼도 좋고.”

“네놈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건방지구먼!”

신투는 다른 십존보다는 약했지만, 그렇다 해도 중원의 역사에 이름을 남긴 고수였다.

그 실력은 절정을 넘어 초절정에 근접한 실력자였다.

‘대략 능력치 중에 가장 높은 건 민첩인가.’

아마 S급일 확률이 높다. 다른 능력치도 대략 B~A.

현재의 세한보다는 전부 한 단계 높은 수치다.

특히 민첩의 경우에는 궁기의 날개가 아니고서야 쫓을 수 없다.

하지만 세한에게는 템빨이 있었다.

“으음?!”

신투의 주위에서 새까만 공간이 열리며 무기가 떨어졌다.

그리고 그 무기 사이에서는 신투의 속도보다도 빠른 하나의 검이 날아가고 있었다.

“설마 어검?!”

하늘을 날아다니며 자신을 쫓는 검을 보며 신투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검기가 검강의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오는 프라가라흐의 모습은 혹여나 호신강기로 막았다가는 그대로 두 동강이 나버릴 것 같은 기세였다.

“너는 저번에 만났던 십존보다 약하군.”

“뭣이? 너는 다른 십존을 만났다는 거여?”

“청연이라는 자를 만났다.”

세한의 말에 신투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분을 만나고 살아 돌아왔다는 말이여?!”

“확실히 강하긴 했어. 신위도 가졌었고.”

눈앞의 신투에게서는 신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초상의 경지에는 발도 디디지 못한 것이다.

‘삼존이 이기지 못했다면 나로선 무리여.’

신투는 프라가라흐와 날아오는 검을 피하며 식은땀을 흘렸다.

움직이지 않고 자신을 관찰하는 건 죽이는 것이 아니라 이쪽을 제압할 생각이기 때문이다.

마치 먹이를 노리는 매와 같은 눈으로 바라보는 세한의 눈동자에 신투는 마른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프라가라흐로 양다리를 베고 곧바로 제압한다.’

십존의 위치에 있는 신투라면 분명 쓸 만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 터.

이전에 지구에 넘어왔던 무인 몇몇은 사로잡은 상태였지만 제대로 된 정보를 가진 이는 없었고, 심지어 자결해 버렸다.

세한은 손바닥을 피고 바닥에 손을 댔다. 그러자 주변의 그림자에서 까마귀들이 솟아나며 신투의 다리를 향해 날아갔다.

“이, 이런!”

데미지는 없었지만, 그의 신법이 크게 엉켰다.

세한은 그 틈을 노려 신투를 향해 덤벼들었다.

쾅쾅쾅!!

신투의 손과 세한의 손이 연속으로 격돌했다.

자세가 무너졌음에도 신투는 세한의 공격을 허용하지 않았다.

“잡기에만 능한 모양이구먼!”

궁지에 몰린 상황임에도 세한은 신투를 제압하는 게 쉽지 않았다.

무공을 익히고, 전체적으로 능력치가 세한보다 높은 탓에 근접전에서 압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상대는 무공과 초식을 익히고 있었다.

“으헉!”

하지만 반대로 신투도 세한을 압도하지 못했다.

마치 백전연마의 장수처럼 결코 흠을 내주지 않는 세한의 공격에 신투도 뿌리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주변이 서울 시내로 변해버린 탓에 길을 찾을 수도 없는 신투로선 계속해서 세한과 싸울 수밖에 없었고, 결국 한쪽 다리에 큰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크, 큰일이구먼.”

하필 상처를 입어도 다리였다.

다리를 다쳐 움직임이 지장이 가게 되니 계속되는 세한의 공격에 점점 신투의 몸에도 상처가 늘어났다.

“무공도 쓸 수 없는 놈을 왜 뿌리칠 수 없는 거여?”

“그러게 말이다. 나도 무공을 익히든지 해야지. 너 따위를 제압하는 데에 이렇게 오래 걸려서야 쓰겠냐.”

“크아악!”

콱콱!!

신투의 양 어깨를 꿰며 길쭉한 창이 지면에 박혔다.

마치 인형처럼 고정되어 버린 신투를 보며 세한은 한숨 돌렸다.

‘정말 상성이라는 게 중요하네.’

세한의 입장에선 저번에 싸웠던 청연보다 신투쪽이 오히려 근접전에서 상대하기 힘들었다.

녀석이 말하는 것으로 보면 분명 신투보다 청연 쪽이 압도적인 강자임에도 말이다.

“뭐, 좋아.”

세한은 신투의 머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드라에게 얻은 기술로 녀석을 재운 후, 꿈을 통해 정보를 얻기 위함이었다.

기이이잉!!

“──!!”

귓가에 울리는 기이한 소리에 급히 뒤로 펄쩍 뛰었다.

그러자 세한과 신투의 사이에 무언가가 수직으로 낙하했다.

그것은 거대한 참격(斬擊)이었다.

콰콰콰콰콰!!

하늘 높이 뻗어있던 서울의 빌딩이 양단되며 환상이 부서졌다.

아스팔트 대지가 갈라지며 흙이 솟아나고, 신호등이 자려나가며 꺾인 나무의 모습이 드러났다.

‘이건…….’

산이 잘려나갔다.

세한과 신투가 있는 사이에는 족히 수십 킬로미터가 넘는 길이의 검흔이 새겨져 있었다.

마치 거대한 거인이 산을 향해 검을 내리친 것 같다.

좀 과장되게 말하면 참격 단 한 방에 산이 반으로 갈라지며 계곡이 생겨 버린 수준이었다.

“큭!”

카앙!

검 한 자루가 세한의 목을 노리며 날아왔다.

프라가라흐가 움직여 그것을 튕겨냈지만, 땅으로 내팽겨진 프라가라흐와 달리 그것은 한 바퀴를 선회한 뒤 어딘가로 날아갔다.

‘진짜 어검이다.’

비검이라 불리는 프라가라흐지만 그건 단순히 날아다니는 것이지 어검과는 전혀 달랐다.

진짜 어검은 프라가라흐로 상대할 수 없었다.

저벅, 저벅.

“이, 일존님!”

천천히 누군가가 이쪽을 향해 걸어왔다.

하얀 무복에, 긴 검은 머리를 하나로 묶은 미남자.

그는 세한을 한번 본 뒤에, 신투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신투의 몸에 박혀 있던 창들이 일제히 뽑히며 바닥을 굴렀다.

“가자.”

“저, 저자는 그냥 두고 가실 생각입니까?”

“저자도 모든 실력을 내보인 게 아니다. 네놈을 보호해 주며 싸우면 귀찮아질 수 있단 뜻이지.”

“죄, 죄송해유.”

그는 그렇게 말한 후, 나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까마귀. 생각보다는 약하구나.”

‘네가 더럽게 강한 거겠지.’

세한은 차마 그렇게 답할 수 없었다.

상대는 그 정도의 강자였다.

“어차피 다음에 다시 보게 될 터. 그때를 기대하마.”

녀석은 그렇게 말한 후, 부상당한 신투를 업고 뛰었다.

단 한번 뛰었을 뿐인데 순식간에 사라졌다.

고금 제일의 경신법을 지녔다는 신투에 결코 뒤지지 않을 수준이었다.

“또 뭐야 저놈은?”

황당할 지경이었다.

세한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바닥에는 무수한 까마귀의 시체가 있었다.

이곳에 오며 주변에 보이는 까마귀들을 전부 베어버린 것이다.

시체가 된 까마귀들은 바닥에 녹아들며 세한의 그림자로 흡수되었다.

“……이거 난감한데.”

십존은 확실히 강했지만 신투나 청연 정도라면 수월하게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방금 나타난 남자를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방금 느껴진 신위의 기운은 중하위급 신위.

1회차에 세한이 보았던 혈마보다 조금 떨어지는 격을 지니고 있었다.

즉, 준초월자에 이른 고수라는 뜻이다.

‘다만, 그 이상에 도달하지 못한 인물이겠지.’

남궁천오의 말에 따르면 십존은 과거의 망령이니까.

그렇다 해도 그가 강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우선 계획을 좀 수정해야겠어.”

본래는 청연의 몸에 붙여둔 까마귀의 깃털이 떨어진 장소로 바로 이동할 생각이었지만 아무래도 조금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

“어서 오십시오, 소교주님!”

“……뭐야?”

혈교로 돌아온 내게 혈교의 무인들이 일제히 머리를 바닥에 박았다.

개중에는 내게 적대를 보이던 우광도 섞여 있었다.

아무리 혈마의 제자라고 밝혔다지만 너무 빠른데?

“오빠!”

그들의 모습을 흡족한 얼굴로 바라보던 지수가 쪼르르 내게 다가와 오른팔의 소매를 살며시 잡아당겼다.

“제가 조금 교육을 해뒀어요. 잘했죠?”

“어, 뭐. 잘했다.”

적대적인 것보단 고분고분한 게 좋긴 하지.

다만 무슨 교육을 했는지 심히 궁금했다. 어째서 바닥에 머리를 박고 있는 무인들의 입에서 끙끙 거리며 앓는 소리가 들리는 걸까.

“다만 수정할 게 하나 있군.”

나는 짝짝 박수를 쳐서 머리를 박고 있는 무인들을 향해 말했다.

“혈교의 소교주는 내가 아니라 내 사매다.”

“네? 저요?”

“지금 당장 혈천신공을 익히고 있는 건 너잖아.”

“그건 그렇지만…….”

조금 불편한 얼굴이었지만 나는 소교주로 있어도 곤란했다.

혈교를 내 것으로 만드는 건 나쁘지 않았지만 교를 운영하기엔 당장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나는 조금 떨떠름해 보이는 지수에게 상냥한 어조로 말했다.

“할 수 있지?”

“네, 네. 할 수 있어요!”

곧바로 긍정하는 지수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양심에 찔리긴 하지만 이건 지수에게도 나쁜 건 아니었다.

대략 상황이 정리되자, 나는 가장 앞에 서 있는 우광에게 말했다.

“현재 혈교에서 싸울 수 있는 인물은 얼마나 되지?”

“절반 이상이 부상자이기에 대략 3천 정도입니다.”

본래는 1만이 넘는 교인을 거느린 혈교였지만, 지금은 종이호랑이나 마찬가지였다.

“전부 치료하지 않은 건가?”

“치료 중인데 워낙 부상자가 많아서…….”

하기야 무사한 사람의 2배 이상이니 쉽게 치유할 수 없을 테지.

아마 무림맹의 말을 거절한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오늘내일 하는 사람이 2천 정도는 되는 모양이니 혈교의 입장에서는 어디를 돕고 할 여력이 없는 게 당연했다.

“그런 거라면 방법이 있지.”

딱!

나는 손가락을 튕겼다.

허공에 새까만 공간이 열리며 부르르 떨렸다.

“이, 이건 뭡니까?”

“기다려 봐.”

갑자기 허공에 열린 구멍에 술렁이는 교인들을 진정시키며 내게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라인을 쫓았다. 그리고 그것을 찾은 후, 이쪽으로 잡아당겼다.

쿵!

“아야.”

새까만 공간에서 떨어진 건 작은 소녀였다.

새하얀 백발에, 이마에는 길쭉한 뿔이 나 있는 소녀.

“어라, 여기는…….”

갑작스럽게 변한 주변의 모습에 소녀는 크게 당황한 기색이었다.

그러다 나를 발견하고는 우뚝 시선을 멈췄다.

멍하니 이쪽을 응시하는 녀석에게 나는 씩 웃었다.

“어서 와라, 백설아.”

7천의 부상자?

그건 성수 기린의 앞에선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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