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156화 (156/332)

# 156

156. 뒤틀린 콜라보(3)

“오만해도 된다?”

청연의 얼굴에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본좌의 앞에서 그런 소리를 지껄이는 놈은 오래만이로구나.”

스스로를 본좌라고 지칭하는 청연의 모습도 이질적이기는 매한가지였다.

아까는 적어도 이쪽의 상태를 살피는 눈치였지만, 방금 내 말이 그의 심기를 거슬렀던 모양이다.

“너와 같은 놈은 수없이 보았다. 자신의 실력에 자만하는 멍청한 무지렁이들.”

그는 천천히 창을 내게 겨누었다.

한층 그의 기세가 상승했다. 그나마 나보다 신격이 낮아서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능력치 차이 때문에 고전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대체 어디서 이런 놈이 튀어나온 거지?’

본래라면 혈마가 중원에서 넘어왔어야 했다.

이자는 내가 보았던 혈마에 비하면 부족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크게 뒤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나와 같이 이미 신위를 지닌 존재를 쓰러트리고 강탈한 게 아닌 이상, 평범한 인간이 신위를 얻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운 것이니까.

하지만 눈앞의 존재는 그것을 해냈다.

녀석이 뿜어내는 신위는 오롯이 그의 것이었고, 그 의미는 그가 극한으로 무공을 단련하여 얻어낸 재능과 노력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이해할 수 없네.”

나는 그런 그를 보며 그렇게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무슨 뜻이냐?”

“너를 보고 있으면 마치 노회한 무인을 앞에 둔 것 같거든.”

플레이어라면 젊은 나이에 강한 힘을 지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지수만해도 20대 초반에 혈천수라공을 극성에 가깝게 연마한 상태였다.

린이라면 말할 것도 없지.

그러니 대단한 무위를 지녔다고 해도 플레이어라면 이상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청연이라는 사내에게서 알 수 없는 이질감을 느꼈다.

마치 젊은 청년의 거죽을 뒤집어쓴 노인과 같은 느낌.

“뭣보다 육체와 당신의 신격이 어긋나 있어. 아주 미묘하지만 말이야.”

“호오. 눈이 좋구나. 오만하기만 한 녀석은 아닌 모양이군.”

청연의 입가가 비틀렸다.

물론 그는 내 의문에 답해줄 생각 따위는 없는 것 같았다.

“그 이유는 지옥에서 염라에게 물어봐라.”

녀석의 창이 크게 뒤로 젖혀진다고 생각한 순간,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나를 향해 쏘아졌다.

바람을 가르고, 그가 내디딘 대지가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부서져 나갔다.

콰콰쾅!!

그의 창은 바람처럼 흔들리며 질풍처럼 내게 불어왔고, 거센 돌풍이 되어 내 전신을 감쌌다.

“만천화(萬千化)!!”

바람을 타고 꽃잎이 흩날린다.

그 꽃잎은 그저 환상처럼 보였지만, 저 꽃잎들 사이에는 날카로운 비수가 숨겨져 있었다.

“안 된다니까.”

그의 기술은 변화의 극한에 이르러 있었다.

만약 내가 아니라 다른 이가 상대였다면 말 그대로 순살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특히 루크나 신자운 같은 타입에게는 최악이다.

이것을 상대하려면 지수와 같이 날카로운 본능을 지녔거나, 창우처럼 ‘심안’ 스킬을 지닐 필요가 있었다.

혹은 나처럼 환상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거나.

참고로 나는 거기에 심안까지 가지고 있었다.

카카카카캉!!

다인슬라이프를 쥔 내 육체는 마력을 제물로 바쳐 막대한 신체능력을 손에 넣었다.

평소라면 할 수 없었을 속도로 검을 휘두르며 내 몸에 날아드는 비수를 쳐냈다.

수많은 꽃잎 사이에 숨겨져 있던 청연의 창을 모조리 튕겨낸 후, 그대로 검을 녀석의 가슴팍을 향해 휘둘렀다.

“큭?!”

나름 절초나 마찬가지인 기술을 내가 모조리 막고 파훼한 것에 모자라 반격까지 하자 청연의 눈이 흔들렸다. 순간적으로 뒤로 물러서 상처를 입지는 않았지만, 그의 앞섬이 크게 베어져 푸른 무복이 바람에 흔들렸다.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그런 조잡한 검 놀림 따위로 나의 만천화를 파훼할 수 있다고?”

“왜, 할 수도 있지.”

“무공도 전혀 모르는 놈이 그게 가능하다는 거냐? 하, 그래. 지존께서 너를 조심하라고 한 이유를 알 것 같구나.”

그는 내게 겨누고 있는 창을 거두지 않았지만 기세는 확연히 꺾여 있었다.

나는 벌써 녀석이 가한 세 번의 공격을 가볍게 막아냈다.

창을 쥔 청연의 눈동자가 결연하게 빛났다.

“아무래도 너는 이곳에서 내가 반드시 죽여야 할 것 같구나.”

“할 수 있다면.”

피식 웃는 내게 그는 더 이상 오만하다 부르짖지 못했다.

“이렇게 된 이상, 만환천창의 마지막 초식을…….”

그렇게 말하던 녀석의 입이 굳어졌다.

‘이제야 연락이 온 건가.’

나는 녀석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봤다.

청연은 부릅뜬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파르르 떨었다.

그리곤 입을 달싹이다가 갑작스럽게 발을 굴렀다.

“신자운! 민수아를 향해 달려!”

내 외침이 끝나기 무섭게 신자운 역시 민수아를 향해 달렸다.

하지만 이미 달리기 시작한 청연에 비하면 한참 느렸다.

심지어 단순하게 달리는 신자운과 달리 청연은 번개와 같은 신법으로 민수아를 향해 달렸다.

갑작스런 그의 행동에 주변에 있던 무인들도 저마다 무기를 꺼내들며 내 앞을 막았다.

내가 청연에게 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겠지만.

“미안하지만 돌아갈 거면 얌전히 돌아가라.”

미안하지만 내게 거리란 아무 의미가 없었다.

딱!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민수아의 옷깃을 잡아채려던 청연의 팔위로 새까만 공간이 열렸다.

“뭣?!”

갑작스럽게 열린 공간에 팔을 뻗던 청연은 황급히 손을 뒤로 뺄 수밖에 없었다.

허수공간이 열리며 프라가라흐가 수직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비검 프라가라흐.

그것은 한번 목표를 정한 상대를 명중시킬 때까지 놓치지 않으며 그 속도는 소리조차도 앞지른다.

“신물을 하나도 아닌 두 개나 가지고 있다는 것이냐!”

“원래 다다익선이라는 말이 있잖아.”

“이 우라질 놈!”

청연은 욕설을 내뱉으며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프라가라흐를 창으로 쳐냈다.

그도 평범한 무인이 아니었기에 프라가라흐의 맹공에도 버틸 수 있었지만, 민수아를 향해 손을 뻗을 틈은 나지 않았다.

그사이 신자운은 자신을 막아서는 무인들을 주먹으로 쓰러트린 후, 기절한 민수아를 허리에 들쳐 엎었다.

“제길!”

청연은 더 이상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창으로 프라가라흐를 내리찍어 대지에 박아 넣은 후, 크게 뒤로 뛰었다.

“이번은 물러가도록 하마! 하지만 다음은 없을 것이다!”

도망치는 주제에 말은 참 잘도 한다.

그것도 너무나 틀에 박힌 말인지라 무심코 실소가 나올 정도였다.

“왜, 여기 또 오려고?”

“당연한 말을……!”

그의 등 뒤로 내 허수공간과 같이 검은 공간이 열렸다.

그건 허수공간이 아니었다. 다른 차원으로 통하는 일종의 게이트였다.

게이트를 향해 뛰어드는 녀석을 나는 굳이 쫓지 않으며 태연히 말했다.

“올 필요 없다. 내가 갈 거니까.”

게이트로 사라진 녀석이 과연 내 말을 들었을지는 모르겠다.

들었어도 상관없고, 듣지 못했어도 상관은 없었다.

나는 녀석이 사라진 장소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민수아는 괜찮냐?”

“그래, 상처 하나 없다.”

신자운은 들쳐 엎은 수아의 몸을 살폈다.

특별히 상처가 있거나 특별한 조치가 취해진 기색은 없었다.

녀석은 다시 내게 시선을 돌리며 숨을 골랐다.

“너는 청연이라는 자가 누구인지 아는 건가?”

“아니.”

“그렇다면 그렇게 보내줘도 괜찮나? 너라면 죽일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아마 가능했겠지.”

하지만 난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그의 몸에 깃털을 하나 붙여뒀거든.”

나는 검지와 중지 사이에 새까만 깃털하나를 끼워 가볍게 흔들었다.

청연이 프라가라흐를 상대하고 있을 때 그의 등에 몰래 검은 깃털을 심어두었다.

“대체 어떤 놈이 저런 녀석을 수하로 두고 부릴 수 있나 궁금해서 말이야.”

녀석은 자신을 십존이라 칭했다.

그 말은 즉, 적어도 청연과 비슷한 실력을 지닌 자가 열 명은 된다는 뜻이다.

청연은 내게 상대가 되지 않았지만, 그건 내가 상성상 유리했기 때문, 아니었다면 아무리 나라도 고전했을 게 분명했다.

‘그런 놈이 두 명이 붙는다면 솔직히 나라도 위험해.’

그러니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었다.

특히 이곳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는 건 더더욱 위험했다.

그러니 나는 그놈들을 직접 찾아갈 생각이었다.

“공격은 최선의 방어니까.”

중원으로 게이트를 열고 넘어가 어떻게 된 일인지 살펴봐야만 했다.

1회차에 혈마로부터 들었던 이야기 중에 십존과 관련된 내용은 없었다.

저 정도 실력을 지닌 무인들이 있었다면 혈마가 말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설마…….’

어쩐지 가슴이 서늘해졌다.

퀘스트가 미뤄진 것과 혈마가 이 세계로 넘어오지 못한 것.

그것이 십존과 관련된 일이라면 그에게 어떤 변고가 생겼을 지도 몰랐다.

나는 신자운의 팔에 들려있는 민수아를 보았다.

혜미의 말에 따르면 민수아는 납치당하기 전에 분명 이렇게 말했었다.

“이제야 보인다고.”

아무래도 어떤 것을 봤는지 들어봐야 할 것 같았다.

***

“중원은 멸망하게 될 거예요.”

눈을 뜬 민수아가 제일 먼저 한 말은 바로 그것이었다.

당연히 내게는 그다지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그리고 중원을 멸망시킨 그들은 이곳으로 넘어오게 되겠죠.”

“내가 중원으로 가도 미래는 변하지 않는 건가?”

민수아의 머리가 끄덕여졌다.

“단순히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요. 만약 까마귀님이 간다면 십존이라는 이들은 상대할 수 있겠지만, 그들의 정점에는 도달하기 힘들어요.”

“그건 내 실력이 부족해서?”

“아뇨, 숫자가 부족해요. 이번에 싸워보셔서 알겠지만 까마귀님 혼자서는 십존을 전부 상대할 수 없어요.”

확실히 그렇다. 아무리 나라도 청연급 실력자가 둘 이상 붙는다면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다.

세 명이 된다면 도망치는 것밖에 답이 없었다.

“그래서 너는 어떻게 해야 된다고 생각하지?”

“그건 모르겠어요. 저는 미래를 볼 수 있지만 공략법은 알지 못하니까요.”

심히 안타깝다는 어조로 말하는 수아의 얼굴은 한 점의 거짓도 없었다.

하기야 만약 그런 것까지 다 알 수 있었다면 1회차의 민수아가 죽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근데 너는 왜 나를 까마귀님이라고 부르는 거냐?”

“마땅히 부를 호칭이 없어서…… 그리고 별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분이시잖아요? 신은 아니실지 모르겠지만, 이게 제일 편한 것 같아서요.”

조금 부끄럽다는 얼굴로 말하는 민수아의 모습은 그 나이의 소녀답게 앳되어 보였다.

비상한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평범한 그 모습에 나는 내심 조금 감동을 받았다.

‘이런 게 평범한 거지.’

최근 너무 이상한 애들하고만 있다보니 이런 평범한 반응에 조금 가슴이 먹먹해졌다.

예전에는 지수도 평범했는데 말이야.

사실 평범한 척 연기했던 거지만.

“그런데 까마귀, 저쪽으로 넘어간다고 했는데 넘어갈 방법은 있는 거야? 이드라에게 부탁해도 한계가 있을 텐데?”

“서브 퀘스트를 부여하면 됩니다.”

“아, 그러면 되긴 하겠네. 그래서 수아가 숫자가 부족하다고 한 건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브 퀘스트를 부여한다면 이드라가 만든 게이트를 통해 중원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일종의 시스템을 속이는 방법이다.

대신 그만큼 서브 퀘스트를 부여할 수 있는 숫자도 한정되어 있었다.

최대한 많이 넘어간다고 해도, 나를 제외하고 두 명…….

십존을 상대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인원이었다.

“린 테일러 하나면 정리되지 않나?”

“걔는 어디까지나 지구 소속의 정의의 여신이라 안 됩니다.”

“하긴 그러네.”

거기다 린을 데리고 간다고 해도 십존을 상대하는 건 쉬운 게 아니었다.

무공을 보는 족족 베낄 수 있어도 단체로 덤비게 되면 베끼기도 전에 린이 죽을 테니까.

“민수아,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자.”

“네, 뭐든 물어보셔도 괜찮아요.”

“……혈마는 네가 본 미래에 있었나?”

“혈마가 어떻게 생긴 존재죠?”

수아의 물음에 나는 혈마의 모습을 떠올렸다.

무림을 한번 정복했던 최강의 무인을.

“검은 머리에 붉은 눈을 지녔고, 붉은 무복을 입고 다니는 야수와도 같은 남자야. 특히 오른쪽 눈에 검으로 베인 것 같은 길쭉한 흉터가 있다.”

눈에 있는 흉터는 어린시절 입었다고 했으니 분명 지금도 남아 있을 것이다.

“잠시만요.”

민수아는 고개를 끄덕인 후, 눈을 감았다.

고개를 주억거리며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입을 오물거렸다.

잠시 후, 민수아의 눈이 천천히 떠졌다.

“전혀 보이지 않아요. 제가 본 어떤 미래에도 까마귀님이 말한 남자는 없었어요.”

“뭐?”

혈마라면 분명 어떤 식으로든 중원의 일에 관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중원에서 진행 중인 메인 퀘스트를 모두 클리어한 주역이 바로 그 혈마였으니까.

마인인 그가 무림을 구할 구세주라고 한다면 모두가 웃겠지만, 그것이 사실이었다.

“대신 비슷한 인상을 지닌 사람은 있었어요.”

“비슷한 인상을 지닌 사람?”

“네.”

민수아는 숨을 고르며 방금 전 자신이 보았던 미래를 회상했다.

“십존을 이끄는 우두머리가 그와 닮은 얼굴이었어요.”

“혈마와 닮은 자가 십존의 우두머리라고?”

“네.”

수아는 곧은 눈으로 나를 응시하며 말했다.

“그의 이름은 진천백. 그가 바로 십존의 우두머리입니다.”

진천백.

나는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십존과 달리 내가 아는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알다마다.

내가 그 이름을 잊을 리가 없었다.

“혈마의 형이잖아.”

파천혈군 진천백.

혈마의 하나뿐인 형이자, 최후의 적이었던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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