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155화 (155/332)

# 155

155. 뒤틀린 콜라보(2)

“콜라보가 연기되었다.”

까마귀를 이용해 게이트가 찾아다니던 내게 이드라가 그런 말을 했다.

당연히 나로선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콜라보 퀘스트가 연기됐다고? 그거 메인 퀘스트잖아?”

“모른다. 시스템이 콜라보 퀘스트를 당장 진행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모양인지 시간이 뒤로 밀렸다. 다음 메인 퀘스트가 먼저 시작될 것 같군.”

이드라도 이런 상황은 처음인지 고운 아미를 살며시 찡그렸다.

‘이럴 수도 있나?’

콜라보 퀘스트는 말이 콜라보 퀘스트지 엄연히 메인 퀘스트로 분류되는 중요 퀘스트다.

애초에 메인 퀘스트로 등록이 되지 않았다면 모르겠지만 이미 개시 날짜가 등록된 상황에서 뒤로 밀리는 경우는 보통 없었다.

‘지구가 너무 많이 변화가 돼서?’

아니다.

그에 따른 변화는 콜라보 퀘스트가 앞당겨지는 것으로 표현됐다.

본래 후에 등장할 퀘스트가 지금 등장했다는 것부터가 플레이어들의 수준이 1회차의 지구보다 높다는 뜻이다.

빠른 성장에는 여러 요인이 존재했다.

내가 보급형 장비를 경매장을 통해 뿌렸기 때문에 장비 수급이 원활해졌고, 커뮤니티를 통해 적절한 공략을 썼기에 성장에 가속도가 붙었다.

결정적인 건 아레나의 등장이다.

아레나의 등장으로 플레이어간의 경쟁이 활성화되어 신들이 자신의 아바타에게 많은 포인트를 투자하기 시작한 것이다.

단순히 퀘스트가 힘든 건 상관없었지만 자신의 아바타가 다른 신의 아바타에게 뒤처지는 건 죽어도 볼 수 없는 게 신들의 심리였으니까.

“이번 일은 우리 쪽 때문에 생긴 일 같지는 않아.”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거 참 곤란하구나. 신으로서의 힘이 제약된 탓에 혜안을 발휘하는 것도 한계가 있도다. 나의 신이여, 이럴 때는 그대가 나를 이끌어야 하지 않겠느냐.”

이드라는 요염하게 웃으며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 손은 내게 닫기 전에 옆에서 튀어나온 지수의 손에 잡혔다.

“굳이 접촉할 타이밍이 아니었다고 생각하는데요.”

“놔라. 나는 내 신을 영접하려 했을 뿐인 게다.”

지수가 붉게 빛나는 눈으로 노려보자, 이드라의 금색 눈동자도 가늘어졌다.

입가의 미소도 삐뚜름하게 비틀어졌다.

‘저건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건데.’

묘한 분위기에 나는 입을 다물며 둘을 번갈아봤다.

나 때문인 거 같아서 뭐라 끼어들기도 뭐했다.

우우웅.

“아, 전화 왔다. 나는 잠깐 밖에서 통화하고 올게.”

적절한 타이밍에 울리기 시작한 핸드폰에 나는 황급히 자리를 떴다.

설마 둘이 싸우지는 않겠지.

아무리 내 아바타가 되며 능력치가 나와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진 이드라라도 신은 신이다.

하지만 또 지수도 보통내기가 아니니 둘이 싸우기라도 하면 길드가 쑥대밭이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다행히 늘 지수가 먼저 숙이는 편이라 큰 문제는 없었지만…….

‘이러다 한번 터지지.’

지수의 말마따나 나는 이상한 존재들에게 인기가 있는 모양이다.

나는 작게 한숨을 쉬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김세한 씨, 맞으세요?」

전화를 받으니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아직 앳된 티가 남아있는 여성의 목소리다.

“누구신데 제 번호를 알고 전화하신 겁니까?”

「아, 저저저는 민아의 친구인 혜미예요! 미, 민아가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해도 괜찮다고 했는데…….」

지선과 혜미, 이 둘은 민아의 친구다.

현재 신자운과 함께 있는 아자젤이 거느린 악마의 계약자들이었다.

‘확실히 민아에게 번호를 알려주라고 했었지.’

다만 이렇게 전화가 온 건 처음이었다.

왜 하필 지금 전화를 한 거지? 나는 묘한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네, 괜찮습니다. 무슨 일로 전화하신 거죠?”

「그, 그게 도와주세요!」

혜미는 다급한 어조로 소리쳤다.

방금 전까지 소심하게 중얼거리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이상한 사람들이 수아를 납치해 갔어요! 자운 오빠가 쫓아갔지만 부, 불안해요. 혹시 도와주실 수 없을까요?」

민수아.

민수호의 동생이자 1회차에는 이미 죽었던 존재.

그 능력은 미래를 보는 것. 1회차의 기억을 통해 미래를 유추하는 나와 달리, 민수아는 수많은 가능성을 읽고, 그곳에서 가장 가능성이 높은 미래를 볼 수 있었다.

내가 꾸준히 감시를 해온 플레이어 중 하나였다.

‘없다.’

나는 황급히 신자운이 머무는 아지트 근처를 까마귀의 눈으로 확인했다.

확실히 민수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지트는 엉망진창이 되어있었고, 상당히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들어왔다가 나간 흔적만이 남아있었다.

「자운 오빠와 아자젤 님이 없을 때를 노린 것 같아요.」

“민수아는 그것을 예지하지 못한 겁니까?”

「모, 몰랐던 것 같아요. 그들을 본 이후에야 ‘이제야 보여’라고 중얼거렸을 뿐이에요. 그리고 저희에게 세, 세한 씨에게 전화하라고 하며 얌전히 끌려갔어요.」

이제야 보인다?

그렇다는 건 또 한동안 제대로 미래가 읽히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마 내게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메시지겠지.’

민수아는 신중했기에 자신이 본 것을 함부로 발설하지 않았다.

민아를 통해 수아에 대한 정보를 상당히 들었기에 잘 알고 있었다.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존재가 등장하면 한동안 미래를 볼 수 없다는 것도.

최근 나와 관련된 일들 때문에 그런 일이 잦았던 모양이라 방심했던 건지도 모른다.

「저, 저기 도와주실 수 있으신가요?」

“바로 가겠습니다.”

삑.

나는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창밖으로 뛰어내렸다.

궁기의 날개를 펼치고 전속력으로 비행했다.

‘분명 이번 일과 관련이 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내 본능이 그렇게 속삭이고 있었다.

왜 하필 지금인가.

콜라보 퀘스트가 밀리고 새로운 메인 퀘스트가 시작되기 전에 생긴 공백의 시간을 노린 누군가.

분명 내가 모르는 일이 시작되고 있었다.

***

인천에 있는 한 건물.

까마귀로 가끔 관찰했을 때만 해도 멀쩡했던 건물이 풍비박산이 나있었다.

“어머나, 까마귀. 안녕.”

그런 건물을 올려다보고 있던 아자젤이 나를 보고는 반갑게 인사했다.

태연한 인사였지만 그녀의 얼굴은 상당히 언짢았다.

“습격한 자들이 누구인지 아나?”

“몰라. 들은 바로는 걔네랑 복장이 비슷했던 모양이야.”

아자젤은 손가락으로 한쪽 구석에서 내 눈치를 살피고 있는 두 소녀를 가리켰다.

민아의 친구인 지선과 혜미다.

그 말은 아자젤도 이곳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걔네?”

“중국에서 왔던 애들.”

창천길드를 말하는 건가?

즉, 무복을 입고 있는 자들이라고 보면 되겠군.

‘창천이 이런 일을 벌일 일은 없고, 다른 중국에 있는 플레이어들이 민수아를 노렸을 리도 없어.’

민수아에 대한 정보는 내가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었다.

거기다 최근 한국에 들어온 플레이어 중에 중국에서 온 플레이어는 없었다.

‘설마.’

나는 중원을 떠올렸다.

콜라보 퀘스트가 미뤄진 상황에서 게이트를 열고 등장했다는 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애초에 퀘스트가 밀린 것부터가 이상한 일이었다.

“그놈들을 잡아야겠어.”

문제는 한동안 서울에 까마귀를 풀어둔 터라 인천에는 까마귀가 몇 마리 남아 있지 않았다.

녀석들이 어디로 도망갔는지 위치를 잡기가 어려웠다.

그런 내 생각을 읽었는지 아자젤이 말했다.

“마침 내 계약자가 녀석들의 뒤를 잡은 모양이네. 따라올래?”

“웬일로 친절하군.”

“나도 누군지 궁금하거든.”

아자젤은 웃었다.

하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건방지게 나태의 악마의 것을 가져간 놈들이 누구인지 말이야.”

이 건물은 아자젤의 영역이나 마찬가지였고, 그들은 그것을 침범한 것이다.

웬만한 일에는 귀찮아서 움직이지 않는 아자젤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상황이 달랐다.

“따라와, 저쪽이야.”

아자젤은 가볍게 뛰었다.

그러자 가녀린 그녀의 몸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분명 능력치는 평범한 플레이어들과 크게 다른 게 없는데도 아자젤의 움직임은 놀랄 만큼 빨랐다.

나 역시 그런 아자젤을 궁기의 날개를 사용해 쫓아갔다.

그림자에서 소환한 까마귀들을 이용해 인천 전역에 퍼트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느 정도를 이동하자 목뒤가 따끔거렸다.

이건 일반적인 플레이어나 몬스터의 기운이 아니다.

‘신위가 느껴져.’

신위는 크지 않았지만 그건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초상계도 아닌 장소에서 신위가 느껴졌다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신위가 느껴지는 장소에서 누군가가 싸우고 있었다.

아마 신자운인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신자운의 힘이 크게 흔들렸다.

“위험해.”

아자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표정은 처음으로 초조함이 깃들었다.

“역시 지금 몸의 상태로는 느려서 제 시간에 도착하기 힘들겠어. 까마귀, 너라면 갈 수 있겠지? 이제 대략 위치도 알았잖니?”

“물론이다.”

“그럼 부탁해. 이 보답은 나중에 할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보답이 없어도 도와줄 생각이었다.

그녀는 이전에 알데바란을 막아준 적이 있었으니까.

비록 그것이 그녀의 호기심에 비롯된 선의였다고 해도 그녀가 벌어준 시간 덕에 린이 각성할 수 있었다.

나는 한층 속도를 올렸다.

신위를 끌어올리자 그 속도는 한층 올라갔고, 내 주변으로 소닉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저기다.’

보였다.

신자운은 무릎을 꿇고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앞에 한 자루의 창을 쥔 청년이 오만하게 웃고 있었다.

그는 창을 들고 신자운의 목을 찌르려했지만 내가 날아오는 소리를 들었는지 인상을 찡그리며 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동시에 나 역시 한층 속도를 올렸다.

녀석의 창이 신자운의 목을 꿰뚫는 것보다 빠르게 나는 유성처럼 녀석을 향해 떨어졌다.

떨어지는 속도 그대로 다인슬라이프를 꺼내 내리찍었지만, 녀석은 그것을 피하지 않고 받아냈다.

콰콰쾅!!

“큭!!”

음속으로 날아온 그대로 내리찍은 다인슬라이프의 위력에 창을 든 청년의 눈이 찡그려졌다.

그 충격에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바닥이 갈라지며 크게 부서졌고, 주변에 있던 무인들이 충격파에 날아갔다.

상당한 충격이었을 텐데도 창을 든 청년은 크게 힘겨워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이정도로는 전혀 타격을 줄 수 없는 모양이다.

‘보통 강한 게 아닌데?’

적어도 일반적인 플레이어는 아니다.

하긴 그렇지 않고서야 신자운이 졌을 리가 없지.

나는 다인슬라이프에 힘을 줘 녀석의 몸을 크게 밀어내며 신자운의 곁에 착지했다.

“……이곳은 어떻게 온 거지?”

“여러 사람들에게 부탁을 받았거든.”

떨떠름하게 묻는 신자운의 말에 나는 대충 대답했다.

무릎을 꿇고 있어 크게 다친 것은 아닌가 싶었는데, 다행히 크게 다친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물러서, 이젠 내가 상대하지.”

신자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존심이 상할 법한 말임에도 그는 크게 신경 쓰는 눈치가 아니었다.

‘민수아는……, 저기로군.’

두 명의 무인의 손에 잡힌 민수아의 모습이 보였다.

열댓 명의 무인들은 신자운에게 쓰러져 있었고, 다른 무인은 보이지 않았다.

저 둘과 창을 든 청년이 끝이다.

“명불허전이로구나.”

창을 든 청년이 자세를 고쳐 잡으며 웃었다.

그의 기도는 외형과 달리 상당히 노회했다. 마치 오랜 시간 수련해온 노인의 품격을 가지고 있었다.

“나를 아나?”

“지존께서 너를 조심하라고 하셨지. 중급 신위를 가진 플레이어라고 말이야. 확실히 대단해.”

“중원에서 왔군.”

“그렇다.”

살짝 떠보듯이 한 말이었는데 그는 흔쾌히 답했다.

정말로 중원에서 왔다고? 대체 무슨 수로?

“지존이 이 아이를 원하시니 안타깝지만 너를 죽일 수밖에 없구나.”

오만한 말이다. 그도 신위를 가진 플레이어인 건 분명했지만 나보다 격이 낮았다.

하지만 그것을 커버할 수 있을 만큼 높은 능력치를 지니고 있었다.

“나는 만환창귀(萬幻槍鬼) 청연. 십존(十尊)의 한 자리를 차지한 이에게 죽는 걸 영광으로 생각하라.”

십존?

난생 처음 듣는 명칭에 당혹스러웠다.

그런 내 심경은 무심코 얼굴에 나타났던 모양인지 청연이라 자칭한 남자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아마 자신에 힘에 내가 당황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후회해도 늦었다.”

쉬이이익!!

녀석의 창이 나를 향해 찔러왔다.

내 목을 향해 질러오던 창이 뱀처럼 휘어지며 수십 개로 분열했다.

일반적인 창술이 아니다, 이것은 무공이며 초식.

그것도 천변만화의 묘를 실은 창술은 신묘하기 그지없었다.

‘이래서 졌구만.’

신자운이 패배한 것도 납득이 갔다.

격투기 선수 출신인 그라도 중원의 초식은 낯선 것이었으리라.

수십 개로 갈라진 창은 단 하나를 제외하고 모두 허초였다.

만환창귀, 그 별호에 걸맞은 기술.

“미안한데, 너 나랑 상성이 별로 안 맞는 거 같다.”

최근 상성빨로 먹고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았다.

많은 변화와 환영을 답은 기술은 미안하지만 내게 전혀 통하지 않았다.

카앙!

“음?”

다인슬라이프를 휘둘러 아주 가볍게 녀석의 창을 쳐냈다.

수십 개로 갈라지던 창 중에 오직 진짜만을 찾아 튕겨낸 것이다.

당연히 이렇게 쉽게 내가 튕겨 내리라 생각하지 못했던 청연의 눈동자가 조금 커졌다.

‘아무리 대단한 무공과 기술이라도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것.’

막고 때리면 된다.

그러니 너는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길러라.

혈마는 내게 그리 말했다.

그렇기에 나는 무공을 사용할 수는 없었지만 그것을 상대하는 법은 아주 잘 알았다.

특히 이드라를 아바타로 둔 지금의 내게는 변초라는 건 쓸데없는 잔가지에 불과했다.

검을 튕겨냈음에도 공격하지 않고 오연히 서 있는 내게 청연의 입가가 씰룩였다.

“오만한 얼굴이구나.”

그렇게 말한 녀석의 창은 한층 빨라졌고 수십 개이던 환영은 수백 개로 늘어났다.

수백 개의 환상 속에서 진짜는 수십 개.

카카카캉!!

나는 그것을 모조리 쳐냈다. 단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두.

그제야 청연의 얼굴색이 변했다.

처음의 공격과 달리 이번 것은 나름 진심을 담아 공격했던 모양이다.

그런 녀석에게 나는 씩 웃었다.

“오만해도 되거든.”

적어도 너한텐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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