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154화 (154/332)

# 154

154. 뒤틀린 콜라보(1)

‘이 녀석에 대한 정보는 그다지 없는데.’

1회차에서 아키넨은 나와 엮일 일 자체가 거의 없었다.

영국 서버의 GM이었던 아키넨을 내가 만날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그렇다보니 소문만 들었을 뿐이며, 후에 지구가 멸망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모습을 감춘 지 오래였다.

‘로키와 연관되어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로키는 영리한 신이다.

신들 중에서도 머리로만 따지면 손에 꼽힐 정도로 좋았다.

그런 그녀가 퍼블리셔에게 몸담았던 티탄을 소개시켜 줬다는 건 그만큼 아키넨이라는 자가 안전하다는 뜻이다.

로키가 내가 티탄을 소개시켜 달라고 한 의도를 모를 리가 없었으니까.

“음, 그럼 우선 몇 가지만 묻겠다.”

나는 일부로 건방진 어조로 말했다.

이쪽은 고용주의 입장이다. 굳이 공손한 태도로 나갈 필요가 없었다.

만약 아키넨이 다른 의도로 왔다면 이런 내 태도에 분노를 느낄 것이다.

티탄은 신과 동등한 존재였으니, 아무리 신위를 얻었다고 한들 플레이어에 불과한 내게 굴욕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얼마든지 하셔도 좋습니다.”

아키넨은 태연하게 카페의 의자에 앉으며 웃었다.

내 건방진 태도 따윈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얘 왜 이래?’

그 시선이 난 상당히 익숙했다.

저번 이벤트 퀘스트에서 계속 느꼈던 아키넨의 시선이다.

뭐라고 형용하기 힘든 그 눈빛에는 묘한 호감이 담겨 있었다.

“내가 왜 너를 만나고 싶어 한지 알고 있나?”

“GM을 할 티탄이 필요한 거겠죠.”

“넌 퍼블리셔에 소속된 티탄이 아닌가?”

“사표 냈습니다.”

차분한 녀석의 대답에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사표 냈다는 말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내가 널 고용하지 않으면 어떡하려고?”

“그럼 좀 쉬죠, 뭐. 몇 천 년 간 일만 했는데 몇 백 년 쉰다고 별일이 생기겠습니까.”

확실히 그렇긴 하다.

이런 아키넨의 태도에 도리어 내게 의문만을 증폭시켰다.

“솔직히 난 네가 의심스럽다. 왜 너는 이런 내 태도에도 불만을 가지지 않는 거지?”

“중위신격을 지닌 플레이어에게 제가 어찌 불만을 지닐까요. 뭐, 이런 대답을 원하는 건 아니겠죠.”

아키넨은 그렇게 말하곤 씩 웃었다.

“아카터스 선배와 얽힌 일은 알고 있습니다. 아마 세한 님이 선배를 죽였을 테죠.”

혹시 앙심을 품었나 싶어 얼굴을 살폈지만 그런 기색은 없었다.

“선배는 원래 그런 자였습니다. 약한 자를 착취하고 현재 위치에 안주하는 이였죠. 그것이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만, 언젠가 이런 일이 생기지 않을까 예상하곤 했습니다. 필멸자들 중에선 간혹 당신과 같은 영웅이 나오는 법이니까요.”

그렇게 운을 띄운 아키넨은 나를 직시했다.

그 눈에는 어떤 거짓도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전 당신의 팬입니다. 보통의 플레이어라면 이룰 수 없는 업적을 당신은 벌써 몇 개나 해냈죠. 거기다 GM…… 거인까지 쓰러트렸습니다. 전 당신이 과연 어디까지 해낼 수 있을지 보고 싶습니다.”

호감이 가득담긴 그의 말에 나는 뭐라 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꽉.

그때 지수가 내 팔을 꽉 잡으며 아키넨을 노려봤다.

마치 적을 만난 것처럼 눈동자가 붉게 물들었다.

이드라와 내가 단 둘이 있을 때 가끔 보이는 모습과 비슷했다.

‘지수는 또 왜 이래?’

당황한 나와 달리 아키넨은 그 이유를 대략 짐작했던 모양이다.

녀석은 지수의 시선에 어깨를 움츠리며 말했다.

“걱정 마시죠. 티탄은 보통 무성이긴 합니다만, 세한 님에게 그런 류의 호감은 지니지 않았으니까요.”

티탄은 무성이었어?

이건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생각해보면 로키만 해도 남녀를 가리지 않으니 이상한 것도 아니다.

‘지수는 그럼 방금 아키넨을 연적이라 생각해서 노려봤다는 건가?’

지수가 내게 호감을 품은 이들에게 묘한 적대감을 지닌 건 알고 있었다.

다만 그것이 여성뿐이 아니라 아키넨과 같이 남성의 모습을 한 이들도 포함한 것인지는 몰랐다.

아키넨의 말에 그제야 지수의 기세가 누그러졌다.

[얘 말은 믿어도 괜찮아. 신의 이름을 걸고 보장해 주지.]

한 마리의 뱀이 내 팔에 얽혀왔다.

로키의 옵저버였다.

이렇게 직접 나서서 보장해 주는 로키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아키넨의 말에선 어떤 거짓도 찾을 수 없었다.

‘거기에 퍼블리셔에서 오래 일했다면, 그곳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을 거야.’

퍼블리셔에 관한 정보는 나도 그리 많이 알지 못한다.

초상계 자체에 가본 적 없는 나로선 다른 별에서 만난 초월자인 그나, 혈마를 통해 들었던 내용이 전부였다.

“그럼 그냥 아키넨이라고 부르면 되나?”

“예.”

나는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이젠 한 배를 타게 됐으니 더 이상 강압적으로 나갈 필요가 없었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해.”

“감사합니다.”

경계는 늦추지 않겠지만, 당장 아키넨 말고 다른 GM을 구하기도 힘들었다.

퍼블리셔에서 오래 일했다면 노하우도 있을 테니 이만한 인재가 없었다.

아키넨과 악수를 한 후, 옆으로 시선을 돌리자 걱정스런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지수가 있었다.

지수는 입을 달싹이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오빠는 이상한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으니 걱정이에요.”

확실히 공감되는 말이었기에 나는 지수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다만, 거기에는 지수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는 걸 알지 모르겠다.

***

게임이 오픈하고 두 달이 지났다.

아키넨은 내 예상보다 GM으로서 우수했다.

전 세계가 하나의 통합된 서버로 이루어진 탓에 관리할 것이 이전보다 배는 많을 텐데도 특별한 문제 한번 일어난 적이 없었다.

두 달 동안 간단한 메인 퀘스트가 지나갔지만 특별한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덕분에 나도 플레이어로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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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김세한

칭호: 2회차 플레이어

특성: 싱글 플레이어, 아픈 소녀의 사랑

신격: 중위급

힘: B (100 +40)

민첩: B (100+27)

마력: B (24+30)

체력: B (51+38)

보유 스킬:

[결전의 시간(E)(성장형)], [재생(E)(성장형)], [천살성(S)(공유스킬)], [탐사(B)], [그림자 질주(B)], [필중(B)]. [소음차단-하(E)], [초월의 증명(S)(성장형)], [사냥꾼의 감(E)] [까마귀의 눈(B)] [흑의 장막(A)] [궁기의 날개(B)] [심안(A)] [마력증폭(A)] [염동력(A)][뼈를 깎는 단련(A)][수중호흡(B)][원소저항(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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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현재 나의 능력치다.

최근 전승 받은 스킬로 수중호흡과 원소저항을 가져왔다.

이건 후에 있을 일을 대비해 얻어둔 스킬들이었다.

아직 사용하려면 상당한 기간이 남아 있었지만 미리 얻어둬도 나쁠 것 없는 스킬들이었으니까.

‘능력치를 다 올리지 못한 건 아쉽지만…….’

이제 내 포인트는 이드라에게 상당량 전달되는 터라 이전처럼 모든 능력치를 올리기 힘들었다.

2회차에서 처음 느끼는 포인트 부족 현상이다.

그래도 효율적으로 포인트를 얻은 탓에 다른 플레이어보다 압도적인 능력치를 지녔다는 건 변하지 않았다.

다만 지수는 나보다 능력치가 높았다.

나와 파티로 맺어진 녀석들.

아서, 창우도 다른 플레이어에 비하면 대단한 능력치를 지니고 있었지만 지수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지수는 이상할 정도로 강해지는 것에 집착한단 말이지.’

어쩐지 내가 올림포스에 가기 전에 했던 말 때문인 거 같은데…….

‘강해져서 나쁠 건 없지만 뭔가 찜찜하단 말이야.’

아마 린에게 자신의 자리를 빼앗길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여태 내 파트너라고 하면 보통 지수가 옆에 있었으니.

하지만 이대로라면 그 자리를 린에게 내줘야 한다고 생각했을 확률이 높다.

“한지수.”

“네?”

흉성의 학살자에 묻은 피를 닦던 지수가 나를 올려보았다.

“어흠, 그 뭐시냐. 혈천수라공은 진전이 좀 있어?”

내가 혈천수라공에 대해 물었던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올림포스에 가기 전에 물었으니 한 달 좀 전이다.

그 짧은 시간동안 뭔가 발전이 있었다고 보기는 힘들었지만 그냥 간만에 대화라도 해볼 겸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네, 있어요. 조금만 있으면 극성에 도달할 것 같아요.”

“……뭐? 그걸 어떻게 알아?”

“그냥, 어쩐지 알 거 같아요.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지수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천살성의 살기가 완벽히 갈무리되고 있었다.

이제는 ‘언제나 착한 아이’ 특성이 없더라도 이전처럼 광기에 물들지 않으리라.

‘뭔 말도 안 되는.’

혈마가 보면 기겁할 일이다.

그도 희대의 천재인 건 분명했지만 혈천수라공을 극성에 도달한 건 노인이 된 이후였다고 했다.

지수의 재능은 뛰어났지만 혈마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내가 보기엔 큰 차이가 없었다.

그렇기에 이 성장속도는 말이 되지 않았다.

‘천살성으로서 혈마보다 뛰어나다는 건가?’

이유를 찾자면 그것뿐이다.

혹은 린과 만난 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고.

어쨌든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거 혈마가 와도 딱히 배울 게 없을지도 모르겠는데.”

“네?”

“아니, 이제 조금 있으면 시작될 것 같아서.”

“어떤 게요?”

“콜라보 퀘스트.”

오늘 지수를 찾아온 건, 조금 있으면 열릴 메인 퀘스트 때문이었다.

기존의 메인 퀘스트와 달리, 이제부터는 다른 차원과 엮인 퀘스트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것을 보통 콜라보 퀘스트라고 불렀다.

지역마다 다른 별과 콜라보가 열렸고, 한국의 경우에는 ‘중원’과 엮인 퀘스트였다.

“아, 그거.”

지수는 이전에 내가 했던 설명을 떠올렸는지 고개를 주억거렸다.

“서울에서 거대한 게이트가 열릴 거야. 우리는 그곳에서 나온 자와 싸워야 해.”

본래라면 좀 더 이후에 나올 퀘스트였지만 시간이 너무 단축되었다.

그러니 혈마가 아닌 다른 자가 나올 확률도 있었다.

‘하지만 혈마가 중원의 지배자가 된 때를 생각하면 오히려 지금이 전성기겠지.’

콜라보가 중원과 진행되는 건 확실하다.

이드라가 시스템에 접촉해 확인한 사실이니까.

날짜도 앞으로 일주일 뒤로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전성기의 혈마는 상당히 호전적이었으니 1회차처럼 물렁하게 상대해 주지 않을지도 몰라.’

1회차의 퀘스트는 혈마에게 인정을 받는 거였다.

단 한 명이라도 상관없었다.

준 초월자에 이른 혈마에게 인정을 받는 플레이어가 나와야 클리어되는 퀘스트.

얼핏 들으면 간단해 보이지만 결코 쉬운 게 아니다.

무림인인 혈마는 누구보다 깐깐한 자였고, 그에게 인정받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만약 인정받은 플레이어가 나오지 않았다면 서울에 있는 플레이어의 절반은 혈마의 손에 죽었을 것이다.

그런 퀘스트였으니까.

“또 오빠가 싸울 거예요?”

“아니.”

지수는 1회차의 내 기억을 읽었기에 알고 있었다.

1회차에서는 내가 혈마와 싸워 겨우겨우 그를 만족시킬 수 있었다.

아마 지금도 가능할 거다.

나는 그가 무슨 기술을 사용할지 죄다 알고 있었으니까.

녀석은 그때 내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는지 퀘스트가 끝난 후에도 한참동안 지구에 머물며 내게 혈천수라공을 알려줬다. 제자도 아닌 내게 말이다.

“이번엔 네가 싸워.”

“제가…….”

“자신 없어?”

“아뇨, 재밌을 것 같아요.”

지수가 싱긋 웃었다.

가끔 지수의 미소는 섬뜩하기도 했다.

지수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그 알데바란에게도 덤벼들 만큼.

그것이 지수의 장점이며, 단점이었다.

***

“그럼 어디 보자.”

나는 상공에 까마귀의 눈을 띄우고 살폈다.

아직 콜라보 퀘스트가 시작되려면 며칠 시간이 남아있었지만,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미리 까마귀를 서울 전체에 뿌려둘 생각이었다.

혹여나 이미르가 손을 써서 예상치 못한 시간대에 콜라보 퀘스트가 시작될 수도 있었으니까.

중원은 퍼블리셔가 운영하는 차원 중 하나.

그것은 지구와 비슷한 장소이며 다른 곳이었다.

이름은 무협지에서 흔히 나오는 중원이었지만 개념만 같고 본질은 달랐다.

중원이 있는 장소는 지구의 과거가 아닌 전혀 다른 별이었다.

무공이 극도로 발달된 세계, 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참 아가트람도 찾아가야 하는데 말이야.”

서울로 이전한 아가트람의 건물 위에 까마귀를 올려두니 녀석들과 했던 약속이 떠올랐다.

세계 최고의 길드로 만들어 주겠다는 약속.

‘아자젤과 또 만나야 할지도 모르겠어.’

그녀에게는 딱히 볼 일이 없었지만, 그녀의 주변에 머물고 있던 한 플레이어가 필요했다.

바로 민수호.

녀석은 1회차의 아가트람의 핵심멤버 중 하나였다.

하지만 나는 민수호만 아가트람으로 옮길 생각이 아니었다. 아자젤의 계약자인 신자운과 미래를 볼 수 있다는 민수호의 동생도 포함됐다.

만약 그들을 모두 아가트람에게 흡수시킨다면 아가트람은 확실히 세계최강의 길드라는 말에 가까워질 것이다.

‘우선 콜라보 퀘스트가 끝나고 생각해 보자.’

그건 당장 급한 일도 아니었다.

나는 느긋하게 까마귀를 서울 전역에 뿌리며 최대한 콜라보 퀘스트에 대비했다.

언제 어디서 게이트가 열려도 바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하지만 일주일 후.

서울에서 게이트가 열리는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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