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2
152. 게임을 운영하는 방법(1)
“우와, 뭔 대기열이 이래? 서버 터진 거 아냐?”
어릿광대, 로키는 계속해서 늘어나는 대기열에 투덜거렸다.
망겜은 아니긴 했지만 이렇게 흥겜도 아니었다.
대기열이라는 건 오픈 첫날 잠깐 발생했던 것 이후로는 단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었다.
‘분명 서버는 그대로 들고 시작했을 텐데.’
그럼 추가로 몰려드는 신이 이렇게 많은 건가?
“정말 아바타가 아닌 플레이어를 찾기 힘들어질 정도겠는걸.”
플레이어의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은 일이다.
서버 종료에서 멀어지게 되며 메인 퀘스트에서 생존권이 올라가게 되니까.
다만 신들의 입장에서는 게임의 난이도가 급격하게 내려가게 되어 재미가 반감되곤 했다.
게임을 할 때 스트레스를 받는 걸 싫어하는 신들은 그런 걸 좋아했지만, 로키와 같은 경우엔 적당히 난이도가 있는 걸 좋아했다.
‘과연 까마귀는 어떻게 대처하려나.’
이드라와 까마귀의 관계는 현재 신들 사이에서도 상당히 말이 나오는 편이다.
둘이 어떤 관계인지가 최대의 관심사였다.
이드라가 세한의 아바타가 되었다는 설도 돌았지만, 대부분의 신들은 우스갯소리로 넘기곤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말이야.’
이드라는 외우주의 신격.
그것도 아우터갓에 속하는 신이다.
로키와 같은 최상급 신위로 분류되지만 그것 신위를 측정하는 한계치가 최상급이 끝이기 때문이지, 결코 이드라가 로키가 동급이라는 말이 아니다.
로키 본인도 어디 가서 꿀리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아우터갓은 예외였다.
그쪽 족속은 별이 아니라 우주에서 탄생한 신이다.
보통 하나의 별에서 탄생하여 초상계에 오게 되는 신들과는 급이 다르다.
자신이 거주하는 우주 전체를 지배하는 신들이 아우터갓이다.
그야말로 신중에서도 신이라고 할 수 있는 부류다.
‘근데 까마귀는 신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는데.’
의심스럽기 짝이 없는 꿈의 마녀를 아바타로 삼았다?
솔직히 납득하기 힘들었다.
이드라가 고개를 숙이고 세한의 아바타가 되기를 자청했다는 것보다 그쪽이 더 의심스러웠다.
그 의심 많고 깐깐한 녀석이 아우터갓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다니.
“아, 게임이 접속돼야 뭘 알아보든가 하지!”
접속만 되면 그간 있었던 일을 자신의 아바타에게 죄다 물어볼 생각이었다.
오매불망 커뮤니티에 접속되기를 기다리던 찰나, 커뮤니티에 서버가 확충되었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대체 어디서 서버를 구한 거지?’
이것도 이드라의 힘인가?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서버가 확충되기 무섭게 대기열이 무서운 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접속됐다.”
게임에 접속되었다는 알림이 울렸고, 어릿광대는 우선 GM이 운영하는 옵저버를 찾았다.
‘옵저버가 없네?’
그럼 공용 옵저버를 사용하라는 소리인가?
그런 생각이 들어 게임이 새롭게 오픈하며 바뀐 개선점을 둘러보았다.
[이제부터 옵저버는 무료로 이용이 가능합니다.]
“뭐?”
공용 옵저버라는 개념이 사라졌다.
이제 어떤 신이든 자신의 옵저버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며 영상을 올릴 수있게 되었다.
“이러면 포인트를 뭐로 벌어?”
공용 옵저버는 상당한 양의 포인트를 주기적으로 사용해줘야 하는 만큼 게임의 주 수입원 중 하나였다. 그런데 그것을 무료화 시키다니.
무료화된 건 옵저버만이 아니었다.
게임을 이용하기 위해선 부가적으로 들어가는 잡다한 불편점들.
예를 들어 메시지 횟수 제한도 사라져 있었다.
이래서야 게임을 운영해서 뭐가 남는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그런 반응을 보인 건 로키만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오픈하기 무섭게 이런 게시글이 올라올 정도였다.
==
제목: 이렇게 하면 대체 뭐가 남죠?
바로 여러분이 남습니다.
댓글
익명: 으윽, 눈부셔.
익명: 뭐죠, 빛밖에 보이지 않는데요.
익명: 갓갓갓. 역시 아우터갓은 씀씀이가 차원이 다름.
==
“진짜 아우터갓이라서 그런가?”
이게 바로 우주밖 운영?
그런 생각을 하며 무료로 이용이 가능한 옵저버를 조작하자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이제부터 옵저버를 자신의 취향에 맞게 커스텀할 수있습니다.]
[옵저버 커스텀을 하기 위해선 스킨을 구매해야 합니다.]
[스킨은 일반적으로 구매할 수 있는 스킨이 있으며, 랜덤박스에서 등장하는 희귀 스킨이 존재합니다.]
[스킨은 외형적인 변화만 추가되며 게임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없습니다.]
“옵저버 스킨?”
이건 또 새롭다.
여태 수 없이 다양한 게임을 이용하며 옵저버를 이용했지만, 옵저버에 스킨을 씌운다는 건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별로 대단한 것 같지만, 적어도 로키에게는 확실히 먹혔다.
로키는 외형을 상당히 따지는 편이었다.
남자든 여자든 자유롭게 변신할 수 있는 터라 본래의 성별은 잊은 지 오래였지만 한동안 여신으로 변해 있던 탓인지 눈깔 모양의 옵저버가 마음에 들지 않던 차였다.
“괜찮은 거 많네.”
기본적으로 날개를 달아주거나 간단히 색깔을 변경할 수도 있었고, 외형부터 동물형인 스킨도 존재했다.
“그런데 희귀스킨은 뭐지?”
옵저버 스킨 구매창을 쭉쭉 넘겨보다보면 랜덤박스가 보였다.
아마 여기서 희귀 옵저버 스킨이 나오는 모양이었다.
첫 1회는 무료였는데, 로키는 그곳에서 분홍색 옵저버 스킨이 나왔다.
“뭐야, 이게.”
커뮤니티를 검색하자, 이미 랜덤박스에서 희귀 스킨을 뽑은 신이 나왔다.
==
제목: 아직도 희귀 스킨 못먹은 신 없지?
아, 먹을 생각 없었는데 1뽑만에 먹었네ㅋㅋㅋ
인간형 스킨 나왔는데 이거 좋음?
보통 때는 평범한 옵저버 모습이다가 하루에 한번 커스텀한 인간형으로 변한다는데 ㅋㅋ
댓글
익명: 너 스틱스강 건너볼 생각없냐.
익명: ㄴ이 새끼 명계 출신인듯ㅋㅋ.
익명: 이거 좋음이라고 묻는 놈치고 좋은 거 모르는 놈 없다.
익명: 이런 건 너희 신화 커뮤니티에나 올려라, 응?
==
“호오, 그렇단 말이지.”
커뮤니티를 찾아본 결과 희귀 스킨이 나올 확률은 상당히 낮은 모양이다.
그래도 일반적으로 구매할 수 있거나, 기타 꾸밈 아이템이 나오기에 그렇게 나쁜 건 아니었다.
“난 운이 좋으니까, 한 두세 번 뽑으면 나오겠네.”
100연뽑 폭사했다고 징징 거리는 신의 글을 보며 로키는 킥킥 웃었다.
마음만은 벌써 1뽑에 먹은 기분이었다.
이미 머릿속으론 어떤 식으로 다른 신들을 기만할지 생각도 해뒀다.
그녀가 제일 잘하는 건 남을 놀려먹는 일이었으니까.
“자, 그럼…….”
로키는 기분 좋게 랜덤박스를 구매했다.
몇 번 돌려보고 나오지 않으면 깔끔하게 접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로키는 알지 못했다.
랜덤박스를 구매한 순간부터 이미 수렁에 빠지고 말았다는 걸.
***
“오, 오우.”
이드라가 놀랐다.
녀석이 이렇게 놀라는 경우는 무척이나 드믄 경우였다.
“왜 그래?”
“아니, 뭐시냐. 벌써 매출이 엄청나게 나왔도다.”
“응?”
“실시간으로 커뮤니티 반응을 서칭해보니 옵저버 스킨 랜덤박스를 구매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그게 아우터갓님이 놀랄 만큼 반응이 좋은 모양이다.
‘대체 얼마나 나왔길래.’
현재 공개된 랜덤박스는 옵저버용 랜덤박스뿐이었다.
내가 준비한 랜덤박스는 두 가지로, 하나는 옵저버 다른 하나는 아바타를 꾸밀 수 있는 랜덤박스였다.
후자의 경우에는 나중에 광고를 따로 하고 풀 생각이었는데 예상외로 옵저버 랜덤박스도 상당히 반응이 좋은 것 같았다.
“예상대로군요.”
이제 안색을 되찾은 김경수 팀장이 말했다.
“신이 직접 조작할 수 있는 옵저버를 꾸밀 수 없다는 것부터가 이상했습니다. 매출이 나오는 건 당연하죠.”
“장기적으로 보면 어떨 것 같습니까? 혹여나 커뮤니티 반응이 나빠지거나…….”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사장님이 말했듯 자신을 뽐내기를 좋아하는 신들이라면 말이죠. 자존심이 강해 대놓고 항의하지도 않을뿐더러 스킨 자체에 능력치가 붙은 게 아니니 굳이 왈가왈부 하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스킨에 관심이 없는 신도 있었지만, 관심을 가지는 쪽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왜냐면 스킨이 없는 옵저버는 뒤처지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하나같이 ‘신’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만큼 자존심은 인간과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높으니, 평범한 옵저버를 사용하고 싶지 않겠지.
“서버도 아슬아슬했군.”
자칫했으면 서버가 그대로 터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제우스에게 올림포스의 서버를 일부 뜯어온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 그래. 우린 같은 배를 탄 처지이니 빌려주도록 하겠다. 어쩔 수 없지…….」
바로 옆에 린이 두눈을 시퍼렇게 뜨고 보고 있는 터라 제우스는 내 말을 무조건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린이 올림포스에 있는 이상 제우스는 우리의 부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덕분에 올림포스에 머물던 신 일부가 밖으로 나가 살게 됐지만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겠지.
“대충 문제는 정리된 것 같네. 나머지는 이드라와 김경수 팀장이 관리해 주셨으면 합니다.”
“세한 씨는요?”
“저는 플레이어니까요.”
물론 나뿐이 아니라, 이곳에 있는 다른 디어사이드 길드원도 마찬가지였다.
이제부터 우리는 접속한 신들을 만나러 갈 시간이었다.
***
이미 하늘에는 형형색색의 옵저버들이 하늘을 채우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처음 오픈했을 때 보았던 광경과 흡사했다.
다른 점이라면 옵저버들의 모습이 하나같이 개성적이라는 점이다.
‘우와, 단 하나도 일반 옵저버가 없네.’
저게 다 매출이라고 보면 되나?
이드라가 놀라는 것도 이상한 게 아니구만.
“아, 어릿광대도 접속했다.”
민아가 내 소매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근데 오빠한테 각오하라는데?”
“나? 왜?”
그 의미를 깨닫기 전에 등에서 따끔한 충격이 달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 등을 돌리자 인형만 한 크기의 작은 여성이 있었다.
‘어릿광대구나.’
정확히는 인간형 스킨을 씌운 옵저버다.
자유롭게 변신할 수 있는 로키는 본래 모습이라고 할 만한 게 없었지만, 아마 현재 꾸미고 있는 모습이 이 아바타와 같은 모습인 거겠지.
이건 로키가 특별한 거다.
보통은 다른 모습으로 하는 게 정상이다.
본래의 정체를 감추는 게 암묵적인 룰이니까.
하지만 변신 스킬을 지닌 로키는 늘 모습이 바뀌다보니 같은 신들도 그, 혹은 그녀의 정체를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대화하는 건 처음이구나 까마귀.”
“민아의 아바타인 어릿광대싶니까?”
“연기도 잘하네. 참 마음에 드는데 말이야…….”
그렇게 말하는 어릿광대의 얼굴이 파르르 떨렸다.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이유를 곧바로 알아차렸다.
“대체 얼마 질러서 먹었습니까?”
내가 알기로 인간형 스킨은 확률이 어마무시하게 낮았다.
운 좋게 뽑은 거라면 절대 저런 얼굴을 하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천장…….”
“네?”
“천장 봤어, 이 나쁜 놈아!”
천장, 흔히 랜덤박스나 가챠게임에서 만들어 놓은 최소한의 양심.
일정 수치를 지르면 확정적으로 원하는 것을 먹을 수 있는 장치다.
물론 나도 커뮤니티에서 까이는 건 사절이었기에 천장을 만들어두긴 했다.
솔직히 없느니만 못한 천장이긴 했지만.
‘불쌍하게도.’
나는 연민이 담긴 눈으로 어릿광대를 볼 수밖에 없었다.
이런 분들이 계셔서 게임들이 먹고사는 거지.
“이거 인간형으로 한번 변하면 지속시간 얼마나 되는 거니?”
“아마 30분 정도일 겁니다.”
“그 돈을 빨아먹으면 좀 더 길어도 되잖아.”
“애초에 신이 이곳에서 떠들 수 있는 것부터가 특별한 겁니다. 30분도 대단한 거라고요.”
인간형 스킨은 나도 꽤나 도박이었다.
다행히 옵저버에 덧씌우는 형태에도 지속시간도 30분이라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시스템에서 경고를 보내왔을지도 모른다.
“그럼 얼마 안 남았네…….”
아마 내가 오기 전부터 변신하고 있었으니 상당한 시간을 낭비한 모양이었다.
“저기.”
민아가 조심스럽게 우리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진짜 어릿광대예요?”
“말 편하게 해. 나의 아바타. 내가 바로 너의 신인 어릿광대지.”
뒤늦게 위엄 있는 어조로 말했지만 민아는 조금 실망한 눈치였다.
그야 자신의 신이 랜덤박스에 돈을 꼬라박고 축 늘어져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조금 실망…….”
“이민아, 여기엔 신의 깊은 사정이 있단다.”
어릿광대가 황급히 민아에게 말을 덧붙였지만 민아의 얼굴은 풀어질지 몰랐다.
그래도 썩 나쁜 광경은 아니었다.
둘이 그만큼 친하다는 거니까.
이렇게 되기 전부터 상당량의 쪽지를 주고받던 사이니 어찌 보면 당연했다.
“어흠, 까마귀. 그럼 너는 이제 이 게임을 어떻게 진행할 거지?”
“예?”
“단순히 메인 퀘스트야? 그럼 조금 실망인데.”
“설마요.”
내가 평화롭게 진행하고 싶다고 해도, 그렇게 놔두지 않을 녀석이 있었다.
어릿광대도 대충 눈치 챘는지, 눈동자가 부드럽게 휘었다.
“뭔가 있는 모양이네.”
“예, 우선 그때가지 꿀 좀 빨 생각입니다.”
콜라보 퀘스트가 시작되면 정신이 없어진다.
열쇠의 반쪽을 가진 이미르라면 시스템에 영향도 끼칠 수 있을 터.
어쩌면 뭔가를 변질시켜 메인 퀘스트에 영향을 끼칠지도 모른다.
이드라가 막으려 해도, 내 아바타가 되어 힘도 제한된 탓에 한계가 있었다.
“좋아, 그럼 기대할게.”
그렇게 말한 어릿광대는 상큼한 웃음과 함께 작은 뱀 형태의 옵저버로 변했다.
아마 인간형 옵저버를 뽑던 도중에 얻은 스킨일 것이다.
지속시간이 다 되서 평범한 옵저버가 되기 전에 교체한 거겠지.
‘역시 돈을 빨아먹는 건 랜덤박스밖에 없다니까.’
온라인 게임 유저일 때는 끝없이 욕했던 랜덤박스가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이 속도면 게임을 구매하는데 든 포인트를 회복하는 것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