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146화 (146/332)

# 146

146. 열쇠의 반쪽(1)

“아바돈에 대해선 어느 정도 알고 있긴 합니다.”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자, 좌중의 시선이 내게 집중됐다.

나는 슬쩍 아폴론을 보았다.

아폴론은 여전히 나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다.

“마계에서도 몇 천 년 전부터 행방이 불명 됐다고 하더군요.”

“그럼 마계에서도 행방이 불명 된 악마가 올림포스에 왔다는 건가?”

헤르메스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 같았다.

“정확히는 그 악마는 애초에 마계 출신이 아니었던 건지도 모르죠.”

“흐음. 그럼 어디 출신이라는 거지?”

악마가 마계 출신이 아니라면 대체 어디냐는 눈치였다.

나 역시 1회차에 알게 된 정보가 아니면 아바돈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올림포스.”

내 목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주변이 워낙 조용해서 홀 전체에 울려퍼졌다.

당연히 내 말에 주변에 남아있던 신들은 크게 경악한 눈치였다.

“아바돈이 올림포스 출신이라니 말이 되는 소리를!!”

“무례한 녀석, 되는 대로 지껄이는 구나!”

웅성거리는 신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만 헤르메스는 조금 생각에 잠긴 눈치였다.

역시 그라면 대략 눈치를 챘을지도 모른다. 인간 세상의 이야기에 밝은 자이니까.

“증거는 있나?”

“증거를 만들 수는 있죠.”

“어떻게?”

“천칭을 사용한다면.”

헤르메스의 머리가 끄덕여졌다.

“린 테일러를 깨우는 데 도움을 달란 이야기군.”

“그쪽에도 나쁜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7대 악마가 올림포스에 숨어 있는 걸 찾을 수 있지 않습니까.”

내 말에 헤르메스는 제우스를 보았다.

제우스의 상황을 조용히 관조하고 있었지만, 특별히 내게 눈치를 주거나 저지를 하지 않았다.

마치 마음대로 해보라는 것처럼.

“신의 힘을 안정화 시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 이쪽의 입장에선 나름의 협상 카드였는데 말이야.”

헤르메스는 짐짓 아쉬운 얼굴로 말했다.

아마 내게 빚을 만들어 둘 기회가 사라진 게 아까운 것 같았다.

‘그럴 거라 생각했지.’

첫날에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은 것만 봐도 아마 스승 이야기의 연장선이었을 것이다.

아바돈의 등장으로 날로 먹게 됐으니 이 얼마나 좋은가.

“그럼 저는 린을 데리고 오겠습니다.”

“우리도 준비를 하도록 하마.”

옥좌에서 몸을 일으키는 제우스에게 나는 허리를 숙여 인사한 뒤, 홀에서 퇴장했다.

“네놈은 마치 네가 다 알고 있다는 것처럼 말하는 구나.”

홀의 문을 열고 나오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는지 아폴론이 말했다.

그의 태도는 여전했다.

기이한 감정으로 일렁이는 금색의 눈을 보며 나는 싱긋 웃었다.

“설마요, 저는 아는 걸 모르는 척하지 않을 뿐입니다.”

“오만한 녀석이군.”

“그러는 아폴론님은 알아야 할 것을 모르지 않습니까?”

“뭐?”

내 말에 아폴론은 눈을 찡그렸다.

처음에는 내가 비꼬는 것이라 생각했는지 분노를 내비쳤지만,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입을 다물었다.

“……나는 인간을 신뢰하지 않는다.”

“안타까운 말씀이군요. 하지만 저 역시 비슷하게 생각했던 터라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비슷하게 생각했다? 너 역시 인간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말이냐?”

“아니요. 저는 신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건 지금도 변하지 않지만, 조금 심경에 변화가 있긴 했다.

“호오, 신을 신뢰하지 않았다라, 그렇다면 지금은 다른가? 네가 신격을 얻었기 때문이냐?”

“아닙니다. 그저, 조금 다른 눈으로 보게 되었으니까요.”

몽상의 던전의 일을 비롯한 2회차에서 달라진 사건을 겪으며 조금 다른 감상을 가지게 되었다.

그건 이드라가 내게 보여준 모습 때문일 것이다.

나는 녀석이 내 아바타가 된 시점부터 완벽히 신뢰하고 있었다.

그건 1회차의 나라면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일이었다.

“그러니 당신도 제대로 눈을 뜨시길 바랍니다. 태양신이여.”

“…….”

물론, 아폴론은 내 말에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

「슬슬 몸을 뺄 때가 된 것 같군.」

“그래, 까마귀 놈이 이쪽의 정체를 의심하는 모양이야.”

아바돈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상대는 아바돈의 말에 내심 놀란 어조로 말을 이었다.

「호오, 그거 놀라운 말인데. 짐작 가는 이유가 있나?」

“없다. 놈은 나를 처음 봤을 때부터 의심하는 눈치였어.”

「흐음, 뭐 그놈은 알 수 없는 면이 있으니 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지」

허공에 나타난 영상에 표시되는 인물은 다름 아닌 이미르였다.

그는 아바돈을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열쇠의 절반만 탈취하면 된다. 그럼 내가 가진 것과 합쳐 하나로 만들 수 있지.」

“나머지 하나는 어떻게 하려는 거지?”

「그건 우선 상황을 봐야 할 것 같군. 하지만 하나의 열쇠만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 하다.」

아바돈은 이미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아바돈에겐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그는 그저 힘이 균형이 이루어지는 현재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었다.

힘의 축이 무너지는 것만으로 아바돈에겐 만족이었다.

평화는 ‘질투’를 상징하는 그에게 그다지 달갑지 않은 것이었다.

「다만, 정말로 할 수 있나? 올림포스의 신들은 결코 약한 이들이 아닐 텐데?」

“마침 내일 기회가 있다. 싸우는 것이라면 곤란할지도 모른다만, 몸을 빼는 건 간단하지.”

린 테일러.

차기 정의의 여신으로 내정된 인간.

현재 올림포스의 주목을 한몸에 받는 존재.

그녀의 등장은 여태 그림자에 몸을 숨기고 있던 아바돈에게 천재일우의 기회나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힘을 안정시키는 데 제우스가 직접 참가한다는 모양이더군.”

아무리 올림포스의 주신인 제우스라고 해도 인간을 반신으로 만드는 건 쉽지 않다.

분명 상당한 힘을 소모하게 될 것이다.

「과연, 믿도록 하마.」

자신이 지닌 열쇠의 반쪽만 완전하게 만들 수 있다면 나머지 하나의 열쇠를 차지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과연 너는 어떻게 나올 것이냐, 까마귀.’

어쩐지 이미르는 자신의 계획이 그다지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불쾌하지는 않았다.

그저 녀석이 어떻게 나올지 호기심이 동했다.

그것을 기대하며 이미르는 아바돈과 대화를 나누던 영상을 종료했다.

모든 건 내일 결판나게 되리라.

***

올림포스 신전의 정상.

제단의 위에 린의 몸이 눕혀졌다.

그리고 린을 중심으로 4명의 신이 각자에 자리에 섰다.

그들의 눈에 담겨 있는 시선은 각각 달랐다.

공통된 점이라면 ‘호기심’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새로운 신의 탄생이란 신들에게 있어서도 일대 이벤트다.

그것도 본디 인간이었던 존재를 반신으로 만드는 것은 올림포스 신들이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려 제우스가 직접 참가할 줄은 몰랐는데.’

그만큼 린에게 관심이 있는 걸 수도 있고, 어제 있었던 일이 미안했던 건지도 모른다.

의외인 점은 아폴론도 그 네 명 중에 있었다는 점이다.

못마땅한 얼굴이긴 했지만 악의는 없었다.

‘하지만…….’

그의 이면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르지.

나는 1회차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대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시작하겠다.”

제우스의 손이 린을 향했다.

그의 몸에는 그를 상징하는 뇌전이 전신을 타고 흘렀다.

다른 4명의 신들 역시 각자 자신을 상징하는 신위를 방출하기 시작했다.

방출된 신위는 허공에 뭉쳐져 거대한 구체가 되었고, 미세한 빛줄기가 생성되며 수직으로 린을 향해 떨어졌다.

‘엄청나군.’

방출되는 신력의 여파만으로 평범한 플레이어라면 목숨을 잃을 것이다.

올림포스 신들이 비교적 가볍게 나를 대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최상급 신위를 지닌 신들이다.

그 정도 신위를 가진 신은 전 우주를 뒤져도 얼마 되지 않았다.

올림포스가 괜히 우주에서도 손꼽히는 세력인 게 아니다. 그런 이들의 신격이 한 번에 방출되니 올림포스 전체가 덜덜 떨리는 것만 같았다.

‘안정되고 있다.’

눈이 멀 것 같은 빛 속에서 불안정하던 린의 신력이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혈맥에 굳어 있던 아스트리아의 신력이 전신으로 퍼졌고 그것은 린의 몸과 하나가 되기 위해 녹아들기 시작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아스트라이아의 신력은 린과 하나가 되었으며 점차 안정되기 시작했다.

“새로운 정의의 여신의 탄생이로다.”

제우스의 말과 함께 점차 크기가 줄어들기 시작하던 구체가 린의 몸을 향해 떨어졌다.

작은 파동이 일어나며 퍼져나가던 신력이 린을 향해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마치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인간이 반신이 된다는 기적이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아…….”

감겨있던 린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그리고 천천히 떠졌다.

본디 새파랬던 린의 눈은 한쪽이 금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금색과 청색, 두 개의 색으로 린의 눈동자는 오드아이로 변해 있었다.

그것은 린과 아스트라이아가 하나가 되었다는 증거였다.

“으음……. 아저씨? 여긴 어디…….”

비몽사몽한 얼굴로 린은 제단에서 몸을 일으켰다.

주변을 두리번 거리던 린은 나를 발견하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주변에 모르던 이들이 있으니 조금 겁을 먹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역시 자신이 기절한 이후의 일이 궁금했는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알데바란은 어떻게 됐나요? 제가 이긴 건가요?”

나는 그런 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주고 싶은 게 많았지만 지금 당장은 설명할 수 없었다.

다 이야기하자면 오늘 하루를 투자해도 부족했다.

“그, 그런가요…….”

그녀는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며 주변을 보았다.

그러다 흐뭇한 얼굴로 그녀를 보는 제우스를 보고 눈을 딱 멈췄다.

“흠흠, 귀엽기도 하지. 아버지나 할아버지라 불러도 좋다. 아스트라이아와 한몸이 되었으니 나의 딸이나 마찬가지니까.”

이 신은 대체 아버지가 있는 애한테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린도 난감한 얼굴이었다. 딱 보기에도 보통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 제우스이니 대답할 말을 떠올리지 못한 모양이다.

“아버지의 바보 같은 말에 답할 필요 없다,”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자 끼어든 건 아르테미스였다.

“새롭게 정의의 여신이 된 소녀여, 하나만 묻겠다. 아스트라이아는 그대의 안에서 소멸된 것이냐?”

“여신님이요?”

린은 아르테미스의 말에 어물거렸다.

하기야 린의 입장에서는 그것을 알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때, 린의 금색 눈동자가 살짝 빛났다.

그러자 살살 눈치를 살피며 어색해하던 린의 얼굴이 단번에 고요해졌다.

순식간에 바뀌는 기도에 린을 지켜보던 신들의 얼굴에 안도가 서렸다.

린의 몸에서 안정적인 신력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으니까.

“아르테미스 님, 저는 무사합니다. 그러니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아스트라이아?”

“네.”

린의 머리가 천천히 끄덕여졌다.

아니, 이건 린이 아니다. 린의 모습을 한 아스트라이아다.

“전 린의 안에 있습니다. 지금처럼 린에게 허락을 구한 후, 의사 표현을 할 수 있지만 되도록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하나이자 둘이 된 것인가?”

“예, 인격이 두 개로 나뉘어진 것과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다행이라고 할지 아스트라이아는 소멸하지 않았다.

린의 또다른 인격이 되어 그녀의 안에 남은 모양이었다.

“그거 다행이네. 아스트라이아가 혹여나 소멸했으면 조금 찜찜해서 말이야.”

헤르메스도 조금 안도한 눈치였다.

그의 입장에서는 여동생이나 마찬가지인 존재이니 그럴 만도 했다.

“이걸로 우리는 약속을 지켰다.”

그런 상황을 흐뭇한 얼굴로 지켜보던 제우스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린에게는 그야말로 자상한 할아버지의 얼굴을 하던 주제에 내게는 무척 엄격한 얼굴이었다.

“이제 아바돈을 찾을 수 있는 것이냐?”

“예.”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린을 보았다.

“아스트라이아, 혹시 천칭을 불러올 수 있습니까.”

“올림포스라면 거리낄 것 없죠.”

아스트라이아는 천천히 손을 위로 올렸다.

천칭 리브라를 올림포스로 부르기 위함이었다.

“그럴 필요 없다.”

하지만 정의의 여신의 신력이 움직이고, 천체가 움직이려는 찰나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

무언가를 느낀 아르테미스가 손을 움직이려 했지만, 아폴론의 손이 아르테미스의 손목을 잡아 막았다.

“아폴론, 너 갑자기 무슨 짓을…….”

아르테미스의 말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아폴론의 금안이 자주색으로 물들어있었으니까.

“아바돈!”

제우스는 아폴론의 모습을 한 것의 정체를 눈치채고 오른손을 들었다.

그의 손에 제우스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번개가 잡혔다.

하지만 팔이 움직이기 직전, 그의 가슴팍에 무언가가 박히며 그 움직임을 막았다.

그것은 또 다른 아바돈의 손이었다.

아바돈은 하나가 아니었다.

족히 열 명이 넘는 아바돈이 제우스, 아르테미스, 그리고 헤르메스를 제압하고 있었다.

보통이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신을 탄생시키며 신력이 소모된 상황에 아군이라 생각했던 아폴론이 기습을 가한 것이니 대처하지 못한 것이다.

“정말 이런 기회가 생기다니 행운이지.”

제우스의 가슴팍을 찌르며 아바돈은 웃었다.

이곳에 있는 누구도 그런 아바돈을 저지하지 못했다.

왜냐면 그와 동일한 모습을 한 이들에게 저마다 제압당해 있었으니까.

이것이 질투의 악마 아바돈의 능력, ‘분열’이다.

보통의 분신 계열 스킬이 본신의 능력을 반도 내지 못하는 것과 달리, 아바돈의 분신들은 하나하나가 본체의 90퍼센트 이상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방심한 신들의 허를 찌르는 정도는 간단하거든.”

아바돈의 자주색 눈동자가 제우스를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크으윽!”

제우스의 가슴팍을 꿰뚫은 손은 마치 무언가를 찾아내려는 것처럼 천천히 움직였다.

피는 흘러나오지 않았다.

왜냐면 그의 손은 제우스의 육신이 아닌, 존재 자체에 접근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바돈은 제우스가 가진 ‘어떤 것’을 노리고 있었다.

바로, 열쇠의 반쪽을.

“얌전히 있는 게 좋을 거야, 까마귀.”

나를 제압한 아바돈이 귓가에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어차피 지금 내가 나설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래, 그래. 착하지. 버러지면 버러지답게 고개를 숙여라.”

천천히 고개를 떨구는 나를 보며 아바돈은 낮은 목소리로 웃었다.

“하하하!”

그럴수록 나는 더더욱 고개를 아래로 숙일 수밖에 없었다.

‘풉.’

──당장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은 웃음을 참아야만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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