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144화 (144/332)

# 144

144. 질투의 악마(1)

간혹 신 중에선 일반적으로 알려진 신화와 다른 이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와 결혼한 신인데 미혼이라거나. 혹은 우리가 아는 신화에선 부자 관계이지만 아닌 이도 존재한다.

아폴론도 그중 하나다.

내가 올림포스의 영역에 온 건 처음 있는 일이지만, 아폴론을 처음 보는 건 아니다.

‘다른 곳에서 본 적이 있었지.’

물론, 그곳은 올림포스가 아니다.

올림포스가 아닌 전혀 다른 장소에서 아폴론을 만난 적이 있었다.

정확히는 아폴론이지만, 아폴론이 아닌 녀석을.

“좋아, 그럼 이제부터가 문제인데. 그 아이는 플레이어란 말이지. 마음 같아서는 당장 올림포스의 영역으로 데려와 우리가 기르고 싶지만…….”

“안 됩니다.”

“……말이 그렇다는 거네. 우리도 인간들의 사정은 잘 알지. 그리고 이번에 세한, 네가 보여준 광경은 꽤 볼만해서 말이다.”

제우스는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보았다.

“게임이 외신에게 탈취당하고, GM하나가 행방불명 됐단 말이야. 나는 이것에 분명 자네가 얽혀 있다고 생각하거든.”

“한낱 인간인 제가 뭘 할 수 있겠습니까. 과대평가입니다.”

“지금 당장 잠들어 있는 이 아이도 인간이야. 린 테일러, 이 소녀는 지금 신화영역의 판도를 바꿀 수 있을 정도지. 한낱 인간이라는 말은 지금 상황에서 쓸 말이 아니네.”

그가 그렇게 말하자 헤르메스가 슬쩍 끼어들었다.

“정작 너도 까마귀자리를 빼앗고, 거기에 중위급 신격을 얻었잖아? 이것도 전대미문의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대평가라는 건 말도 안 되지. 너도 눈이 있으면 주위를 봐.”

그는 내 어깨를 친근하게 감쌌다.

흔히 말하는 어깨동무다. 그는 그 상태로 한 바퀴를 돌며 주변을 가리켰다.

“신들이 네게 보내는 시기의 시선을. 신들의 장난감에 불과한 플레이어가 자신의 영역에 들어왔다는 것에 나오는 추잡한 질투지. 이것만으로 너는 고평가 받아야 마땅해.”

아니, 이 신은 내게 적을 못 붙여줘서 안달이 났나.

헤르메스의 말에 주변 신들의 눈이 더욱 험악해졌다.

신들 중 말단이라고 할 수 있는 중위 신격의 신들일수록 그런 경향이 강했지만, 상위급 신들의 얼굴도 그리 좋지는 않았다.

인간인 나를 인정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눈에 보이는 보호자가 필요하다는 말이군요.”

“역시 너는 머리가 좋아.”

헤르메스는 씩 웃었다.

“본래는 우리 아버지가 직접 말하고 싶어 했지만, 알다시피 인간들 사이에서 우리 아버지 이미지가 별로잖아? 거기다 경계심이 강한 너라면 아버지가 제안하면 거절할 거라 생각했어.”

“그 말은 즉…….”

“내가 이 아이의 선생이 되어주지. 우리도 그대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거든. 후에 이 아이의 칼날이 우리에게 향하지 않도록 말이야.”

헤르메스의 말은 꽤나 직설적이었다.

아무래도 헤르메스를 비롯한 올림포스 신들은 우리가 신들을 적대하리라 추측하는 모양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애초에 길드 이름부터가 ‘디어사이드’이니까.

“헤르메스! 인간에게 너무 저자세로 나가는 것 아닌가?”

그런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아폴론은 미간을 한층 더 찌푸리며 말했다.

지금 헤르메스의 말은 린의 힘을 인정하고, 적대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드러낸 거나 마찬가지다. 천상천하유아독존인 신으로선 보통 있을 수 없는 말이다.

“형님, 조금 진정하십쇼. 요즘 너무 예민해지신 것 아닙니까?”

“나는 원래 이랬다!”

“아닌데, 한 1000년 전부터 예민해진 것 같은데? 그치, 아르테미스 누님?”

“맞아, 요즘 좀 예민해졌어.”

1000년이라는 시간이 신들에게는 요즘인 모양이다.

그러니 린이 성장할 시간 따위는 ‘잠깐’ 정도로 생각하는 거겠지.

뭐, 나야 아무래도 좋다.

‘그보다 스승으로서 헤르메스면 나쁘지 않지.’

올림포스 쪽에서는 가장 중립적인 신 중 하나다.

아스트라이아와 사이도 나쁘지 않았으며 지위도 괜찮았다.

인간계에만 머무를 수 없는 린에게는 좋은 보호자가 되어 주리라.

“아스트라이아의 인격이 남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딱히 선생은 필요 없는 것 아닙니까?”

“아니지. 이런 말하긴 뭐하지만 아스트라이아도 중상위급 신격이야. 나쁘진 않지만 저 아이와 합신 된 상황에서는 좀 더 배울 필요가 있어.”

확실히 헤르메스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잠시 생각하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좀 더 생각할 시간을 주셨으면 합니다.”

***

“건방진 놈.”

어둡게 내려앉은 하늘을 바라보며 한 남자가 중얼거렸다.

마치 금을 녹여 만든 것 같은 금발, 반짝이는 금안은 태양신 아폴론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은 아름다운 외모였다.

“좀 더 생각해 보겠다고?”

당장 받아들여도 이상하지 않았다.

아니, 당장 받아들었어야만 했다.

인간이, 인간 주제에.

지금 올림포스는 지나칠 정도로 저자세로 나간 거였다.

저 아이가 아무리 대단한 재능을 지니고 있건, 지금은 잠들어 있으며 아직 완전히 개화된 것도 아니다.

죽인다면 얼마든지 죽일 수 있었다.

아니, 저것이 각성하기 전인 지금이야말로 적기였다.

하지만 제우스를 비롯한 12신의 과반수는 린 테일러라는 아이를 이쪽 편에 끌어들이고자 했다.

왜냐면 정의의 여신의 반쪽이며, 저 아이를 올림포스에 소속 시킬 시 신들 사이에서 큰 영향력을 끼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초상계에는 여러 신들의 영역이 있었고, 거기엔 알게 모르게 알력다툼이 이루어졌다.

지금은 소강상태에 이르렀지만, 언제 뒤통수를 칠지 모를 일이다.

신들은 자존심이 강하니까.

‘확실히 알데바란과 싸우던 모습은 굉장했지.’

비록 10년 후의 미래였지만, 신들에게 10년이란 ‘고작’이었다.

라플라스의 모래시계는 미래에 있는 시간을 그대로 불러오기에 사실상 린 테일러가 강해진다는 건 보장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제우스조차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면, 한 신화의 주신급 강함을 지니고 있다는 거다.

고착화된 신화 세력의 판도를 엎을 수 있다.

제우스를 비롯한 12신이 탐내는 것도 당연했다.

‘정말 말도 안 되지.’

인간이, 인간 따위가.

아폴론은 이를 악물었다.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팠다.

「이대로 두면 올림포스가 독을 품는 거야.」

누군가가 머릿속에서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말은 사실이었다.

인간은 배은망덕한 존재. 올림포스의 신화가 어떻게 끝을 맞이했던가.

「처리해야 해.」

아폴론은 결정을 내렸다.

거울에 비친 아폴론의 눈동자는 자주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

나는 침대에 누워 잠들어 있는 린을 보았다.

겉으로만 보면 평범하게 잠든 것 같지만 결코 그런 게 아니었다.

지금 린은 아스트라이아와 하나가 되어가는 중이었다.

이대로 둬도 상관은 없었지만, 좀 더 빠르게 눈을 뜨게 만들기 위해선 신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드라가 할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파장이 맞지 않았다.

아스트라이아의 신위는 같은 신화 출신인 올림포스에서 직접 조율하는 게 좋았다.

그러니 헤르메스의 말을 바로 수긍하는 게 좋았을지도 모르지만…….

‘바로 넙죽 받을 수야 없지.’

나는 팔짱을 끼고 창밖을 보았다.

지금 우리가 있는 장소는 올림포스 정상에 있는 신전 중, 외각에 있는 탑이었다.

아마 다른 신들이 해코지할까 봐 조금 떨어트린 모양이었다.

‘거기다…….’

좀 더 받아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저 막연한 예감이지만, 그럴 상황이 만들어질 것 같았으니까.

순간, 목 뒤가 따끔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딱!

나는 반사적으로 손가락을 튕겼다.

허수공간이 열리며 한 자루의 검이 사출됐다.

나는 그대로 날아가는 검의 손잡이를 잡고 빙글 몸을 돌리며 검을 휘둘렀다.

파지직!!

은빛의 궤적이 그려지며 린의 목을 향해 날아가던 새까만 마력의 화살이 부서져 흩어졌다.

“호오…….”

어둠 속에서 감탄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런 일이 있지 않을까 예상하긴 했지만 정말로 올 줄이야.

‘다행히 그놈은 아니군.’

하기야 녀석이 직접 움직이면 올림포스의 신들이 모두 눈치챌 테니 그럴 수 없었겠지.

“오랜만이군. 나를 기억하려나? 물론 얼굴은 모르겠지만 말이야.”

남성치고는 간드러지는 목소리가 들렸다.

듣는 것만으로 불쾌해지는 음성은 내게도 무척 익숙한 것이었다.

“네비로스.”

“그래, 기억하고 있었군. 까마귀.”

악마서열 27위.

신으로치면 중상위급 신격을 지닌 악마.

네비로스가 어둠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신기한 놈이군? 내가 여기 있는 게 놀랍지 않나?”

“놀라는 중이다. 하필 너일 줄은 몰랐거든.”

누군가 나타나리라 예상하기는 했다.

다만 그게 네비로스일 줄은 몰랐다.

‘생각해 보면 딱 적당하긴 하군.’

중상위급 신격을 지닌 악마라면, 이곳에 있는 다른 신들과 크게 격이 차이나지 않으니 딱 적당하다. 신격이 움직인다고 해도 이곳에 있는 어떤 신이 밤에 체조라도 하나보다 생각할 거다.

거기다 나보다 조금 더 신격이 높기도 하고.

“뭐, 나도 네놈에게 갚아야 할 빚이 있고…… 그분의 명도 있으니 빨리빨리 처리해 주마. 너만이 아니라 네가 지키고 있는 애새끼한테도 볼일이 있어서 말이야.”

네비로스는 혀를 내밀며 아랫입술을 핥았다.

마치 맛난 음식을 앞에 둔 것처럼.

“그때 먹고 싶었는데, 먹지 못해서 아쉬웠는데 말이야. 더욱 농익은 음식이 되어 내 앞에 나타났군. 이것도 운명이겠지.”

네비로스의 손에 강대한 마력이 모이는 게 느껴졌다.

“저 계집을 먹는다면 상위 신격까지 단번에 올라갈 수 있을 터. 어쩌면 최상위 신격이 다다를지도 몰라.”

녀석이 혼자 신나게 떠들고 있는 동안 나는 올림포스 밖에 날려둔 까마귀들을 통해 주변을 살폈다. 네비로스가 나타난 순간, 미세한 결계가 근방에 만들어졌다.

아마 네비로스가 날뛰는 것을 혹여나 신들이 눈치챌 때를 대비한 것 같았다.

과연 철두철미한 성격이군.

“빌미를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해야 되나?”

“후후, 뭐라 떠드는 거냐. 까마귀. 얌전히 목을 내놓는다면 적어도 고통은 없이 보내주지. 나는 너와 달리 자비롭거든.”

“그러냐?”

간드러지는 성격과 외모와는 달리 네비로스는 확실히 강한 악마였다.

녀석의 신격은 알데바란과 동급이었다.

하지만 황도 12궁이며 강한 무위로 유명한 알데바란에 비하면 한없이 약했다.

그렇다고 내가 이길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말이야.

신격이란 간단히 말해서 세계의 이치를 자신의 몸에 두르는 걸 말한다.

능력치를 보정하거나, 신격 자체를 포인트로 변화시켜 기적을 만들어 낼 수도 있었다.

신격이 높다고 반드시 상대보다 강한 건 아니었지만, 능력치가 같다면 신격이 높은 쪽이 유리했다.

참고로 나는 네비로스에게 능력치도, 신격도 뒤처지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러면 신나게 떠들지를 말았어야지.”

“후후, 조금 떠든다고 뭐가 달라지나? 어차피 너는 여기서 죽을 목숨──.”

그건 ‘그냥’ 싸울 때의 이야기다.

콰콰콰콰쾅!!

거대한 폭음이 울려 퍼졌다.

방이 흔들리며 점차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내딛고 있는 땅이 흔들리며 움직이자, 네비로스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네, 네놈 지금 무슨 짓을?”

답해줄 시간은 없었다.

나는 침대에 누워있는 린을 안았다.

콰콰쾅! 콰콰콰쾅!!

연쇄적으로 폭음이 울리며 우리가 있던 방까지 충격에 날아갔다.

탑이 부서지고 무너지며 우리의 몸을 허공으로 날렸다.

위에도, 아래도 수많은 별 틈 사이에 끼어있는 올림포스의 하늘을 향해서.

“우아아아악!!”

네비로스의 비명이 울렸다.

충격에 반사적으로 보호막을 쳤던 모양이지만, 애초에 보호막을 사용하지 않았어도 녀석에게 피해는 없었다.

이건 ‘생명체’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고, 오로지 오브젝트만 파괴하는 폭탄이었으니까.

‘점착폭탄.’

내가 가장 애용하는 물건이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미리 밖에 날려둔 까마귀들의 다리에 붙어뒀었지.

네비로스가 신나게 떠들고 있는 동안, 까마귀들로 우리가 있는 탑에 들이박아 그대로 폭발시켜 버린 것이다.

나는 궁기의 날개를 펼치고 날아가며 네비로스의 모습을 찾았다.

그건 녀석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당황했었지만, 허공에서 떨어지는 와중에도 네비로스는 나를 눈으로 쫓고 있었다.

“이 자식, 성가시게 만들다니!!”

화가 나기보단 짜증이 치민 얼굴이다.

녀석은 허공에 가볍게 손짓했다.

그러자 마력이 뭉치며 녀석의 등 뒤에 어둠으로 만들어진 수백의 비수가 하늘을 가득 채운다.

“죽어라!!”

그것들은 마치 비처럼, 나를 향해 쏟아졌다.

단 한 발만 맞아도 나란 존재는 깔끔하게 소멸되리라.

“으음?!”

검은 가시는 내 몸을 관통했다.

하지만 그건 ‘나’는 아니었다. 하늘에는 무수한 ‘내’가 존재했다.

“환상, 환상이구나. 그래, 넌 꿈의 마녀와 관련이 있었지.”

“내 아바타이니까 당연하지.”

1회차에 내가 사용할 수 있었던 전승스킬은 모두 사용할 수 있었다.

아니, 오히려 더 많은 것이 가능했다.

“멍청한 놈. 그래봤자 환상일 뿐, 시간 벌이에 불과하다.”

“시간 벌이?”

“그럼 그 까짓 걸로 내게 뭐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이냐?

하긴, 틀린 말은 아니지.

예전이라면 녀석의 말처럼 이게 끝이다.

분신을 만들거나, 소박한 환상을 만들어 눈속임을 하는 정도.

“뭘 할 수 있냐고?”

나는 씩 웃었다.

1회차의 나는 불가능했다.

몽상의 던전에서 녀석의 대리자가 되었을 때, 아마 그때라면 가능했을 것이다.

나는 녀석에게 말했다.

“내가 상상하는 모든 것.”

내 등 뒤에 솟아난 새까만 날개가 점점 커졌다.

날개는 내 몸을 감싸고 무너져 내린 탑보다 더욱 거대해졌다.

올림포스의 창공을 뒤덮을 만큼.

“──뭐?”

새까만 날개는 이윽고 하나의 형태를 취했다.

그것은, 거대한 까마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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