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143화 (143/332)

# 143

143. 올림포스(2)

1회차의 나는 초상계에 발을 디뎌본 적도 없었다.

다른 차원에는 몇 번 가본 적이 있었지만, 초상계에 발을 디디는 것이 허락되는 건 신이나 그에 걸맞은 초월자뿐.

하지만 그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자는 극소수뿐이다.

퀘스트를 통해 여러 차원의 강자들과 만났지만, 초월자는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그 외에 초월자에 근접한 인물이라고 한다면 혈마 정도.

아무튼 초상계란 내게도 미지의 영역이나 마찬가지란 소리다.

“그래서 어떻게 가면 되는 건데?”

우선 간단한 장비를 챙기고 돌아왔다.

내 등에는 린이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상당히 소란스런 준비였음에도 잠에서 깨려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그건 간단하다. 이쪽에서 문을 열면 되니까.”

하긴 서버가 닫혀 있으니 그쪽에서 데리러 오지는 못하겠지.

지구의 유일한 운영자라고 할 수 있는 이드라는 기존에 GM이나 퍼블리셔가 할 수 있었던 일을 모두 할 수 있었다.

당연히 올림포스로 향하는 문을 여는 것 정도는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다.

“다만, 조심하는 게 좋다. 그쪽에서 마중이야 나와 있겠지만…… 신들은 괴팍한 존재니까 말이야.”

“그건 아주 잘 알고 있어.”

“후후, 그야 그렇겠지.”

이드라는 싱긋 웃으며 손을 모은 후, 가볍게 좌우로 벌렸다.

그러자 방구석에 공간이 벌어지며 시퍼런 색의 게이트가 열렸다.

“저기로 들어가면 되는 거냐?”

“그래.”

고개를 끄덕이는 이드라의 모습에 나는 옆에 서 있는 지수를 보았다.

지수는 간절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그런 지수를 보며 옅은 한숨을 쉬었다.

“금방 다녀온다니까.”

“정말 저도 가면 안 되나요?”

“가봐야 좋을 거 없다.”

지수가 크게 낙담한 얼굴로 어깨를 늘어트렸다.

그러고 보면 최근엔 지수보단 이드라와 함께 있는 시간이 늘었지.

그 탓에 올림포스에는 같이 가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지수와 같이 가봐야 좋을 게 없었다.

나는 그렇다 쳐도 지수는 이상할 정도로 강한 탓에 도리어 신들의 호기심만 자극할 것이다.

신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인간의 말로가 어떤지는 신화만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지.

“그럼 다녀올 동안 혈천수라공이나 익히고 있어, 곧 쓸 때가 올 거야.”

“이미 10성인데, 더 올려야 되나요?”

10성이라는 말에 나는 순간 할 말을 잊었다.

‘게임이 시작된 지 얼마나 됐지?’

확실한 건 1년도 안 됐다.

그 짧은 시간에 10성까지 올렸다는 건 경악스러울 지경이다.

린의 경우엔 특성 ‘메리수’와 원래 뛰어난 재능이 합쳐진 탓에 어마어마한 습득력을 자랑했지만, 지수는 그런 것도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냥 평범한 천재 정도로 생각했는데…….’

물어볼 때마다 현천수라공이 쑥쑥 발전하고 있었다.

아무튼 나쁠 건 없었다. 강해지면 좋은 거지.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봐.”

“네, 알겠어요. 노력할게요.”

의욕을 불태우는 지수를 뒤로하며 나는 가볍게 이드라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갔다 올게.”

“조심해서 다녀 오거라.”

“Tekeli-li.”

이드라가 손을 흔들자, 옆에 있던 리리도 촉수를 팔랑팔랑 흔들었다.

썩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지만 누군가가 배웅해 준다는 것이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윽!”

윙─.

게이트를 지나자 마치 지면이 꺼진 것처럼 몸이 추락하는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는 어떤지 알 수 없었다. 인간의 감각이란 이곳에서 아무 의미도 없을 테니까.

하늘이 뒤집히고 땅으로 꺼지는 기분이 수차례 들었다.

가까스로 한걸음을 더 내딛자 전혀 다른 공기가 나를 반겼다.

“……여긴가?”

게이트를 빠져나오자 눈에 들어온 건, 거대한 산이었다.

푸른 하늘과 태양이 보이며, 산의 정상에 거대한 건축물이 보였다.

겉으로만 보면 지구의 모습과 같았지만 자세히 느껴보면 전혀 달랐다.

대지는 신력으로 만들어지고 태양은 아폴론이 모는 전차였다.

초상계에서도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는 올림포스 영역의 모습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근데 저기로 올라가야 되나?”

궁기의 날개를 펼치면 어렵지 않았지만, 그래도 괜찮은지 알기 힘들었다.

막상 날아오르니 신들의 군대 같은 게 나타나서 공격할 수도 있잖아.

“그럴 필요는 없다. 까마귀.”

내 고민을 눈치챈 것처럼 한 남자가 하늘에서 내려왔다.

가벼운 캐쥬얼복을 입은 남성이었는데, 눈에는 큼지막한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솔직히 이곳이 올림포스만 아니라면 평범한 사람으로 봤을지도 모른다.

물론 평범한 사람일 리가 없지.

느껴지는 신격은 최소 상위의 신이다.

“누구신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괜찮다마다. 너를 이곳으로 부른 건 우리니까 말이야.”

남자는 검지로 선글라스를 슥 올리며 웃었다.

선글라스에는 두 개의 뱀이 그려진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나는 헤르메스, 네 이야기를 언제나 가장 먼저 접하는 신이지.”

***

“이야~! 이야기는 정말 많이 들었어, 아니 봤다고 해야 되나? 나는 처음부터 플레이한 건 아니었는데 말이야. 주변에서 요즘 지구에서 진행 중인 게임이 쩐다고 하기에 시작했거든. 그래서 나름 열심히 키우고 있었는데, 너에 대한 소문을 들었지 뭐야. 카라스를 죽였다지? 걔 나도 좀 아는 애인데 자주 까불더니만 그렇게 될 줄 알았어. 근데 알데바란은 좀 아쉽구만. 그 녀석 고지식하지만 좋은 녀석이었는데 말이야. 아! 물론 네게 뭐라 하는 건 아니야. 그게 녀석의 운명이었다는 거지. 다만 비어버린 금우궁을 어찌할지도 고민이야. 시스템을 이용해서 퀘스트를 만들어 버릴까 하는 이야기고 나오고 있어. 황도 12궁이 하필 우리 올림포스 책임이라서 말이지. 참 난감한 일이지~!”

“아, 네.”

헤르메스의 입은 가히 속사포와도 같았다.

입이 멈추지 않았고,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지 계속해서 떠들었다.

캐쥬얼한 복장만큼이나 성격도 캐쥬얼한 모양이다.

‘하지만 능력만큼은 과연 12신에 속할 만해.’

헤르메스의 손을 잡는 순간, 나는 단번에 올림포스 정상으로 이동되었다.

순간이동 따위가 아니다.

내 손을 잡고 그대로 날아서 도착한 거였다.

음속을 넘은 속도로 날아갔음에도 내 몸에 어떤 영향도 없었다.

분명 헤르메스가 무슨 수를 쓴 것이리라.

과연 신화에서 빠르기로 이름난 신다웠다.

“평소에는 다들 다른 곳에 있지만, 오늘은 너를 만나기 위해 모여 있거든. 되게 흔치 않은 광경이니까 잘 봐두는 게 좋아. 또 올림포스에 올 일은 그다지 없을 테니까.”

헤르메스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안내에 따라 마치 탑처럼 만들어진 신전의 안으로 들어갔다.

마치 그리스에서나 볼법한 조각상들이 즐비했고, 화려하게 장식된 신전의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헤르메스가 발로 지면을 두어 번 두드리자, 공간이 접어졌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거대한 문의 앞이었다.

마치 귀신에 홀린 것 같은 기분이다.

“들어와, 아마 지금 한창 회의 중일 거다.”

드드드.

그는 그렇게 말하며 거대한 문을 가볍게 밀었다.

두터운 암석으로 이루어진 문이 열리자 거대한 홀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 숫자는 족히 수십.

당연히 평범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모두 신.’

하나같이 신위를 가진 신들.

중하위 신격부터 상위 신격까지 다양했고, 최상위 신격을 가진 신들은 홀의 끝에 있는 열두 개의 황금의자에 앉아 있었다.

‘저들이, 올림포스의 열두 신.’

한 신화의 정점에 속한 이들.

나는 내심 마른침을 삼켰다.

문이 열린 탓에 홀에서 웅성거리던 신들이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야! 너, 까마귀! 잘 만났다!”

그때, 누군가가 다른 신들을 밀치며 거칠게 걸어왔다.

아무래도 내게 뭔가 악감정이 있는 신인 모양이었다.

‘하데스인가?’

먼저 생각난 신은 하데스였다.

녀석의 아바타를 죽이고, 몽상의 신전에서도 한 번 더 죽였다.

후자의 경우는 하데스가 알 리가 없었지만, 혹시 이드라와 같이 기억을 공유했을 확률도 있었다.

내심 긴장하며 돌아봤지만, 내게 다가온 사람은 작은 소녀였다.

이런 소녀가 하데스일리는 없었다.

“……누구십니까?”

“너, 이이이 나쁜놈! 내 아바타에게 건 목줄을 어서 풀지 못해?! 진짜 너만 보면 말하려고 기다리고 있었어!”

내 가슴쯤에 오는 신장을 지닌 소녀는 발돋움을 하며 내 멱살을 잡고 짤짤짤 흔들었다.

그제야 나는 그녀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내가 목에 족쇄를 채웠던 박동권을 아바타로 삼은 신.

기만의 여신, 아파테.

커뮤니티 닉네임은 ‘정직한삶’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이런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을 줄이야.’

실제로 만나는 건 처음이다.

씩씩 거리며 내 멱살을 잡고 흔드는 아파테를 헤르메스가 만류했다.

“사적인 이야기는 조금 후에 하도록 하지. 우선은 이 소녀에 대한 안건이 먼저거든.”

“……알겠어요.”

올림포스 12신에 속한 헤르메스의 말에 아파테는 입을 비쭉 내밀며 물러났다.

기만의 여신인지라 좀 더 성숙한 여성의 모습을 예상했건만, 그런 모습은 정말 내 예상 밖이었다.

“기다리고 있었다. 새로운 까마귀자리. 김세한이여.”

황금 의자의 중앙에는 다른 것보다 화려한 황금 의자가 있었다.

의자라기보단 옥좌다.

그야말로 신들의 왕에 걸맞은 자리.

그곳에 앉을 수 있는 자는 이곳에서 단 한 명뿐이다.

“나는 제우스, 올림포스 신들의 왕이지. 만나게 돼서 반갑군.”

화려한 금발에 근육질의 몸.

아파테와 달리 보는 것만으로 압도되는 어마어마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과연 신들의 왕이다.

‘그리스 대장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깬다만.’

근엄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커뮤니티에서 하는 행동을 생각하면 좀 깬다.

괜히 이 서버 저 서버 돌아다니면서 온갖 관종 짓을 하며, 여신들에겐 몰래 비밀채팅을 보내는 신.

닉네임부터가 그리스대장이지 않은가.

그렇지만 지닌 신위만큼은 거짓이 아니다.

스스로 대장이라고 칭할 만큼 압도적인 힘을 지니고 있었다.

“등에 업고 있는 소녀가, 린 테일러인가?”

“예, 그렇습니다.”

제우스는 엄지로 턱을 매만지다가 천천히 손을 들었다.

그러자 공동의 중앙이 움직이며, 대지가 솟아나고 움직였다.

아이를 한 명 눕힐 수 있을 정도의 크기의 제단이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계속 업고 있으면 힘들 테니 그곳에 눕히는 게 좋을 것 같군.”

“감사합니다.”

나는 제단 위에 린을 조심스럽게 눕혔다.

마치 제단에 놓인 제물 같은 모양새였지만, 저들이 린을 해코지할 일은 없을 것이다.

제우스는 제단 위에 놓인 린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나를 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보면 볼수록 놀라워. 인간이 무려 중위의 신격을 얻었을 줄이야.”

제우스의 말에 깜짝 놀란 듯, 한 신이 물었다.

“중위의 신격, 제우스 신이여, 그것이 정말입니까?”

“그래, 단순한 신격으로 따지자면 그대보다 높군.”

제우스는 내가 중위의 신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자마자 알았다.

오딘도 그렇지만 신들의 왕이라는 건 다른 신들과 다른 혜안을 지니고 있었다.

나름 숨긴다고 숨긴 거였는데 역시 소용이 없었던 모양이다.

“인간이 중위 신격이라니.”

“심지어 신혈을 타고난 반신도 아니거늘. 이게 가능한 것인가?”

“카라스를 죽였다고 들었지만…….”

하위 신들이 술렁이며 나를 보며 미심쩍은 시선을 보냈다.

자신들보다 인간인 내가 높은 신격을 지녔다는 게 이해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솔직히 나도 마마잭이 아니었다면 여전히 하위 신격에 머물고 있었을 거다.

이래저래 마마잭에게 얻은 게 많긴 하군.

“본론으로 넘어가서, 이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제우스의 말에, 웅성거리던 신들이 침묵하고, 황금의자에 앉아 있던 열두 신의 시선이 린에게로 향했다. 제단 위에 고요하게 잠든 소녀를 바라보며 먼저 입을 연건 야성적인 외모를 지닌 신이었다.

전쟁의 신, 아레스. X지존패왕X님이시다.

“인간이 가지기엔 너무 과분한 힘이다. 아스트라이아와 저 소녀를 다시 분리시킬 수는 없는 건가?”

“그건 힘들어요. 저 소녀의 재능이 지나치게 뛰어나서 자칫하면 아스트라이아가 소멸될 수도 있어요.”

“이해할 수 없군, 한낱 인간의 재능이 저렇게 뛰어나다니.”

아레스의 말에 아르테미스가 곧바로 답했다.

그녀는 여성들을 수호하는 신답게 린에게 무척 호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김세한, 저는 알데바란과 이 소녀…… 비록 미래의 모습이긴 했지만 그 싸움을 보며 굉장히 감명 받았습니다. 저는 되도록 이 소녀를 신으로서 대우해 주고 싶군요.”

“아르테미스,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 이 아이는 인간이다.”

금발의 아름다운 청년, 아폴론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인간이지만 강하죠, 그런 가능성을 지녔고요. 알데바란과 싸우던 그녀를 아폴론은 이길 수 있습니까?”

“아르테미스……!”

“가끔은 누나의 말을 들으세요.”

아폴론의 얼굴이 똥 씹은 것처럼 되었다.

둘은 쌍둥이 남매지만 아르테미스가 조금 더 먼저 태어났다.

‘아르테미스가 이쪽 편이라니 나쁘지 않은 걸.’

적어도 편은 하나라도 더 있는 게 좋다.

제우스는 남매 싸움을 지켜보다가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 둘을 중재했다.

“그만. 이미 그것에 대해선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더냐.”

그는 그렇게 말한 후, 나를 보며 말했다.

“그간 우리는 저 소녀의 처우에 대해 계속해서 의논했다. 아, 그런 눈으로는 보지 말게. 해코지를 할 생각은 없으니까. 이드라가 관여한 인간을 우리가 건드리는 건 조금 부담스럽거든.”

제우스는 씩 웃으며 말했다.

이래저래 이쪽도 외신과 엮이는 건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다.

“다만 내 딸인 아스트라이아와 관련된 일이니 그냥 넘어갈 수도 없지. 그 이유를 알겠나?”

“정의의 여신 자리를 비울 수 없으며, 알데바란이 소멸됐으니 황도 12궁에 두 자리를 비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겠죠.”

“그렇지. 그래서 우리도 되도록 이 소녀를 신에 준하게 대우하기로 결정을 내렸어. 반발하는 이들도 몇 있지만, 어쩌겠나. 꼬우면 강해져야지.”

제우스의 말에 아폴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 외에도 몇몇의 반응이 좋지 않았지만, 가장 표정이 좋지 않은 건 그였다.

‘아폴론…….’

녀석의 이면을 아는 내게는 썩 달갑지만은 않은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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