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141화 (141/332)

# 141

141. 재오픈을 위한 준비(3)

“그럼 45번부터 50번까지 들어와 주세요.”

김 대리는 자신의 손에 쥐어져있는 번호표를 보았다.

박 과장은 이미 먼저 면접을 보고 다른 방으로 이동되었다. 아마 면접 내용이 알려지지 않도록 취하는 조치인 것 같았다.

‘합격자를 바로 발표할 생각인 건가?’

번호표는 49번이었다. 이전에 회사에서 면접을 봤을 때보다 배는 떨렸다.

그때는 대충 어떤 식으로 면접이 진행될지도 알고 있었고, 자신의 스펙에 자신이 있었으니 크게 떨 이유도 없었다. 설령 떨어져도 다른 곳에 갈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또 어떤 길드가 일반인을 길드원으로 모집한단 말인가?

행정과 관련된 일조차 같은 플레이어들만을 뽑는 게 대부분이었다.

플레이어의 숫자는 많지는 않았지만 적지도 않았다.

그러니 굳이 일반인을 길드원으로 뽑을 이유가 없었다.

“킥, 병신 새끼. 그러니까 일반인 주제에 여긴 왜 와가지고.”

‘하필 저놈이랑 같은 조라니.’

아까 전 김 대리와 박 과장을 조롱하던 플레이어 중 하나였다.

덴씨 소프트 소속이었다는 플레이어.

김 대리의 얼굴은 한층 어두워질 수밖에 없었다.

“어서 오세요, 여러분.”

다섯 명의 면접자들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한 명의 남성이 그들을 반겼다.

그는 의자에 등을 기댄 채, 이쪽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젊다.’

청년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나이는 대략 이십 대 초중반 정도. 김 대리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 외모였다.

‘플레이어는 나이로 판단하는 게 아니라고 했지.’

저렇게 젊어도 서울 최고라 손꼽히는 길드에 속한 자다. 직책은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홀로 면접을 담당할 정도라면 결코 낮지는 않을 터.

김 대리는 내심 세상의 불공평함을 토로할 수밖에 없었다.

“안녕하세요, 김세한입니다.”

면접관으로 보이는 청년은 그렇게 말하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우선…… 지원서는 잘 읽어봤습니다. 하나같이 이름 있는 회사의 출신이더군요.”

면접을 오기 전, 따로 지원서를 보낼 필요가 있었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전부 1차 서류전형에서 통과하여 이곳에 온 것이다.

“솔직히 면접이라고 해봐야 구색입니다. 제가 이런 걸 해본 적이 있어야 말이죠.”

세한은 그렇게 말하며 하하, 웃었다.

“그러니 직설적으로 묻겠습니다. 게임 운영에서 유저들을 어떻게 조련해야 할까요?”

조련이라니. 설마 그런 식으로 말할 줄은 몰랐던 김 대리는 입을 다물었다.

힐끗 곁눈질로 다른 면접자들을 보면 대부분 김 대리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얼굴이었다.

그나마 가장 얼굴이 밝은 건 니니지의 운영에 참여했다는 덴씨 소프트의 개발자였다.

그는 손을 올리며 발언해도 괜찮을지 양해를 구했다.

물론 세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정록 씨.”

“유저들은 자신이 특별해지기를 바라며, 남들은 쉽게 강해지지 않기를 바라죠. 그 점을 만족시켜주면 됩니다.”

“예를 들면?”

“확률형 강화, 혹은 일정확률로 붙는 특별한 인챈트와 같은 것을 이용하면 간단합니다. 벨런스 적으로도 꼭 다 맞출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그런 구색만 보이면 됩니다.”

이정록이라 불린 남자는 열심히 자신의 운영 노하우를 떠들었다.

무너진 밸런스가 수요를 만든다느니, 혹은 강화나 랜덤박스를 들먹이며 유저들이 지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세한은 이정록의 입에서 유저는 개돼지라는 발언까지 나올 때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유저를 뽑아먹는 건 일가견이 있으시군요.”

“예, 하하! 자랑은 아니지만 그렇습니다.”

“그럼 만약 유저가 압도적인 갑이라면 어떻게 할까요?”

“아, 흔히 매출을 책임지는 VIP 유저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예, 비슷합니다.”

“비밀리에 그들과 연락을 나누거나, 혹은 그들의 심기가 거슬리지 않는 방향으로 패치하곤 합니다. 그런 VIP 유저 하나가 다른 수십, 수백 명의 플레이어보다 매출이 많이 나오거든요.”

세한은 또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모든 유저가 그런 VIP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예?”

“하나같이 매출을 책임지고, 이쪽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갑이라고 해도 그렇게 운영하실 건지 묻는 겁니다.”

“그건…….”

이정록은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어물거렸다.

그런 상황을 겪어본 적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 다음 분.”

더 이상 제대로 된 답을 못하는 정록을 무시하며 세한은 다른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먼저 이정록이 했던 발언 때문인지 다른 면접자들은 대부분 원론적인 이야기를 했다.

간단히 말해 손님을 왕처럼 대해야 된다는 말이었다.

대답을 들은 세한은 반응은 이정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연히 면접자들의 안색도 어두워졌다.

“김정수 씨는 어떻습니까?”

“저는…….”

이윽고 김 대리, 아니 김정수의 순서가 왔다.

김정수는 마땅한 답을 찾지 못했다.

다른 이들이 했던 대답을 반복해 봐야 좋은 결과를 얻을 것 같지 않았다.

‘잠깐만.’

문득 아까 이정록에게 세한이 했던 발언을 떠올렸다.

모두가 VIP라면 어떻게 하겠냐는 말.

분명 그 질문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디어사이드가 지금 게임을 운영했던 경력자들을 뽑는 것처럼.

과연 그 대상은 누구인가.

김정수는 조심스럽게 세한의 눈을 보았다.

제발, 자신의 추측이 맞기를.

“저는…… 유저를 신처럼 모실 겁니다.”

조심스럽게 말하자 세한의 입가에 미소가 지워졌다.

역시 잘못 대답했나? 라고 생각하는 순간 세한의 입이 열렸다.

“그 이야기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은데요?”

은근한 어조로 묻는 세한의 모습은 김정수가 내놓은 해답이 정답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

“나쁘지 않군.”

나는 합격자 명단을 둘러보며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역시 눈치가 빠른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예민하고 언제 터질지 모를 폭탄이나 마찬가지인 신들을 다루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재능은 눈치였다.

거기에 어떤 게임을 운영했는지만 확인하면 합격자를 고르는 건 간단했다.

‘대체 뭔 자신감으로 이 게임을 운영했던 걸 경력으로 낸 거야?’

나름 게임 좀 해본 나다.

웬만한 온라인 게임은 대부분 다 해봤기에 운영이 좋고 나쁜 게임은 기억하고 있었다.

다행히 내가 점찍어 둔 면접자들은 대부분 내가 괜찮게 했던 게임의 운영진들이었기에 크게 문제될 건 없었다.

특히 유저 적대적으로 운영했던 게임들은 지금 생각해도 이가 갈렸다.

그런 놈들에게 운영을 맡겼다간 기존에 퍼블리셔가 운영하던 것과 다를 게 하나 없었다.

플레이어들 다 죽일 일 있나.

「경매장하고 투기장은 신설중이에요. 더 필요한 것 있나요?」

“아뇨, 없습니다. 유엔.”

「후후, 쪽지로만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통화가 되니 신기하네요. 아무튼 기한 안에 이야기를 마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부탁드리죠.”

삑.

나는 전화기를 끄고 방 안을 둘러보았다.

디어사이드의 최심부, 시우의 공방 아래에 신설된 장소였다.

바로 게임 운영실이다. 당연히 방의 주인은 이드라.

녀석의 손짓에 따라 수많은 코드가 움직이며 게임을 보수하고 있었다.

“으음, 정말 괜히 샀나 싶기도 하다. 뭐 하나만 추가하려고 해도 포인트가 줄줄 나가고 있도다…….”

“나중에 갚는다니까. 그리고 이번 영상으로도 많이 벌었잖아.”

“그건 그렇긴 하다만…… 정말 갚을 수 있는 게냐?”

“……아마.”

앞으로 게임이 어떻게 되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갚을 수 있을 거다.

이번 일로 거의 천문학적인 포인트가 나간 탓에 이드라는 울상이었다.

“위성을 다시 작동 시켜서 통신을 복구하고, 몬스터 인가운터율도 조절하고 또 뭐 있지?”

“인스턴스 던전의 활성화다.”

“맞아, 그거.”

이렇게 이것저것 추가하며 퍼블리셔가 얼마나 플레이어를 가혹하게 다뤘는지 알 수 있었다.

안전지대를 제외하면 생존권이 확보되는 장소도 적었고, 인카운터율은 거지 같이 높아 하루에 열댓 번은 민간인들이 모여 사는 지역에서 몬스터가 튀어나왔다.

그간 나름 히어로의 역할을 맡고 민간 구역에 머무는 플레이어들이 아니었다면 피해는 지금의 배는 되었을 것이다.

“던전 생성 속도도 좀 더 빠르게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건 시스템이 관여하는 거라 크게 손 댈 수는 없구나, 현재 잠겨 있는 인스턴스 던전을 활성화시키는 게 전부다.”

“그럼 어쩔 수 없지.”

이드라의 손짓에 따라 전 세계의 지도에 붉은 빛이 들어왔다.

열 수 있었음에도 굳이 막아둔 인스턴스 던전들이 일제히 활성화되었다.

아직 열리지 않은 인스턴스 던전들도 있었지만, 그건 아직 메인 퀘스트의 진행이 이루어지지 않아 닫혀있을 뿐이다.

이제 퀘스트를 진행하면 자연스럽게 활성화가 될 거다.

‘서브 퀘스트 발생률도 올리고…… 보상이 나올 만한 건 대부분 최하수치로 낮춰뒀구만.’

어쩐지 1회차부터 서브 퀘스트가 더럽게 발동 안 되더니 그런 이유였군.

그 외에도 고칠 게 산더미였지만 당장 쓸 수 있는 포인트가 부족했다.

“오픈 후에 신들이 지르는 포인트가 필요할 것 같구나.”

“시스템을 건드릴 수 있는 건 이 정도로 충분해. 나머지는 유엔에게 맡겨뒀으니 알아서 할 거야.”

그건 굳이 시스템의 도움이 필요 없는 거다.

솔직히 왜 퍼블리셔가 그것을 만들지 않은 건지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애초에 운영도 3류라는 거야.’

이래서 독점이 문제라는 거다.

대충 운영해도 시스템을 이용해 ‘게임’을 진행할 수 있는 건 퍼블리셔뿐이기에 운영이 발전할 필요가 없었다.

항상 하던 대로, 지금까지 해왔던 거겠지.

“이드라, 커뮤니티에 광고할 영상이 필요한데 지금은 바쁘지?”

“음, 그건 틈틈이 만드는 중이다.”

“그럼 나는 그동안 따로 광고를 해야겠네.”

“다른 영상이라도 만들 생각인 게냐?”

“아니.”

나는 오랜만에 커뮤니티를 접속했다.

경쾌한 알림과 함께 열린 화면을 보며 나는 씩 웃었다.

지구의 인터넷과 달리, 신들의 커뮤니티란 정말로 단순했다.

“댓글 알바.”

***

한쪽눈미아: 아직도 서버 안 열림?

불금: 아무래도 그때 아스트라이아 때문인거 같은데.

익명7: 신명 언급 금지요.

불금: 뭐 어때. 걔는 아주 지상에 강림했더만. 게임에 신생 팔았짘ㅋㅋㅋ 대리자라니 실화냐.

한쪽눈미아: 그 정도의 플레이어라면 할 만하지. 알데바란 소멸했다며?

어릿광대: 영상을 보셈. 정말 말도 안 될 정도임.

그리스대장: 어, 어흠.

어릿광대: 아죠씨. 아죠씨 딸내미랑 엮인 일인데 뭔가 할 말 없어요?

그리스대장: 아 쫌! 신명 떠올릴 수 있는 거 말하지 말라니깐.

북유럽미녀: 애초에 닉부터가 대놓고 누군지 알 수있구만;;

어릿광대: 좀 말해줘봐요. 아죠씨.

그리스대장: 아, 아직 회의중이라…….

북유럽미녀: 평소엔 잘만 떠들더니 이번엔 조용하네. 어휴.

“간만에 이 여자 맞는 말 좀 하네.”

로키는 채팅을 보며 중얼거렸다.

북유럽미녀, 프레이야와는 그다지 사이가 좋다고는 할 수 없는 로키였지만 이번만큼은 공감했다. 당장 그리스 쪽에서 뭔가 말이 나왔어도 한참 나왔을 텐데 입 다물고 있는 꼴이 아주 가증스러웠다.

평소엔 이 서버, 저 서버 돌아다니면서 잘만 떠들더니만!

‘아스트라이아와 하나가 된 인간이라.’

대리자라는 개념이 아니다.

말 그대로 합신(合神)해 버렸다.

전후무후한 일인지라 지구에 있는 신뿐이 아니라 다른 별의 신들까지 신경을 쓰는 초유의 관심사였다.

‘드림위치’라는 갓튜버가 올린 영상에서 알데바란과 싸우는 금발의 소녀의 모습이 나왔는데 그것을 본 신들은 모두 같은 말을 했다.

“버그.”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존재.

인간과 중급 신이 합쳐졌는데 최상위의 신격을 지닌 반신이 튀어나왔다.

물론 라플라스의 모래시계가 적용된 거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런 괴물이 나온다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퍼블리셔 측은 침묵하고 있었지만, 지구에는 손을 떼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 것 같았다.

당연히 지구에서 게임을 하고 있던 신들은 난리가 났다.

이대로 서버가 종료되고 자신들이 투자한 포인트가 증발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찰나, 긴급 점검이라는 공지가 올라왔다.

‘누군가가 게임을 탈취했단 말이지.’

영상은 알데바란과 린 테일러의 싸움만 나왔지 다른 건 없었다.

어릿광대는 영상에 비치지 않는 한 플레이어를 떠올렸다.

‘김세한…….’

분명 녀석이 무슨 짓을 했다.

어릿광대는 너무나 궁금해서 당장 게임에 접속하고 싶었지만 서버가 연결되지 않아 들어갈 수도 없었다.

자신도 외우주의 신격처럼 우회해서 들어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응? 잠깐만.”

로키는 커뮤니티를 슥슥 훑어보다가 눈에 띄는 글을 하나 발견했다.

익명48: 아는 소식통을 통해 들었는데 이번에 서버가 다운된 ‘지구’가 곧 오픈할 것 같습니다. 그것도 완전 혜자로 바뀐다던데요?

익명48은 로키에게 있어 익숙한 유저였다.

이전에 한번 시야를 공유한 적도 있었고, 간혹 쓸 만한 정보를 얻어다주고는 했던 녀석.

문득 로키는 김세한을 떠올렸다.

확신은 없었지만 그냥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

장난의 신인 그녀의 감은 예지와 예언에 가까웠다.

익명445: 이번에 지구가 완전 새 단장을 하고 오픈하는 모양입니다. 심지어 운영도 신생이라고 하던데요? 퍼블리셔가 아니라 대체 누가 운영하는 거래?

익명 771: 들은 소식에 의하면 여태까지 게임과는 완전 차별화된 운영이라고 합니다. 서버다운 보상도 엄청나다고 하네요. 저도 이번 기회에 시작해 봐야겠어요.

“……알바니?”

그런 말이 절로 나오는 댓글들이 다양한 게시글과 채팅에서 줄줄 올라오고 있었다.

이거 분명 익명48의 계정이다.

다른 신들은 이런 알바와도 같은 개념을 지니지 않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지만 로키는 인간세계에 아주 관심이 많은 터라 익히 아는 것이었다.

심지어 맨 처음 올라왔던 익명48의 글은 삭제된 상태였고 계속 다른 아이디로 교체되며 댓글과 게시글이 올라오고 있었다.

“흥미롭네.”

점차 추측이 확신이 되어갔다.

이런 터무니없는 짓을 벌일 존재는 그녀가 알기로 한 명뿐이었다.

로키는 킥킥 웃으며, 빙글 공중에서 돌았다.

“아아, 빨리 만나고 싶어라.”

물론, 자신의 아바타도 함께 말이다.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