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
140. 재오픈을 위한 준비(2)
“이드라라고 한다. 꿈의 마녀라고 불리는 아우터 갓이로다.”
“…….”
팔짱을 끼고 턱을 치켜들며 말하는 이드라의 말에 디어사이드 길드원들은 저마다 말을 잃었다.
특히 민아의 표정은 가관이었다.
이전에 한번 만난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지수의 일로 제대로 된 대화조차 해보지 못했었다.
사실상 제대로 대화를 해보는 건 처음이나 마찬가지이니 저런 표정을 짓는 것도 이상한 건 아니었다.
“그러니까……, 안녕하세요.”
“오랜만이구나.”
“세한 오빠의 아바타라는 게 정말이에요?”
“그렇다.”
이드라는 태연하게 답했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전혀 태연하지 않았다.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리며 이 말이 정말인지 묻고 있었다.
물론 그 시선은 벌써 몇 번이나 받은 거다.
“진짜라니까. 내가 이드라를 아바타로 삼았어. 그러니까 얘가 우리에게 해를 끼칠 일은 없을 거다.”
“우와, 맙소사. 진짜 말도 안 돼.”
신이란 존재는 한없이 고고하며 아무리 급이 낮아도 타인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드라는 그것을 태연하게 했으니 민아의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다.
신을 아바타로 삼을 생각을 한 나나.
거기에 응한 이드라는 별종 중의 별종.
옵저버가 아닌 실제로 존재하는 신의 모습을 본 민아의 눈에는 언뜻 경외감마저 서려 있었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신격도 한없이 떨어졌지만 신으로서의 품격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이 상황에서 이드라에게 경외감을 보내지 않는 건 오직 한명, 지수 뿐이었다.
지수는 내 옆에 있는 이드라를 못마땅하다는 눈으로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드라님이…….”
“그냥 이드라로 부르거라, 어차피 나는 지금 아바타니까.”
“……이드라가 퍼블리셔의 역할을 대신하게 됐다는 게 사실인가요?”
존칭이 아닌 단순한 이름으로 부르라고 한 이드라도 이드라지만, 바로 이름으로 부르는 지수도 지수였다.
둘 사이에 묘한 시선이 오갔다.
그 이유가 대략 짐작이 간 나로선 괜히 어색하게 헛기침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모든 서버가 다운된 사이 이드라가 게임을 탈취했어. 큰 틀은 시스템의 의지로 움직이기에 바꾸기 힘들지만 적어도 운영은 우리가 간섭할 수 있게 된 거지.”
퍼블리셔가 하던 일은 우리가 모두 할 수 있었다.
“특별한 문제는 없는 겁니까?”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창우가 걱정스런 어조로 물었다.
퍼블리셔의 권한을 빼앗은 것이나 마찬가지니 걱정하는 것도 당연했다.
“문제가 있다면 이미르의 눈에 띄었다는 정도죠. 하지만 당장 우리를 어떻게 할 수는 없을 겁니다. 적어도 콜라보만 제외한다면 말이죠.”
“콜라보?”
“차원 대 차원끼리 붙는 퀘스트죠.”
지구만이 아닌 다른 행성에서 진행되는 게임까지 엮이는 메인 퀘스트.
그것이 콜라보다.
분명 이미르는 그때를 노려 다른 차원들을 이용해 지구에게 해를 끼치려 할 확률이 높았다.
콜라보가 아니라면 아무리 퍼블리셔라도 게임에 간섭하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
뭐, 아예 침략할 생각으로 온다면 달라지겠지만 고작 게임 하나에 일을 벌이기엔 그쪽이 손해 보는 게 너무 많다. 시스템을 거역하는 거나 마찬가지니 티탄들에겐 결코 해서는 안 되는 ‘법칙’이나 마찬가지였다.
자신들에게 정말로 큰 손해를 끼치리라는 확신이 들기 전까지는 나서지 않겠지.
그러니 당장 우리가 할 일은 콜라보 퀘스트를 대비해 게임을 운영하고 발전시키는 것.
그리고 린이 올바르게 성장할 시간을 버는 게 주목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시스템이 진행하는 메인 퀘스트도 계속 클리어해야겠지만.
“근데 오빠, 지금 어릿광대랑 연락 안 되는데 괜찮은 거야?”
“아직 서버를 복구시키지 않았으니까. 다만 오픈을 미루고 있을 뿐이지.”
현재 커뮤니티에는 게임 ‘지구’가 긴급 점검에 들어간다고 공지를 올려둔 상태였다.
긴급 점검이 끝나면 바로 연장점검을 올려 시간을 벌 생각이다.
신들이니 한두 달 정도는 기다려주겠지.
그들에겐 잠깐이나 마찬가지인 시간일 테니까.
“저기……, 형.”
“왜?”
시우가 조심스럽게 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이드라의 눈치를 살피던 녀석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신님은 게임을 운영해본 적이 있는 건가요?”
“아니.”
“그러면 게임을 오픈하고 다른 신님들은 잡아두기 힘들지 않을까요? 게임에서 신들이 떠나면 시스템은 서버 종료 수순을 밟는다고 하던데…….”
아마 헤파이스토스를 통해 들은 듯, 상당히 아픈 점을 찔러왔다.
신들이 떠나게 되면 지구에 투자되는 포인트가 줄어들고, 결과적으로 시스템은 이 행성을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서버종류의 수순을 밟게 되며, 별은 버려지게 되지.
하늘에 새까만 구멍이 뚫리며, 우주는 별을 집어삼킨다.
‘확실히 문제는 문제야.’
나는 언제나 플레이어였지 게임을 운영을 해본 경험은 없었다.
이드라도 마찬가지다.
이 녀석은 나보다 더한 백지였다.
게임을 강탈한 건 좋으나 앞으로 어떤 식으로 게임을 운영할지도 중요했다.
오픈 후에 신들을 이 게임에 붙어있게 만들려면 결국 노하우가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생각해보면 답은 간단하다.
이번에 이드라가 게임을 샀던 것처럼, 내가 하지 못하는 일은 할 수 있는 자에게 부탁하면 되는 것이다.
“한 가지, 괜찮은 방법이 생각났는데.”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지금까지 게임은 오로지 플레이어라는 존재가 주역이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 지구에는 플레이어만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게임이 시작되기 전부터 수많은 직종에 종사하던 인간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온라인 게임을 운영하던 사람들 말이다.
***
하늘에서 별이 떨어지고 서울이 폐허가 되었던 지도 벌써 1주일이 넘게 흘렀다.
쑥대밭이 되었던 서울은 불과 1주일 사이에 거의 완벽하게 복구가 되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시스템을 통해 복구한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안전지대를 비롯해 현재 지구에 건설된 건물들은 모두 시스템의 영향 아래에 있는 만큼 적절한 포인트만 투자하면 복구가 되는 것이다.
심지어 단순 오브젝트 취급이라 포인트가 얼마 들지도 않았다.
“후우.”
한 남자가 긴장된 한숨을 내뱉으며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겉으로 보면 평범한 건물처럼 보이지만, 결코 평범한 건물이 아니었다.
바로 서울 최고의 길드라 꼽히는 디어사이드 길드의 건물.
소수 정예로 알려져 있으며, 이번 알데바란 침략 퀘스트에서 큰 활약을 했던 길드 중 하나다.
본래는 길드 건물의 위치가 비밀로 되어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직접 위치를 밝히고 길드원 채용을 하겠다고 나섰다.
특이한 점이라면 플레이어와 일반인을 가리지 않았다는 점인데, 단 하나의 조건이 있었다.
바로 ‘온라인 게임 운영 경력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외의 문구.
당연히 사람들 사이에선 수많은 추측이 오갔지만 그 이유를 알아낸 사람은 없었다.
“정말 괜찮을까…….”
지금 이곳에 온 남자도 채용공고를 보고 나선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플레이어도 아니었고, 단순한 일반인에 불과했다.
모든 일은 플레이어들에게 맡기고 몸이나 사리자는 부모님의 말을 뿌리치며 이곳에 온 거다.
다만, 기세 좋게 온 것과는 달리 마음속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정말로 일반인에 불과한 자신이 이곳에 있어도 괜찮은가,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저기요, 여기서 뭐하세요?”
“히익!”
건물의 문을 열까말까 망설이는데 청량한 여성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화들짝 놀란 남자가 몸을 돌리자, 눈살을 찌푸린 여성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미, 미인이다.’
어깨 조금 아래로 오는 단발머리에 깔끔하게 정돈된 교복은 여성, 아니 소녀를 아직 앳되어 보이게 만들었다. 세계가 변한 이후 정말 오랜만에 보는 고등학생의 모습에 남자는 무심코 넋을 잃고 봐버렸다.
불순한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다.
단지 조금 신기했을 뿐이다.
“뭐야, 변태야?”
“아, 아닙니다!”
“근데 왜 그렇게 봐?”
소녀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단단히 오해한 게 확실했다.
존대마저 사라진 걸 보니 자칫하면 큰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는 손을 휘휘 내저으며 이곳에 온 이유를 떠듬떠듬 말했다.
“채, 채용 공고를 보고 온 사람입니다. 단지…… 그, 교복을 입은 학생을 보는 게 워낙 오랜만이라 신기해서 무심코…….”
“흐음.”
소녀는 머리를 삐딱하게 기울이며 남자의 얼굴을 살폈다.
다행히 남자는 순박한 인상을 지닌 사내였기에 나쁜 인상은 아니었다.
“좋아요. 따라오세요.”
“네, 네?”
“채용 공고를 보고 오셨다면서요?”
“예……, 그렇습니다만.”
“그럼 들어와서 면접보세요.”
면접?
남자는 소녀의 등을 쫄래쫄래 쫓아갔다.
이 소녀가 플레이어인지 아니면 일반인인지 구분하기가 힘들었다.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하늘에 돌아다니는 옵저버라는 것들이 날아다닐 때는 플레이어를 쉽게 구분할 수 있었지만, 갑자기 모습을 감춘 지금은 아니었다.
“이 안으로 들어가서 번호표를 받고 기다려요. 순서가 되면 번호를 부를 거예요.”
소녀는 그렇게 말한 후, 가볍게 손을 흔들고 사라졌다.
남자는 그런 소녀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천천히 문을 열고 들어갔다.
‘헉!’
안에는 예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소녀의 말처럼 한 소년이 번호표를 나눠주고 있었는데, 다들 그 번호표를 받고 긴장한 얼굴로 앉아있었다.
남자는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 중, 익숙한 얼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 박 과장님!”
이마에 흐르는 땀을 연신 닦고 있던 중년 사내 역시 남자를 발견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김 대리 아닌가. 여긴 어쩐 일로……. 아니, 아니지. 자네도 채용공고를 보고 왔구만.”
“예……, 그렇습니다.”
김 대리라 불린 남자는 어색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며 박 과장에게 인사했다.
박 과장은 쓰게 웃으며 비어있는 자신의 옆자리를 가리켰다.
“과장님이 여기에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 난리통에서 본 게 마지막이었는데…….”
“하하, 운이 좋았지. 김 대리도 성한 곳 없이 건강한 것 같아 다행이야.”
“예, 그렇죠. 그나저나……,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습니다.”
“많은 게 당연하네. 가장 강력한 길드 중 하나가 길드원을 처음으로 모집하는 거야. 거기다 일반인도 구분하지 않고 말이지. 일반인들의 입장에서는 강력한 플레이어를 등에 업을 수 있는 기회라는 거지.”
확실히 맞는 말이다.
김 대리 역시 그런 생각으로 이곳에 온 것이었으니까.
난리통에 크게 다쳐 편치 않은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서라도 김 대리는 꼭 디어사이드에 들어가고 싶었다.
“하이고, 꼭 주제도 모르는 것들이 설쳐대기는. 일반인들이 꿈도 커요.”
“그러게 말이야. 다 같은 그쪽 업계 종사자라면 걔중에 플레이어를 뽑지 일반인을 왜 뽑아?”
박 과장과 김 대리의 대화에 주변에 있던 이들 몇몇이 크게 비웃었다.
그들은 플레이어인 모양인지 일반인들 사이에서 마치 왕처럼 앉아있었다.
이미 디어사이드의 면접에 통과라도 된 모습이다.
“거기에 우리는 덴씨 소프트 출신이다 이거야. 알지? 덴씨 소프트. 게임에 대해 조금만 아는 사람이라면 나를 뽑지 않을 수 없을 걸?”
“끄응.”
덴씨 소프트라면 업계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회사였다.
유저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지갑을 벌리게 만드는 회사.
거기다 그는 거기서도 수조원의 매출을 올린 니니지의 운영을 맡은 적이 있었다.
‘왜 게임 업계 종사자를 뽑는지는 몰라도, 나라면 충분히 가능해.’
사내의 얼굴에는 그런 자신감이 가득 차 있었다.
당연히 박 과장과 김 대리의 얼굴은 어두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도 어디서 꿇리는 회사에 다닌 건 아니었지만 일반인과 플레이어 사이에서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없었다.
그들이 채용자 입장이었어도 일반인보다는 플레이어를 우대했을 게 분명했다.
“……힘내세.”
“예, 부장님.”
기적이 있기를.
김 대리는 그렇게 신에게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