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
137. 되찾은 세계(2)
처음 그가 탄생한 건 지금으로부터 수천 년 전이었다.
미노타우르스라는 신화의 마수.
소의 머리를 한 괴물이라는 개념이 하나의 몬스터가 되었고, 알데바란은 그들 중 태생부터 왕으로 자랐다.
금우궁의 자리에 오른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태생부터 강자였다.
태어났을 때부터 하위의 신격을 얻었으며, 성장한 이후에는 미궁왕이라 불리었다.
하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신화의 마수로서 강대한 힘을 지니고 있었지만 시스템의 틀을 넘지는 못했다.
금우궁의 자리에 앉아 시스템을 수호하는 것이 그의 운명이었고 일이었다.
시스템이 그에게 준 역할이란 그런 것이다.
하지만 알데바란은 거기서 끝나고 싶지 않았다.
더 높은 곳.
신들이나 티탄이 올라갈 수 있는 초상계, 그 이상을 보고 싶었다.
자신의 벽을 넘고, 한계를 넘는다면 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던 때가 있었다.
수백 년이 흐르고, 수천 년이 흘렀을 때 알데바란은 자신의 이상을 꺾을 수밖에 없었다.
한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자신은 신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마수에 불과한 자신이 도달할 수 있는 건 중상위 신격이 끝이었다.
진정한 초월의 영역에 다다른 상위급 신격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것이 시스템이 정한 틀이고 한계다.
그는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했다.
“크, 크크크크.”
웃음이 나왔다.
알데바란은 자신을 깔아뭉갠 돌무더기를 발로 차 날리며 흘러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부쉈다.
“흐, 하하하하하!!”
분명히 방금 벽이 부서졌다.
무엇을 해도 넘지 못했던 한계라는 이름의 벽을 방금 넘었다.
그저 막연하게 구상했던 금우파성권의 열아홉 번째 초식을 조금이나마 구현할 수 있었다.
열아홉 개의 유성이 떨어지며 자신을 향해 다가오던 린을 강타했다.
이미 열여덟 개의 초식을 빼앗은 그녀이지만 이번만큼은 온전히 막지 못했다.
알데바란의 권격과 함께 지상으로 떨어져, 그나마 남아 있던 건물 대부분을 무너트렸다.
이제 남은 건물은 안전지대로 보호받던 건물뿐이다.
“……고맙다.”
알데바란은 고개를 들어 자신의 앞에 서있는 존재를 보았다.
린 테일러.
황금의 왕관을 쓴 ‘인류의 정의’.
최상급 신위를 지닌 인간.
사실 신위라는 것은 최상급 이상은 관측할 수 없기에 그녀가 가진 힘의 전부가 어느 정도인지 알데바란은 알지 못했다.
그 작은 소녀가 10년 후에 이런 초월자가 되다니.
“인간인 그대가 보여준 모습 덕분에 안개가 걷혔다.”
자신의 태생이 마수에 불과하기에 안 된다고 생각했다.
신의 피를 잇지 못했고, 영웅에게 죽임을 당할 뿐인 마수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눈앞의 소녀는 그 마수보다 나약한 존재인 인간.
신들의 장난감이며 거인의 양식에 불과한 인간이 모든 한계와 가능성을 넘어 도달한 끝.
그렇다면 마수가 하지 못하리란 법은 없지 않은가?
“나는 알데바란. 그 이름에는 ‘뒤에 따라오는 자’라는 의미가 있지.”
그렇기에 그대를 보고 쫓아올 수 있었다.
린의 볼에는 옅은 생체기가 나있었다.
금우파성권, 열아홉 번째 초식에 스친 상처다.
지금까지 쌓아온 자신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그 상처를 보며 알데바란은 웃었다.
“그대는 강하다. 우리에게 수십 년이란 찰나에 불과할 만큼 짧지. 그 시간 속에서 그토록 강한 힘을 손에 넣은 그대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제 끝을 볼 때다.
알데바란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린이 다음 공격에 자신을 끝내리라는 걸.
이대로 싸우면 단순히 서울에서 그치지 않고, 한국. 나아가 대륙과 별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신들의 싸움이란 그런 것이다.
오히려 지금까지 피해가 이 정도로 그칠 수 있었던 건 린이 마력으로 주변을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 알데바란은 그것을 알면서도 전력을 다해 싸웠다.
그 정도의 격차가 있었으니까.
“방금 너의 볼을 스쳤던 것…… 어떤가? 나는 제법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알데바란이 넌지시 묻자, 여태 조용하던 린의 입이 처음으로 열렸다.
“……훌륭해요.”
“흐하하하! 그거 다행이군.”
“당신의 기술의 마지막이 그건가요?”
“그렇다. 내 금우파성권 열아홉 번째, 마지막 초식이지.”
“과연.”
린은 조용히 답했다.
손가락으로 자신의 볼에 흘러내린 피를 살며시 훑었다.
‘고작’ 중상위 신격인 알데바란이 설마 그 정도의 무위를 보일 줄이야.
방심……은 아니다.
단지 알데바란 본인의 격을 아득히 뛰어넘은 기술이었을 뿐이다.
린은 살며시 웃었다.
그건 정말로, 맛있는 만찬이었다.
“보답을 하고 싶을 만큼.”
상처를 입은 건 정말로 오랜만이다.
오빠와 언니가 아닌, 다른 자에게 상처를 입은 건.
린은 자신의 가슴팍에 오른손을 대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심장의 고동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안에 잠든, 여신의 기운을 찾았다.
10년 후에도 언제나 자신과 함께하게 될 동반자를.
‘오는가.’
알데바란은 눈을 감고 있는 린을 보며 천천히 자세를 잡았다.
그는 방금 전 느꼈던 감각을 떠올리며 몸의 마력을 순환시켰다.
금우파성권이 지닌 열여덟 개의 변화를 몸에 새기며 주먹에 집중시켰다.
금우파성권, 최후의 초식 ‘창성(昌星)’.
방금 전과 같은 불완전한 발현이 아닌 완벽한 형태로 사용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는다면 자신에게 승산이란 없었다.
──두근.
“음?”
그때, 심장이 크게 뛰었다.
그의 몸에 내재 된 신위가 격하게 날뛰기 시작했다.
‘뭐지?’
자신과 린, 그리고 잠들어있는 아스트라이아를 제외한 또 다른 신격이 느껴졌다.
시선을 올리니 움직이는 천체가 보였다.
하나의 별자리가 지상을 가리키고 있었다.
‘잊고 있었다.’
워낙 강대한 적인지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본래 정의의 여신은 맨손으로 싸우지 않는다. 한손에는 검을, 다른 손에는 천칭을.
그건 눈앞의 여성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린의 손이 하늘을 향해 치켜들었다.
밤하늘의 천체가 움직였다.
황도 12궁, 제7궁 천칭좌.
「리브라」
──별이 떨어졌다.
***
[사용자 변경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시스템 변경에는 대량의 포인트가 소모됩니다. 진행하시겠습니까?]
“흐음.”
이드라는 자신의 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보며 웃었다.
드디어 여기까지 왔구나 싶어 감개무량하기도 했다.
1회차의 그녀는 보통의 신들과 같이 플레이어를 육성하고 퀘스트 클리어에 전념했다.
하지만 그 결말은 배드엔딩이었다.
오직 자신의 아바타만이 살아남는 결말.
인류를 사랑하는 신인 이드라로선 받아들일 수 없는 결말이 없다.
“별종.”
누군가가 뒤에서 황당함이 진득하게 담긴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는 이드라가 아주 잘 알고 있는 이였다.
“모든 신이 로그아웃 된 상태에서 친히 로그인해서 찾아와주다니 이거 반갑구나.”
아마 녀석은 린이라는 소녀가 각성하며 그 힘의 파동에 호기심에 온 것이리라.
게임을 이용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녀석의 힘을 지구에서 느끼지 못했으니 분명하다.
아무튼 아카터스가 보면 뒷목을 잡을 일이었다.
하지만 녀석이니까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거겠지.
설령 다른 아우터갓이라도 이런 짓을 쉽게 할 수 없었다.
“오랜만이로다. 니알라토텝.”
시선을 돌리자, 새까만 머리칼에 여우와 같은 인상을 한 남성이 서있었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는 이드라와 같은 아우터갓이다.
기어오는 혼돈이자, 검은 대양의 파도와도 같은 자.
저 모습도 그의 수많은 형태 중 하나에 불과했다.
“이해할 수 없구나, 이드라. 인간은 확실히 재밌는 존재이지만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후후, 내 속을 떠보려는 것이냐. 니알라토텝.”
“단순한 호기심이지.”
“그래, 너는 호기심이 많지. 네 호기심에 수많은 존재들이 파멸하지만 말이다.”
니알라토텝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튼 우리 우둔한 아버지가 아시면 노여워하실 지도 모른다.”
“이런, 나의 계약자가 가장 걱정하는 일인 게로군.”
싱긋 웃으며 말하는 이드라의 말에 니알라토텝의 머리가 삐딱하게 기울어졌다.
“계약자? 너는 아바타를 삼은 적이 없는 것으로 아는데.”
“그렇지.”
“그럼?”
살며시 떠진 눈 안에는 끝이 없는 어둠이 있었다.
저게 니알라토텝의 본심이다. 끝이 없는 혼돈. 녀석의 본심은 이드라도 모른다.
자신과 같이 인간에게 관심을 지닌 아우터갓이지만, 호감을 지닌 이드라와 별개로 그는 인간의 가엾은 면모를 사랑한다.
추하고, 처절한. 비탄하며 절망하는 그런 인간을 사랑하는 그를 이드라는 좋아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과연 이 말을 하면 어떨까.
이드라는 내심 장난기가 생겼다.
아우터갓으로선 지닐 수 없는 감정이다.
본래부터 이런 감정들을 즐기긴 했지만, 영락하며 좀 더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필멸자, 그중에서도 인간이 느끼는 감정이란 아우터갓에게 있어선 마약과도 같았다.
“아바타는 나다.”
“……??”
역시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다.
눈이 미세하게 떠진 걸로 보아 설마, 라고 생각한 건지 모른다.
이드라는 그런 니알라토텝을 보며 씩 웃었다.
“까마귀자리의 첫 아바타이자, 추락한 신.”
아마 니알라토텝은 자신이 신격을 억누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지금 자신이 발현할 수 있는 신격은 심히 하찮았다.
“그게 나다.”
아니나 다를까 니알라토텝의 눈이 살짝 떠졌다.
역시 알기 힘든 얼굴이었지만, 하나만은 알 수 있었다.
녀석이 놀랐다는 걸.
그것만으로 이드라는 유쾌하게 웃을 수 있었다.
“자, 그럼 나의 신이 부탁한 일을 해보실까.”
누군가에게 속박된다는 건 이드라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로 했다.
왜냐?
재밌을 것 같으니까.
그간 영상편집으로도 꽤 재미를 봤고, 포인트도 벌었다.
이번엔 좀 더 판을 키워 게임을 한번 운영해 보는 것도 즐거울 것 같았다.
덤으로, 누군가의 아바타가 되어 직접 플레이해 보는 것도 좋겠지.
타인에게 지배받는 것도 처음이다.
우리의 우둔한 아버지에게조차 이드라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그러니 이드라에겐 어느 것이나 즐거움이었다.
“참 그리고 말이지.”
거기다 깨달은 것이 하나 있었다.
“나는 꽤 질투심이 있는 성격인 모양이다.”
나의 것.
그것이 남의 것이 된다고 생각하니 아무래도 속이 좋지 않았다.
몇 번째라도 괜찮다, 인간이 아니니 관대하게 생각했지만 아니다.
역시 그건 내 거다.
딱!
이드라는 손가락을 튕겼다.
무수한 시스템 코드가 어둠 속에서 빛나며 빙글빙글 회전하기 시작했다.
‘열쇠’. 즉, 두 개의 패스워드가 없는 이상 시스템의 근원에는 접근하지 못한다.
하지만 포인트만 있다면 게임 하나를 탈취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었다.
[게임 ‘지구’가 꿈의 마녀 이드라에게 귀속됩니다. 진행하시겠습니까?]
자신의 신이 원하는 것.
그건 자신이 바라는 것과 같았다.
***
하얀공간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즉, GM으로서 녀석의 능력에 변동이 생겼다는 뜻이다.
아카터스의 얼굴이 푸르르 떨렸다.
창백하게 질렸던 녀석의 얼굴을 파랗게 변했고, 내게 시선을 향했다.
공포, 두려움. 혼란, 분노 여러 가지 감정이 복합적으로 느껴졌다.
얼굴을 땅에 찍으며 빌던 아카터스의 얼굴은 점차 분노로 물들었다.
이젠 무엇을 하더라도 상황을 돌이킬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1회차에는 이런 상황이 오지 않았다.
알데바란으로 서울은 쑥대밭이 됐고, 린의 재능을 알아본 아카터스가 재능이 개화하기 전에 양자택일 퀘스트를 발동시켰으니까.
만약 그때 내가 린을 죽이지 않았다 하더라도 아카터스는 린을 어떻게든 죽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일은 생기지 않겠지.
지금까지 내가 바꿔온 과거가 새로운 미래를 만들 테니까.
“김세한, 김세한. 김세하아아안!! 무슨 짓을 한 건지 아는 거냐! 넌 지금 퍼블리셔에 싸움을 건 거다!!”
“안다.”
“안다고? 아는 녀석이 이런 짓을 해? 고작 게임하나, 별 하나를 탈취한다고 뭐가 달라지지? 시스템은 영원히 움직인다. 네 말대로 우리는 빨대를 꽂을 뿐이야. 게임을 탈취한다고 해도 너희에게 진행 중인 게임은 끝나지 않는다. 순리대로 진행된다고!!”
그것이 지금 이 우주를 아우르는 시스템이니까.
나도 알고 있다.
“적어도 거지같은 운영에 휘둘릴 일은 없지. 이제야 말하지만 니네 운영 더럽게 못해. 내가 해본 게임 중 단연코 최악이다.”
“이, 이이이이!”
[GM 권한이 잠시 후 소실됩니다.]
하얀 공간에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게임을 운영하는 운영자가 바뀌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아마 다른 서버를 운영하던 GM들의 입장에서는 마른 하늘의 날벼락이나 마찬가지일 거다.
하기야 지금 서버다운이 일어난 시점에서 지구에 남아 있는 GM은 없겠지만.
“이드라, 그 미친년!! 인간의 아바타가 되다니 제정신이냐?! 거기다 쓸데없이 포인트는 많아서 게임을 사버리다니! 둘 다 후회할 거다! 이미르님이 결코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해보던가. 어차피 시스템의 틀에 갇힌 건 그쪽도 마찬가지잖아?”
“그래, 돌아가서 당장 보고할 거다. 네가 어떤 놈인지, 그리고 어떤 짓을 벌였는지. 내 모든 걸 걸고 너를 파멸시킬 테니 기대해라.”
녀석은 바드득 이를 갈며 말했다.
하얀 공간이 붕괴되기 시작하며 녀석과 나의 몸이 흐릿해졌다.
GM의 권한이 사라지니 우리를 이 하얀 공간에 존속시킬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녀석도 내게 손을 대지 못하고 얌전히 물러가기로 결정한 거겠지.
시간이 부족했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아카터스.”
하얗게 무너지던 공간이 멈추고, 흑백으로 반전한다.
잿빛으로 변한 세계 속에서 나는 천천히 주먹을 말아 쥐고, 천천히 비틀었다.
“……어?”
무슨 일인지 인지하지 못한 아카터스의 멍청한 말소리가 들렸다.
내 주먹의 움직임에 따라 공간이 뒤틀리기 시작하며 오색으로 물들었다. 갖가지 색깔들은 여럿의 형태를 취하기 시작했다.
마치 환상처럼.
혹은 꿈결과도 같이.
말라비틀어진 대지로, 부서진 바위로. 불타는 나무로.
어두운 하늘에 새까만 구멍이 뚫린다.
살아있는 생명은 없으며, 죽음만이 가득 찬 세계로 변화했다.
“여, 여긴 어디냐? 왜 귀환되지 않는 거지? GM 권한이 사라졌으니 나는 초상계로 이동되어야 했을 텐데?”
녀석은 연신 두리번거리며 사방을 훑었다.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딘지 감도 잡지 못한 모양이다.
그야 당연하지.
여긴 놈이 모르는 곳이다.
이곳을 아는 건 나와 이드라.
그리고 내 기억을 본 지수뿐이다.
이곳은 1회차의 지구.
멸망해 버린 ‘고독한 세계’였다.
“너는 영원히 초상계로 돌아갈 수 없다.”
어떻게 생각하면 녀석은 내가 살아남게 해준 원동력 중 하나였다.
녀석이 나를 향해 비웃었을 때부터 나는 마음을 정했다.
아무리 추해도.
처절하게 땅을 긴다 하더라도.
살아남고 살아남아 반드시 녀석을 죽이리라고.
그리고 지금, 기회가 왔다.
나는 결코 그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아직 보여줄 게 남았거든.”
“무, 무슨…….”
겁을 집어먹은 아카터스를 향해 움켜쥐었던 주먹을 천천히 폈다.
주먹에서는 새까만 기운이 흘러나오며 주변에 퍼졌다.
아카터스를 둘러싸며 무수한 검은 공간이 열리기 시작했다.
수십, 수백, 수천.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공간이 열렸다.
녀석에게 내가 보여줄 것.
그건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엔딩.”
아카터스라는 존재의 결말.
나는 지금 녀석의 엔딩을 골랐다.
그건, 당연히 배드엔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