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135화 (135/332)

# 135

135. 정의의 태동(3)

후둑, 후두둑,

하늘을 날아다니던 옵저버들이 마치 비처럼 떨어졌다.

갑작스런 사태에 플레이어들은 혼란에 빠졌다.

“뭐야, 무슨 일이야?”

미친 황소처럼 덤벼들던 알데바란은 시간이라도 멈춘 것처럼 가만히 서 있었다.

하늘을 금빛으로 물들던 아스트라이아는 사라졌으며 여신을 향해 손을 뻗었던 소녀는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고 있었다.

“린…….”

백설이의 손을 꽉 잡으며 민아가 중얼거렸다.

린은 지금 변하고 있었다.

양갈래로 묶었던 머리카락이 풀어지며 길게 길어지고.

팔과 다리가 길쭉하게 자라나며 신장도 커졌다.

어린아이가 아닌 성숙한 여성이 된 린의 모습에 민아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옵저버들은 지상으로 떨어졌고, 어릿광대로부터 연락도 끊어졌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 거야?”

그런 민아의 말은, 이곳에 있는 모든 플레이어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었다.

***

“뭐야?”

아카터스는 갑자기 꺼진 화면을 보며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미 웃음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뭔데? 뭐냐니까?”

같은 말을 반복하며 아카터스는 계속해서 손가락을 튕겼다.

화면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마치 접속이 끊어져 버린 것처럼.

“시발! 진짜 뭐냐고! 왜 화면이 안 나오는데!!”

욕설을 내뱉으며 탁자를 두드리는 아카터스의 모습을 느긋하게 바라보던 나는 피식 웃었다.

“왜 그러냐? 갑자기 웃음이 사라졌잖아?”

“김세한…… 이거 네놈이 한 짓이냐? 방금은 대체 뭐냐! 그 계집애는 대체 뭐냐는 말이다!”

“너도 나를 지켜봤을 테니 알잖아. 린 테일러, 평범한 플레이어지.”

“평범?”

아카터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평범, 평범이라고 중얼거리던 아카터스는 이를 악물었다.

“그래, 그냥 좀 재능이 뛰어난 계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야. 분명 알데바란은 녀석에게 무언가를 보았다.”

“너는 못 봤고?”

“…….”

아카터스의 이 가는 소리가 천둥처럼 들렸다.

당연히 아카터스는 몰랐을 것이다. 아카터스는 태어났을 때부터 신격을 지닌 티탄이다.

인간이나 평범한 플레이어보다는 압도적으로 강하지만 그건 태생이 뛰어날 뿐이지 특별한 무위를 지녔다거나 한 것은 아니다.

그러니 린이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 몰랐던 거겠지.

“왜 화면이 꺼진 건지 아나?”

아카터스는 말이 없었다.

당연히 이유를 알지 못하리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유일 테니.

“서버다운이다.”

“……서버다운?”

내 말에 아카터스는 입을 멍하니 벌린 채 뭐라 할 말을 잊은 얼굴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서버다운이 갑자기 왜 일어난단 말이냐!”

“갑자기 과도한 트래픽이 몰리면 발생할 수도 있지. 예를 들어, 준비된 서버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신이 여럿 강림한다면 말이야.”

이미 한 명은 강림했다.

알데바란이 온전한 힘으로 지상에 강림했으니 서버는 상당히 무리가 가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렇다 해도 알데바란은 중상위급 신격일 뿐이다. 거기에 비슷한 급의 신이 서넛이 추가 되도 서버가 다운될 일은…….”

“최상급 신격이라면?”

“……뭐?”

“최상급 신격이라면 어떻지, 아카터스?”

그건 전혀 상정하지 못한 일이다.

대리자를 만들기 위해 강림한 것이 아닌, 온전한 형태로 최상위급 신격이 강림한다면 서버가 다운되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

하지만.

“대체 누가?”

“궁금하냐?”

나는 입가를 비뚜름하게 올렸다.

당장이라도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참았다.

아직 웃는 건 일렀으니까.

딱.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화면이 나타났다. 방금 전 아카터스가 했던 것과 같지만 틀리다.

이건 옵저버가 지켜보고 있는 화면이었다.

“뭐, 뭐냐? 서버다운이 됐는데 왜 접속해 있는 신이 있지?”

“서버가 다운되어 튕겨진 건 그쪽 서버와 연결된 신뿐이지. 애초에 퍼블리셔의 서버를 이용하지 않는 녀석이라면 전혀 상관없다.”

그런 신이라면 단 하나뿐이다.

꿈의 마녀 이드라.

이 세계가 아닌, 다른 우주에서 찾아온 신.

서버는 물론, 이쪽 시스템에 속하지 않은 그녀라면 본인의 역량에 따라 남는 것도 가능했다.

“있잖아, 지금 너희는 서버와 시스템의 연결이 완전히 끊어진 상태지?”

“그……건 그렇다.”

“그사이에 다른 녀석이 게임을 가로채면 어떻게 되냐?”

그건 생각도 못해본 일이다.

언제나 시스템을 이용해 게임을 운영하던 건 퍼블리셔가 하던 일이니까.

시스템이 새로운 게임을 만들어내면, 퍼블리셔는 그곳에 얹혀 서버를 만들고 운영을 한다.

지금까지 진행되어온 수많은 게임들이 그랬다.

하지만 지금 지구와 퍼블리셔의 연결은 완전히 단절되었다.

게임을 운영하는 서버 자체가 과부화로 타버렸으니 복구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터.

그 전까지 지구는 완벽한 무방비 상태다.

“네놈들은 기생충 같은 놈들이지. 말이 게임이지, 너희들은 시스템을 이용해 빨대를 꽂아서 포인트를 벌어먹고 있는 것에 불과해. 그러니 ‘퍼블리셔’인 거지. 운영이라는 이름으로 간섭할 뿐인 놈들.”

“무, 무슨 말을 하는 거냐!”

“뭐, 그건 됐고. 이거나 봐라.”

화면에는 린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모래시계가 멈추고, 아스트라이아의 신격은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사라진 게 아니었다. 그저 너무나 거대한 신격에 가려졌을 뿐.

그리고 그 신격은 아스트라이아의 신격과 합쳐지며 점점 더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라플라스의 모래시계는 미래의 시간을 단 30분간 불러온다.

대략 10년 후의 린을 지금 이곳에 불러오는 거지.

지금 내가 쌓아온 결과로 만들어진 새로운 미래.

모든 재능을 각성하고, 그 재능을 갈고닦아 한계를 넘은 린.

전생에는 보지 못했던 린의 모습이 눈앞에 있었다.

내가 그토록 보고 싶었지만, 볼 수 없었던.

인류의 정점이.

두근.

두근.

심장의 고동소리가 이곳까지 들렸다.

길게 풀어진 금발머리가 바람에 흔들렸다.

길쭉하게 길어진 린의 신체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인간이 지닐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인간이 얻을 수 있는 모든 경이를.

인간이 품을 수 있는 모든 이상을.

그 모든 걸 구현한 초현실적인 존재.

그것은 지금 내가 올바른 길로 가고 있다는 증거와도 같았다.

“말도…… 안 돼.”

아카터스는 그것을 보며 넋이 나가 있었다.

믿기지 않는 거겠지,

설마 단순한 플레이어가 저런 존재가 되리라 생각하진 못했을 거다.

이해한다.

예상하고 있던 나 역시 경탄만 나올 정도니까.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

나는 그런 녀석의 귀에 작게 속삭여줬다.

“잘 봐. 저게 다 네가 만든 거니까.”

“내, 내가 뭘 했다고…….”

“뭘 하긴.”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억울한 얼굴을 한 아카터스에게 나는 상냥하게 웃었다.

“나를 건드렸잖아, 새끼야.”

***

“흐, 흐하하하.”

알데바란은 그저 웃음만이 나왔다.

눈앞에 있는 건 대체 뭐냐. 정말로 인간이냐?

인간이 이런 힘을 지닐 수 있다고?

라플라스의 모래시계의 능력은 알고 있었다. 미래의 시간을 불러올 수 있는 제법 희귀한 물건. 그것으로 저 소녀의 10년 후 미래를 불러온 것이리라.

세상에 다시없을 재능을 모두 개화하고.

한계마저 뛰어넘은 끝에 도달한, 무한한 가능성을 손에 쥔 인간.

세계의 틀을 벗어난 버그.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다……. 이런 것이 나오리라 예상했지.”

그렇기에 막으려 했다.

하지만 막지 못했다. 긴 금발을 지닌 여성은 눈을 감은 채 고요하게 서 있었다.

진정한 변화는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천천히, 린의 눈이 떠졌다.

푸른 눈동자에 금색 광채가 깃들어 금색으로 빛나며 린의 격이 점차 부풀기 시작했다.

중위급 신격에서 중상급으로, 그리고 상급으로 올라갔고 단숨에 최상급까지 상승했다.

눈에서 빛이 번뜩였고, 금발에 빛의 입자가 금색 모래처럼 흩날렸다.

머리 뒤에는 둥근 금색의 원반이 나타나며 마치 왕관처럼 린의 머리를 감쌌다.

바람이 멈추고 별이 숨을 죽였다.

“하지만 이건 너무할 정도잖나.”

이건 신이다.

그러나 신은 아니었다.

플레이어가 도달할 수 있는 끝.

그 무한한 가능성의 구현이었다.

한계를 뚫은 게 아니라 찢어발겼다.

“크, 크크크. 그래. 좋아, 좋다고.”

헛웃음만이 나왔다. 알데바란은 천천히 주먹을 말아 쥐었다.

황도 12궁. 시스템의 틀을 벗어나는 이들을 막는 초월적인 존재.

긴 시간 동안 살며 눈앞에 있는 이와 같은 자는 처음이었다.

솔직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나의 무인으로서 저 정도의 경지를 이룩한 인간이라는 존재에 흥미를 가졌다.

금색의 눈이 자신을 고요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아까 소녀의 눈동자에 담겨 있던 공포는 이미 없었다.

애초에 저건 그 소녀가 아니다.

미래의 시간에서 불려온 ‘10년 후의 린’이다.

‘정의를 돌려준다고 했나, 아스트라이아.’

그래, 이것이 바로 정의다.

모든 것을 심판하는, 그런 정의다.

“도전자가 되는 건 오랜만이군.”

주변에 누가 있는지는 잊었다.

퀘스트의 내용도 이미 관심 밖이었다.

저것이 나타난 이상 황도 12궁으로서도 그른 일이었다.

남은 건 무인 알데바란으로서의 자존심뿐.

도전자로서 저 한계를 모를 괴물을 꺾는다.

단지, 그뿐이었다.

“그동안 오래 쉬긴 했지.”

비록 인간의 모습이지만, 본신의 힘은 다르지 않다.

오히려 저런 인간형의 괴물과 싸우기 위해서는 같은 형태를 취하는 게 낫다.

알데바란은 전신에 마력을 순환시키며 눈을 부릅떴다.

금우궁의 좌에 오르고 흐른 긴 시간 동안, 그는 끊임없이 무(武)를 갈고 닦았다.

그 대답을 지금 들을 때다.

“크아아아아아!!”

근육질의 몸이 부풀며, 전신의 피가 빠르게 맥동했다.

무릎이 굽혀지고, 전력을 다해 대지를 박찼다.

콰콰쾅!!

알데바란이 박찬 대지가 밀려나고 부서지며 수십 미터가 박살 났다.

대기를 가르며 날아간 알데바란은 자신이 쌓아온 무위를 전력으로 해방했다.

──금우파성권(金牛破星拳)

알데바란이 수천 년간 만들어 낸 기술.

황소의 돌진과도 같은 주먹이 뻗어지며 린의 얼굴을 향해 돌진했다.

공기가 밀려나가며 진공상태가 됐고, 음속을 넘고 아광속에 이른 주먹이 린의 바로 앞에 도달했다.

스윽.

알데바란의 주먹이 린의 얼굴에 적중하기 직전, 린의 손이 움직였다.

코앞에 도달한 알데바란의 주먹이 린의 얼굴에 격돌하기 직전의 찰나.

콤마 0.000 몇 초에 불과한 짧은 순간 린의 손이 위로 올라오며 알데바란의 주먹을 앞질렀다.

소리의 벽을 넘고, 빛을 찢어내며 알데바란의 주먹을 옆으로 밀어냈고, 비어버린 그의 가슴팍을 손바닥으로 쳤다.

간단히 말하자면, 그냥 막고 밀었다.

투콰아아앙!!

“……!!”

진공으로 압축됐던 공기가 터지고, 소리의 벽이 깨어져 나가며 강렬한 충격파가 일대에 몰아쳤다.

린의 손에 얻어맞은 알데바란의 육신은 단번에 수백 미터를 날아가며 건물을 꿰뚫고, 철근을 수수깡처럼 꺾으며 아스팔트를 비단처럼 밀어내고 나서야 그 움직임을 멈췄다.

놀라운 점은 그로 인해 일어난 충격파가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전혀 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

알데바란을 날려 버린 린은 주변을 훑었다.

멍하니 보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는 플레이어들 속에 있는 민아와 백설이를 향해 살짝 웃어준 뒤, 바로 등 뒤에 있는 지수를 응시했다.

린을 바라보는 지수의 눈은 복잡했다.

우습게도, 그건 린도 마찬가지였다.

“조금 후에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

린의 갑작스런 말에 지수가 의아한 눈으로 보았다.

하지만 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멀리 날아갔던 알데바란이 몸을 일으키고 있었으니까.

“우선 쓰러져 있는 플레이어들을 부탁할게요. 이야기는 저자를 쓰러트린 후에 할게요. 지수 언니.”

린은 그렇게 말한 후, 가볍게 뛰었다.

마치 줄넘기를 하듯, 발목을 움직여 가볍게 뛴 것 같은 움직임이었지만 그 몸은 단번에 알데바란의 바로 앞까지 도달했다.

“흐, 흐흐흐. 그래, 그래. 이렇게 나와야지.”

몸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내는 알데바란은 콘크리트로 된 벽을 몇 개나 꿰뚫고, 철근을 꺾으며 날아온 자라기엔 지나치게 멀쩡했다.

가슴팍에 난 새빨간 손자국이 없었다면 방금 얻어맞았다고 생각도 못하리라.

“후우우우.”

알데바란이 관자놀이에 달린 뿔을 린에게 향하며, 투우사를 바라보는 황소처럼 숨을 골랐다.

압도적인 강자. 이것만큼 멋진 울림이 어디 있단 말인가.

12궁으로서 반드시 쓰러트려야만 하는 상대다.

목적도 충분했다.

“나는 미궁왕 알데바란.”

전력을 사용해 공격했음에도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내는 상대는 처음이었다.

아직 부족하다.

자신은 아직 모든 힘을 사용하지 못했다.

지금 자신은 이곳에서 한계를 넘는다.

알데바란의 전신에 가공할 만한 투기가 일어나며 린을 향해 자세를 잡았다.

린은 그런 알데바란을 응시하며 가만히 서 있었다.

물론, 알데바란은 그런 린에게 조금의 수치도 느끼지 않았다.

도리어 수천 년간 단련해온 자신의 무위를 부딪칠 생각에 흥분하고 있었다.

“──너를 쓰러트릴 자다.”

린의 머리가 미약하게 끄덕여졌다.

마치 할 테면 해보라는 뜻이다.

“하.”

이토록 오만한 존재를 대체 얼마 만에 보는 건지.

“하하하! 으하하하하!!”

알데바란은 사납게 웃으며 린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것이, 개전의 신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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