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131화 (131/332)

# 131

131. 집결(1)

아가트람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건 좀 더 후다.

지금 시기의 아가트람은 슬슬 길드원을 모으며 실속을 다지는 중이었다.

물론, 지금만으로도 차고 넘치는 실력을 지닌 이들이 모여 있었지만 길드장인 천상황은 지극히 신중한 성격이었다.

그 신중한 성격 때문에 1회차의 나에게 털렸지만.

“놀랍군. 나도 꽤 강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하지만 그 얼굴은 나를 보다니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는 손에 꼽힐 정도로 강한 신의 아바타인 만큼 사람의 수준을 알 수 있는 신안(神眼)을 지니고 있었다.

“당신 같은 자가 우리를 찾아온 이유가 뭐지?”

너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텐데.

천상환의 눈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확실히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플레이어로서의 나는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이 세계에서 내가 무슨 짓을 한다면 막을 수 있는 자는 없었다.

하지만 내 적은 이 세계가 아니었다.

“힘이 필요하다.”

“힘? 충분하게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나만으로는 안 돼.”

천상환은 이해할 수 없다는 눈치였다.

누구보다 강한 플레이어였기에 그는 강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 있었다.

“김세한, 네가 할 수 없는 일이라면 우리 중 누구라도 할 수 없다.”

“그건 모르는 일이지.”

그는 내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다 옅은 한숨을 쉬었다.

“서울에서 시작된 9번째 퀘스트를 도와달라는 거군.”

“그래, 맞아.”

“왜 우리가 그래야 하지? 우리의 퀘스트도 아닌데 말이야.”

지극히 합리적인 말이다. 이게 평범한 퀘스트라면 더는 설득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경우가 달랐다.

“별이 떨어질 거다.”

“……뭐?”

“땅은 뒤집히고 지금까지 쌓아온 플레이어들의 노력은 무로 돌아가겠지. 서울 플레이어들의 퀘스트? 그런 건 상관없다. 한국은 이번 침공을 막지 못하면 되돌릴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될 테니까.”

마치 1회차처럼.

“침공이라니, 단순한 9번째 퀘스트가 아니라는 건가?”

“신급의 존재가 강림하는데 이 작은 나라가 버틸 수 있으리라 생각하나?”

“시스템이 가만히 두지 않을 텐데?”

“어디에나 편법은 있는 법이지.”

천상환의 얼굴이 굳었다. 머릿속이 복잡한지 팔짱을 끼고는 곰곰이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슬슬 아가트람도 밖으로 나올 때가 됐잖아? 이번 사태는 너희를 알릴 좋은 기회일 텐데?”

“…….”

“그리고 나도 맨입으로 부탁하는 건 아니야. 나는 너희가 가진 가능성에 투자를 하겠다.”

“투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후에 최강이라 불리게 될 길드를 가만히 내버려 둘 리가 없잖아?

관심을 보이는 천상환에게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1년 안에 아가트람을 세계 최고의 길드로 만들어주마.”

누구보다 큰 야망을 지닌 그라면, 내 조건을 결코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

“천호역 근처에 미노타우르스 다섯 마리! 증원을 부탁한다고 연락 왔습니다!!”

“영등포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울 곳곳에서 나타나는 미노타우르스의 수는 갈수록 늘어났다.

마치 고블린들이 증식하는 것처럼 미궁을 돌아다니는 미노타우르스가 급증하자 플레이어들은 점점 버거워졌다.

첫날은 어떻게 버텼지만 이틀째부터 문제였다.

민간인들을 최대한 안전구역에 대피시켰지만 수용할 수 있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시발! 진짜 대체 어디서 이런 소 새끼들이 계속 튀어나오는 거야!!”

아웃라이징의 길드장 강태성은 이를 바드득 갈며 덤벼드는 미노타우르스의 머리를 걷어찼다.

이미 그가 쓰러트린 미노타우르스의 수는 열을 넘었다.

미궁은 점차 복잡하게 변했고 세워진 벽은 점점 높아져만 갔다.

하늘을 날 수 있는 플레이어가 아닌 한, 쉽사리 증원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만약 하늘에 있는 까마귀들이 없었다면 플레이어들은 미궁에서 길을 잃은 채 죽음을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이 벽…… 벽만 어떻게 할 수 있었어도!”

갖가지 스킬을 사용하며 벽을 두드려도 벽은 작은 흠집만 났다.

여럿의 플레이어들이 하루 종일 두드려도 부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강도였다.

난감한 상황에 처한 건 그들만이 아니었다.

디어사이드 길드원들 역시 세한이 사라진 탓에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 진짜 오빠는 어디 있는 거야?”

민아는 투덜거리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나마 날개 달린 새로 변할 수 있는 그녀는 현재 상황에서 가장 자유로운 플레이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었다.

“세한 씨에게 답변은 없습니까?”

“쪽지를 계속 보내는데 바쁘다는 대답만 해요”

“수많은 까마귀들을 움직이는 것만으로 무리일지도 모르니까요.”

“그건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민아는 창우의 말에 비쭉 입술을 내밀었다.

확실히 인간의 머리로 수많은 까마귀를 컨트롤 한다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위험해요. 방어선이 무너지고 있다고요.”

민아는 방금 전 보고 왔던 광경을 보았다.

미노타우르스들은 미궁에서 무한히 증식했고,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었다.

마치 던전에서 몬스터가 생성되는 속도를 최대로 증가시켜 둔 것만 같았다.

“어?”

거기다 문제는 그뿐이 아니었다.

미궁이 재차 이변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쿠쿵, 쿠쿠쿵!

대지가 울리며 벽이 흔들렸다.

잠시 후 잠잠해지긴 했지만, 특별히 달라진 점을 느끼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내가 보고 올게.”

민아는 새로 변해 하늘을 날아올랐다.

자신을 따라오는 어릿광대의 옵저버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마치 민아에게 어서 도망치라는 것처럼.

‘아.’

하늘에 떠오른 민아는 그제야 미궁에서 일어난 변화를 깨달았다.

새로운 미궁구역이 생기거나 미궁의 범위가 확장된 게 아니었다.

단지, 미궁에서 단순한 미노타우르가 아닌 다른 존재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평범한 미노타우르스보다 배는 커다란 덩치를 지닌 미노타우르스 워리어와 킹.

그들의 발구름에 대지가 울리고 있었다.

“망했네.”

정말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

“이제 한계인가.”

박성혁은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현재 플레이어들을 이끄는 건 강태성과 박성혁 둘이었다.

피안화의 이아영은 현재 어디론가 사라진 상태였기에 그들이 서울의 길드를 규합하여 플레이어들을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까마귀의 도움으로 여태 버틸 수 있었지만 그것조차 한계가 있었다.

계속해서 증식하는 미노타우르스도 미노타우르스였지만 새롭게 미궁에 나타난 미노타우르스 워리어와 킹이 문제였다.

“우워어어어어!”

“아아악!!”

평범한 미노타우르스의 배는 덩치가 큰 미노타우르스 워리어는 플레이어들을 맨손으로 잡아 찢어버렸다. 거기다 영리한 킹은 미궁의 전체 지도를 파악하고 플레이어들을 막다른 곳으로 몰아붙였다.

“길드장님 이대로는 한강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미궁에서 그들과 정면에서 싸우는 건 자살행위예요.”

까마귀들도 더 이상 자신들을 인도하지 못했다.

그건 그에게 다른 사정이 생겼거나,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뜻일 거다.

‘미노타우르스 워리어를 정면으로 상대할 수 있는 플레이어는 가은 씨 정도 되는 플레이어나 가능해.’

그런 플레이어가 많다면 정면에서 싸워볼지도 모르겠지만 당연히 그럴 리 없었다.

홍가은은 엄연히 제네시스 길드의 최고 실력자인 것이다.

이쪽은 하나지만 미노타우르스 워리어의 숫자는 족히 수십은 되었다.

「인간이여, 계속 도망쳐 봐야 그대들을 기다리는 건 죽음뿐이다.」

플레이어들을 느긋하게 뒤쫓던 미노타우르스 킹의 목소리가 중후하게 울려 퍼졌다.

괜히 미노타우르스 킹이 아닌지 녀석의 지능은 다른 미노타우르스와 궤를 달리했다.

「우리의 왕이 그대들의 피를 바란다. 얌전히 목을 바치어라.」

그런 미노타우르스 킹의 말에 박성혁은 이를 악물었다.

‘알데바란.’

저 미노타우르스들이 말하는 왕이란 바로 그를 말할 것이다.

9번째 메인 퀘스트에 표시된 미궁왕이라 불리는 자.

아직 그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퀘스트 기간이 3일인 이상 곧 그 모습을 나타낼 것이다.

앞으로 여섯 시간 후면 이틀이 지나고 3일째가 되니까.

“곧 한강입니다!”

미궁을 빠져나오니 푸른 한강이 눈에 들어왔다.

사실상 막다른 길이었다.

한강을 헤엄쳐 건너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것을 저 괴물들이 가만히 보고만 있을 리가 없었다.

‘여기까지인가.’

박성혁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이번에도 무사히 퀘스트를 클리어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욕심이 과했던 모양이다.

서울에 존재하는 수천의 플레이어가 한강둔치에 모여들었다.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절망에 물든 기색이 역력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을 향해 미노타우르 킹과 그가 이끄는 군대가 천천히 다가왔다.

배수의 진을 친 계백 장군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몇몇 플레이어들은 강에 몸을 던져 헤엄치기 시작했지만 미노타우르스에게 따라잡히는 건 금방일 것이다.

‘이렇게 된 거, 적어도 마지막까지 싸운다.’

박성혁은 그렇게 결정했다.

옆으로 시선을 돌리자 강태성이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도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다.

“가은 씨, 미안합니다. 제가 좀 더 유능했다면 이런 상황이 오지 않았을 텐데.”

박성혁은 언제나 자신을 믿고 따라준 가은에게 사과의 말을 전했다.

나름 절절한 사과의 말이었지만, 어쩐지 가은은 전혀 귀담아듣지 않은 기색이었다.

“길드장님.”

“예.”

“어쩐지 미노타우르스들의 발이 멈춘 것 같습니다.”

“……?”

그게 무슨 소리지?

박성혁은 이쪽을 향해 다가오던 미노타우르스 킹을 보았다.

확실히 그들은 발을 멈추고 이쪽을 조용히 응시하고 있었다.

여태까지 여유롭던 얼굴과 달리 긴장한 기색이 설핏 느껴졌다.

‘잠깐만, 우리를 보는 게 아니야.’

황급히 몸을 돌려 한강을 바라보았다.

저들의 시선은 플레이어들이 아닌 그 뒤에 있는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가은 씨.”

“네.”

“호수 위에 있는 저거…… 혹시 사람입니까?”

한강의 가운데에 한 여성이 있었다.

발끝으로 물 위를 딛고 서 있는 연보라색 머리칼의 여성.

박성혁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귀는 평범한 인간과 달리 뾰족했다.

“신화 속 괴물들을 이렇게 많이 보다니, 뭔가 신선한 기분이야.”

그녀는 청량한 목소리로 말했다.

작은 중얼거림 같았지만, 그 목소리는 모든 플레이어는 물론 미노타우르스들에게도 또렷이 들렸다.

미노타우르스 킹이 앞으로 나서며 낮은 울음소리를 내며 울었다.

「너는 누구냐. 인간이 아니로구나.」

“어머나, 소머리 주제에 제법 똑똑하네, 너.”

깔깔 웃은 그녀는 오른손을 옆으로 뻗었다.

그러자 길쭉한 지팡이가 손에 쥐어졌다.

쿵!

“나는 모르간 르 페이.”

지팡이에 닿은 한강물에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잔잔하게 퍼져나간 물결은 거대한 마법진이 되었고, 이내 길디긴 한강 전체가 수십 개의 마법진으로 뒤덮였다.

“최후의 마녀이자 요정.”

한강을 가득 채운 자색의 마법진.

그중에 하나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새까만 옷을 입은 어두운 인상의 남성.

멀리서 그 모습을 본 박성혁은 단번에 그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김세한!’

대체 어디에 있나 했더니 설마 이런 식으로 나타날 줄이야.

한강에 모인 모든 플레이어와, 미노타우르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이전에 엑스칼리버의 주인을 찾으면 푸짐한 선물을 준다고 했었지만 설마 이런 부탁을 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아니, 이거면 충분해.”

“역시 당신 마음에 드네. 재밌어.”

모르간은 싱긋 웃었다.

그리고 한 번 더 지팡이로 물을 두드렸다.

우우우웅!!

마법진이 회전하며 빛을 흩뿌리자 한강 전체가 그 색에 물들었다.

동시에 물 위로 수많은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두터운 갑옷을 입은 이들도 있고 중국의 무복을 입은 자들도 있었으며, 평범하게 장비를 착용한 이들도 있었다.

붉은 용과 황룡이 그려진 두 개의 깃발이 그들 사이에서 펄럭였다.

영국 최대의 길드인 팬드래건과, 중국 최대의 길드인 창천의 깃발이었다.

하나의 길드를 이끌고 있는 박성혁이 그 문양을 모를 리가 없었다.

“왜 그들이 여기에…….”

무슨 연이 있어서, 그리고 어떤 이유로 그들이 이곳에 있는지 박성혁은 이해할 수 없었다.

심지어 소환된 플레이어들은 팬드래건과 창천만이 아니었다.

그 외에도 많은 플레이어들이 한강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 이건 대체…….」

이건 미노타우르스 킹조차 전혀 상정하지 못한 일이었다.

설마 이 정도 숫자의 플레이어들이 갑자기 한강에서 소환되리라 생각했겠는가.

“그동안 많이 신났었지?”

세한은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러자 그의 등 뒤로 무수한 검은 공간이 열리기 시작했다.

이날만을 기다리며 벼려진 무기들이 천천히 그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뒤질 준비나 해라.”

반전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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