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130화 (130/332)

# 130

130. 라비린토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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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퀘스트 9

미궁왕 알데바란

미궁으로 변한 서울에서 살아남아라.

난이도 S 남은 시간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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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설명이 간단했던 적은 몇 번이나 있었지만, 이번에는 특히나 간결했다.

단 한 줄.

그것만으로 이번 퀘스트를 표현하고 있었다.

남은 시간 3일이라는 건, 3일 안에 알데바란을 죽이라는 말이 아니다.

3일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남으라는 것이다.

단지 그것만으로 퀘스트 난이도는 역대급인 S급.

A급이 한 국가의 명운을 건 퀘스트라면 S급은 대륙의 명운을 건 퀘스트였다.

“왜, 왜 갑자기 S급인 거야…….”

중견 플레이어로 활동 중이던 김동성은 당장 울분에 찬 외침을 내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미궁에 돌아다니는 미노타우르스들이 듣고 다가올지도 몰랐으니까.

현재 서울은 거대한 미궁이 되었고, 미궁 안에서는 수많은 미노타우르스들이 플레이어들을 습격했다.

미궁의 길을 알 수도 없는 터라 제대로 도망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허억, 허억!”

계속해서 달린 탓에 숨이 턱 밑까지 차올랐다.

“음머어어어!!”

거대한 도끼를 든 미노타우르스가 자신을 발견하고 쫓아오고 있었다.

‘안 돼. 안 돼! 이렇게 죽을 수는 없어!’

하지만 자신의 다리는 한계였다.

미노타우르스가 코앞에 다가와 도끼를 휘두르는 순간, 하늘에서 까마귀가 떨어졌다.

‘아냐, 까마귀아 아니야, 사람?’

자세히 보면 검은 날개를 단 사람이었다.

미궁의 벽을 넘어 지면에 떨어진 남자는 정면에서 달려드는 미노타우르스를 향해 주먹을 뻗었다.

“위험……!!”

동성은 남자의 행동에 경악하며 비명을 내지르다가 말을 멈췄다.

콰아앙!!

남자의 주먹에 얻어맞은 미노타우르스의 머리가 지면에 내리꽂힌 것이다.

“뭐, 뭐야 저거.”

거대한 덩치를 지닌 미노타우르스가 남자의 주먹 단 한 방에 고꾸라지는 모습은 놀랍도록 비현실적이었다.

“이것이 깨어나기 전에 까마귀를 쫓아가라.”

“예, 예?”

동성이 제대로 말을 알아듣지 못하자 사내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하늘에는 한 마리의 까마귀가 날개를 퍼덕이고 있었다.

“까마귀가 안전지대까지 안내해 줄 거다.”

“저, 정말입니까?”

“믿을지 말지는 네 선택이지.”

동성은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이 휘날리도록 머리를 끄덕였다.

어차피 혼자 다니면 곧 죽을 목숨이었다.

그럴 바엔 자신을 구해준 남자의 말을 따르는 게 나았다.

“알겠습니다. 까마귀를 쫓아가겠습니다!!”

“좋아.”

사내는 씩 웃으며 다시 날개를 펼치고 날아올랐다.

순식간에 장벽 너머로 사라진 그를 멍하니 바라보던 동성은, 까마귀가 날아가기 시작하자 황급히 그것을 쫓아갔다.

이 지옥 속에서 탈출하기 위하여.

***

“그 사람은 정말로 미래를 보는 게 아닐까?”

“비슷한 스킬이 있다고 본인이 말하기는 하던데…….”

제네시스 길드의 길드장 박성혁은 길드원들의 대화를 듣고 옅은 한숨을 쉬었다.

그것은 답답함에서 나오는 한숨이 아닌, 안도에서 나오는 한숨이었다.

“가은 씨. 현재 대피 상황은 어떻습니까?”

“아직 한창 진행되고 있습니다. 무작위로 생성된 미궁 구역에 갇혀 있는 플레이어들이 많아 구출에 난항을 겪는 중입니다.”

“피안화 길드에게 말해두었으니 협력하여 진행해 주세요. 저도 곧 가겠습니다.”

“넵. 알겠습니다.”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 나가는 홍가은을 보며 박성혁은 창밖을 보았다.

현재 서울은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지만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이게 다 이런 상황을 예견한 한 명의 플레이어 덕이다.

“김세한…….”

그에게는 많은 빚을 졌지만 이번에도 하나가 추가될 것만 같았다.

사실상 현재 상황은 세한이 미리 안배해 둔 상황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서울에 미궁이 생성되며 몬스터가 나타날 거라는 것도 그가 말한 대로였다.

3대 길드는 세한이 보내오는 정보에 따라 플레이어들을 구출하고 탈출하지 못한 플레이어들을 인솔하고 있었다.

까악, 까악.

흔히 까마귀는 불길함의 상징이라 부른다.

하지만 박성혁은 하늘에 날아다니는 수많은 까마귀가 그렇게 든든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만약 그만 있다면 어떤 퀘스트라도 헤쳐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그와 인연을 만들어둔 건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이었어.’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자신만이 아니리라.

아마 아웃라이징 길드의 강태성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존심 강한 피안화이 이아영은 잘 모르겠지만, 그녀도 비슷하지 않을까.

창밖을 바라보며 대략 준비를 끝낸 박성혁은 천천히 전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이 여자는 대체 왜 안 와?”

그리고 그 시각, 이아영은 한 명의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현재 그녀가 있는 장소는 인천 공항이었다.

서울에 미궁이 열리고 절체절명에 상황이 되었어도 인천은 아직 영향권 밖이었다.

거기다 설령 위험한 상황이라고 해도 시스템이 직접 운영하는 비행기나 전철과 같은 이동수단은 상관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팔짱을 끼고 몇 십 분을 기다리고 있던 이아영은 얼마 후 착륙하는 하나의 비행기를 볼 수 있었다.

비행기에서는 백 명이 조금 넘는 사람들이 내렸다.

그리고 그 가장 앞에서는 새하얀 사제복을 입은 여성이 보였다.

“비행기를 만들어 오나? 뭐 이렇게 늦게 와?”

“어머, 기껏 와줬더니 참 이쁘게도 말하네요.”

이아영은 새하얀 사제복을 입은 여성을 보며 입가를 비틀어 올렸다.

참 자신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솔직히 세한의 부탁만 아니었으면 이 여자를 여기 부를 생각도 없었다.

현재 대한민국, 아니 세계 최고의 힐러.

성녀 신유화.

하지만 성녀라는 이명과 다르게 그녀는 꽤 날카롭고 모난 성격이었다.

마치 이아영 자신처럼.

“당신 같은 사람이 남자의 부탁을 듣다니, 혹시 반했어요? 저희에게 그런 거래를 청하면서까지 도와주다니 수상한데요.”

신유화가 빈정거리며 이아영에게 말하자 이아영은 피식 웃었다.

“내 목숨은 비싸. 난 그에게 목숨 빚을 졌지. 난 빚을 지는 걸 싫어해.”

“정말 콧대만 높은 여자라니까.”

“콧대만큼 자존심도 높다고 해줘.”

이아영은 신유화에게 손짓했다.

이미 비행장에는 미리 대기하고 있던 수십 대의 차량이 있었다.

“지금 서울이 난장판이니 긴장하는 게 좋아. 비싼값을 받은 만큼 굴러야 될 걸?”

“이미 서울 상황은 이야기 들어서 알고 있어요. 그러니 안내나 해요.”

신유화는 팔짱을 끼며 이아영 못지않게 도도한 얼굴로 말했다.

“내가 왜 이 지랄 맞은 성격에도 성녀라 불리는지 보여줄 테니까.”

***

“대피는 무난하게 진행되고 있고, 성녀 신유화도 서울에 들어왔나.”

나는 까마귀의 눈으로 서울 전역을 체크했다.

머리가 지끈거리긴 했지만 이젠 익숙해져서 이 정도는 크게 문제없었다.

이대로라면 미궁의 등장으로 발생한 피해는 최대한 줄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인데…….”

현재 미궁에 돌아다니는 미노타우르스는 큰 문제는 아니다.

기껏해야 내가 첫 번째 메인 퀘스트에 상대했던 미노타우르스보다 두 단계 강한 정도.

실력이 있는 플레이어 두 명이나 세 명이 붙으면 충분히 상대가 가능한 수준이었다.

진짜 문제는 보스급 존재의 출몰이다.

‘미노타우르스 킹이나, 워리어.’

그들은 길드 단위로 대적해야 할 상대들이다.

단순한 강함은 워리어가 더 강했지만 미노타우르스 킹이 두뇌가 되어 미궁을 지배하기 시작하면 답도 없었다.

‘그래서 신유화를 부른 거지.’

성녀인 신유화라면 수많은 사람들을 커버할 수 있었다.

사망자도 극도로 죽일 수 있을 뿐더러 사기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다음.

녀석의 등장이었다.

‘……알데바란.’

녀석이 등장하려면 시간이 좀 남았다.

과연 내 생각대로 될지 두렵기도 했다. 지금까지는 괜찮다. 이렇게 되리라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여기서부터는 내가 모르는 일이다.

1회차에는 하지 않은 일로 많은 것이 달라졌을 테니.

“그나저나 이 근처일 텐데.”

현재 내가 있는 장소는 서울이 아니었다.

서울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장소, 천안의 시내를 걷고 있었다.

미궁으로 아수라장이 된 서울과 달리 천안은 무척이나 평화로웠다.

‘여기군.’

나는 마력이 미세하게 느껴지는 골목으로 들어갔다.

어두운 골목은 특별할 것이 없었지만 난 오른손을 뻗어 가볍게 마력을 움직였다.

찌직, 찌지직.

마치 질긴 가죽이 찢어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사람의 시야를 속이는 동시에 간단한 방어효과까지 있는 마법결계였지만 내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이래보여도 왕년에는 꿈과 환상을 다루는 신의 아바타였던 나다.

이런 눈속임은 간단히 간파할 수 있었다.

덜컹!

결계를 찢자, 금속으로 된 문이 나타났다.

문은 흔치 않은 금속중 하나인 아다만티움으로 만들어진 문이었다.

가장 단단한 금속중 하나이며, 마법 저항력도 높은 금속이었지만 지나치게 무게가 많이 나가고 가공이 힘들어 무기로는 적합하지 않은 금속이었다.

“부수기는 좀 아까운데…….”

거기다 싸움을 걸러온 것도 아니니, 참 난감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손을 들고 문을 두드렸다.

쿵쿵쿵.

꽤 강하게 두드렸는데 잠잠했다.

설마 안에 아무도 없는 건가?

“음?”

이렇게 된 이상 조금 거친 방법으로 들어가야 고민하는데, 등 뒤에서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있었으면 말을 하지 그랬어.”

“네놈은 누구냐.”

사나운 인상의 남자가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어깨와 팔에는 시뻘건 불길이 타오르고 있어 무척이나 위협적이었다.

나이는 대략 10대 중후반 정도로 소년에서 청년의 사이였다.

나는 최대한 무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쪽의 길드장과 좀 만나고 싶군.”

“누구냐고 물었을 텐데?”

나이도 새파랗게 어린 게 아주 그냥 빠꾸가 없다.

하기야 그러니 미래에도 그렇게 안하무인으로 행동하지.

아무튼 오늘의 나는 1회차와 달리 싸움을 걸러온 게 아니다.

그러니 되도록 평화적으로…….

“폐사한 생선 같은 얼굴로 뭔 꿍꿍이를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얌전히 정체를 밝히는 게 좋을 거다!”

……해결하려고 했지만 마음이 바뀌었다.

폐사한 생선? 내가 좀 인상이 어둡다는 말을 자주 듣기는 하지만 좀 심하지 않냐?

“야, 강준식.”

인도의 신 아그니의 아바타이자.

훗날 아가트람의 행동대장이 될 녀석.

“너 좀 맞아야겠다.”

아무래도 이놈의 버르장머리를 좀 고쳐둘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

강준식은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있었다.

인도의 신 중, 상위 신에 속하는 아그니의 아바타이며 뛰어난 재능을 지닌 그는 비슷한 나이대의 플레이어 중에 적수가 없었다.

자신이 가장 강한 플레이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을 정도였다.

천상환을 만나고, 이수린을 만나며 하늘 위의 하늘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그의 자신감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특히 저 썩은 생선 같은 눈을 한 어두침침한 남자 따위는 단숨에 잿더미로 만들 자신이 있었다.

그래, 분명 그랬을 텐데.

“뭐야, 시발!!”

쉬이잉!!

볼을 스치고 지나가는 날카로운 칼날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욕설이 절로 튀어나왔다.

아니,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주로 불꽃을 방출하여 공격하는 강준식에게 세한은 극상성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불꽃을 날리면 뭐하는가!

허공에 새까만 공간이 열리며 청소기처럼 싹 빨아들이는데!

퍽퍽퍽!

“악! 악! 악!”

“한 대, 두 대, 세 대. 두상이 동그래서 때리기도 좋네.”

거기다 단순한 전투실력도 괴물과도 같았다.

강준식은 천상환과 대련을 하며 나름 근접전에 자신이 있었다.

설령 스킬을 사용하지 않아도 평범한 플레이어라면 열 명도 이길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뭔가.

사실상 일방적으로 두드려 맞고 있었다.

거기다 거의 조롱하는 것처럼 꿀밤으로 머리를 계속해서 쥐어박았다.

‘뭔 꿀밤이 이렇게 아파!’

태어나서 이렇게 빠르고 아픈 꿀밤은 처음이다.

결국 강준식은 눈가에 눈물이 찔끔 맺히고 말았다.

“어? 야, 우냐? 울어?”

“아, 안 울어!”

“그럼 눈가에 그거 뭐야, 땀인가?”

분노로 몸이 파르르 떨렸다.

이렇게 분할 수가 없었다. 손도 발도 못 내밀며 일방적으로 두드려 맞는다는 게 이렇게 서러울 줄이야.

결국 강준식의 눈물샘이 터졌다.

한두방울 흘러내리던 눈물이 댐이 무너진 것처럼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흑, 흑끕. 으으으으.”

“어, 진짜 우네. 아니, 울리려고 했던 건 아닌데…….”

신명나게 강준식을 때리던 세한은 갑자기 강준식이 서럽게 울기 시작하자 당황했다.

조금 버릇을 고쳐주려다 신이 난 건 있지만 설마 그 강준식이 이렇게 울 줄은 생각도 못한 것이다.

생각해 보면 강준식은 민아보다 어렸다.

괜히 애를 괴롭힌 것 같은 마음에 양심이 콕콕 쑤셨다.

“형이 템이 좀 좋은 게 있는데 하나 줄까? 야, 그만 울어라. 사내새끼가 꿀밤 몇 대 맞았다고 뭘 그리 울어?”

“……둘이 뭐해요.”

강준식의 등을 두드려주며 달래는데 떨떠름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긴 흑발의 여성이 서 있었다.

‘아, 하필 이런 타이밍에 올 건 뭐야?’

세한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지금 말을 건 여성은 다름 아닌 세계 최고의 마법사 중 하나인 이수린이었다.

설마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던 세한은 애써 표정관리를 하며 강준식의 등을 두드리던 손을 내렸다.

“……반갑군.”

“이제 와서 분위기 잡아도 늦었어요. 내참 결계가 깨져서 와봤더니…….”

이수린은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와 강준식을 번갈아가며 보았다.

강준식은 이수린에게 우는 모습을 보였다는 게 쪽팔렸는지 머리를 푹 숙이고 있었다.

“우리에게 볼 일이 있는 거죠? 들어와요. 아무튼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으니까요.”

이수린이 문에 손을 대자 금속으로 된 문이 천천히 열렸다.

총총 거리며 문 안으로 들어간 이수린의 등을 바라보던 세한은 슬쩍 강준식을 본 뒤에 작은 한숨을 쉬었다.

이미지 관리는 이미 틀린 것 같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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