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129화 (129/332)

# 129

129. 라비린토스(1)

초상계, 퍼블리셔.

“예, 예. 그럼 그렇게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카터스는 연신 허리를 숙이며 눈앞의 존재에게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한 서버의 GM을 맡고 있는 아카터스였지만 눈앞에 있는 존재에 비하면 비루할 뿐이었다.

현재 퍼블리셔를 이끄는 티탄들의 왕.

태초의 거인, 이미르(Ymir).

과거 수많은 별을 침략했던 장본인이며, 시스템의 힘을 이용하며 ‘게임’을 운영하기 시작한 최초의 존재다. 시스템에서 태어난 존재인 티탄들에게 이미르는 신과 같은 존재이며 격이나 힘은 그 위용에 걸맞았다.

“황도 12궁은 퍼블리셔도 쉽사리 움직일 수 없는 존재다. 만약 문제가 생긴다면 네가 책임져야 할 거다.”

“예, 걱정 마십시오. 현재 지구에는 알데바란을 이길 수 있는 이가 없으니까요. 전에 말했던 그…….”

“김세한이라고 했나? 까마귀자리를 차지한 플레이어.”

“예. 예! 녀석은 제가 따로 손을 쓸 예정입니다.”

“흠…….”

이미르는 옥좌에 앉아 웃었다.

황도 12궁 중에서도 1, 2위를 다투는 알데바란을 이길 수 있는 플레이어가 있을 턱이 없었다.

그를 이긴다면 최소 상위의 신. 그중에서도 전투에 특화된 신이어야 가능했다.

상식적으로 무슨 일이 생긴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고, 어디까지나 최소한의 주의를 줬을 뿐이다.

“알겠다. 대신 그만큼 포인트는 벌어와야 할 것이다.”

“맡겨주십시오. 김세한 놈만 처리하면 아주 포인트를 쪽쪽 빨아오겠습니다.”

놈은 한국 서버, 나아가 지구의 게임을 운영하는데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아카터스는 그것을 이전부터 느꼈다. 더 늦으면 정말로 되돌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다른 GM들과도 상의를 한 후, 이렇게 퍼블리셔에 허락을 구한 것이다.

‘두고 봐라.’

녀석을 죽이기 위해 손을 썼던 게 벌써 몇 번이나 실패한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은 놈이라도 어떻게 할 수 없을 거다.

알데바란은 둘째치고 자신 또한 손을 쓸 생각이었으니까.

‘이번에는 누구도 지킬 수 없을 거다. 김세한.’

아카터스는 이미르에게 고개를 숙인 채, 어두운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희열마저 담겨있었다.

***

중국에 다녀온 이후, 두 개의 메인 퀘스트가 있었지만 별 어려움 없이 클리어되었다.

그건 우리뿐이 아니다.

전체적으로 유저 수준이 올라갔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형, 이제 중국에서 공급할 무기는 다 만들었는데요.”

“그럼 영국에서 기병용 창을 20개 부탁하더라. 그것만 좀 부탁할게.”

“허, 좀 오래 걸릴 텐데 괜찮아요?”

“어. 우선 만들어지는 대로 나한테 줘.”

가장 바쁜 건 단연 시우였다.

디어사이드의 벌어들이는 포인트의 40퍼센트 이상이 시우가 만든 장비일 정도였다.

중국의 경매장을 확장 시킨 후, 나는 전 서버를 돌아다니면서 홍보를 했다.

결과적으로 세계 유수의 플레이어들을 베이징으로 불러들일 수 있었고, 창천 길드 지하에 있던 경매장은 따로 거대한 건물을 인수하여 옮길 수밖에 없었다.

‘아서의 도움도 컸지.’

영국 최대의 길드 팬드래건.

그 영향력은 미국까지 퍼져 있었기에 우리의 유통로로는 최적이었다.

이제 겨우 시작단계이긴 했지만, 전 세계 플레이어들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건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다.

‘아서에게 포인트도 몰아서 주고…….’

동료들의 성장세도 무난했다.

내가 여태 파티원으로 받아들인 건 지수, 창우, 그리고 아서. 이렇게 세 명이었다.

그중 가장 강한 건 단연 지수였고, 창우와 아서는 비슷한 실력이었지만 아서의 템빨에 창우가 상대적으로 밀렸다.

‘창우에게도 따로 무기를 구해주기는 해야겠어.’

뛰어난 검술을 이용한 고속전투가 창우의 장점이었기에 비교적 날이 가벼운 검을 구해줘야 할 것 같았다.

“린.”

나는 시우와 헤어진 후, 곧바로 린을 만나러 갔다.

린은 투기장에 다녀온 이후로 부쩍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졌는데, 창천 길드에서 얻은 무공들을 머릿속에서 정리하는 모양이었다.

“아, 세한 아저씨 안녕하세요.”

“잘 되어가?”

“네. 이제 팔극단공은 대부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린은 빙긋 웃으며 팔극단공의 자세를 취했다.

그것은 웨이 롱화가 보였던 자세와 비슷했지만, 그보다 한층 발전된 형태였다.

‘진짜 말이 안 나올 정도군.’

보는 것만으로 무공의 정수를 익히고 개선까지 가능하다니.

무림인들이 보면 사술이라고 울부짖으며 죽이려 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것조차 린이 가진 재능의 일부라는 점이다.

“오늘은 근데 무슨 일이 있나요?”

“무슨 일?”

“네, 표정이 그다지 좋지 않으셔서요.”

그렇게 티가 났나?

나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었다.

특별히 나쁜 일이 있는 건 아니었다. 단지 언제 터질지 모를 폭탄을 기다리고 있으니 조금 피곤할 뿐이다. 이드라의 말로는 아카터스가 곧 일을 벌일 거라고 했는데, 벌써 메인 퀘스트 두 개가 지나도록 잠잠하니 영 꺼림직했다.

“린.”

“네?”

“내가 그날 준 건 잘 가지고 있지?”

“이거요?”

린은 인벤토리에서 하나의 물건을 꺼냈다.

그것은 금빛 모래가 들어있는 모래시계였다. 어린아이가 쥐기엔 조금 큰 그것은 이리저리 뒤집어도 모래가 흘러내리지 않았다.

바로 라플라스의 모래시계다.

“그래, 그거 잘 가지고 있어. 분명 필요할 때가 올 거다.”

“근데 이건 미래의 시간을 불러오는 거라고 했죠? 1시간이었나?”

“30분.”

“아, 맞아.”

린은 헤헤,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 모습은 또래의 소녀와 같았다.

“근데 이걸 제가 가지고 있어 봐야 뭔가 쓸 일이 있을 까요?”

“모르지.”

“네?”

“되도록 쓸 일이 없었으면 한다만, 녀석이라면 분명 일을 벌일 거야.”

린은 아리송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그런 린의 모습에 나는 피식 웃으며 밝은 금발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솔직히 이런 어린아이에게 미래를 건다는 건 속이 편하지 않다.

하지만 해야만 했다.

“참, 그렇지. 린 너 아스트라이아님과 대화하고는 해?”

“아주 가끔 쪽지로 대화를 걸어주시곤 해요.”

대부분의 신들은 플레이어를 신경 쓰지 않는다. 신들과 계약을 맺은 아바타가 아닌 존재를 NPC라고 부르는 것부터 그런 이유다.

아스트라이아의 경우엔 그런 신들 중에서도 별종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자신의 아바타인 루크뿐이 아니라 그 딸인 린과도 제법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럼 하나 부탁이 있는데…….”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스트라이아 님과 잠시 대화 좀 해볼 수 있을까?”

***

“끄으으응.”

“왜 그래, 변비야?”

미래를 보는 소녀, 민수아는 요즘 끙끙 거리며 신음을 내는 경우가 많았다.

민수호는 그런 여동생을 보며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평소라면 하지 말라며 소리칠 여동생이었지만 요즘은 그저 앓는 소리만 낼 뿐이었다.

“몰라, 진짜. 요즘 미래가 잘 안 보인단 말이야.”

“그런 경우도 있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존재가 몇이나 있다는 거겠지.”

이래서야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이 무용지물이다.

엔딩은 변하지 않았지만, 미래의 불확실성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특히 요즘 그런 경향이 더 컸다.

지난번 지수와 얽힌 사건 이후로 노이즈가 낀 것처럼 미래가 흔들리는 경우가 잦아졌다.

“여신님의 말로는 곧 있을 사건이 지나가면 진정될 거라고 하던데.”

“여신이라면…… 스쿨드 님?”

“응.”

머리가 지끈거렸다. 미래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건 수아에게 크나큰 스트레스였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면 그냥 신경 끄면 되지 않나?”

그런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자운이 말했다.

자운은 방금 던전에 다녀왔는지 전신이 땀투성이였다.

“오빠는 맘 편해서 좋겠네요. 그런 문제가 아니에요. 미래가 불확실하지만 확실한 것도 있어요.”

“뭐가 확실하지.”

“별이 강림해요.”

“뭐야, 그거. 나도 자세히 듣고 싶은데?”

한껏 분위기를 잡으며 말한 수아의 말에 침대에서 뒹굴 거리며 소설을 보던 아자젤이 몸을 일으켰다.

“저번에 마마잭이 왔다가 까마귀한테 털렸던 것 같은데, 또 와? 운영 아주 개막장으로 하네.”

“나는 그때 만나보지도 못했지만…….”

“혼자서 삽질하는 사이 끝나 버렸지. 멍청한 내 계약자 같으니라고.”

별자리라는 건 아무리 급이 낮아도 신위를 지닌 존재다.

게임에 가볍게 부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 지구의 게임에는 벌써 세 개의 별자리가 작살났다.

까마귀자리는 죽어서 플레이어에게 그 위를 빼앗겼고, 전갈자리는 치명상을 입어 요양 중이었다. 카멜레온자리의 경우엔 행방이 묘연해져 신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그래서 누구야? 저번에도 된통 당했으니 하위 별자리이려나?”

“……황도 12궁이에요.”

우울한 수아의 목소리에 아자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황도 12궁은 별자리 중에서도 최고위에 위치한 존재들이었다.

심지어 12궁 중에서는 여신 중 하나가 속해 있을 정도였다.

“그거 놀라운 일이네. 누구야? 보병궁이나 쌍아궁? 아니면 인마궁일지도 모르겠는걸.”

“다 아니에요.”

아자젤이 언급한 별자리는 대체로 황도 12궁 중에서는 그나마 격이 낮은 별자리였다.

그렇다 해도 현재의 플레이어들로서는 감히 상대도 못할 존재들이었음에도 수아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금우궁.”

“와.”

금우궁이라는 말에 아자젤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알데바란을 부른다고? 별을 멸망시킬 생각인가?”

금우궁 알데바란.

모든 미노타우르스들의 왕이자. 미궁왕이라 불리는 괴물.

황도 12궁의 별자리 중에 알데바란과 자웅을 겨룰 수 있는 별자리는 사자궁 정도뿐이다.

처녀궁에 위치한 정의의 여신, 아스트라이아도 무력으로는 알데바란을 이길 수 없다.

간단히 말해 중상급 신의 힘을 지닌 존재다.

별을 홀로 멸망시킬 수 있는 존재를 게임에 부른다는 소리에 아자젤은 어이가 없었다.

“아주 그냥 악마도 실직하겠네. 이래서야 누가 악마야?”

“그래도 미래를 보면 제한시간은 있는 것 같은데요.”

“그래서 어떻게 되는데?”

“우선 강림하는 순간 서울의 절반이 아작나지만…… 그 이후는 잘 모르겠네요.”

잘 모른다고?

그 말은 미래에 변수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알데바란을 상대로 변수를 창출할 플레이어가 현재 존재하나?

‘까마귀인가?’

아무리 까마귀가 날고 기어도 알데바란을 상대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현재 그 상황을 극복할 만한 건 녀석밖에 없었다.

“흐음~~. 흥미롭네. 기대되는 걸.”

“이쪽은 절체절명의 상황이라고요.”

“후후, 나랑은 관계없는 일이야. 계약자? 너는 알아서 잘 살아봐.”

자운은 그저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데바란이건 뭐건 관심없다는 눈치다. 그게 영 재미가 없었지만 그게 또 자신의 계약자의 매력이 아니겠는가.

알데바란이 눈앞에 나타나도 자신의 계약자라면 전력을 다해 싸울 거다.

그렇다면 분명 죽게 되겠지만…… 아자젤도 그것을 지켜볼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정말 손이 빠르다니까.”

아자젤은 창밖을 보았다.

그곳에는 한 마리의 까마귀가 있었다.

***

쿠쿵, 쿠쿠쿵!

어두운 새벽.

서울의 대지에 작은 지진이 일어났다.

대지가 뒤집히고 아스팔트로 이루어진 도로를 무수며 거대한 벽이 세워졌다.

그것은 마치 신화 속에 나오는 미궁과 같았다.

“저게 뭐야?”

아침에 눈을 뜬 민아가 창 밖을 보며 말했다.

서울 전역에 세워진 장벽은 가히 장관이었다. 안전지대에 세워진 건물들은 피해갔지만 그렇지 않은 건물들은 장벽에 무너진 것도 많았다.

“라비린토스.”

“그게 뭔데?”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미궁의 대명사지.”

신위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거기다 아직 시스템으로부터 특별한 알림도 들리지 않았다.

이건 어디까지나 전조다.

세계가 녀석을 받아들이기 위해 준비하는 하나의 과정이었다.

중급 이상의 신위를 가진 존재가 별에 강림하게 되는 경우는 두 가지다.

별이 견딜 수 있을 만큼 자신의 격을 조절하고 능력치를 다운 시키거나, 별 자체를 일시적으로 강화시켜 일시적으로 강림하는 것.

마마잭은 전자였고, 알데바란은 후자다.

그나마 마마잭은 본래 하위 신격을 지닌 존재였기에 본신의 힘을 어느 정도 끌어낼 수 있었지만 분명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곧 나타날 알데바란은 아니다.

서울을 자신의 세계인 미궁으로 변질시키며 본신의 힘을 온전히 지닌 채 강림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모두 준비하라고 전해.”

“뭘?”

“싸울 준비.”

고요했던 서울 전역에서 마수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땅이 울리고, 건물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소의 머리를 한 괴물들이 미궁이 된 서울을 활보했다.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렸고 플레이어들이 싸우는 소리가 점차 들려왔다.

드디어 9번째 메인 퀘스트가 시작된 것이다.

1회차 최악의 퀘스트 중 하나.

미궁왕 알데바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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