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128화 (128/332)

# 128

128. 참살검(慘殺劍)(3)

다인슬라이프는 1회차에 내가 보았던 SS급 무구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악랄한 무기였다.

소유자를 파멸시킨다는 유래와 같이, 그것에게 지배를 당한 플레이어들은 죄다 처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후에 강한 정신내성 스킬을 지닌 플레이어의 손에 들어간 덕에 악명은 막을 내렸지만 그전까지 다인슬라이프가 끼친 피해는 어마어마했다.

‘가장 처음에 쥐었던 유엔에게서 입은 피해가 제일 크긴 했지.’

드득, 드드득!

다인슬라이프에서 나온 촉수가 온몸에 박힌 웨이 롱화의 육신은 점점 비대해지고 커졌다.

이미 인간의 모습은 한참 전에 벗어나있다.

마력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며 점점 더 강해져 갔다.

다인슬라이프를 쥔 인간의 모든 재능을 개화시키고, 한계를 억지로 뛰어넘게 만든 결과다.

숙주가 된 인간은 몸이 부서질 때까지 피를 탐하며 끊임없이 싸우게 되겠지.

“확실히 대단한 무기야.”

실제로 보니 저릿저릿한 살기가 피부에 와 닿았다.

프라가라흐 한 방에 개박살 났던 웨이 롱화가 이정도로 변할 정도라면 과연 SS급 무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이 상황에서 감탄을 할 수 있다는 게 대단하네요.”

린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녀석은 내 바로 뒤에 바짝 붙어있었다.

나는 그런 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피식 웃었다.

‘좋아, 이제 대충 다 빠져나갔나?’

유엔은 내게 걱정스런 눈빛을 보냈지만 순순히 내 말을 따랐다.

어차피 자신이 이곳에 있어봐야 도움도 되지 않으니 이기어검까지 사용했던 내 실력을 믿은 거겠지.

옳은 판단이다.

덕분에 나는 린에게 이제부터의 싸움을 제대로 견학시켜 줄 수 있었다.

“저……도 싸워야 하나요?”

“아니, 너는 VIP석에 앉아서 똑똑히 봐라. 이제부터의 싸움은 많은 도움이 될 거야.”

2회차의 웨이 롱화는 내게 있어 허접한 플레이어에 불과했지만, 1회차는 아니었다.

창천의 용. 중국 전역을 호령하는 최고의 플레이어 중 하나.

그 재능을 모두 개화하고, 한계를 뛰어넘은 지금의 웨이 롱화는 그런 1회차의 웨이 롱화의 영역에 도달해 있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그것조차 뛰어넘겠지.

“마물과, 무인의 힘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괴물은 흔치 않거든.”

거기다 단순한 싸움의 문제가 아니다.

린은 배울 필요가 있었다. 힘에 먹혀버린 괴물의 말로를.

누구보다 뛰어난 재능을 지닌 린이기에 자신의 재능에 경각심을 가져야만 했다.

다인슬라이프에 지배된 웨이 롱화는 그런 린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리라.

쿠쿵. 쿠쿠쿵!

거대해진 웨이 롱화는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시꺼멓게 변한 동공에는 이미 이성이 남아 있지 않았지만, 그만큼 또렷하게 내 모습이 비쳤다.

“자 와라. 이제 수업시간이다.”

“그라아아악!!”

기존에 웨이 롱화를 도발해 뒀던 게 성과가 있는지, 놈은 나를 향해 울부짖으며 덤벼들었다.

괴물과도 같은 모습이었지만 녀석의 발놀림은 막무가내로 움직이는 게 아니었다.

보법.

창천의 보법을 사용하며 일순간에 내게 접근했다.

콰아앙!

“큭!!”

정면에서 막으니 충격이 상당했다.

몸이 수 미터는 밀려나갔고 검의 이가 빠졌다.

미스릴과 에스더의 합금으로 만든 검을 단 한 방에 이렇게 만들 정도면 평범한 무기로 막았다간 그대로 두 동강이 나버릴 것이다.

녀석의 마력이 움직이며, 한 마리의 용과 같이 다인슬라이프를 휘감았다.

창천 길드의 무공인 팔극단공이 극성으로 펼쳐지며 주변에 있는 잔해들을 말 그대로 갈아버렸다.

쿵쿵쿵쿵!!

나는 머리 위에 공간을 열어 다섯 자루의 검을 내 앞에 떨어트렸다.

검은 일렬로 떨어져 마치 벽처럼 내 앞을 가로 막았다.

“그르르르르…….”

지면을 갈아버리며 다가오던 팔극단공의 내력은 검에 가로막혀 일부는 튕겨나갔고, 일부는 흡수되었다. 에스더의 합금으로 만들어진 무구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웨이 롱화는 검의 뒤에 숨을 나를 보며 가볍게 손짓했다.

그러자 주변에 부서져 떨어져 있던 콘크리트와 철근 덩어리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허공섭물인 척 사용하던 염동력이다.

“제법인데!”

콰쾅! 쾅!

날아오는 돌들을 주먹으로, 혹은 인벤토리에서 꺼낸 둔기로 그대로 부숴 버렸다.

그중 날아온 철근 중 하나를 손으로 잡아채, 역으로 녀석을 향해 집어던졌다.

콰앙!!

“그으아!!”

철근은 머리를 강타하자 크게 몸이 젖혀졌던 놈은 새까만 동공에서 검은 불꽃이 타오르며 팔극단공의 초식을 펼치기 시작했다.

일전에 내게 사용했던 팔극단공의 오의 ‘천익’이다.

봉황의 날개가 펼쳐지며 검이 대각선으로 휘둘러졌다.

오색의 빛이 번쩍이며 경매장 내부를 찢어버렸다.

지하 3층부터 지상 1층까지 갈라지며 순식간에 푸른 하늘이 눈에 들어올 정도였다.

나는 그런 녀석을 향해 달려들어 둔기로 녀석의 머리를 강타했다.

녀석의 몸이 크게 꺾였지만, 나는 멈추지 않고 몸을 회전시켜 녀석의 무릎을 재차 둔기로 내리 찍었다.

“김, 세한. 김세하아아아안!!”

녀석이 어눌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외치며 자신이 이루었던, 그리고 이루지 못했던.

무공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팔극단공의 오의와 극한으로 단련된 초식.

다인슬라이프로 개화된 웨이 롱화는, 괴물 같은 외형과 달리 하나의 무인과도 같이 검을 휘둘렀다.

나는 그것을 정면에서 맞섰다.

그래야 린이 똑바로 볼 수 있을 테니까.

콰콰콰쾅!!

용이 아가리를 발렸고 봉황이 날개 짓을 하며, 내 전신을 향해 검기가 말 그대로 비처럼 쏟아져내렸다.

반면 그렇게 화려한 초식을 내세우며 공격하는 웨이 롱화와 달리 나는 무척 심플했다.

막고, 그리고 또 막으며 빈틈이 보였을 때 공격한다.

무공이나 무술의 화려함은 없었다.

나는 오로지 기본을 충실히 갈고닦았다.

왜냐, 재능이 부족했으니까.

솔직히 말해 웨이 롱화도, 샹관 유엔도 나에 비하면 천재에 가까운 플레이어다.

하지만 난 아니었다.

나는 상대의 공격을 막기 급급했고, 겨우겨우 반격을 하는 게 다였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극한으로 연마했다.

약자로서, 강자를 상대하는 법.

신자운이 그랬듯, 나도 마찬가지다.

스스로의 힘이 부족했기에 상대의 힘을 이용하는 기술을 익혔다.

오로지 생존을 위한 싸움.

나는 그것을 극한까지 연마했다.

“그라악! 그르르르륵!!”

녀석의 검은 눈은 어째서 자신의 공격이 통하지 않는지에 대한 의문이 담겨 있었다.

내 움직임은 팔극단공에 비하면 평범함의 극치였다.

하지만 그 평범함을 녀석은 부수지 못했다.

공격을 막고, 막지 못하면 피하며, 그렇게 해서 생긴 빈틈을 노려 공격한다.

콰아앙!!

나는 녀석의 팔을 잡고 그대로 매쳤다.

지면이 거미줄처럼 갈라지며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바닥이 산산이 부서졌다.

등가죽이 찢어지고 뼈가 뒤틀렸음에도 녀석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다, 다인슬라이프를 쥔 나느은 최가가강이다! 이이 정도는 문제없다!”

짐승의 울음소리처럼 웨이 롱화가 울부짖었다.

타락한 창천의 용.

아니, 원래 타락해 있던 건지도 모른다.

1회차에도, 그리고 2회차에도.

단지 내가 그것을 몰랐을 뿐이지.

나는 힐끗 린을 보았다.

린은 나와 웨이 롱화의 싸움을 놓치지 않고 보고 있었다.

그래, 너는 그렇게 보면 되는 거다.

자신의 것이 아닌 힘에 취하면, 그것을 견디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지 잘 봐둬야만 한다.

나는 더 이상 허수공간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다.

당연히 프라가라흐와 같은 스킬도 사용하지 않았다.

오로지 단련된 기술.

그것만으로 웨이 롱화와 공방을 계속해서 주고받았다.

“이렇게 해서, 그래, 이렇게 하는 거구나. 그럼 이제…….”

린의 중얼거림이 귀에서 들렸다.

녀석은 지금은 팔극단공에 담긴 무(武)를 이해하고 있었다.

팔극, 어디로든 뻗어나가는 그 광대한 힘.

“나는 용이란 말이다아아아!!”

무릎이 굽혀지고, 허리를 용수철처럼 튕기며 놈은 하나의 용이 되었다.

강맹한 기세에 경매장 내부가 부서져 내리고 대지가 떨렸다.

고오오오!!

용이 포효하며 나를 물어뜯기 위해 아가리를 벌렸다.

그것을 어떻게 막느냐.

심플하게 정면에서 때려 부순다.

나는 양손에 든 검을 쥐고 용을 향해 휘둘렀다.

물어뜯으려는 이빨을 부수고, 뿔을 꺾어내며 목을 찢어발겼다.

막고, 막고, 또 막는다.

그 끝에 도달하면 아무리 대단한 무공이라도, 희대의 신공이라고 할지라도 빈틈이 생기기 마련. 특히, 나는 무공을 익히지 않았기에 그것들 파훼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혈마의 혈천수라공도 파훼했던 내게, 팔극단공은 그다지 어려울 것도 없었다.

“그, 그르르르륵”

검은 불꽃으로 타오르는 웨이 롱화의 눈에 경악이 실렸다.

내가 자신의 공격을 막았다는 것에 놀란 것이 아니라, 그런 단순한 방법에 자신의 공격이 격파당한 것에서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끝이군.”

녀석은 이제 나를 겁에 질린 눈으로 보고 있었다.

다인슬라이프는 녀석에게 끊임없이 싸우라 말하고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내게 공포를 느껴 움직이지 못했다.

“린.”

나는 쥐고 있던 검을 인벤토리에 넣으며 린을 불렀다.

“네?”

“……할 수 있겠냐?”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 질문에는 많은 게 담겨있었다. 린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그걸로 됐다.”

나는 오른손을 들어 겁에 질려있는 웨이 롱화를 보았다.

놈은 천천히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고, 이내 도망치기 위해 등을 돌렸다.

딱.

손가락을 튕기는 동시에 도망가는 웨이 롱화의 주변에 무수한 검은 공간들이 열렸다.

한 개, 두 개, 세 개. 그렇게 십 수개가 검은 공간이 열리며 일제히 길쭉한 창을 사출시켰다.

그것들은 웨이 롱화의 전신을 꿰어 지면에 고정시켰다.

“나느으은, 최강. 최강일 텐데…… 너는, 너는 대체 뭐냐. 대체 뭐냐고!!”

녀석 울부짖으며 몸부림쳤지만 그 정도로 몸에 박힌 창이 뽑힐 리가 없었다.

그건 지수조차도 속박시켰던 창이다. 마마잭 정도의 힘을 지닌 게 아니라면 그것을 뽑아낼 수 있을 턱이 없었다.

“아참. 그렇지.”

나는 몸부림치는 녀석을 향해 싱긋 웃으며 검지로 허공에 원을 그렸다.

그러자 새까만 구멍이 생기며 한 자루의 검이 천천히 빠져나왔다.

비검(飛劍) 프라가라흐다.

“네 말처럼 이거 이기어검 아니야. 난 그런 거 사용할 줄 모르거든.”

프라가라흐는 천천히, 녀석의 가슴팍을 겨냥하며 날카로운 칼날을 번뜩였다.

“단순한 템빨이지.”

“너어어어어!!”

웨이 롱화가 어눌한 목소리로 울부짖는 동시에 프라가라흐가 날아갔다.

녀석은 다인슬라이프로 어떻게든 막으려 했지만 프라가라하는 그런 팔마저 절단하며 그대로 가슴을 꿰뚫었다.

“이, 이이이 개새끼……….”

놈은 새삼 억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눈을 감았다.

손에 움켜쥐고 있던 다인슬라이프가 달그락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창천의 용이라 불리던 자의 최후라기엔 너무나 초라한 모습이었다.

나는 그런 웨이 롱화를 보며 린에게 말했다.

“린, 이래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하는 거야.”

“……그, 그런가요?”

언제나 영특하게 내 말을 이해하던 린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아리송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

웨이 롱화가 죽고, 창천 길드의 후계자는 샹관 유엔이 되었다.

반발도 상당했지만, 웨이 롱화가 그간 저질렀던 악행들이 드러나며 유야무야 넘어가게 되었다.

“정말 이걸로 충분한가요? 이번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경매장을 통째로 드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인데.”

“이쪽은 경매장을 운영할 여력이 없거든. 우리는 물건을 공급할 테니, 창천은 그것을 도맡아서 판매해 줬으면 해.”

도리어 이쪽이 지나치게 남는 장사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물건만 주면 판매 수익의 8할을 우리가 가져가니까.

경매장 자체가 탐나기도 했지만, 솔직히 그런 곳에까지 신경 쓰고 싶지는 않았다.

“알겠어요. 정말, 계속 도움만 받는 것 같네요.”

“서로 돕고 살아야지.”

내가 그렇게 말하자 유엔은 기쁜 듯이 웃었다.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말만 하세요, 창천은 언제까지나 디어사이드의 우방이 될 테니까요.”

“그거 고맙네.”

이건 진심이다. 어쨌든 유엔이 우리에게 무한한 호의를 보내준 덕에 이야기도 쉽게 끝났으니까.

경매장에 이용에 관련된 문제나 투기장의 확장.

어떤 거나 창천에게는 무리한 일이었지만 유엔은 흔쾌히 승낙했다.

“다만 투기장은 반발이 예상될 것 같네요 도박이 없어지는 건 저도 찬성할 만한 일이지만 그래서야 다른 투기장들에게 먹히게 되지 않을지…….”

새로운 투기장은 창천 길드의 지하에서 독립하여 하나의 건물에 따로 만들 생각이었다.

층 단위로 경기가 진행되며 랭킹과도 같은 제도를 만들 생각이었다.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그곳에서 실전을 경험하여 실력을 높일 수 있도록 다양한 시스템을 생각 중이었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하지만…….”

“곧 투기장을 제대로 홍보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 같거든.”

마침 내게는 하나의 쪽지가 와있었다.

바로 이드라의 쪽지다.

‘슬슬 때가 됐군.’

쪽지의 내용은 지극히 단순했다.

아카터스와 퍼블리셔의 회의가 끝났다는 말이었다.

그것은 곧 녀석이 이 세계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황도 12궁.

그중에서 무력이라면 두 손가락 안에 드는 미궁의 왕.

알데바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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