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126화 (126/332)

# 126

126. 참살검(慘殺劍)(1)

“하, 하하. 정말로 대단하군. 그게…… 정말로 이기어검이라는 건가?”

뜨거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웨이 롱화는 애써 태연한 어조로 말했다.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보다시피.”

“단순히 염동력으로 검을 움직인 게 아니고?”

본인이 염동력을 이용해 사람들의 눈을 속이니 나 역시 그러리라 생각한 모양이다.

입가에 비릿한 미소로 보아 아무래도 확신하는 것 같았다.

“설마, 나는 그런 짓을 하지 않아. 무공인 척 다른 스킬을 사용하면 쓰레기지.”

“…….”

웨이 롱화의 입이 꾹 다물어졌다.

본인을 저격하는 말이나 마찬가지니 내심 찔렸던 모양이다.

참고로 난 스킬이 아니라 검이 알아서 움직이는 거니 거짓말은 안 했다.

“……맞는 말이군.”

웨이 롱화는 엄지손톱을 이빨로 물어뜯으며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그의 얼굴은 이내 작은 미소가 걸렸다.

“무인으로서 이기어검술을 사용하는 고수를 앞에 두니 가슴이 뛰는군. 실례가 아니라면 한수 가르쳐줄 수 있겠나? 전설의 이기어검을 직접 견식해 볼 기회를 놓칠 수야 없지.”

녀석은 내가 자신의 아래라고 확신하는 모양이었다.

이기어검도 어디까지나 눈속임이라고 판단한 거겠지. 현재 내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분명 자신의 아래일 테니까.

그런 녀석이 수백 명의 길드원들의 앞에서 자신보다 대단한 척하고 있으니 배알이 뒤틀렸으리라.

“나야 상관없다.”

“하하! 역시 호걸이군. 좋다, 차기 창천의 장문인로서 나 역시 한번 뱉은 말을 무를 수 없는 법!”

웨이 롱화는 오른손을 천천히 위로 올렸다.

그러자 대기하고 있던 길드원들이 달려와 거대한 식탁을 들고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단숨에 연회장은 하나의 대련장이 되었다.

거대한 탁자를 치우니 넓은 공간이 드러난 것이다.

“세한, 당신은 강하지만 너무 방심하지는 말아요.”

잠자코 숨을 죽이고 있던 유엔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녀는 상당히 복잡한 얼굴이었는데, 나로선 꽤나 의외인 모습이었다.

어찌됐든 남인 나와는 달리 웨이 롱화는 유엔의 사형이자 차기 장문인으로 유력한 사람이니 그를 응원하는 게 당연했다.

실제로 이미 홀 안에는 웨이 롱화를 응원하는 수백 명의 외침이 가득 채울 정도였다.

하지만 유엔은 오롯이 내게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방심하지 않아.”

“그럼 다행이네요.”

그래, 방심하지 않는다. 한없이 가소로워보일지 모르지만 웨이 롱화는 엄연히 창천의 용이었으니까.

“후우.”

웨이 롱화가 숨을 내쉬며 천천히 자세를 잡았다.

그의 손에는 한자루의 검이 잡혀 있었고 그가 취한 형은 팔극을 닮아 있었다.

“창천의 검은 어디에도 있으며 어디로도 향하지.”

검의 움직임에 따라 마치 용이 똬리를 트는 것 같았다.

확실히 염동력을 사용해 사기를 쳤어도 그는 고수다.

“자, 와라. 선공은 양보하마.”

오만하게 웃어 보이는 웨이 롱화의 모습에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방심하지 말라는 말은 내가 아니라 저 녀석에게 했어야 했다.

“그럼 사양 않고.”

딱!

손을 들어 올려 경쾌하게 손가락을 튕겼다.

새까만 공간이 열리며 한 자루의 검이 튀어나왔다.

그것을 본 웨이 롱화는 짙은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시작부터 어검인가? 좋다, 전설의 기술을 직접 받아보도록 하마!”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주제에 연기는 아주 일품이다.

최대한 나를 띄운 후, 멋지게 공격을 막는 모습을 보이기 위함이리라.

그의 양팔이 움직임에 따라 강맹한 팔극의 기운이 일점에 쏠렸다.

“천익(天翼)!!”

바람이 불지 않는 연회장에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마치 날개를 펼치고 날아가는 봉황의 날개 짓처럼 아름다운 빛 무리가 그의 검에 맺혔다.

나는 그런 그를 향해 가볍게 손짓했다.

당장이라도 내게 검을 휘두를 것 같은 웨이 롱화를 향해 프라가라흐가 날아갔다.

연회장에 가득 찬 바람을 찢어발기며 수십 미터에 이르는 거리를 찰나에 좁혀버렸다.

──마치 공간을 잘라낸 것처럼.

“뭣!”

설마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던 듯, 웨이 롱화가 청천의 무공인 팔극단공의 오의라고 할 수 있는 천익을 펼쳤다. 조금 다급했을지 몰라도 확실히 완성된 봉황의 날개였다.

오색으로 물들이는 검의 모습은 과연 장관이었다.

문제는 그것이 번쩍이는 순간 프라가라흐가 빛을 꿰뚫어버렸다는 점이다.

콰자자작!!

“커어어억!!”

봉황의 날개가 프라가라흐에 갈가리 찢어졌다.

홀에 불던 바람은 멈추고 웨이 롱화의 신형은 뒤로 튕겨져 나가 벽에 처박혔다.

웨이 롱화를 응원하던 시끄러운 소리들도 단번에 사라졌다.

고요하게 가라앉은 연회장 안에서 가장 먼저 입을 연건 샹관 유엔이었다.

“주, 죽은 건가요?”

유엔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 날아온 검에 그냥 얻어맞았을 뿐이야. 호신강기가 있으니 충격은 받았을지라도 죽지는 않았을 거다.”

“아아, 날로 벤 게 아니군요.”

“그래, 검의 옆면으로 때렸지. 아무리 나라도 창천의 길드 안에서 차기 장문인을 죽일 생각은 없거든.”

적어도 지금은 말이야.

“그럼 이제 어쩌나…….”

밥을 먹던 상대가 기절해 버렸으니 계속 이곳에 있기도 뭐했다.

“참 당신이라는 사람을 볼 때마다 절 놀라게 하네요. 걱정 마세요. 여기 일은 제가 알아서 처리할게요.”

“이거 매번 빚만 지는 것 같군.”

“괜찮아요.”

유엔은 살풋 웃었다. 사형이 나자빠져 있는데 하등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였다.

“참 사형도 무모하죠. 당신의 실력을 착각해서 덤볐으니…… 이기어검을 보고서도 그런다는 게 놀랍네요. 사형은 한 번쯤 이렇게 당해볼 때가 됐죠.”

그런 그녀의 말에 나는 내심 놀랐다.

난 당연히 유엔도 모르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알고 있었던 건가?

내가 그런 시선을 담아 바라보자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기감이 원래 좀 예민하거든요.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는데 방금 싸움에서 확신했어요.”

예상외로 웨이 롱화와 샹관 유엔의 실력은 차이가 있는 것 같았다.

대략 엇비슷하리라 생각했지만 유엔은 웨이 롱화보다 한 발짝 앞서 있었다.

그녀는 주변의 길드원들을 지휘하여 연회장을 대충 정리한 후, 나를 건물의 입구까지 배웅했다.

“참 3일 후에 열릴 경매에 온다고 하셨나요?”

“아, 그래.”

“그럼 그때 다시 보겠네요.”

유엔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싱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보내는 이상할 정도로 높은 호감에 당혹스러운 건 나였다.

‘대충 창천 길드를 먹고 싶다는 대답이라고 판단해도 되나?’

아니, 그런 것치곤 조금 애매한데.

나는 그런 그녀의 기이한 태도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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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가 열릴 날을 기다리며 나는 적당히 시간을 떼웠다.

투기장에 가서 포인트를 벌거나, 오늘처럼 호텔에서 신들의 커뮤니티를 훑어보고 있었다.

“이드라 녀석 포인트좀 만졌겠는데.”

드림위치를 팔로우한 숫자는 무려 100만이 넘었다.

무려 신인데 고작 그거? 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 100만이라는 숫자는 모두 신이다.

전 우주에 퍼져 있는 신위의 취득자들.

그런 이들이 100만 명이나 이드라를 보고 있다는 건 어마어마한 규모의 신격이 영상 하나하나마다 몰아치고 있다는 것이다.

“대다수의 영상은 나를 찍은 거네.”

매번 내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는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거다.

이정도 구독자라면 이드라가 벌어들인 포인트는 내가 1회차에 모았던 포인트를 아득히 초월했으리라.

대충 몇 백만 포인트를 벌어들였겠지.

어림짐작해도 너무 많아서 헛웃음만 나왔다.

심지어 이드라가 올리는 영상은 지구에서 진행 중인 게임과 관련된 것만이 아니었다.

‘충격! 외우주에는 없는 신들의 문명!’부터 ‘ㅇㅇ에 대한 외신(外神)의 반응’ 같은 것도 심심치 않았다.

‘아주 그냥 살판이 나셨구만.’

이런 영상은 그거지. 우리로 치면 국뽕 방송 같은 거라 보면 되겠군. 이쪽 우주의 무언가를 보고 경악한 외우주신의 반응을 보여주는 영상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근데 외신들은 애초에 인간형도 아니잖아. 저런 괴물이 입을 벌리고 경악하는 게 놀라서인지 한입에 삼켜버리려는 건지 어떻게 아냐고.

‘……1회차에 내가 보아온 이드라의 이미지와는 너무 다르잖아.’

인간을 좋아하고 호기심이 왕성한 녀석인 건 알았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녀석이었을 줄이야.

“어떠냐, 내 영상 꽤 대단하지 않느냐.”

언제 왔는지 녀석이 내 어깨에 턱을 툭 올려놓았다.

턱을 걸친 채 내가 훑어 보이는 커뮤니티를 확인한 이드라는 한껏 오만한 어조로 떠들었다.

“이야, 지난 영상의 반응이 꽤 대단했다. 마마잭은 이러니저러니 해도 중급 신격을 지닌 녀석이었으니 말이다. 거기다 떡밥을 뿌리는 것처럼 몽상의 신전에 딱! 완벽한 결말이지 않느냐. 벌써 2탄이 기대되는 것이다.”

2탄까지 찍을 생각이냐.

그럼 몽상의 신전에 집어넣은 엘리제를 꺼내 와야 하잖아.

“그보다 내가 부탁한 건 어떻게 됐어?”

“부탁한 거? 아아, 그렇지 그런 말을 했었지. 그런 눈으로 보지 마라, 잊지 않았으니까.”

어깨에 올려두었던 턱을 때며 이드라는 팔짱을 꼈다.

“아카터스라면 지금 퍼블리셔와 회의 중인 모양이다. 그리고 결과가 나오는 건 ‘곧’인 모양이더군.”

“믿을 만한 정보겠지?”

“그야 내부자의 정보니까 말이다. 그리고 내가 거짓을 구분하지 못할 리 없잖느냐.”

녀석은 꿈과 환상의 신답게 어떤 신보다 ‘거짓’을 정확하게 판별했다.

예전이라면 그런 이드라의 말을 의심하며 그저 참조만 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적어도 2회차에서 보아온 이드라의 모습은 어느 정도 믿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만약 그녀가 정말 내 말대로 해준다면 나는 이드라를 완전히 신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건 ‘신’이라면 역정을 낼 만한 터무니없는 부탁이었으니까.

“복잡한 얼굴이로구나, 나의 계약자여.”

“지금은 계약자가 아니다만.”

“뭐뭐. 그렇지. 왓하하! 그럼 세한이여. 전세에 그대를 품었던 신으로서 조언을 해주마.”

그녀는 한없이 자애로운 얼굴로 침대 위에 놓여 있는 내 오른손 위에 자신의 손을 겹쳤다.

갑자기 느껴지는 따뜻한 온기에 순간 손을 뺄 뻔했다.

이어진 녀석의 말이 아니었다면 분명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대는 여태 노력했다. 그리고 그 노력에 대한 대답은 곧 돌아오겠지. 그대가 그토록 바라던 반격의 서두가 보일 게다.”

다른 누구도 아닌 이드라가 그렇게 말하자 긴장으로 경직되었던 가슴이 조금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전생에도 좀 그렇게 말해주지 그랬냐.”

“그런가? 하지만 그랬어도 그대는 들으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긴.”

나는 커뮤니티창을 닫았다.

그리고 인벤토리에 손을 넣어 하나의 아이템을 꺼냈다.

바로 라플라스의 모래시계.

“이제 이걸 슬슬 전해줄 때가 됐는지도 모르겠어.”

아카터스가 크게 일을 벌이려고 할 때.

그때가 바로 지금까지 휘둘리기만 했던 이 게임판을 뒤집을 기회였다.

“음후후.”

그때, 이드라가 갑자기 웃었다.

내가 무슨 일이냐는 눈으로 바라보자 이드라는 어두워진 창밖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왜 그래?”

“아니, 그대는 참 사랑받는구나 싶어서 말이야.”

“……??”

내가 무슨 뜻이냐는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이드라는 그저 말없이 웃을 뿐이었다.

***

경매가 열리는 날이 밝았다.

나는 아침 일찍 린을 대동하고 경매장으로 향했다.

오늘은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만큼 다른 길드원들은 호텔에서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어쩐지 지수가 살벌한 눈으로 내 머리 위에 있던 이드라의 옵저버를 보는 것 같았지만 아마 기분 탓이었을 것이다.

지수가 이드라를 노려볼 일이 뭐가 있겠어.

“왜 오늘은 아저씨랑 저만 가는 건가요?”

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주 오빠라고 불렀다 아저씨라고 불렀다 제멋대로다.

아무튼 이제는 익숙해진 호칭이었으므로 나는 태연히 답했다.

“오늘 투기장이 아니라 경매만 볼 거니까.”

“그럼 저도 올 필요가 없지 않나요?”

“어렸을 때부터 물건 보는 안목을 키워두는 편이 좋아.”

내가 적당히 둘러대자 린은 조금 의아한 얼굴이었지만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해도 확실히 이상한 조합이긴 했다.

검은 옷을 입은 사내와 어린 금발의 여자아이.

덕분에 꽤나 시선이 모였지만, 우리를 알아본 투기장의 플레이어들이 알아서 설설 기었으므로 특별한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아! 오셨군요. 대인.”

“경매는 시작했습니까?”

“아니요! 아직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VIP석으로 모시겠습니다.”

이제는 익숙해진 경매장 관리인 리 지엔쥔의 안내에 따라 우리는 다른 플레이어들과 다른 통로를 통해 이동했다.

리 지엔쥔은 나를 연신 대인이라고 부르며 꾸벅꾸벅 허리를 숙이는 터라 조금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내가 준 물건이 어지간히도 잘 팔린 모양이구만.’

아니면 이렇게 저자세로 나올 리가 없지.

그래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니었다.

리 지웬쥔은 이 경매장에서도 상당한 위치를 차지한 인물이었고, 꽤나 능력 있는 자였다.

그와 친분을 쌓아두는 건 후에 경매장을 운영할 때 큰 이득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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