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121화 (121/332)

# 121

121. 창천의 용(3)

“다음 도전자 있습니까! 자, 더 이상 도전자가 없으면 상금 2만 포인트는 샹관 유엔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사회자의 외침이 들렸지만 더 이상 도전하는 플레이어는 없었다.

그만큼 샹관 유엔의 실력이 대단하다는 거겠지.

나는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다가 천천히 손을 들었다.

오늘은 본래 한번 훑어만 보고 갈 생각이었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예! 새로운 도전자가 있습니다! 그 상대는…….”

사회자는 나를 보더니 말을 줄였다.

아마 처음 보는 플레이어가 냅다 도전장을 냈으니 당황한 거겠지.

“이거 새로운 얼굴이군요! 도전자의 이름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사회자에게 고정되어 있던 불빛이 움직이며 나를 비췄다.

“김세한.”

“호오, 한국에서 온 도전자인가요. 이거 놀랍군요. 다른 서버에서 온 플레이어가 도전해 온 건 처음 있는 일입니다.”

그야 서버간의 교류가 아직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데다, 타 서버의 플레이어가 이곳에 찾아올 일은 없을 테니까.

“오늘 오신 분들은 모두 행운아군요! 다른 서버 플레이어의 실력을 견식할 수 있는 기회가 되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에 주변의 플레이어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 꽂혔다.

몇몇은 내 옆에 있는 지수를 보더니 감탄의 소리를 냈다.

“영 비리비리하게 생겼는데?”

“옆에 여자는 내 취향인데 말이야.”

그 외에도 인상이 더럽다는 등, 별로 강해 보이지는 않는다는 말이 오갔다.

혹은 한국 서버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을 일삼는 부류도 있었다.

“빵즈 따위는 한방에 보내버려!”

“죽여라!”

시끄럽게 울려 퍼지는 소리를 뒤로하며 나는 미스릴로 이루어진 철창의 문을 열었다.

지수는 인상을 찡그리며 눈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지만, 내가 일을 벌이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탓에 움직이진 않았다.

아니었다면 이미 흉성의 학살자가 몇 번은 휘둘러졌으리라.

“다른 서버의 플레이어와 싸워보는 건 처음이네요. 당신, 강한가요?”

가까이서 보니 얼굴은 전체적으로 고양이 상이다.

마치 이아영을 생각나게 하는 얼굴이었는데, 상당한 미인이었다.

주변에서 응원하는 것도 이해가 되긴 하는군.

“글쎄.”

“약하다면 얌전히 물러나는 게 좋아요. 전 강하거든요.”

천천히 자세를 취하며 말하는 샹관 유엔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해보면 알겠지.”

“좋아요. 그럼 어서 무기를 꺼내세요.”

“됐어. 그쪽도 맨손인데 내가 무기를 쥘 수는 없잖아?”

“……아까부터 생각했지만 당신 꽤나 오만하네요. 말투부터 그렇지만 말이죠.”

샹관 유엔의 얼굴이 사납게 변했다.

반쯤은 도발한 거니 올바른 반응이었다.

괜히 나를 약자로 판단하고 방심하며 덤벼오는 것보단 이 편이 낫다.

샹관 유엔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제대로 알아둘 필요가 있었으니까.

‘한번 부딪치면 뭔가 생각이 날 것 같거든.’

신자운처럼 갑자기 솟아난 실력자가 아니다.

분명 나는 샹관 유엔이라는 이름을 들은 기억이 있었다.

“오호! 두 사람의 신경전이 대단합니다! 그럼 새로운 대결을 시작하기 전에 모두 포인트를 걸어주세요!!”

사회자의 외침에 투기장 벽에 있는 장치에서 나와 샹관 유엔에게 걸린 포인트 비율이 표시됐다.

대략 8 대 2.

어마어마한 차이가 아닐 수 없었다.

그걸 가만히 보고 있던 지수는 근처에 있는 사람에게 뭘 물어보더니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뿌듯한 표정으로 보아 내게 상당량의 포인트를 걸고 온 모양이다.

“자, 그럼 준비가 끝난 것 같군요.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사회자의 외침과 함께 시합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맨손으로 덤빈 걸 후회하게 해줄게요.”

샹관 유엔은 그렇게 말하며 자세를 잡았다.

평범한 격투기 자세는 아니었다.

쿵!

“하압!!”

짧은 기합소리와 함께 샹관 유엔의 강하게 진각(震脚)을 밟았다.

하체에 힘을 주며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는 샹관 유엔의 모습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팔극권!’

하반신에서 끌어올린 힘을 상체에 집중시켜 일점에 타격을 가하는 무술.

중국의 무술은 일반적인 격투기에 비하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말이 있었지만 이건 달랐다.

콰앙!!

샹관 유엔의 주먹이 미스릴로 이루어진 철창을 강타하자 우그러지는 게 눈에 보였다.

이정도의 폭발력을 발휘하려면 단순한 무술의 카테고리에서는 힘들다.

‘무술 자체를 하나의 스킬로 변화시켰구나!’

내가 공격을 피하자 강맹한 바람이 내 몸을 연신 스쳐 지나갔다.

확실히 샹관 유엔의 능력치는 민아와 비슷하거나 조금 높은 수준에 불과했다.

상관유엔의 발이 시계방향으로 움직이며 내 주위를 돌기 시작했다.

팔꿈치, 무릎, 어깨.

몸으로 타격할 수 있는 온갖 부위를 사용하며 전신을 압박했다.

‘놀라운 실력이야.’

솔직히 깜짝 놀랐다.

순수한 격투기 실력만 따지면 최소 신자운과 동급이었다.

번뜩이는 재치는 천재의 그것. 조금만 더 단련한다면 나조차 넘어서겠지.

이 정도로 재능 있는 플레이어를 내가 모를 리가 없었다.

‘그래, 맞아. 이제야 기억나네.’

나는 확실히 1회차에 샹관 유엔을 못 봤다.

하지만 들은 적은 있었다.

‘너구나.’

왜 이제야 생각났는지 우스울 지경이다.

내가 중국에 온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와 관련되어 있던 인물인데 말이야.

내가 1회차에서 보았단 다섯 개의 SS급 무기 중 하나.

참살검(慘殺劍) 다인슬라이프.

그것을 손에 쥐었던 플레이어의 이름이 분명 샹관 유엔이었다.

***

‘대체 이런 사람이 어디서 튀어나온 거지?’

샹관 유엔은 식은땀을 흘리며 정면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결코 먼저 덤벼오지 않았다.

고요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자신의 필사적인 공격을 가볍게 피하고 막아낼 뿐이다.

그러다 빈틈이라 생기게 되면 귀신 같이 알아채고 주먹을 휘둘렀다.

억지로 팔과 다리를 들어 막아낸 탓에, 이미 전신이 얼얼했다.

샹관 유엔이 익힌 스킬 팔극권 덕에 그녀의 신체는 대부분의 금속보다 단단했지만, 그럼에도 뼛속까지 충격이 왔다.

‘엄청난 무술가야. 아마 나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이겠지.’

처음에 얕봤던 자신을 반성했다.

그는 적어도 자신보다 몇 수는 위였다.

주변의 환호성도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들은 세한을 괴물을 보는 눈으로 보고 있었다.

그들은 샹관 유엔의 실력을 잘 안다.

창천의 용 중 하나이자, 웨이 롱화와 유일하게 자웅을 겨룰 수 있는 플레이어.

그런 그녀보다 상대는 훨씬 강했다.

‘대체 누구야?’

한국에서 온 플레이어에 대한 정보를 아는 이는 아직 없었다.

“후우.”

샹관 유엔은 자세를 풀며 손을 내렸다.

세한은 그런 그녀를 의아하다는 눈으로 보았다.

“졌어요.”

“더 할 수 있을 텐데?”

“해봤자 소용이 없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그런 그녀의 말에 세한은 피식 웃었다.

아까라면 그저 밉살맞게 보였을 모습이었지만, 이제는 그런 그의 모습이 달라 보였다.

‘대단해.’

자신을 이렇게까지 가볍게 이긴 사람은 여태 없었다.

그 때문인지 세한의 모습이 샹관 유엔에게는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심지어 그는 자신의 외모에도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외모를 보며 음심을 품는 플레이어들만을 만나왔던 그녀에겐 세한의 태도가 무척 신선하게만 느껴졌다.

“노, 놀랍습니다! 샹관 유엔 선수 기권! 한국의 플레이어가 창천의 잠룡을 꺾습니다!!”

사회자의 외침에 그제야 이곳저곳 비명이 터져 나왔다.

대부분 샹관 유엔에게 돈을 걸었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그런 사람들의 반응에 쓰게 웃은 샹관 유엔에게 세한은 조용히 말을 걸었다.

“괜찮다면 잠시 시간 좀 낼 수 있겠나?”

“네?”

“여러 가지 묻고 싶은 게 있거든.”

진지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세한의 모습에 샹관 유엔의 가슴이 크게 뛰었다.

‘어라, 뭔가 느낌이 이상한데.’

알 수 없는 감각이 생소했지만 그녀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세한이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듯, 그녀 역시 세한이 누구인지 제대로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좋아요. 우선 올라가죠. 여기는 대화하기에는 마땅치 않은 장소니까요.”

“그러지.”

세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미스릴로 이루어진 문을 열자, 누군가가 후다닥 뛰어와서 그의 팔에 안겼다.

“오빠, 역시 대단해요. 덕분에 5만 포인트나 벌었어요!”

방긋 웃으면서 이야기한 지수는 웃는 얼굴 그대로 세한의 뒤에 서있는 샹관 유엔을 바라보았다.

‘뭐야, 얘는?’

방긋 웃는 얼굴이지만 눈에는 묘한 적대감이 들어차 있었다.

붉은 눈동자를 보면 섬뜩한 기분이 들었지만 어쩐지 그 시선을 피하고 싶지 않았다.

“둘이 뭘 그렇게 보고 있어?”

“아뇨. 그냥 무척 예쁜 분이라고 생각해서요.”

“……한지수. 다시 말하는데 사고 치면 안 된다.”

지수가 그냥 예쁜 사람이라고 봤을 리가 없지.

샹관 유엔이 따라오니 노려봤을 게 분명했다.

지수의 질투심은 상상을 초월했으니까.

다행인 점은 주의를 주면 결코 세한이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는 점이다.

‘지수의 특성이 좀 더 열심히 일해 줘야 할 텐데.’

나는 언제나 착한 아이였나.

그 특성이 지수에게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

밖은 벌써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아마 민아나 다른 일행들은 지금쯤 호텔에서 푹 쉬고 있겠지.

“우선 제대로 된 소개를 받을 수 있을 까요?”

나와 지수, 그리고 샹관 유엔은 창천 길드의 지하에서 나와 근처의 작은 찻집으로 이동했다.

아마 이곳도 창천이 운영하는 듯, 주변에는 제법 쟁쟁한 플레이어들이 눈에 띄었다.

“나는 아까 들었던 것처럼 김세한, 이쪽은 한지수라고 한다. 그쪽의 이름은…….”

“샹관 유엔. 그냥 유엔이라고 불러주세요.”

다행히 샹관 유엔은 나를 굉장히 살갑게 대해줬다.

투기장에서 도발당하고 철저하게 박살났던 것치곤 꽤나 의외의 반응이었다.

“그런데, 두 분은 연인 사이인가요?”

유엔은 뜨거운 찻잔을 손으로 매만지며 나와 지수를 번갈아가며 보았다.

당연히 내 정체에 대해 먼저 물으리라 생각했던 것치곤 예상외의 질문이었다.

“연인으로 보이는 사이예요.”

대답한 건 지수였다.

지수는 내 옆에 앉아 내 오른팔을 꽉 끌어안았다.

근데 그건 좋은데 지수의 근력 나보다 세면 쌨지 약하지가 않아서 너무 아팠다.

“그럼 연인은 아닌 거네요.”

“왜 그런 걸 묻죠?”

지수의 눈이 붉게 변했다.

적대감 어린 시선을 보냈다. 그래도 연인이라고 확실히 하지 않는 게 지수다웠다.

아직 내가 제대로 마음을 표현하거나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

그게 조금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직 나는 그런 감정이 익숙지 않았다.

“지금 이곳에 온 건 그런 대화를 하기 위해서가 아닐 텐데?”

“아, 죄송해요. 제가 정신이 나갔나 봐요.”

유엔은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얼굴을 붉혔다.

그녀는 찻잔을 홀짝 거리며 내 눈치를 살피다가 입을 열었다.

“저에게 대화를 청하신 걸로 보아, 저에 대한 정보는 알고 계신 모양이네요.”

“대충은. 창천 길드의 잠룡이라 불린다지?”

“과한 칭호죠.”

“용의 칭호를 받은 건 너뿐인가?”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요. 한 명 더 있어요. 제 사형인 웨이 롱화 사형이 황룡이라고 불려요.”

창천의 황룡. 웨이 롱화.

후에 창천의 주인이 되는 남자. 그에 대한 정보는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

“사형이 궁금해서 오신 건가요?”

“아니, 나는 네가 궁금해서 왔다.”

“……네?!”

유엔의 얼굴이 대번에 붉게 물들었다.

그리곤 작게 헛기침을 하며 뜨거운 차를 단번에 들이켰고, 붉은 차이나 드레스를 바지런히 정돈하기 시작했다.

“저에 대해 뭐가 궁금하시죠? 많은 건 답변해 드릴 수 없어요. 대신 그쪽에 대한 정보도 알려주셨으면 해요.”

딱 원하던 답변이었지만, 눈에서 느껴지는 묘한 열기가 괜히 부담스러웠다.

‘얘 왜 이래?’

투기장에서 봤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데.

내 팔을 잡고 있는 지수의 힘이 더욱 강해졌다. 거기다 달달 떨리기까지 했다.

“……그냥 네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뿐이야. 웨이 롱화는 너보다 강한가?”

“네. 저보다 강해요. 최근에 한번 무승부를 낸 적이 있지만 그 전에는 전부 졌거든요.”

“호오.”

최근에 무승부를 했다?

그렇다는 건 사실상 웨이 롱화와 샹관 유엔의 실력이 그리 크게 차이나지는 않다는 거다.

내 예상보다도 샹관 유엔은 훨씬 강한 플레이어였다.

“투기장에서 보인 실력이 전부는 아니었군.”

“아니요. 그게 제 전부였어요.”

“창을 쓰지 않았잖나.”

내 말에 유엔의 얼굴이 뻣뻣하게 굳었다.

“……그걸 어떻게?”

“팔극권은 육합대창으로 유명하기도 하니까.”

“다른 나라에서 온 분이라면 보통 모르는 일이지만요.”

유엔은 한숨을 쉬었다.

역시 내 예상대로 비장의 한수가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그 정도면 지수를 제외하면 디어사이드에서도 이길 사람이 없겠는걸.’

만약 능력치가 동등한 상황이라면 지수도 초전에서 질 거다.

샹관 유엔은 그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계속 싸우면 기술을 습득한 지수가 이기겠지만 말이다.

뭐, 그래봐야 풀 도핑한 지수라면 애초에 싸움이 성립도 되지 않지만.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고 싶은데.”

“네, 물어보세요.”

흔쾌히 답하는 유엔은 정말 모든 답해줄 기세였다.

나름 유명 길드의 간부인 것 같은데 이렇게 보안이 허술해도 되나 싶다.

그런 내 표정을 읽었는지 유엔이 빙긋 웃었다.

“당신은 나쁜 사람 같지도 않고, 뛰어난 무위를 지닌 분이니 어느 정도는 괜찮다고 판단했거든요.”

“뭐, 나야 나쁠 건 없지. 그럼 최근에 창천에 들어온 물건 중 수상한 건 없었나? 예를 들어 이상한 검이라거나.”

“검? 잘 모르겠네요.”

내가 찾는 건 참살검 다인슬라이프의 행방이었다.

웨이 롱화의 직속인 유엔이 모른다면 창천이 아닌 다른 길드가 반입했을 수도 있었다.

혹은 유엔에게도 들키지 않고 조용히 들여왔거나.

어느 쪽이든 내게는 성가신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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