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
118. 꿈으로의 인도(2)
궁기의 날개로 날아가는 최고속도는 시속 400km에 가깝다.
현재 존재하는 몬스터 중에 그 속도를 쫓아올 수 있는 몬스터는 사실상 없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더 빨리 못 날아?! 잡힐 거 같다고!”
“이게 최고 속도야!”
너무 높이 날면 엘리제가 포기할지 모르니 결국 건물 사이를 누비며 날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 탓에 속도가 약간 줄긴 했지만 그렇다 해도 뒤에서 쫓아오는 엘리제의 속도는 살벌할 정도였다.
콰아앙!
달려오는 엘리제의 몸에 부딪친 트럭이 반파되며 하늘로 치솟았다.
사실상 인간의 모습을 한 괴수 수준이다.
모든 버프가 다 걸린 지수와 능력치가 동등하거나 그 이상.
그게 항시 전개되며, 신체는 최대 오리하르콘의 강도까지 경화시킬 수 있으니 공포가 따로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원거리를 공격할 수단을 지니지 않았다는 것.
“나 너무 무서워…….”
“웃어라, 이민아.”
“그래, 웃어야지. 하하.”
마마잭의 모습을 한 민아는 줄로 묶여서 대롱대롱 내게 매달려 있었다.
무서운 놀이기구 같은 것도 못타는 민아로선 지금 건물사이를 누비며 날아가는 것부터 한계인데, 뒤에서는 괴물까지 쫓아오는 상황이었다.
졸도하지 않은 게 장했다.
“──!!”
드드득! 콰쾅!
달려오던 엘리제가 결국 화가 났는지 오른쪽으로 팔을 뻗자, 전봇대가 부러지며 엘리제의 손에 잡혔다.
콰앙!!
손에 잡힌 거대한 전봇대를 엘리제가 힘차게 집어던져 몇 개의 건물을 꿰뚫으며 민아의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민아의 볼에서 한 기 핏방울이 흘러내렸다.
“…….”
“살아 있냐?”
“응, 근데 나 조금 지린 거 같아.”
“괜찮아.”
“내가 안 괜찮아.”
민아가 울적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겉모습이 마마잭이라 그다지 가엽지는 않았다.
“거기, 서!!”
어눌하게 말을 하기 시작하는 엘리제의 목소리에 조금씩 각성의 시간이 가까워진다는 걸 깨달았다. 머리카락이 강렬한 마력에 붕 뜨고, 붉은 눈도 점점 빛나기 시작했다.
도로를 질주하는 엘리제에게 다른 플레이어나 사람들이 부딪쳐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나는 최대한 사람이 없는 쪽으로 날아갔다. 괜히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 갔다간 큰 인명피해가 날뿐더러, 에너지 드레인으로 녀석의 각성을 촉진시킬 뿐이었으니까.
‘그래도 거의 다 왔어.’
도시를 벗어나자 적당히 높은 산이 보였다.
그리고 산의 중턱에는 눈에 띄는 하얀 건물이 있었다.
바로 몽상의 신전.
내가 엘리제를 유인하는 장소였다.
아마 이드라는 이미 도착해서 신전을 점검 중일 것이다.
정말 이전에 많은 포인트를 들여 만들어두길 잘했지.
설마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나.
“근데 정말 저기에 도착하면 해결되는 거야?”
“아마.”
민아가 불안한 눈으로 보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봐도 어쩔 수 없다. 뭐든 직접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니까.
이론적으론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해도 실제론 다를 수도 있는 법이고.
“현재로선 이게 가장 깔끔한 해결법이야.”
아마 현재 엘리제는 기억을 잃고, 자신의 모든 걸 잊은 상태다.
본래의 엘리제는 아마 평범한 인간일 테지.
특별한 능력을 지녔을지 모르지만 현재의 모습으로 유추하자면 확실하다.
그러니 각성한다고 해도 보통이라면 인류의 위협이 되지 않을 터.
그것을 찾지 못한 채 각성해 버리기에 괴물이 되는 것이다.
마마잭은 엘리제의 육체를 살리는 것엔 성공했지만 정신과 기억은 살리지 못했다.
천변으로서의 권능을 이용해, 하나의 알을 만들었을 것이다.
혹은 자신의 육체를 알로 만들었다거나.
그다음 부화기를 작동시킨 후, 촉매제로 엘리제의 영혼과 린의 피와 살점을 넣은 거지.
나머지는 부화기가 알아서 섞었을 것이다.
그 결과가 지금의 엘리제다.
‘아니, 엘리제로서 태어난 것이 정확할지도 모르겠군.’
마마잭은 부화기가 대략 어떤 것인지는 유추했지만 그 결과가 어떤지는 알지 못했다.
그는 엘리제를 되살리고 싶었겠지만, 부화기로 태어난 건 엘리제의 혼을 지닌 새로운 생명체일 뿐이다.
아니, 어찌 보면 되살렸다고는 할 수 있겠네. 마치 환생과 같은 개념으로.
덕분에 애매하게 기억이 전승됐고, 단순한 생명체가 지니기 힘든 ‘별자리’의 격은 그녀의 불완전한 정신을 좀먹고 있었다.
서브 퀘스트가 말하는 각성은, 마마잭의 격이 엘리제의 정신을 완전히 집어삼키는 데 걸린 시간이리라.
콰콰쾅!!
몽상의 신전의 문을 부수며 안으로 들어오자, 익숙한 신전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오, 왔구나.”
이드라가 손을 흔들었지만, 녀석의 인사를 받아줄 시간은 없었다.
뒤따라온 엘리제가 민아를 향해 손을 뻗고 있었으니까!
“꺄악!”
“그 얼굴로 그런 비명 지르지 마!”
카앙!!
허수공간을 열어 쇠기둥을 날려 엘리제의 옆구리를 가격하는 동시에 손에든 둔기로 머리를 후려치자, 엘리제의 몸이 빙글 회전하며 멀찍한 곳에 착지했다.
“비켜, 나를 막지, 마.”
미안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가까이 가면 민아가 진짜 마마잭이 아니라는 걸 들킬 수도 있거든.
“이드라! 얼마나 남았지?”
“조금 시간이 걸린다. 몽상의 신전에 마력을 모아, 새로운 형식의 게이트를 열어야 할 테니.”
역시 바로 열 수는 없는 건가.
이번 일이 끝나면 또 이드라에게 대량의 포인트를 갖다 바쳐야겠구나.
‘한동안은 포인트를 모으는 것에 전념해야겠어.’
이래저래 사용한 포인트가 상당하다.
그나마 1회차에 계승한 포인트가 없었다면 이런 방법을 사용할 수도 없었을 테니 천만다행이었다.
“엘리제, 너는 누구냐.”
“나는, 나는…….”
엘리제가 민아에게 덤벼들지 않도록 가로 막으며 물었다.
내 질문에 엘리제는 혼란스러운 얼굴이었다.
“나는, 플레이어…….”
엘리제는 자신의 머리를 감싸 쥐며 고통에 겨운 눈치였지만 나는 대략 예상하던 바였다.
‘역시 플레이어였나.’
그렇지 않고선 드레인과 같은 스킬을 사용할 수 없겠지.
분명 다른 별에서 참여했던 게임의 피해자 중 하나일 것이다.
“플레이어가 어째서 별자리의 연인이 된 거지?”
“연인? 아, 아니야. 나는 마마잭의 연인이 아니야. 나는, 그의 아바타야.”
“……뭐?”
하지만 이건 예상하지 못했다.
마마잭이 엘리제와 만난 건 중위 신격을 얻기 전이었을 것이다.
하물며 신도 아닌 마마잭이 플레이어를 아바타로 삼아봤자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는 약했지만, 나도 약했어. 하, 하지만…….”
엘리제의 눈이 붉게 빛났다.
그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아, 아아아! 싫어어어!!”
시간이 지날수록 엘리제의 몸에 점차 신위가 깃들어가고 있었다.
마마잭의 육체를 기반으로 한 몸이니 당연한 이야기다. 마마잭의 신위가 다 소모됐다고 하더라도 그게 사라지는 건 아니다.
당연히 소모된 신위는 시간이 지나면 다시 채워진다.
그릇을 넓히는 게 어려울 뿐이지, 그 안에 담은 물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길드 건물에서 상당량의 신위를 소모했던 탓에 약해졌던 마마잭의 신위는 다시 복구되며 본래의 육신에게 되돌아가고 있었다.
바로, 엘리제의 몸으로.
불완정한 정신을 지닌 엘리제가 중급 신위의 힘을 감당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이대로 두면 엘리제는 시스템의 제약을 받지 않고 중급 신위의 힘을 온전히 사용할 수 있는 괴물이 되어버린다.
“──!!”
폭주한 엘리제가 나를 향해 덤벼들었다.
마마잭으로 변한 민아의 모습조차 붉은 눈동자에는 비치지 않았다.
이성이 마비되고, 한 발자국씩 괴물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콰과과강!!
나는 두 개의 검을 꺼내 교차해서 엘리제의 손을 막았다.
오리하르콘으로 변한 엘리제의 손은 내가 막은 검 두 자루를 그대로 손에 쥐고 부숴 버렸다.
‘진짜 존나 쌔네.’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다. 정면에서 부딪치면 나라도 튕겨져 날아갈 것이다.
허수공간을 열고 지수를 제압했던 훈련용링이 달린 창을 쏘았지만, 애초에 피부조차 뚫지 못하니 전혀 소용이 없었다.
팔에 직접 링을 달려고 하면 귀신같이 알아채고 손을 뺐다.
‘역시 린이 가진 초감각까지 지니고 있어.’
사기캐도 이런 사기캐가 없다.
서브 퀘스트의 말이 맞았다. 이게 각성해 버리면 게임은 그대로 엔딩이 나버릴지도 모른다.
당연히 그렇게 둘 수는 없지.
콰앙!
“비켜어어!”
엘리제의 손이 갈퀴처럼 연신 휘둘러지며 신전의 내부를 이리저리 박차며 나를 압박했다.
위로, 아래로, 우측으로, 좌측으로.
엘리제의 움직임은 가히 질풍과도 같았다.
이렇게 압도적으로 차이가 나는 상대와 싸우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래도 동시에 두 가지 속성으로 공격한다면 상처를 입힐 수는 있어.’
녀석의 몸을 둔기로 타격하려 하자, 엘리제는 몸을 물렁하게 바꿨다. 금속으로 변하는 것보단 타격 자체를 무효화시키려는 거겠지. 나는 그 틈을 노려 허수공간에 프라가라흐를 사출시켰다.
엄청난 속도로 날아간 프라가라흐는 엘리제의 발목을 살짝 베어냈다.
‘프라가라흐가 빗나간 건 좀 뼈아픈데.’
마력이 뭉텅이로 빨려나갔다. 그래도 엘리제의 발목에 상처를 입힌 덕에 녀석의 속도가 조금 느려졌다.
벽을 부수고, 신전의 기둥을 들고 휘두르며 내 몸을 단번에 깔아뭉개 버렸다.
콰아앙!
“큭!”
그림자 질주로 빠져나오긴 했지만, 몸이 얼얼했다.
한 대만 더 맞으면 나라도 버티기 힘들 것이다.
‘아직 멀었나?’
드드드.
그때 천천히 게이트가 열리기 시작했다.
문이 열리는 모습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이제 거의 다 됐다, 힘내라, 힘.”
이드라가 짝짝 박수를 치며 건성으로 응원을 하고 있었다.
엘리제가 내심 저 녀석을 향해 덤벼주길 바랐지만, 엘리제는 이드라에게 정말 하등 관심이 없는 모습이었다.
“이민아! 게이트로 가!”
“저, 정말? 나 죽는 거 아냐?”
“내가 보호해 줄 테니, 걱정 마.”
만약 엘리제가 변신 능력까지 지녔다면 진작 박살났을지도 몰랐다.
그나마 맨손이라 다행이지. 휘둘러진 녀석의 손목을 잡아, 그대로 업어서 매쳤다.
콰앙!!
하얀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바닥이 부서지며 엘리제의 몸이 처박혔다.
당연히 타격은 없었지만 민아는 그 틈을 노려 게이트가 열리는 방향으로 뛰었다.
“마마잭, 마마잭!”
나를 향해 덤벼들던 엘리제의 눈과 머리가 움직였다.
허수공간에서 날아오는 검을 잡아 부수고, 막아서는 나를 왼손으로 밀어낸 뒤, 민아를 향해 뛰었다.
“그렇게는 안 돼지.”
“놔, 이거 놔!!”
나는 추를 매단 사슬을 던져 엘리제의 발목을 감았다.
온힘을 다해 당기자 엘리제의 몸이 주르륵 미끄러지며 쓰러졌다.
우득, 우드득!
‘더, 더럽게 쌔네.’
온힘을 다해 사슬을 당겼지만 엘리제의 몸은 좀처럼 끌려오지 않았다.
도리어 내 몸이 끌려갈 정도였다. 하지만 이것을 놨다가는 게이트가 완전히 열리기 전에 엘리제가 도착하게 될 것이다.
“으으, 으으으!”
문제는 그뿐이 아니었다.
새빨간 머리칼에서 붉은 빛이 어른거렸다. 몸이 점차 뒤틀리며, 점차 각성되어가는 엘리제의 육신이 보였다.
엘리제의 각성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아있었다.
게이트가 먼저 열리느냐, 엘리제가 완전히 각성하는 게 먼저냐에 달린 싸움이었다.
“큭, 크으윽!”
인대가 끊어지고 팔의 근육의 늘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미스릴과 에스더로 만든 사슬을 가변형 오리하르콘으로 코팅했지만, 곧 끊어질 것만 같았다.
쿠웅!!
“게이트가 완전히 열렸도다!”
완전히 열린 게이트에서 푸른 장막이 생기기 시작하자, 나는 쥐고 있던 사슬을 놓았다.
그제야 엘리제는 목줄이 풀린 사냥개처럼 민아를 향해 달려갔다.
“아아아아, 기다려, 기다려!”
푸른 게이트 앞에 서있는 민아에게 엘리제가 당도하는 데 걸린 시간은 1초도 걸리지 않았다.
팔과 다리가 뒤틀리며, 점차 인간의 외형마저 잃어가는 그녀의 모습에 민아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아직 완전히 ‘엘리제’라는 인간이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것이 마저 사라질 찰나였다.
엘리제가 민아를 향해 손을 뻗으며 그것을 잡아채려는 순간, 민아의 모습이 단번에 줄어들었다.
“아?”
갑자기 사라진 마마잭의 모습에 엘리제가 아연한 얼굴이 되었다.
덕분에 민아를 향해 달려들던 엘리제는 그대로 푸른 게이트 안으로 깔끔하게 들어가게 되었다.
[몽상의 신전에 이질적인 존재가 침입했습니다. 이용을 승낙하시겠습니까? 거부하시면 본래 세계로 귀환하게 됩니다.]
“승낙하겠다.”
[몽상의 신전이 가동합니다. 부디 좋은 꿈이 되시기를.]
이전에는 듣지 못했던 몽상의 신전의 메시지다.
아마 그때는 내가 들어가는 입장이었고, 지금은 컨트롤하는 입장이니 그런 거겠지.
게이트가 번쩍번쩍 빛나며, 돌로 된 문이 천천히 닫히기 시작했다.
쿠웅.
몽상의 던전의 문이 완전히 닫혔다.
엘리제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의 싸움이 거짓이었던 것처럼 몽상의 신전 안에는 고요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 근데.”
족제비로 변했던 모습을 원래대로 되돌리며 민아가 입을 열었다.
“이거 몽상의 신전 안에서 퀘스트 같은 거 클리어하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거 아냐?”
“그렇게 되지 않도록 이드라에게 부탁해 뒀지.”
이제 엘리제가 돌아올 수 있는 방법은 내가 그녀를 꿈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 외에는 없었다.
이드라가 그렇게 말했으니 확실하겠지.
아니나 다를까, 조금의 시간이 지나자 경쾌한 알림이 울려 퍼졌다.
[서브 퀘스트를 클리어하셨습니다!]
“하아.”
그제야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이제야 정말로 여섯 번째 메인 퀘스트를 클리어한 것이었으니까.
‘완전히 녀석을 죽이지 못한 건 꺼려진다만…….’
어쩐지 녀석과의 인연이 여기서 끝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것이 악연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런 예감이 들었다.
나를 죽이려한 마마잭이면 몰라도 엘리제에게는 특별한 악감정은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나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그래도 좋은 꿈꿔라.”
어쩌면 마마잭의 계획은 성공한 건지도 모른다.
결국 하나가 될 수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