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
117. 꿈으로의 인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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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 퀘스트 : 「천변」 엘리제
마마잭은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여 엘리제를 부활시키는 것에 성공했다.
이성이 없는 그녀는 걸어 다니는 폭탄이나 마찬가지.
그녀를 제압하거나 죽이지 않으면 인류는 큰 위기에 봉착하게 되리라.
난이도 A 제한시간 : 엘리제의 각성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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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갑자기 발동된 서브퀘스트의 내용을 보니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욕설도 함께 튀어나올 뻔했지만, 겨우 참을 수있었다.
옆에 린이나 백설이가 없었다면 그대로 내뱉고 말았을 것이다.
‘난이도 A요?’
이제 메인 퀘스트 6이다.
어느 정도 퀘스트가 진행되긴 했지만 굳이 말하자면 아직 절반도 오지 않은 시점이다.
그런데 벌써 A급 퀘스트가 시작한다고?
‘엘리제가 더럽게 강한가 본데.’
단순히 인간으로 살려낸 건 아닌 모양이다.
그렇다면 상당히 곤란했다. 왜냐면 내 초월의 증명은 별자리를 대상으로만 사용할 수 있을뿐더러 곧 시간도 끝난다. 엘리제가 얼마나 강한지는 예측하기 힘들었지만 마마잭보다 곤란한 상대인 건 확실했다.
중급 신위를 지닌 별자리인 마마잭은 시스템의 보정을 받아 자연스럽게 약화된다.
전승 스킬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지만 신위를 자유롭게 다루지 못하고 능력치가 어마어마하게 낮춰지기에 우리들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특별한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센티넬급,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엘리제는 시스템으로부터 약화효과를 받은 상태가 아니다.
서브 퀘스트에도 엘리제가 완전한 각성을 하게 되면 인류의 위기라고 할 정도니 말 다했지.
「오빠, 시내 쪽이야!」
먼저 엘리제를 쫓아간 민아로부터 쪽지가 도착했다.
나는 방향을 돌려 시내 쪽으로 서둘러 달렸다. 엘리제가 무슨 능력을 가진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내버려둬서 좋을 게 없었다.
“……!”
훅, 서늘한 공기가 피부에 닿았다.
이미 시내는 난장판이었다. 엘리제는 어느새 옷을 입고 있었고, 그 주변에는 플레이어로 보이는 이들이 쓰러져 있었다.
죽은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상태가 좋아보이지도 않았다.
마치 흡혈귀에게 피가 빨린 사람처럼 창백해진 안색으로 기절해있었다.
나는 그대로 달리며, 엘리제를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허수공간이 열리며 한 자루의 검이 녀석을 향해 날아갔다.
카앙!
“?”
미스릴로 이루어진 검은 엘리제의 피부에 닿자 그대로 튕겨져 나왔다.
그녀는 자신의 몸에 방금 뭔가가 맞았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한 건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와, 이거 미쳤네?’
나는 봤다.
엘리제의 피부에 검이 닿으려는 순간 녀석의 피부가 경화되는 것을.
아마 피부의 색으로 봐서는 미스릴이나, 혹은 오리하르콘 같은 금속으로 몸을 변화시킨 것 같았다.
천변이라는 이명을 엘리제가 계승했을 때부터 마마잭의 변신능력을 엘리제가 어떤 방식으로든 계승했으리라 예상하긴 했다.
하지만 이건 예상외였다.
마마잭은 자신의 몸을 금속으로 바꾸지는 못했다. 녀석이 변할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생물 뿐. 민아도 마찬가지지만 민아는 불가사리 스킬로 몸을 변화시킬 수 있을 뿐이다.
“마마잭…….”
엘리제가 중얼거리며 다른 플레이어들을 향해 접근했다.
아마 그들에게도 서브 퀘스트가 발동되어 있겠지. 그래서 엘리제를 처치하기 위해 덤볐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모두 당한 것이다.
“히, 히이익! 살려줘!”
“공격이 전혀 먹히지 않아! 그냥 괴물이라고!”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는 플레이어들을 엘리제는 굳이 쫓지 않았다.
덤벼드는 플레이어들을 섭취하는 것만으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드레인!’
엘리제의 손이 닿는 순간 플레이어들은 생기가 뽑혀져 나가며 쓰러졌다.
딱 죽이지 않을 만큼만 에너지를 흡수해서 망정이지, 대량 참사가 날 뻔했다.
‘마마잭에게 없었던 스킬이니 엘리제 고유의 스킬이겠군.’
드레인은 굉장히 희귀한 스킬이다.
주로 흡혈귀나, 그에 비슷한 존재들을 처치했을 때 습득할 수 있는 스킬이며 무척 효율이 좋아 익혀두면 손해 볼 일은 없는 스킬이었다.
캉! 카카캉!!
플레이어들을 에너지를 흡수하고 몸을 돌리던 엘리제를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당연히 검은 가볍게 튕겨져 나갔다.
‘굳이 막을 가치도 없다는 건가.’
엘리제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쿵!
지면에 발을 구르자, 쩌적 아스팔트가 갈라졌다.
그것만으로 그녀의 능력치가 얼마나 높은지 짐작할 수 있었다.
‘빠르다!’
아무리 초월의 증명이 없다고 하더라도 엘리제의 능력치는 마마잭보다도 높았다.
분명 별자리가 받는 능력치의 제한을 받지 않는 거겠지.
심지어 신위도 존재했다. 서서히 차오르고 있어 아직 미약하지만, 시간이지나면 훨씬 강해질 것이다.
그러니 더 곤란했다. 단순한 몬스터도 아니고 인간도 아니며 별자리도 아닌 엘리제라는 존재는 마땅히 공략할 방법이 없었다.
쾅쾅쾅쾅!!
인벤토리를 열고 휴대용으로 만든 폭탄을 엘리제의 몸에 뿌렸다.
불길이 몸에 닿자, 엘리제의 몸이 차가운 냉기를 내뿜으며 그것들을 모조리 꺼버렸다.
반대로 녀석을 향해 몸을 얼려버리는 아이템을 사용하면 피부가 시뻘건 불길로 뒤덮이며 그것들을 모두 기화시켜버렸다.
‘……이래서 천변인가.’
상대의 공격에 맞게 몸을 변화시킨다.
덤벼들던 녀석은 내가 생각보다 성가신 상대라고 생각했는지 물러섰다.
엘리제는 아까 전 내게 살기를 보냈던 것이 거짓이었던 것처럼 가볍게 관심을 꺼버렸다.
내가 건물 위로 도망치자, 그저 한번 시선을 보낸 후 제자리에 쪼그려 앉았을 뿐이다.
“아아아.”
배를 채우니 상당히 나른한 모양이다.
무척 졸린 듯 고개를 꾸벅꾸벅 거리는 그녀는 방금 태어난 아기와 같았다.
“그냥 내버려둬도 문제없을 거 같지 않아, 오빠?”
“지금은 그런지도 모르지.”
하지만 언제까지 저런 모습을 보일지는 모른다.
엘리제의 몸에는 계속해서 신위가 차오르고 있었다. 마마잭이 사용해서 소모됐던 중급 신위가 엘리제의 몸에서 회복되기 시작한 것이다.
불안정한 정신을 지닌 엘리제가 신위를 감당할 수 있을 턱이 없었고, 결국 그것이 폭탄이 되어 폭발하게 되겠지.
“거기다 아직 엘리제는 완전한 상태가 아니야. 서브 퀘스트를 보면 엘리제의 각성 전까지가 제한시간이니까.”
“……각성하면 어떻게 되는데?”
“다 뒤지는 거지.”
퀘스트의 제한시간이 뜻하는 바는 늘 같다.
이 시간 안에 해결을 보지 못하면 끝이라는 것.
보통은 단순한 퀘스트 실패로 끝나는 경우가 많지만 엘리제의 퀘스트 내용으로 보아 그녀가 각성하면 뭔짓을 해도 현재의 플레이어들로서는 막을 수 없는 존재가 될 확률이 높았다.
‘당장 나와도 상성이 안 좋아.’
애초에 데미지를 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현재 엘리제는 능력치는 나보다 높고, 모든 기술과 변칙적인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천변’의 능력이 존재한다.
전투기술로 몰아붙이는 것도 문제다.
왜냐면 녀석에겐 린의 피가 들어가 있으니까.
린의 재능까지 일부 가지고 있다면 함부로 덤볐다가는 도리어 녀석에게 전투기술을 알려주는 꼴이 된다.
이것을 이기려면 단순하게 엘리제의 능력을 넘어서는 단 한 번의 일격으로 죽이는 수밖에 없겠지.
문제는 현재 존재하는 플레이어들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엑스칼리버를 든 아서가 신념의 응집을 사용하여 전력으로 검을 휘두른다면 어찌어찌 될지도 모르겠다만…….’
문제는 영국에 있는 아서를 당장 불러올 방법이 없었다.
다른 서버로 이동할 수 있는 건 좀 더 시간이 흐른 후니까.
‘프라가라흐를 날려봐?’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만약 실패하면 나는 마력고갈로 움직이지도 못하게 될 것이다.
확실히 죽일 수 없다면 섣불리 사용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고로롱, 거리며 잠들어버린 엘리제를 건물 위에서 내려다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단순히 싸워서는 녀석을 이길 수 없다.
퀘스트의 클리어 조건은 녀석을 제압하거나 죽이는 것.
다만 죽이는 것은 현재 불가능했다.
“오빠도 방법 없어? 아, 역시 S급 난이도 퀘스트라고 할 때부터 이상했다니까. 이거 진짜 클났네.”
“……너 퀘스트 S급이야?”
“엉. 오빠도 그럴 거 아냐?”
민아의 말에 나는 생각에 잠겼다.
퀘스트의 난이도가 간혹 플레이어 마다 다른 경우가 있다.
그건 해당 플레이어가 퀘스트를 클리어할 수 있는 열쇠를 쥐고 있는 경우.
혹은 시스템이 직접 패널티를 준 경우다.
로메월드에서 있었던 일이 후자라면, 지금은 아마 전자.
‘생각해 보면 처음에는 퀘스트 등급이 A라서 지나치게 높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오히려 낮아.’
죽일 수 없는 존재를 죽이라는 건 A가 아니라 S급 퀘스트다.
근데 A라는 건 더럽게 어렵지만 어떻게든 클리어할 수는 있다는 이야기.
시스템은 짜증나는 놈이지만 불합리하게 난이도를 책정하지는 않는다.
지금 엘리제를 제압하거나 죽일 수 있는 방법이 내게 분명히 있다는 거겠지.
‘린에게 라플라스의 모래시계를 사용하게 해야 되는 건가?’
현재 생각나는 답은 그것뿐이었다.
하지만 난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후에 있을 ‘그놈’을 상대할 최종 수단이다.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됐다.
‘잘 생각해 보자, 엘리제의 약점이 뭔지.’
잠들어 있는 적발의 미녀의 모습은 한없이 무해해 보였다.
하지만 저건 각성하는 순간 인류를 개박살 낼 수 있는 괴물이 된다.
심지어 린의 피가 들어간 만큼 각성했을 때는 정말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었다.
“아.”
“왜 그래? 뭐 좋은 거 생각났어?”
“아마도 그런 것 같다.”
난 급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는 여러 개의 옵저버가 나를 관찰하고 있었다.
걔 중에는 당연히 이드라의 옵저버도 있었다.
나는 쪽지함을 열고 하나의 질문을 녀석에게 던졌다.
「괴물도 꿈을 꾸게 만들 수 있냐?」
답장은 빨랐다.
「내가 꿈을 꾸지 못하게 만들 존재는 없다.」
그야말로 내가 원하던 완벽한 답변이었다.
***
‘엘리제, 행복하세요. 설령 제가 없더라도…….’
귓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가 누구인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아니, 자신이 누구인지도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무언가가 생각날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흔들고, 고민을 해봐도 떠오르는 건 없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
스스로를 잊은, 그리고 소중한 무언가를 잊은 곳에서 나오는 고통은 점차 폭력성으로 변질 됐다.
“아아…….”
눈을 뜨자, 방금 전 자신이 섭취했던 인간들이 쓰러져 있었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아.
고통스러웠다.
그냥 기억을 찾는 걸 포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자신으로서의 뭔가가 끝이 날 것 같았다.
엘리제의 눈이 붉은색으로 빛났다.
그녀에게 기억이란 하나의 방파제다. 그것을 포기하는 순간 인간으로서의 엘리제는 사라지며 별의 힘에 먹힌 몬스터로서 탄생하게 될 것이다.
인류를 종말로 앞당길 몬스터로서.
그건 아마, 이 일을 꾸민 아카터스조차 예상하지 못한 일이 될 것이다.
“엘리제.”
그때 다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자, 그곳에는 검은 정장을 입은 남성이 있었다. 가는 실눈이 인상적인 남자는 자신을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제게 오세요. 엘리제.”
누구지?
하지만 그를 보고 있으면 뭔가가 떠오를 것 같았다.
마치 아까 전 검은 옷을 입은 남자를 보면 화가 치솟았던 것처럼.
물론, 그 감정조차 잠깐이었을 뿐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알 수 없는 그리움과 슬픔. 그리고 그를 향한 말할 수 없는 절실함이 느껴졌다.
그를 잡아야 한다.
엘리제는 몸을 일으키고 그를 향해 달렸다.
하지만 그는 계속 멀어졌다.
엘리제는 그를 놓칠 수 없었다. 놓치고 싶지 않았다.
“──!!”
마력이 용솟음치며 그녀의 다리에 집중됐다.
콰아앙!!
대지를 박차자 아스팔트가 마치 찰흙처럼 뭉개지며 부서졌다.
마치 바람처럼, 엘리제의 몸이 하늘을 날며 자신의 이름을 부른 남자를 쫓기 시작했다.
‘살려줘!’
그런 엘리제를 본 민아는 비명을 질렀다.
왜 자신이 이런 짓을 해야 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아까는 마마잭에게 쫓기더니 이번엔 엘리제다.
민아는 오늘 하루 종일 도망자 신세였다.
“괜찮아, 내가 잡고 있잖아.”
“말할 시간에 더 빨리 날아가, 오빠!”
빽 소리를 치다가 뒤쫓아 오는 엘리제를 인식하고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다행히 엘리제는 방금 외침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현재 민아는 마마잭으로 변해 있었고, 세한은 그런 민아를 줄에 묶어서 날아가고 있었다.
궁기의 날개의 속도는 아슬아슬하게 엘리제보다 빨랐다.
“하하, 엘리제. 하하. 나의 사랑스러운 파랑새. 하하.”
민아는 되는대로 말을 지껄이며 엘리제를 유인했다.
다행히 지능이 많이 딸리는 엘리제는 그런 민아의 말에 유도되어 착실하게 따라오고 있었다.
그것이 민아에게는 불행이기도 했고, 다행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