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
116. 엘리제를 위하여(3)
[파이어!]
콰콰콰콰쾅!!
마마잭이 뭐라 입을 열기도 전에 녀석을 목표로 삼은 포화가 몰아쳤다.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을! 김, 세한. 김세한 당신!”
“뭐라고? 안 들려.”
콰콰콰쾅!!
길드 건물은 우리 소유인 탓에 건물에 폭발이 일어나고 시뻘건 레이져가 지나가도 우리에겐 타격이 전혀 없었다.
이건 시스템 자체가 관여한 공격이기 때문이다.
게임으로 치면 아군판정이 들어간 공격이기 때문에 나는 팔짱을 끼고 잠자코 지켜볼 수 있었다.
마마잭은 저항하고 있었다.
각종 괴물과 플레이어의 모습으로 변하며 포화에 맞섰다.
내 모습으로 변해 시스템의 눈을 속이려 했지만 당연히 소용이 있을 리가 없지.
“엘리제!!”
콰아아앙!!
마마잭의 처참한 단말마가 울려 퍼졌다.
우리가 있던 층 전체를 폭발시키는 순간, 마마잭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투둑, 투둑
뿌연 연기가 층 안을 가득 채우며 우리의 시야를 가렸다.
여태 싸움에 참여하지 않고 조용히 사태를 관망하던 민아가 연기 속을 보며 무심코 중얼거렸다.
“……해치웠나?”
하지만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미약한 기척이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건물 벽에 있던 무기들도 일제히 움직였다.
두두두두두!!
다시 발사되는 포화 속에서 나는 녀석의 기척을 쫓았다.
분명 죽기직전까지 갔을 텐데 아직도 움직인다고?!
‘뒤쪽이다!’
황급히 나는 몸을 돌렸다.
뿌연 연기를 뚫고 만신창이가 된 마마잭이 민아를 향해 날카로운 손을 뻗는 게 눈에 들어왔다.
“프라가라흐!”
허수공간이 열리며 푸른 검이 연기를 꿰뚫으며 날아갔다.
하지만 마마잭의 행동이 더 빨랐다.
녀석의 손이 마마잭을 꿰뚫으려는 순간, 린이 나타나 민아를 옆으로 밀며 뛰었다.
“악!”
린의 비명소리가 울렸다.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허리춤에 핏방울이 번지는 걸로 보아 칼날에 베인 것 같았다.
“크아악!!”
프라가라흐는 민아를 공격한 마마잭의 허리를 꿰뚫었다.
그리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마마잭을 향해 건물 외벽의 무기들이 겨눠줬다.
“이대로,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 엘리제, 엘리제를 위해서라도.”
녀석의 실눈이 크게 떠졌다.
그 눈을 보는 순간 나는 황급히 날개를 펼치며 주변 인원들을 내 뒤로 보호했다.
“젠장!!”
여기서 갑자기 자폭이라고?!
보호시스템이 다시 작동하기 직전, 마마잭의 몸이 번쩍 빛났다.
막대한 마력이 움직이며, 마치 블랙홀처럼 녀석의 몸에 단숨에 빨려 들어갔다.
콰아아앙!!
마마잭의 몸이 폭발했다.
어마어마한 신위와 마력의 격류가 우리의 몸을 때렸다.
중급 신위의 ‘격’이 폭발하자 아무리 길드 건물을 보호하는 시스템이라도 일시적으로 마비될 수밖에 없었다.
[시스템에 오류가 생겨 일시적으로 보수에 들어갑니다.]
시스템의 영향에 미칠 정도의 폭발.
특이한 점은 그런 마마잭의 자폭에도 생각보다 우리에겐 큰 충격이 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뭐야?”
이제 정말 죽었나?
녀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층 안에 가득 찬 신위의 잔재만이 녀석이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오, 오빠!”
그때 민아가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왜 그래? 크게 다쳤어?”
“아니, 그게 아니야. 펜던트가 없어졌어!”
분명 민아의 손에 들려있던 펜던트가 사라져 있었다.
정확히는 펜던트를 연결하는 줄은 민아의 손에 있었지만 알맹이만 사라진 상태였다.
‘도망간 건가?’
확실히 보호 시스템은 일시적으로 마비됐지만, 말 그대로 일시적이다. 대략 몇 분이면 회복될 것이다.
거기에 안전지대는 정상작동하고 있었다.
녀석이 어디로 도망쳤는지는 모르지만 결국 이 건물 안에 있을 터.
‘시스템이 회복되면 어차피 자연스럽게 죽을 녀석이지만…….’
뭔가 불안했다.
마마잭은 막무가내로 자폭할 놈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나는 마마잭을 찾아봐야겠어. 린은 괜찮아?”
“네, 이미 치료했습니다.”
“괜찮아요…… 어차피 조금 긁힌 정도였는데요.”
마마잭에게 당했던 린의 상처도 이미 백설이가 치유한 모양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마잭이 도망친 위치를 추적했다.
특별히 문이 열린 기색은 없었지만, 싸움의 여파로 바닥이나 외벽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밖으로 나가지는 못해도 건물 내의 다른 방으로 이동하는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지수의 방으로 가보자.’
만약 녀석이 지수를 만나 몸을 회복시킨다면 조금 곤란해질 수도 있었다.
신위를 날린 덕에 크게 위협되지는 않겠지만 성가신 건 성가신 거였다.
***
차박.
작은 카멜레온이 디어사이드 건물의 지하에 있는 환풍구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시스템을 마비시킨 건 몇 분 정도. 시간이 없어.’
이미 자신은 끝장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마마잭은 실소가 흘러나왔다.
이제 거의 다 왔다고 생각했는데 일이 설마 이렇게 될 줄이야.
결국 모두 자신의 탓이다.
펜던트를 빼앗기고 녀석이 만든 함정에 걸어 들어온 오만한 자신의 잘못.
작은 카멜레온이 된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이때의 자신이라면 오만하지도 않고 그런 방심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엘리제라도, 엘리제라도 숨겨야 해.’
자신이 죽고, 펜던트가 녀석들의 손에 들어가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다.
만약 녀석들이 펜던트를 부순다고 생각하면 자신이 죽는 것보다 큰 두려움이 몰려왔다.
‘여긴…….’
계속해서 기어가다 묘한 마력이 풍기는 방이 느껴졌다.
마마잭은 조심스럽게 환풍구에서 기어나왔다.
‘창고?’
여러 가지 물건들이 모여있는 창고였는데, 아무래도 최근에는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을 두는 곳 같았다.
‘대체 이런 물건들은 어디서 구한 거지?’
정녕 이제 여섯 번째 메인 퀘스트인 플레이어들이 맞단 말인가.
갖가지 아이템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들이 창고에 있었다.
‘이건 나도 본 적이 없어.’
원통으로 된 특이한 물건이었다.
이게 뭐에 쓰는 물건인지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리저리 만져도 특별히 작동하는 기색은 없었다.
‘혹시…….’
마마잭은 길게 혀를 내밀었다.
혓바닥은 이윽고 하나의 손이 되었다.
커다란 남성의 손, 바로 세한의 손으로 변화시켜 원통에 천천히 손을 뎄다.
기이잉──.
옅은 기계음이 열리며 원통 꼭대기에 있는 뚜껑이 열렸다.
마치 둥근 알이 들어갈 법한 공간이 마마잭의 눈에 들어왔다.
「촉매제로 플레이어의 피를 넣어주세요. 촉매가 된 피는 부화한 성수나, 영물 등 각종 팻의 재능과 능력치에 영향을 미칩니다.」
“……!”
갑자기 들려온 고운 목소리에 마마잭이 화들짝 놀랐다.
시스템인가 싶었지만,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대체 이 물건은 어디에서 나온 것이란 말인가.
‘아니,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겠지.’
마마잭은 천천히 목을 움직여 몸속에 넣어두었던 펜던트를 뱉었다.
‘알과 펫, 부화라.’
펫 시스템은 알고 있었다.
플레이어들이 특별한 생물을 길들일 수 있도록 보조해주는 능력.
성수나 마수와 같은 존재의 알은 강제로 부화시키는 게 일반적으로 불가능했다.
심지어 촉매의 영향을 받게 만들어준다고?
‘엘리제…….’
마마잭은 눈을 감았다.
자신의 신위는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끝난 건 아니었다. 그 작은 신위와, 여태 자신이 엘리제를 위해 모아온 물건들이 자신의 인벤토리 안에 존재했다.
“드디어.”
카멜레온의 모습이 요동치며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마마잭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손은 날카로운 칼날의 모습으로 변했고, 칼날에는 작은 핏방울과 살점이 묻어있었다.
아까 칼날에 묻었던 린의 피와 살점은 마마잭의 몸에 간직한 상태였고, 그것을 지금 다시 꺼낸 것이다.
덜컹, 덜컹.
마마잭의 인벤토리에서 여러 개의 아이템이 쏟아졌다.
자신은 이제 끝이니 아낄 것도 없었다.
“나의 모든 걸 바쳐, 당신을 되살릴 기회가 온 것 같습니다.”
***
“정말 여기에 누구 온 적 없어?”
“네. 전혀 아무도 안 왔는데요. 형, 위에 싸움은 끝난 거예요?”
“이걸 끝났다고 해야 되나…….”
시우는 궁금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녀석이라면 분명 사람을 찾아갈 것이라 생각하고 찾아다녔지만 도무지 녀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지수나, 시우를 이용해 탈출하리라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럼 대체 어디지?’
시우가 있는 공방에도 없다면 마땅히 생각나는 장소가 없었다.
‘……잠깐.’
하나 가보지 않은 장소가 있었다.
바로 창고.
더 이상 쓸 일이 없는 물건들을 모아두는 곳이다.
주로 DLC 아이템들을 두는 장소였는데, 설마 거기로 간 건가?
‘그렇지만 거긴 특별히 쓸 만한 것도 없는데.’
기껏해야 쌓아둔 점착폭탄이나, 각종 펫용 물건들. 잡다한 아이템들이 있을 뿐이다.
마마잭이 사용해서 문제가 되는 건 특별히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가봐야겠어.
그렇게 마음먹는 순간이었다.
[메인 퀘스트 6을 클리어 하셨습니다!]
[당신의 퀘스트 달성도는 ‘백금’등급입니다.]
[잠시 후, 보상이 지급됩니다.]
“……뭐?”
마마잭이 죽었다는 알림이 들려왔다.
워낙 갑작스러운 일에 당혹감이 느껴졌다.
‘도망치다가 힘이 다했나?’
보통이라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마마잭의 상처는 치명상이었고 신위도 대부분 상실했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처였지만 이렇게 죽었다고?
[방어 시스템이 모두 복구되었습니다.]
때마침 건물 방어 시스템이 복구됐다는 알림도 들렸다.
만약 마마잭이 살아있다면 재차 작동해야했을 그것이 잠잠했다.
그 이야기는 건물 안에 존재하는 적이 모두 죽었다는 이야기다.
그래도 난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형, 퀘스트 끝난 거 같은데요?”
“그건 그런데, 좀 이상해.”
“뭐가요? 알림이 떴으면 끝난 거죠, 뭐.”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마마잭은 그런 쉽게 죽을 녀석이 아니다.
분명 뭔가 있다.
펜던트를 들고 사라진 녀석이 얌전히 죽었을 리가…….
콰아앙!!
“으헉!!”
갑작스런 폭발음이 위에서 울리자 시우가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혀, 형. 위에서 뭔 일 난 거 같은데요?”
“말하지 않아도 알아.”
나는 곧바로 위층을 향해 달렸다.
분명 소리가 들린 건 2층 쪽이다. 그리고 그곳은 내가 가려던 창고가 있던 장소였다.
‘역시 창고에 숨어 있었구나!’
그렇다면 왜 보호시스템은 작동을 안 하는 거지?
지금 폭발이 일어난 시점에서 바로 공격을 했을 텐데?
“세한! 이쪽이네!”
먼저 도착했는지 루크가 나를 향해 손짓했다.
그는 긴장한 얼굴로 벽 뒤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마마잭은 어디있습니까?”
“마마잭…… 인지는 모르겠지만 저기에 저런 게 있더군.”
저런 거?
루크가 가리킨 장소는 창고의 입구였다.
부서진 잔해들이 있는 곳에, 적발의 여성이 있었다.
나이는 대략 20대 초반정도일까.
멍한 눈으로 서있는 여성은 아아…… 하는 묘한 울음소리를 내며 제자리에 서있었다.
“알몸으로 서있어서 가까이 가기가 좀 그래.”
루크가 난감하다는 듯 말했다.
심지어 똑바로 보기도 영 민망한 것 같았다.
“마마잭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 그런가?”
“예, 별자리의 힘이 느껴지지 않아요.”
별자리 특유의 권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아직 초월의 증명을 사용한 상태기에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저건 마마잭이 아니다.
‘그렇다면 대체 뭐지?’
안전지대가 활성화된 건물에 외부인이 들어올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저건 마마잭은 아니지만, 마마잭으로부터 탄생한 어떤 존재일지도 몰랐다.
‘잠깐, 그렇다면 설마…….’
펜던트를 들고 사라진 마마잭.
그리고 창고에서 나타난 여성.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 답은 하나였다.
“엘리제?”
“…….”
스르륵.
적발의 여성, 엘리제의 눈이 이쪽으로 향했다.
멍했던 눈동자에 생기가 들어오고, 살기가 감돌았다.
엘리제는 나를 적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보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거야?!’
보호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다는 건 엘리제를 ‘아군’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캬아아아!!”
엘리제의 입에서 날카로운 짐승의 포효가 울려퍼졌다.
마치 1회차의 지수처럼 이성을 상실한 모습에서 나는 익숙한 기운을 느꼈다.
바로, 린의 기운이다.
순간 내 머릿속에 린에게 상처를 입히던 마마잭의 모습이 떠올랐다.
칼날에 묻은 린의 살점과 핏방울.
‘창고에는 펫과 관련된 물건이 있었어.’
엘리제의 무릎이 굽혀졌다.
당장이라도 나를 향해 덤벼들 것 같이 살기를 내뿜던 그녀는 자신의 옆에 있던 창문을 깨며 밖으로 나갔다.
‘적’ 판정이 들어간 인물이라면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엘리제는 가능했다.
그건 즉, 길드원 중 하나와 깊은 연관이 있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린의 피를 이용해서 부화시킨 거구나.’
어떻게 알을 만들고, 그것을 이용해 엘리제의 육체를 복원시킨 건지는 모른다.
수많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아이템을 모으고, ‘천변’이라는 이명을 지닌 초상의 존재라면 어떤 해답을 찾아냈던 거겠지.
난 그것까지는 모른다.
확실한 점은, 일이 더럽게 꼬였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