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
114. 엘리제를 위하여(1)
“큐우으으으으!”
족제비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방금 전까지 자신이 있던 장소가 연속적으로 폭발하며 엄청난 후폭풍이 몰려왔다.
마치 마이클베이 감독이 촬영한 영화처럼, 공중으로 날아간 민아는 데굴데굴 구르며 파편 사이로 빠져나갔다.
‘보통 족제비였다면 이미 한 줌의 고기 조각이 됐겠다!’
불가사리 스킬을 사용해 몸을 코팅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자신은 이미 한참 전에 ‘족제비였던 것’이 되었을 것이다.
그간 세한이 모아준 여러 가지 금속들을 혼합한 합금으로 이루어진 민아의 털과 피부는 웬만한 충격은 완벽히 보호해 줄 수 있었다.
「튀어~, 튀어!」
띠링!
가벼운 알람소리와 함께 어릿광대의 쪽지가 도착했다.
쪽지함을 계속 열어둔 채 달리는 탓에 그 메시지를 볼 수 있었던 민아는 울화통이 터졌다.
‘내가 스킬 좀 후지다고 놀렸더니 이렇게 나오기야?’
마마잭의 능력은 변신.
민아의 능력도 변신이다.
비슷한 능력이지만 마마잭은 상대방의 외견은 물론, 스킬이나 능력까지 그대로 베껴올 수 있다.
하지만 아직 민아의 변신 스킬은 외견만 그대로 가져오는 정도다.
그뿐아니라 마마잭은 자신의 존재보다 급이 낮은 존재라면 마수나 신수와 같은 이형의 존재로 변신도 가능하다. 민아는 일정 급수 이하의 몬스터, 그것도 신체의 일부만 변화시킬 수 있는 걸 생각하면 큰 차이다.
대신 육체적 능력은 완벽히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 장점.
이것도 민아가 스킬에 적성이 있기에 빠르게 성장한 덕이다.
마마잭의 허를 찔러 펜던트를 빼앗을 수 있던 것도 그 이유.
린의 신체는 민아가 놀랄 만큼 굉장한 성능을 자랑했으니까.
아무튼 객관적으로 볼 때 마마잭의 능력은 민아의 상위호환처럼 보였으므로 민아가 투덜거린 것도 당연했다.
당연히 자신의 전승스킬에 자부심이 있었던 어릿광대로선 조금 삐질 수밖에 없었고, 민아의 위기에 갈채를 보내며 연신 신경을 건드리고 있었다.
「에베베, 내 전승스킬은 나중에 신수나 환수의 능력도 완벽히 가져올 수 있는 마마잭의 상위호환인데 이래서 알못은.」
지금 당장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건 이 정도인데 어쩌라고!
도망치느라 답변할 틈도 없었다.
족제비로 달리는 민아를 향해 수 미터의 매로 변한 마마잭이 날아왔다.
“엘리제!!”
저 미친놈도 문제다.
여유로운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펜던트를 뺐기니 눈이 돌아버렸다.
시퍼렇게 빛나는 날카로운 발톱은 금속으로 이루어진 족제비의 몸으로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번쩍!
족제비의 몸에 발톱이 닿기 직전 민아가 벼룩으로 변하며 발톱에게서 빠져나갔다.
동시에 펜던트는 바닥으로 떨어졌고 그것을 본 마마잭은 황급히 몸을 틀었지만 이미 늦었다.
깡!!
펜던트에 시선이 팔린 마마잭을 향해 금속으로 이루어진 오거의 팔을 사용해 멀리 쳐냈다.
벽에 처박힌 마마잭을 확인한 민아는 이번엔 매로 변해 펜던트를 발톱으로 쥐고 날아올랐다.
콰콰쾅!!
날아오르기 무섭게 등 뒤에서 무시무시한 기척이 느껴졌다.
매의 눈으로 돌려보자 거대한 용이 이쪽을 향해 아가리를 벌리고 날아오고 있었다.
‘꺄아악! 저, 저거 용 아냐?’
정확히는 용이 아니라 와이번이었지만 민아가 그것을 구별할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오빠는 정말 언제 답변 줄 거야! 이대로 나 버리지는 않겠지?’
뒤에서 날아오는 후끈한 화염탄이 몸을 몇 번이나 스치고 지나갔다.
이대로는 얼마 버티지도 못할 느낌이었다.
새로 변하고, 뱀으로 변하고 온갖 몬스터와 동물로 도망치던 민아에게 쪽지가 도착한 건 그로부터 10분 후였다.
「우리 길드 건물로 유인해.」
“길드 건물?”
세한이 보내온 쪽지는 전혀 예상외의 말이었다.
길드 건물로 유인하라니, 그 근처로 데리고 간다면 되는 건가?
‘다 함께 때려잡자고?’
아무리 봐도 마마잭은 쪽수로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닌 것 같았다.
이성을 잃은 것처럼 공격하지만 상대의 약점만을 노려 변신하며 공격하고 있었다.
만약 상대가 민아가 아니라 평범한 플레이어였다면 순식간에 당했을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길드 건물 안으로 데리고 들어와. 안전지대 설정은 일시적으로 해제해 둘 테니까.」
아무래도 뭔가 생각이 있는 것 같았다.
적이 안전지대에 들어오면 소멸이라도 하는 건가?
“엘리제!! 당장 엘리제를 돌려줘!”
모습은 와이번인 주제에 말은 잘도 한다. 변신하면 말도 못하는 민아와는 다르다.
어쨌든 민아는 뒤에서 들리는 외침을 무시하며 전력을 다해 도망쳤다.
디어사이드의 길드 건물을 향해서.
***
“마마잭의 목적이 어떤 여자를 살리는 거라고?”
나는 민아로부터 받은 쪽지의 내용을 확인한 후,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설마 녀석의 목적이 엘리제라는 여성을 살리는 것이었을 줄이야.
‘물론, 그건 린을 본 이후에 추가된 것 같지만.’
아카터스로부터 받은 의뢰는 나를 죽이는 것이었을 터.
하지만 정보를 모으던 중 린을 확인했고 엘리제라는 여성을 살리기 위해 린의 육체를 이용하려고 했던 모양이다.
정말이지 린의 육체라는 건 무안단물이 따로 없구나.
“미, 민아 언니는 괜찮을까요? 저 때문에…….”
“린, 괜찮을 겁니다. 진정하세요.”
린의 얼굴은 울상이었다.
그리고 그런 린을 백설이가 토닥거리며 위로했다.
겉만 보자면 동갑내기 친구지만 실제로는 린이 열세 살 정도 연상이다.
애초에 백설이는 태어난 지 1년도 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성공적으로 데리고 올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맞네. 설령 데려와도 정말 괜찮은 건가? 심지어 이번에는 전승 스킬도 사용할 수 있다고 들었어. 여신님도 걱정스러워 하시고 있네.”
“예, 괜찮습니다. 걱정마세요.”
현재 상황에 대해 전해들은 창우가 긴장된 어조로 말했다.
그는 카라스를 한번 겪어봤기에 별자리가 주는 위압감과 위험을 잘 안다.
그리고 그건 루크도 마찬가지였다.
전승 스킬조차 사용하지 못하는 천갈궁 안타레스에게 죽을 뻔 했던 그이니 이해할 수 있었다.
확실히 그들의 말처럼 함부로 별자리를 본진으로 불러들이는 짓은 위험하다.
별자리라는 존재는 평범한 생명체의 격을 한참 탈피한 초상의 존재니까.
‘하지만 이건 기회야.’
엘리제의 영혼이 담긴 펜던트를 민아가 빼앗은 건 크나큰 수확이다.
1회차의 민아가 마마잭을 어떻게 죽였는지도 대략 짐작이 가능했다.
펜던트의 인물로 변신해서 마마잭을 죽였다거나, 혹은 그것을 이용해 어떻게 처리한 거겠지.
정확한 방법은 모른다.
그러나 2회차의 민아도 마마잭의 약점을 손에 넣은 건 마찬가지였다.
‘길드 건물의 안전지대를 해제하고, 녀석을 이곳에 가두면 도망칠 수 없겠지.’
안전지대는 옵저버조차 들어오지 못한다.
건물 자체가 보호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안에 들어온 존재를 가두는 방법도 존재했다.
실제로 포획한 몬스터를 특수한 아이템에 가둬 안전지대에 반입한 플레이어가 있었는데, 해당 몬스터는 안전지대 밖으로 벗어날 수 없었다.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막을 뚫고 나갈 수 없었던 것이다.
즉, 아무리 마마잭이 대단한 변신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최고의 감옥이 되는 셈이다.
“거기다…….”
나는 길드 건물과 관련된 시스템 창을 켰다.
이전에 언급했던 것처럼 포인트로 구매할 수 있는 안전지대형 길드건물은 포인트로 설비를 업그레이드 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특별한 일이 없어 적당한 수준의 방비를 해뒀지만…….
“길드방어 수준을 최고 수준으로 상승.”
[총 15만 포인트가 소모됩니다. 사용하시겠습니까?]
말할 것도 없다.
“얼마든 상관없어.”
[15만 포인트가 소요됩니다. 현재 남은 포인트는 37만 포인트입니다.]
최근 포인트를 낭비한 탓에 기존에 보유했던 포인트를 절반 가까이 사용했다.
꽤 큰 출혈이라고 할 수 있지만, 별자리를 하나 조지는 데 사용하는 거라 생각하면 싼값이다.
거기다 길드 건물을 한번 업그레이드하면 두고두고 사용하는 거니 크게 낭비라고 할 것도 없다.
철컹, 철컹!
드드드드.
길드 건물에 묘한 진동이 일어나며 건물이 개조되기 시작했다.
개조에 걸리는 시간은 대략 10분.
[오빠! 나 이제 곧 도착해!]
“조금 시간을 벌어야겠어.”
10분이라.
지수까지 함께 싸울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만약 마마잭이 지수의 능력을 알아보고 변신했다간 곤란해진다.
왜냐면 지수의 능력 중 최고라고 할 수 있는 건 다름 아닌 재생능력.
마마잭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가한다고 해도 녀석이 지수로 변하면 순식간에 재생하게 되는 것이다.
설령 지수의 80퍼센트의 재생 능력밖에 사용할 수 없다 해도, 지수의 재생능력을 생각하면 80퍼만으로도 차고 넘친다. 지수는 사실상 거의 반불사신 수준이니까.
“모두 준비하세요. 민아가 왔습니다.”
창밖으로 날아오는 거대한 와이번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앞에 쫓기고 있는 매의 모습도 보였다. 매의 발에는 작은 펜던트가 매달려있었다.
“펜던트를 내놔라!”
와이번의 입이 벌려졌다.
입안으로 시뻘건 불길이 모여들며 이쪽을 향해 쏘아졌다.
“오빠!”
와장창!
유리창을 깨며 들어온 민아가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며 내 품에 안겨들었다.
도망치면서 어지간히 고생했는지 이곳저곳 상처투성이였다.
나는 그런 민아를 꽉 안아주며 칭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마잭을 쓰러트릴 기회를 만든 건 사실상 민아나 마찬가지니 이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잘했어, 이민아. 나중에 내가 확실히 보답을…….”
“아, 알겠으니까! 뒤에 불 날아온다고 불!”
“알아.”
내 등 뒤에서 순식간에 검은 날개가 자라났다.
그것은 나와 민아를 순식간에 감쌌고, 그런 우리를 향해 와이번의 불꽃이 직격했다.
콰콰쾅!!
길드 건물의 벽이 부서지며 나와 민아를 감싼 날개 위로 거대한 와이번의 몸뚱이가 충돌했다.
나는 충돌하는 순간 민아를 안은 채 크게 뒤로 뛰었고, 그 틈을 노려 옆에 있던 루크와 창우가 와이번의 양 날개를 각각 잡고 밀어서 멈췄다.
드득, 드드득.
“엘리제를…….”
“크윽!”
“무슨 힘이!”
고장 난 인형처럼 반복해서 말하는 녀석.
루크와 창우에게 양 날개를 잡혀 있었지만, 녀석이 움직이려고 하자 둘의 몸이 딸려갔다.
아무리 최근 둘이 능력치를 잔뜩 올렸다고 해도 별자리의 힘을 막을 수는 없었다.
철컹.
나는 오른팔에 거대한 건틀릿을 착용했다.
파일벙커는 아니었다. 파일벙커는 저번에 지수가 부순 이후 수리중이었다.
애초에 파일벙커는 위력은 강하지만 충전시간이 워낙 길고 공격이 직선적인 탓에 마마잭을 상대로는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내가 오른팔에 착용한 건, 새롭게 제작한 투신갑(鬪神鉀).
파일벙커를 개량하여 만든 새로운 장비였다.
고오오오!
투신갑에 에너지가 모이며 팔꿈치 부위에서 불꽃이 뿜어졌다.
기본적인 작동방식은 파일벙커와 비슷하다.
에너지를 충전하고 사출한다. 단지 사출되는 게 쇠기둥이 아닌 주먹일 뿐.
충전되는 시간은 파일벙커에 비하면 무척 짧다.
휘두르는 순간 자동적으로 발동되는 거니까.
당연히 위력은 파일벙커가 위였지만, 내게는 이것의 위력을 증가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바로, 신념의 응집.
“좀 정신 좀 차려, 등신아.”
코앞에서 브레스를 쏘려는 바보같은 와이번의 얼굴을 향해 라이트 스트레이트를 날렸다.
쿠아앙!!
투신갑의 폭발적인 공격력과, 신념의 응집의 힘이 합쳐져 와이번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좌측으로 그 거대한 거체가 날아갔다.
거대한 거체가 넘어지며 지면에 주르륵 미끄러지며 벽에 부딪쳤다.
수 톤이 넘는 와이번의 거체가 어린아이처럼 날아가 버린 것이다.
거기다 턱이 돌아갔는지 와이번의 얼굴은 말이 아니었다.
“그, 그으윽.”
이성을 잃었던 와이번의 눈에 빛이 돌아왔다.
그리곤 옅은 빛을 내며 검은 정장을 입은 마마잭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녀석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천천히 숨을 고르며 앉아 있었다.
턱 관절은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지만, 시뻘겋게 변해 퉁퉁 부어 있는 것으로 보아 상당한 타격을 입은 것 같았다.
“김세한…… 제대로 한번 해보자는 겁니까.”
“펜던트 하나 빼앗겼다고, 이성을 잃은 꼴을 보면 싸울 맛도 안 나잖아.”
“……대단한 자신감이군요.”
이를 아득 깨문 마마잭의 실눈이 살짝 떠졌다.
거기서 흘러나오는 살기는 이전에 만났던 카라스나 안타레스와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나라는 인간을 찢어죽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절절히 전해졌다.
“아카터스의 의뢰를 처음 받았을 때는 조금 당신이 불쌍했습니다만.”
마마잭이 꿇었던 무릎을 피며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이젠 아니군요.”
똑바로 몸을 피고 서자, 루크와 창우는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며 손에 검을 쥐었다.
린이나 백설이도 저마다 무기를 쥐며 덜덜 떨고 있었지만, 나는 살짝 눈짓해서 뒤로 빠지게 했다. 둘은 최대한 안전한 곳에서 싸움을 지켜보는 걸로 족했다.
‘이제 대략 7분 남았나.’
긴 시간은 아니다.
하지만 짧은 시간도 아니었다.
나는 팔에 착용한 투신갑의 상태를 점검하며 마마잭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자고로 싸움이란 선수필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