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113화 (113/332)

# 113

113. 정면돌파(2)

이아영은 기분이 안 좋았다.

그녀가 기분이 좋지 않은 건 늘 있는 일이었지만 오늘은 나름 이유가 있었다.

“멋대로 둘이서 연합을 해?”

나름 3대 길드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으면서 피안화만 쏙 빼고 연합을 했단다.

거기다 이쪽에게는 말도 안 하고 두 길드끼리 마마잭을 잡으러 가버리다니.

‘마음 같아서는 우리도 따로 가고 싶지만.’

그렇다고 혼자 가기엔 상대가 ‘별자리’라는 점에서 부담이 컸다.

아직까지 그녀는 ‘별자리’라는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 정확히 모른다.

그저 그녀의 여신이 말해준 정보만을 생각해서 몸을 사릴 뿐이었다.

“어차피 잘됐어. 이 기회에 마마잭에 대한 정보를 얻자.”

설마 별자리씩이나 되는 이가 금방 당할 리는 없겠지.

이아영은 고풍스런 의자에 앉으며 숨을 골랐다.

“마마잭에 대한 정보가 궁금합니까?”

“……!”

방에서 들려온 낯선 목소리에 이아영은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언제 들어왔는지 방의 구석에는 새까만 정장을 입은 실눈의 남성이 서있었다.

“……너 뭐야. 어떻게 들어왔어?”

“아무래도 혼자는 심심하실 것 같아서 말이죠.”

“너 뭐냐니까?”

사내의 알 수 없는 분위기에 이아영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녀의 어깨 위로 둥실 떠오른 옵저버도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저자가 마마잭이구나.’

이아영은 외견과 달리 머리가 결코 나쁜 이가 아니었다.

옵저버의 반응으로 상대가 누구인지 정도는 얼마든지 추측할 수 있었다.

“아, 노여워하지 마시죠, 여신님. 특별히 다른 신이나 GM의 사주를 받고 온 건 아닙니다. 그저…….”

마마잭의 실눈이 살짝 떠졌다.

기괴한 눈동자가 이아영을 향해 움직였다.

“마음대로 플레이어를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존재는 성가시거든요.”

“큭!”

그녀는 황급히 손을 올려 자신의 쇄골에 댔다.

브리싱가멘을 발동하려 했지만 그보다 빠르게 움직인 마마잭이 이아영의 손을 잡아챘다.

“허튼 짓은 하지 마시죠. 설령 브리싱가멘을 사용해도 저에게는 소용없습니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압니다. 저는 오로지 한 여성에게 마음을 바친 자이니까요.”

그러니 당신의 아름다움에 홀릴 일은 없을 겁니다.

마마잭의 눈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밖에 누구 없어?! 당장 이 놈을……!”

“밖에 계신 분들이 눈을 뜰 일은 없을 겁니다. 제가 깊이 재워두고 왔거든요.”

“너!”

비어 있던 마마잭의 손이 날카로운 검으로 변했다.

다른 길드장들과 달리 그는 이아영을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

‘사람들을 움직이는데 이런 분이 있으면 까다롭거든요.’

세한을 죽이는 것도 죽이는 거지만, 플레이어들을 혼란으로 몰아넣기 위해서는 이아영을 죽여야만 했다.

우선 그녀가 3대 길드의 일각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며, 그녀의 능력은 남성에게 절대적이라는 점이다. 아무리 마마잭이 플레이어들을 흔들어도, 이아영의 한마디면 남성 플레이어들은 마마잭의 정신조종에서 단번에 벗어날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플레이어들을 단숨에 뭉치게 만드는 것도 가능했다.

변수를 만들 수 있는 존재는 죽이는 게 좋다.

그것이 마마잭의 지론이었다.

“그럼 안녕히 가시길.”

쉭!!

수직으로 휘둘러지는 마마잭의 칼날에 이아영이 눈을 부릅떴다.

콰콰쾅!!

마마잭의 칼날이 이아영의 목을 치려는 순간, 창문이 깨어져 나가고 외벽이 부서지며 마마잭의 몸이 튕겨져 날아갔다.

덕분에 이아영은 마마잭에게 잡혀 있던 손은 뿌리칠 수 있었지만, 뿌연 연기에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콜록, 콜록!”

연신 기침을 하며 마마잭의 모습을 찾았다.

하지만 눈에 들어온 건 마마잭이 아니었다.

그것은 새까만 날개를 펼치고 있는 검은 옷의 플레이어였다.

이미 한번 본적이 있었던 디어사이드의 길드 마스터로 추측되는 인물.

“내가 좀 빨리 왔지?”

바로 김세한이었다.

***

나는 손에 힘을 넣어 마마잭의 목을 죄었다.

그런다고 튼튼한 마마잭을 죽일 수는 없었지만 녀석의 당혹스런 눈은 제법 볼만했다.

“설마 한 명도 죽이지 않고 이렇게 빠르게 올 줄이야.”

“놀랐냐?”

“조금 놀랐습니다.”

나는 녀석의 위치를 듣자마자 궁기의 날개를 사용해 전력으로 날아왔다.

민아와 린은 우선 천천히 쫓아오라고 말해둔 상태였다.

녀석과 싸우는 걸 린에게도 보여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한시가 급했으니까.

“왜 이아영을 죽이려고 하는 거지?”

“군중을 움직일 수 있는 플레이어는 귀찮으니까요.”

“하긴 그건 그래.”

그래서 전생의 이아영도 빨리 죽었다,

단순한 최면 이상의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브리싱가멘은 플레이어와 플레이어간의 세력싸움에서 절대적인 힘을 발휘한다.

남성에게 사용할 수 있는 절대 명령권, 단지 그것만으로 세력간의 싸움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으니까.

‘GM이 노려서 죽였다는 이야기도 있었어.’

단순한 추측이 아니라 이아영이 죽은 후부터 플레이어간의 대립이 주가 되는 퀘스트가 늘었다. 이아영이 있었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녀가 있는 쪽이 무조건 유리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이아영은 그녀 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인물이었다.

단순히 3대 길드의 길드장 같은 게 문제가 아니라, 그녀 자체가 플레이어간의 대립을 막는 억제제 같은 거니까.

“아무튼 대화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죠.”

마마잭의 몸이 단번에 줄어들며 손아귀에서 빠져나갔다.

작은 벌레로 변했던 마마잭은 순식간에 본모습으로 돌아오며 내 복부를 걷어찼다.

“윽!”

팔을 들어 방어했지만 몸이 건물 밖으로 크게 밀려났다.

하지만 생각보다 충격은 그리 크지 않았다.

‘오히려 능력치는 나보다 늦은 거 같은데?’

하기야 그러니 내가 목을 잡았을 때 뿌리치는 것이 아닌, 변신으로 빠져나갔던 거겠지.

“어딜!”

재차 이아영을 노리는 녀석을 향해 나는 날개를 펼치며 전속력으로 날아가 걷어찼다.

건물을 가로로 관통한 녀석은 반대편 빌딩의 옥상으로 떨어졌지만, 나와 같이 날개를 만들어 날아올랐다.

나는 그림자에서 까마귀를 만들어 녀석의 날개를 노렸다.

까마귀의 발에 붙어있던 점착폭탄이 폭발하며 녀석의 몸이 왼쪽으로 튕겨졌고, 나는 그것을 쫓아 허수공간을 열고 백련정강으로 만들어진 금속 기둥들을 내리꽂았다.

쾅쾅쾅!!

빌딩의 벽을 허물고, 바닥을 부수며 백련정강에 얻어맞은 녀석의 몸이 추락했다.

족히 10층의 아래로, 하지만 녀석은 충돌하기 직전, 까마귀로 변해 내가 만든 까마귀에 섞였고, 순식간에 내 옆에 나타났다.

녀석의 모습은 신자운으로 변해 있었다.

“최근 악마의 계약자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분이더군요.”

신자운의 주먹이 내 얼굴로 휘둘러졌다.

팔을 들어 막았지만, 새까만 마력이 폭발하며 폭격이라도 맞은 것처럼 몸이 날아갔다.

날아가는 나를 순식간에 쫓아온 마마잭은, 오른팔을 거대한 몬스터의 것으로 변화시켰다.

B급 몬스터로 유명한 ‘사이클롭스’의 오른팔이다.

거대한 거인의 주먹은 내 머리 위로 떨어졌고, 그것이 나를 짓누르기 직전 그림자 질주로 녀석의 등 뒤로 이동했다.

에스더와 미스릴의 합금으로 만들어진 검을 빼어들고 녀석의 몸을 찔렀지만, 마마잭의 몸은 스르르 무너지며 빛으로 변해 흩어졌다.

분신이었다.

“신기한 스킬을 많이 가지고 계시는 군요.”

“네가 할 말은 아니다.”

“하하, 전 변신과 분신밖에 만들 수 없습니다.”

“최면도 쓸 수 있잖아.”

“이런 들켰군요.”

마마잭은 옅게 웃었다.

“GM이 왜 당신을 노리는지 알 것 같습니다.”

녀석은 그렇게 말하며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

“분명 앞으로 게임을 운영하는 데 가장 큰 변수가 될 테죠. 제가 아까 말했던 것처럼 변수라는 건 곤란하거든요. 당신은 이 게임에서 가장 큰 변수가 될 자입니다.”

“칭찬 고맙네.”

“하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당신에겐 아직 ‘별자리’를 죽인 스킬이 남아 있어서 더 싸우긴 부담스럽거든요.”

초월의 증명도 알고 있는 건가.

하긴 카라스를 죽일 때도 썼고, 특히 전갈 녀석에게도 썼으니 마마잭이 알 만도 하지.

녀석은 최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움직인다.

어찌 보면 나와 닮아있다고 할 수 있다.

“박성혁과 강태성은 죽였나?”

“아뇨. 죽이면 당신을 곤란하게 만들 수 없잖습니까.”

그는 그렇게 말한 뒤 어깨를 으쓱했다.

“아 물론, 저 여성분을 죽이지 못한 건 아쉽군요. 하지만 우선은 물러가겠습니다. 저도 따로 할 일이 있거든요.”

“나를 죽이는 것 말고?”

“전 바쁜 몸입니다.”

녀석은 마치 광대처럼 웃었지만, 나는 놈을 보내줄 생각이 없었다.

되도록 찾았을 때 바로 죽일 생각이었다. 녀석이 작정하고 숨어 다니면 찾는 건 불가능에 가까우니까.

되도록 린이 있을 때 싸우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틈이 없었다.

딱!

나는 손가락을 튕겨 녀석의 주위에 허수공간을 열고 일제히 무기를 사출했다.

놈은 그것을 굳이 피하지 않았다.

푸푸푹!!

마마잭의 몸은 순식간에 벌집이 되어버렸지만, 녀석을 처치했다는 알림은 들리지 않았다.

그저 웃는 얼굴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을 뿐이다.

이건 분신이 아니다.

“인형, 인가.”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분신 스킬에 이어 인형 스킬까지 가지고 있다니.

아주 상대를 기만하는데 최적화되어 있는 놈이 아닌가.

어쩐지 능력치가 오히려 내가 높게 느껴지더니 가짜였구나.

‘그럼…… 녀석의 본체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아웃라이징이나 제네시스의 본거지에 있는 건가?

그게 아니라면…….

띠링!

그때 민아로부터 쪽지가 도착했다.

아직 이곳에 오려면 조금 시간이 남았을 텐데?

나는 의아한 마음으로 쪽지함을 열었다.

쪽지의 내용을 읽는 순간, 나는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마마잭이 린을 데려가려고 해.」

그건, 정말 예상도 못한 말이었으니까.

***

처음에 계획했던 일은 오로지 김세한을 죽이는 것이었다.

그것이 의뢰의 내용이었으니까.

하지만 김세한에 대한 정보를 모으던 중, 예상외의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이 소녀에 대한 정보였다.

악마 네비로스로부터 얻은 소녀에 대한 정보는 무척 흥미로웠다.

어마어마한 힘을 내제한 인간의 아이.

마마잭은 린을 얻기 위해 세한의 눈을 속였다.

하필 그가 이번 퀘스트에 린을 데리고 다닌 탓에 그의 길드하우스에 숨어드는 방법은 사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린과 세한을 떨어트리기 위해 조금 상황을 꾸몄던 것이다.

이아영은 어디까지나 미끼였다.

물론, 죽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건 진심이다.

그랬으니 세한도 황급히 그것을 막기 위해 왔던 거겠지.

덕분에 겨우겨우 린과 세한을 떨어트릴 수 있었다.

“훌륭합니다.”

마마잭은 중얼거렸다.

잠들 듯 누워있는 린을 보며 마마잭은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

“이 육체라면, 이 육신이 지닌 가능성이라면 분명 엘리제의 몸이 될 수 있을 테죠.”

인간이 지닐 수 있는 모든 가능성과 경이를 품은 몸이라고 네비로스가 말했다.

이것이라면 엘리제를 되살릴 수 있을 터다.

이 몸은, 이 그릇은 무엇이든 받아들일 수 있는 만능의 잔이나 마찬가지니까.

지금까지 신으로서 격을 쌓고.

온갖 의뢰를 수행하며 찾아왔던 마지막 파편이 이곳에 있었다.

세한을 죽이는 건 그다음이다.

어차피 그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언제나 마마잭에게 있어 첫째의 일은 엘리제를 되살리는 것이었다.

“엘리제…….”

마마잭은 자신의 목에 걸려 있던 팬던트를 떼어 린의 가슴에 올려두었다.

이 팬던트에는 엘리제의 혼이 들어있었다.

“긴 시간이었죠.”

많은 지식을 익혔다.

신의 격을 쌓았다. 그녀를 되살리기 위한 힘을 발휘한 준비는 끝마쳤다.

이제 시술만 하면 끝났다.

그녀의 혼을 그릇에 담는, 단순한 작업.

그것만이 남아있었다.

만약 잠들어 던 소녀의 눈이 떠지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그래? 힘들었겠네.”

잠들 듯 누워 있던 소녀의 손이 움직였다.

그리곤 가슴팍에 있던 팬던트를 꽉 쥐었다.

워낙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마마잭은 움직이지 못했다.

“……약에서 깨어나려면 아직 시간이 좀 남았을 텐데요?”

“그래? 근데 이걸 어째. 내가 최근에 연금술을 익히느라 좋은 걸 워낙 많이 먹어서 약이 잘 안 듣는 모양이야.”

소녀의 모습이 옅은 빛을 내며 흔들렸다.

그러자 린의 모습이 변하며 십대 후반의 여성으로 변했다.

단발머리에 교복을 입은 소녀, 이민아였다.

“그러니까 이게 아저씨의 약점인 거지?”

민아는 손에 쥔 팬던트를 빙빙 돌리며 웃었다.

당연히 마마잭의 얼굴은 험악하게 일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엘리제에게 무슨 짓을 하는 겁니까!”

마마잭의 몸에서 엄청난 기세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민아는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대체 왜 이런 짓을 해가지고.’

마마잭이 린과 민아를 찾아온 건 세한이 떠나고 금방이었다.

어릿광대가 마마잭이 둘을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민아는 본능적으로 그가 린을 노린다는 걸 깨달았다.

왜냐면 자신을 잡을 찾을 이유는 없었으니까.

세한이 린을 애지중지하는 건 잘 알고 있었고, 그녀에게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걸 민아는 알았다.

그래서 린을 공간박리로 숨긴 뒤, 그녀로 변해서 마마잭에게 납치된 것이다.

정말 민아답지 않은 희생이었다.

적어도 본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당장……!”

여태까지의 여유로운 얼굴은 거짓이었다는 것처럼 마마잭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튀어야겠다.’

팬던트를 부순다고 협박해 볼까 했지만 아무래도 팬던트는 쉽게 부술 수 없을 것 같았다.

만져보니 팬던트의 강도는 보통 단단한 게 아니었다. 변변찮은 공격스킬도 없는 그녀로선 그것을 파괴시킬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엘리제를 내놔!!”

민아의 몸이 단번에 줄어들며, 작은 족제비로 변했다.

그리고 족재비의 털이 은색으로 코팅됐다.

불가사리 스킬로 먹은 에스더와 미스릴로 전신을 방어한 그녀는 입에 팬던트를 물고 뛰었다.

바야흐로 변신 스킬을 가진 두 명의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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