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
112. 정면돌파(1)
“이쪽입니다! 이곳에서 100미터 떨어진 장소에서 마마잭이 발견됐다고 합니다.”
“지금은 어떻지?”
“그게…… 숨은 거 같은데 찾고 있다고…….”
“그럼 서두르도록 하지. 녀석이 이곳을 빠져나갈 수도 있다.”
마마잭이 재차 목격됐다는 장소는 영등포 근처였다.
제네시스와 아웃라이징의 부길드장인 홍가운과 박신일이 이끄는 길드연합은 바삐 움직였다.
들리는 이야기에 따르면 워낙 신출귀몰해서 잡기가 힘들다고 하니 한시라도 빨리 움직여야만 했다.
‘왔군.’
그렇게 플레이어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보던 세한은 몸을 풀었다.
세한은 까마귀의 눈을 통해 접근하는 플레이어들을 재차 확인했다.
마마잭에게 서울 전역에 뿌려둔 까마귀들이 죽기는 했지만, 다시 보충하는 건 금방이었다.
물론, 멀리 퍼트리면 녀석이 죽일 테니 까마귀를 움직이는 건 이 근방으로 축소시켰다.
그것만으로 주변에 돌아다니는 플레이어들의 동선을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둘 다 오랜만에 보는걸.’
박신일은 안경을 쓴 샤프한 인상의 남성이었고 전형적인 플레이어의 복장을 하고 있었지만 홍가은은 플레이어라기보단 산책 나온 아가씨 같은 모습이었다.
“싸울 거야, 오빠?”
“글쎄. 말로 넘어갈 수 있다면 그렇게 할 생각이다.”
“그, 그러면 좋겠네요.”
민아와 린은 골목에 몸을 숨긴 채 중얼거렸다.
세한 피식 웃으며 그런 린의 머리를 톡톡 두드려주며 말했다.
“지금가지 녀석들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저 녀석들은 나쁘지 않겠어. 혹시 싸우게 되면 잘 봐두도록 해라.”
“……잘 봐두다니요?”
“넌 그것만으로 충분할 테니까.”
린은 아리송한 얼굴로 세한을 바라보았지만 굳이 더 설명하지는 않았다.
‘노력이라는 게 의미 없는 애니까.’
단지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러니 이번 퀘스트의 목적은 린에게 최대한 많은 것들을 보게 하는 거였다.
조금 귀찮기는 하지만 마마잭은 그 일에 가장 적합한 상대였다.
휙!
세한은 가볍게 몸을 날려 이동 중인 플레이어들의 앞에 내려섰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그의 모습에 앞서 걸어가던 홍가은이 발을 멈췄다.
“영등포 근처로 이동 중이라더니 정말이었군.”
오랜만에 보는 홍가은은 딱딱한 어조로 세한에게 말했다.
“네가 마마잭인가.”
“아니, 김세한이다.”
단호하게 답하자 무표정하던 홍가은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리며 어깨 아래로 오는 단발머리가 바람에 흔들렸다.
“……진짜?”
‘얘는 뭘 이렇게 쉽게 믿어.’
적어도 말도 안 되는 소리는 하지 마라! 라거나, 그렇다면 증거를 보여라! 와 같은 말이 돌아올 줄 알았건만 저렇게 반응할 줄이야.
당황한 건 아군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제네시스와 연합을 맺고 동행한 아웃라이징의 박신일은 황당하다는 어조로 말했다.
“아, 아니 뭘 믿는 겁니까?! 거짓말인 게 당연하잖아요! 김세한의 모습으로 변한 마마잭이 그럼 자신을 마마잭이라고 밝힐 것 같습니까?!”
“과연 그렇군.”
홍가은은 머리를 끄덕이며 허리춤으로 손을 뻗었다.
검을 뽑기 위함이다.
세한은 그런 그녀에게 말을 덧붙였다.
“만약 내가 가짜였다면 이렇게 직접 나타날 리가 없지.”
“……맞는 말이군.”
홍가은이 허리춤에서 손을 떼었다.
당연히 박신일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계책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뭔 경계를 그렇게 빨리 풀어요.”
“……그런 거 같기도 하고.”
깊이 고민하던 홍가은의 머리가 끄덕여졌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얼마나 답답한지 박신일은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렸다.
세한은 적이지만 조금 이해가 갔다.
이전에 만났던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면 확실히 그녀는 무언가를 깊이 고민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청순한 외견으로 본질을 숨기고 있지만 그녀의 뇌는 그 외견만큼이나 청순했다.
그래서 세한은 최대한 간결하게 자신을 증명하고자 했다.
“나는 이전에 너희 길드장과 대화했던 내용을 알고 있다. 그때 너도 곁에 있었으니 기억하겠지? 그 대화를 아는 건 박성혁과 나, 그리고 너뿐이다.”
“기억한다.”
“그렇다면 간단하군. 그때 우리가 대화했던 내용은 ‘별자리’다. 넌 그 말을 듣고 길드장의 요청에 따라 밖으로 나갔었어.”
그런 세한의 말에 박신일의 시선이 홍가은에게로 돌아갔다.
다른 길드원들도 그런 홍가은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잠시 말없이 세한을 바라보던 홍가은의 머리가 갸우뚱 기울어졌다.
“그랬었나?”
“야.”
“음, 녀석과 싸운 건 기억나는데 그 다음에 대화는 솔직히 기억나지 않는다.”
홍가은은 잠시 곰곰이 생각하는 척을 했다.
물론 척이다. 홍가은은 정말로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분명 말을 지어내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생각하셔도 전혀 소용없어요!”
그때, 제네시스 길드원 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박동권?’
세한은 잘 아는 얼굴이었다.
바로 박동권이 제네시스 길드원들 틈에 섞여서 주변 사람들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쳤다.
‘아냐, 저건 박동권이 아니야.’
복장이나 얼굴은 박동권을 빼닮았지만 그가 아니다.
왜냐면 세한이 그의 목에 채운 훈련용 팔찌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마마잭!’
박동권의 모습으로 변해 녀석의 스킬인 ‘선동’으로 주변의 여론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제네시스 길드뿐이 아니라 아웃라이징 길드까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짜증나는 놈!’
녀석의 얼굴이 보였지만 공격할 수도 없었다.
일격에 죽일 수 있다면 문제없겠지만, 마마잭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공격하는 순간 피해서 도망가면 자신은 빼박 길드원을 공격한 적이 되는 것이다.
“결정했다.”
그렇게 말한 홍가은이 시원스런 얼굴로 검을 뽑아들었다.
“생각해보니 김세한은 무척 강했다. 우리와 싸워서 이길 수 있다면 충분한 증거가 될 것이다!”
‘얘, 제정신인가?’
홍가은은 선동스킬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판단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증거로 선동 스킬로 표정이 멍해진 다른 길드원들과 달리 또렷한 걸 보면 생각하느라 박동권의 선동도 제대로 듣지 못한 모양이다.
“어느 쪽이든 싸워서 제압하면 되는 거겠지! 퀘스트도 패배를 인정하게 만드는 걸로 충분하다고 했다! 진짜건 가짜건 죽이지만 않으면 되잖아!”
“…….”
논리 없는 홍가은의 말에도 선동스킬에 홀린 제네시스와 아웃라이징 길드원들은 분기탱천한 얼굴이 되어 세한을 보았다.
“……이제 됐다. 그냥 덤벼라.”
홍가은을 상대로 설득을 해보려한 자신이 병신이었다.
“공격!!”
“와아아아!!”
홍가은의 외침에 플레이어들이 우르르 덤벼들었다.
녀석들이 움직이기 무섭게 세한은 아까 봐두었던 마마잭을 향해 움직였다.
“놈이 도망친다, 막아라!”
앞에서 덤벼드는 플레이어들은 인벤토리에서 긴 봉을 꺼내 힘차게 옆으로 후려쳤다.
봉에 맞은 플레이어들의 몸이 붕 날아가며 수 미터를 굴러 처박혔다.
“대, 대체 무슨 힘이.”
“역시 저놈 별자리라니까!”
모든 능력치가 C까지 올라간 세한은 평균 능력치가 E에 불과한 플레이어들에게는 괴물이나 마찬가지였다. 주먹에 한번 얻어맞으면 하늘로 날아갔고 발차기에 얻어맞으면 10미터를 넘게 굴러가야만 했다.
‘마마잭은?’
박동권의 모습을 하고 있던 마마잭을 쫓으려 했지만 몰려드는 플레이어들에게 숨어들자 찾기 어려워졌다.
‘이래서 변신 스킬 가진 놈들은 까다롭다니까.’
애초에 능력치는 마마잭이 더 좋은지라 작정하고 도망치면 잡기 힘들다.
세한은 짧게 혀를 차며 녀석을 쫓는 걸 포기했다.
애초에 이곳엔 플레이어들이 많아서 함부로 녀석과 싸울 수도 없었다.
여기서 싸웠다가는 평균 능력치가 E에 불과한 플레이어들은 싸움에 휘말려 죽을 위험이 컸기 때문이다.
‘……그래도 소득이 없는 건 아니야.’
박동권으로 변한 녀석을 본건 꽤 이득이다.
왜냐면 녀석의 변신스킬이 가진 허점을 알았으니까.
“아무튼 지금은 이 싸움에 집중을 해볼까.”
슬쩍 린과 민아가 숨어있는 골목을 보았다.
몸을 숨기고 이쪽을 보고 있는 둘의 시선이 느껴졌다.
“자, 그럼 이제 과외시간이다.”
“과외?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박신일이 거칠게 소리치며 덤벼들었다.
그는 선동 스킬에 휘말릴 듯, 이성이 조금 마비된 얼굴이었다.
“그건 너희가 알 거 없고.”
짧은 단검을 역수로 쥐고 덤벼드는 박신일은 상당히 재빨랐다.
과연 무력을 중시하는 아웃라이징 길드의 부길드 마스터다운 실력이었다.
‘하지만 실력으로 따지면 저쪽이 위군.’
벽을 타고 달려오는 홍가은의 모습이 보였다.
마치 한 마리의 매처럼 미끄러지듯 활강하며 얇은 세검을 세한의 다리를 향해 휘둘렀다.
캉! 카캉!!
봉을 회전시키며 세검을 튕겨낸 후, 공중으로 뛰어 반 바퀴 회전하며 박신일의 머리를 발로 찼다.
“후우.”
세한은 숨을 내쉬며 몸에 힘을 뺐다.
단순히 능력치로 압도한다면 전투를 금방 끝낼 수도 있었다.
실력을 넘어 따라오지 못할 수준 차이가 있었으니까.
현존하는 플레이어중 세한의 능력치를 따라올 수 있는 플레이어는 몇 안 된다.
하지만 그래선 교육이 되지 않지.
‘홍가은 정도면 좋은 대련 상대야.’
검 실력도 이전보다 훨씬 늘었다.
분명 그녀도 천재에 속하는 부류겠지.
한국, 아니 세계에 존재하는 검사 중에서는 분명 탑클레스.
“자, 전력을 다해 덤벼라!”
거기에 주변에 있는 플레이어들까지.
린에게는 분명 좋은 교재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대……단해.”
린은 세한이 싸우는 모습을 빠짐없이 보았다.
민아가 도중에 고개를 숙여 숨으라고 했음에도 린은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아빠보다도 굉장해.’
알고는 있었다. 루크보다 세한이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것과 전투기술은 별개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확실히 플레이어로선 부족했을지라도 전투기술만큼은 초일류였다.
세한은 그런 루크보다도 확연히 위의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아빠와 조금 닮은 거 같지만 뭔가 달라…….’
덤벼드는 플레이어들 중, 먼저 처리할 수 있는 이는 손과 발로 쓰러트리고 봉은 홍가은과 박신일의 전투에만 사용되고 있었다.
맨손전투와 무기를 이용한 전투가 매끄럽게 전환되며 플레이어들을 압도했다.
‘이렇게, 이렇게 하는 건가?’
몸을 움직이지 않아도 머릿속으로 그려졌다.
지금 세한의 움직임, 그리고 홍가은이라는 여성의 검로 역시 린의 망막에 새겨졌다.
제네시스와 아웃라이징의 정예.
그 숫자는 족히 50명을 웃돌았다. 그런 이들을 상대로 세한은 분명히 압도했다.
능력치는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사용하면서 오로지 기술만으로 그들을 꺾었다.
일 대 다수가 싸우는 법.
린은 지금 그것을 배우고 있었다.
“……졌다.”
길드연합이 와해되는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홍가은이 분전했지만, 그녀 혼자서는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말도 안 돼.’
역시 별자리인가? 아니면 정말 이게 김세한이라는 플레이어의 실력인가.
혼란스러울 정도였다. 족히 50명에 가까운 플레이어들이 김세한의 옷깃 한번 스치지 못했다.
‘……좀 더, 정진해야겠어.’
바닥에 떨어진 수많은 검의 파편을 보며 홍가은은 우울한 얼굴이 되었다.
세한이 죽이려고 마음만 먹었다면 자신은 죽었을 것이다.
그는 싸우면서 단 한 명의 플레이어도 죽이지 않았다.
죽기 직전까지 팼을 뿐이지.
말 그대로 ‘살려만 줬다’ 수준으로 뻗어 있는 플레이어들을 보니 괜히 뼈가 시려왔다.
그래도 플레이어들이니 살아만 있으면 어떻게든 회복할 거다.
“홍가은, 묻고 싶은 게 있다.”
“묻고 싶은 것?”
“너희 길드장은 지금 어디에 있지?”
“길드장님에게 해코지를 할 생각이냐?”
세한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 반대다. 난 너희 길드장을 도우려고 하는 거야. 보다시피 난 마마잭이 아니다. 마마잭이었으면 지금쯤 너희는 다 죽었어.”
“확, 실히 그런 것 같군.”
조금 지식이 부족한 홍가은이지만 눈치는 있었다.
뭣보다 이런 실력을 지닌 그가 거짓말을 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더 맞기는 싫었다.
“길드장님을 도운다는 말이 무슨 뜻이지?”
“마마잭은 지금 제네시스와 아웃라이징 길드장의 모습으로 변해 있다. 애초에 내가 마마잭이었으면 도중에 변해서 빠져나갔겠지.”
“그건…… 한번 변신을 하면 반나절간 다른 변신을 못한다고…….”
“그런 정보를 너희 길드장은 어디서 얻었는데?”
모른다.
확실히 그 점이 의문이긴 했지만 홍가은은 그냥 그러려니 납득했을 뿐이다.
혼란스러워하는 홍가은을 보며 세한은 눈을 가늘게 좁혔다.
‘박신일도 넘어간 걸보면 녀석에겐 최면 비슷한 스킬이 있는지도 몰라.’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다수를 선동할 때는 박동권의 스킬을 사용한 걸 보면 단일에게만 사용이 가능한 스킬일 것이다.
“녀석은 분명 힌트를 줬을 거다. 왜냐면 너희가 나를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 같거든. 분명 다음 장소로 안내할 수 있도록 말을 전해뒀을 테지.”
그리고 그건 홍가은에게 말했을 것이다.
가장 마지막에 남을 플레이어는 홍가은이 제일 유력했으니까.
솔직히 박신일은 홍가은에 비해서 많이 부족했다.
“……피안화 길드에 찾아간다고 하셨다.”
‘현재 서울의 구심점이 되는 3대 길드를 이용할 생각이구나.’
강태성과 박성혁을 죽였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피안화의 이아영은 아직 살아 있는 게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