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
111. 천변(千變)(3)
서울에 나타난 마마잭이 제일 먼저 한 건, 상공에 날아다니는 내 까마귀들을 모조리 죽이는 일이었다.
평범한 까마귀인 척 위장을 해봐도 마마잭은 그것을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모조리 죽였다.
‘난감하군.’
겉모습만 보자면 평범한 까마귀와 다를 것이 없건만 그것을 모조리 찾아서 죽일 줄이야.
사실상 내 스킬 하나가 봉인된 거나 마찬가지다.
심지어 까마귀의 눈은 내가 가장 애용하는 스킬 중 하나, 모습을 변화시킬 수 있는 마마잭을 상대할 때 꼭 필요한 스킬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렸으니 직접 소문을 따라 찾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전생에 마마잭이 벌였던 짓을 생각하면 우선 거대 길드들의 분열을 만들 터.
‘그렇다면 크게 두 길드 중에 하나야.’
아웃라이징과 제네시스.
피안화의 경우에는 이아영이 가진 본질을 그대로 가져오지 못할 테니 무리.
아무리 능력치를 그대로 베껴오는 마마잭이라도 전승스킬은 베끼지 못한다.
전승스킬을 전수한 신이 그보다 신격이 낮으면 모르겠지만 게임에 참여한 신들은 최소 중상위 신격이니까.
“세한 씨, 그럼 저희는 정보를 모으면 됩니까?”
“예, 창우 씨와 제네시스를, 루크 씨는 아웃라이징 쪽 정보를 알아봐 주시길 바랍니다.”
“그러도록 하지.”
루크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아마 내 옆에 찰싹 달라붙은 있는 린이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하지만 린은 조금 위험하지 않겠나? 그 아이는 여태 포인트로 능력치도 제대로 올리지도 않았는데…….”
“예, 괜찮습니다. 어차피 능력치는 차차 올려도 되고요. 지금도 평범한 플레이어들보단 조금 높은 편 아닌가요?”
“그건 그렇지.”
능력치는 포인트로 올려야 되는 터라 제대로 활동하지 않은 린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편이었다. 그렇지만 내가 지속적으로 챙겨주기도 했고, 루크가 던전을 데리고 돌아다닌 터라 평범한 수준은 됐다.
역시 쩔이 최고지.
어차피 능력치는 나중에 언제든지 올릴 수 있다.
“린은 스스로를 알아야 하니까요.”
“……자네는 정말 린을 높게 평가하는군.”
“루크 씨도 그렇게 생각하지 하지 않습니까?”
루크는 머리를 긁적였다.
딸을 칭찬하는 말이니 기분은 나빠 보이지 않았지만 복잡한 얼굴이었다.
“이 세계에 살아남기 위해선 강한 힘은 필수입니다. 여태까지 쉬웠다고 해도 앞으로도 쉽다는 보장은 없지요.”
“그래, 맞는 말이지.”
평소의 장난기 어린 모습은 감춘 채 루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바로 이동하죠. 대화나 하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알겠네.”
우리들은 대화를 끝낸 후, 각자의 위치로 각각 흩어졌다.
창우는 제네시스로, 루크는 아웃라이징으로.
나와 민아, 그리고 민아의 경우엔 서울을 전체적으로 둘러보며 플레이어들을 살피기로 했다.
“근데 나는 별로 필요 없지 않아? 내가 왜 필요해?”
“다 깊은 뜻이 있다.”
“씨잉.”
설명하라고 해도 못한다.
1회차의 민아가 녀석을 죽였다고 어떻게 말하겠는가.
‘근데 정말 어떻게 죽인 거야?’
마마잭은 중위 신격을 지니고 있었다.
이건 내가 2회차의 한 짓으로 달라진 게 아니다.
1회차에도 마마잭은 중위 신격을 지닌 별자리였을 것이다.
‘아무리 지금보다 한참 후라 이민아도 강해진 시간대이긴 하겠지만…….’
뭔가 분명 방법이 있었을 텐데 그걸 모르겠단 말이지.
툭툭.
“왜 그래?”
“아뇨, 뭔가 조금 느낌이 이상해요…….”
나와 민아의 대화를 듣고 있던 린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어라?’
그제야 나도 주변의 묘한 분위기를 인지했다.
현재 우리가 있는 장소는 선유도역의 근처였다. 사람이 많지 않은 곳이라 느긋하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우리를 본 몇몇 플레이어들이 묘하게 이쪽을 살피는 기색이 있었다.
그때 목뒤가 뜨끔거렸다.
쉭!!
“어, 엄마야!”
나는 걸어가는 민아의 어깨를 잡고 당겼다.
그러자 방금 전에 민가가 걸어가던 방향으로 날카로운 침이 박혔다.
‘마비 스킬을 사용한 공격이다.’
나는 방금 전에 공격이 날아온 방향을 보았다.
한 플레이어가 당황한 얼굴로 황급히 내게서 도망쳤다.
문제는 이제 시작이었다.
눈치를 살피던 플레이어들이 저마다 우리를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젠장, 들켰다! 다들 덮쳐!!”
갑작스런 공격에 우리는 황급히 피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된 상황인지도 모르는데 함부로 플레이어들을 공격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뭐, 뭐야? 오빠 또 뭐 잘못했어?!”
“또라니, 애초에 난 뭔가를 잘못한 적이 없어.”
“그럼 갑자기 우리를 왜 공격해?!”
민아의 몸이 단번에 줄어들며 작은 다람쥐로 변해 내 어깨 위로 올라왔다.
마치 자신은 여기 엉겨붙어 있을 테니 알아서 피하라는 것 같았다.
“넌 린을 보호해 줘야 하는 거 아니냐?”
“뀨! 큐르르르!”
다람쥐의 작은 앞발이 내 옆을 따라오는 린을 연신 가리켰다.
동물의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대충 예상하자면 자신이 지켜주지 않아도 린은 잘 피하고 있다는 뜻인 것 같다.
웃기는 모습이었지만 확실히 그 말대로다.
린은 굳이 보호해 줄 필요가 없었다.
‘뒤에도 눈이 달렸나?’
내가 보호해 줄 필요도 없이 린은 사방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잘도 피했다.
비명을 지르고 눈물을 글썽글썽해서 당장 울 것 같지만 단 한 번도 공격을 허용하지 않았다.
애초에 맞을 것 같으면 내가 보호했겠지만 말이야.
“잡아라!”
“저 남자야! 여자애는 건드리지 마!”
주변에서 외치는 소리로 볼 때 목표는 나인 것 같다.
문제는 왜 나를 이렇게 쫓는지가 의문이었다.
“…….”
민아 역시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어깨 위에 있던 다람쥐의 시선이 묘해졌다.
마치 ‘그럼 난 이대로 튀어도 괜찮은 거 아냐?’라는 눈치였다.
“이미 나와 함께 있는 걸 플레이어들이 다 봤으니 늦었다.”
“뀨우우우.”
다림쥐가 실망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 모습은 귀여웠지만 내 입장에서는 가증스러울 뿐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도망칠 수만은 없지.’
나라고 계속 도망치기만 한 건 아니다.
까마귀의 눈이 없는 만큼 혹시나 더 따라붙은 플레이어들이 있는지 확인하며 피하고 있었다.
‘플레이어의 수는 총 18명.’
그다지 많은 수는 아니다.
거리에서 쫓기는 우리를 보는 일반인들이 섞여 수가 많아보였을 뿐이다.
“존나 안 맞네! 그냥 공격하면 안 되냐?”
“이런 씹. 왜 저렇게 빨라? 무슨 한 발을 안 맞네.”
“얌전히 잡혀라 좀!”
나는 재차 플레이어들을 확인하며 하나하나 위치를 파악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달렸을 때 손가락을 튕겼다.
딱!
플레이어를 제압할 수단은 내가 저놈들보다 훨씬 많이 지니고 있었다.
“으악!! 이게 뭐야!!”
우리를 쫓아오던 플레이어들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사방팔방에서 새까만 공간이 열리며 각종 아이템들이 날아와 자신들의 몸을 포박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으헉! 이 링은 뭔……!”
“다리가 달라붙었어!”
“이것 좀 벗겨봐, 빨리! 사, 살려줘!”
던져서 착용시킬 수 있는 훈련용 팔찌부터, 점착 폭탄에서 ‘점착’ 부위만을 떼어 만든 점액까지. 굳이 피를 흘리지 않아도 플레이어를 구속할 수 있는 물건들.
그것들이 일제히 날아가 열댓 명의 사람들을 모조리 쓰러트리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10초였다.
‘저번 지수와의 싸움으로 이런 물건들의 필요성을 느꼈거든.’
지수의 경우에는 몸을 꿰뚫고, 자르고 찢건 말건 재생할 수 있었기에 좀 과격한 방법으로 구속했었지만 평범한 플레이어들은 다르다.
지수처럼 훈련용 팔찌를 매단 창으로 꿰뚫었다간 제압이 아니라 저세상으로 가버린다.
그래서 시우에게 부탁하여 간단한 소모품들을 만들었던 것이다.
재료가 되는 아이템들이 하나같이 DLC 아이템들이었기에 효과는 발군이었다.
“……시우는 재주도 좋네. 이런 건 대체 어떻게 만들었데.”
“참고로 이 점액은 나중에 너에게 부탁해서 개량할 생각이다.”
“엑, 나 끈적거리는 건 싫어!”
플레이어들이 모두 제압되자 다람쥐로 변했던 민아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참 약은 녀석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이게 무슨 짓이지? 왜 갑자기 우리를 공격한 거냐.”
아무튼 상황을 파악할 필요가 있었으므로 나는 제압한 플레이어 중 가까이에 있던 남성에게 다가갔다.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그는 악을 쓰며 소리쳤다.
“닥쳐라! 이 카멜레온 새끼! 길드들의 말만 아니었어도 넌 죽었어!”
이건 또 뭔 개소리야.
까마귀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카멜레온이라는 말은 처음이네.
‘잠깐만, 이거…….’
카멜레온이라는 말에 생각난 건 이번 퀘스트와 마마잭이었다.
“어차피 넌 곧 잡힐 거다! 서울 전역에 현상금이 떨어졌다고!”
내 아이템에 잡혀 바닥에 뒹굴고 있는 플레이어들이 나를 비웃었다.
당연히 나는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카멜레온? 저게 지금 무슨 말이야?”
“맞아요, 오빠가 카멜레온이라니요. 뭔가 착오가 있는 거 아닌가요?”
민아와 린이 궁금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계속 나와 함께 다닌 두 명으로선 이해하기 힘들었던 말이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쉽게 답을 찾을 수 있다.
“……마마잭이 명령한 거야.”
“아.”
민아도 그제야 깨달은 것처럼 심각해졌다.
변신 스킬을 가진 당사자이니 마마잭이 무슨 짓을 한 건지 바로 알아차린 거겠지.
오직 린만이 알쏭달쏭한 눈치였다.
“간단히 말해서, 그 사람이 높은 사람으로 변해서 플레이어들에게 명령한 거네. ‘현재 카멜레온은 이렇게 생긴 모습을 하고 있다.’라고 말이야.”
“그렇지. 거기에 한번 변신하면 한동안 다른 모습으로 변하지 못한다, 와 같은 추가 설정을 붙여준다면 플레이어들도 그러려니 하고 나를 잡을 테니까.”
“……근데 그걸 믿어?”
“믿겠지.”
만약 서울을 지배하는 3대 길드의 길드장들이 말한다면 신뢰도가 크게 상승하게 된다.
특히 머리가 좋기로 유명한 제네시스 길드장의 말이라면 더더욱 파급이 크겠지.
지금 이런 지역의 플레이어들까지 알 정도라면 서울 전역에 소문이 다 퍼졌다고 봐도 좋았다.
이런 게 가능한 건 3대 길드 말고는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 있으니 내 쪽지함으로 연속해서 두 개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루크와 창우다.
둘이 보낸 쪽지의 내용은 동일했다.
「아무래도 마마잭이 길드장의 모습으로 위장한 채, 한 남자를 잡으라고 명한 것 같습니다.」
당연히 한 남자는 나를 뜻한다.
분명 피안화를 제외한 다른 두 길드의 길드장의 모습으로 각각 변해 이런 짓을 벌인 거겠지.
까마귀의 눈을 없앤 이유도 이것이다.
그 스킬이 있으면 플레이어들을 피해서 움직이기 쉬워지니까.
루크와 창우의 말에 따르면 갑자기 길드장들이 동시에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현재 플레이어 김세한의 모습으로 변한 카멜레온이 서울에 돌아다니고 있다고.
‘본래의 마마잭이라면 길드들을 이간질 시키는 걸 먼저 했을 거야.’
단순히 자신을 잡지 못하게 하려했으면 그게 더 효율적인 수단이다.
3대 길드를 분열시키면 플레이어들끼리 싸움이 일어나게 될 것이며, 큰 이슈로 발전할 수 있으니까.
그럼에도 이런 식으로 일을 벌였다는 건 간단한다.
나를 저격한다는 거다.
‘그래, 해보자 이거냐?’
역시 이번 일의 뒷배에는 아카터스가 엮여 있는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다면 마마잭이 이런 식으로 행동할 리가 없었다.
“유명한 게 오히려 독이 됐네, 오빠.”
“그러게 말이다.”
최근 이런저런 일로 얼굴이 많이 팔린 탓에 나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근데, 만약 내가 카멜레온이 변한 거라고 생각한다면 기존의 김세한은 그냥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냥 무작정 공격을 해버리네.
‘하기야 그런 걸 일일이 구분하려 하지 않겠지.’
카멜레온을 잡으면 퀘스트가 끝나니, 잡은 당사자는 분명 백금 등급 보상을 받을 것이다.
백금 등급 보상이 얼마나 어마어마한지는 플레이어들이라면 잘 알 터.
심지어 거기에 길드들이 추가로 보상을 내걸었다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것도 당연했다.
사소한 오해나 오류는 그들에게 문제가 아니었다.
“그럼 이제 어떡해? 시작부터 꼬인 거 아냐?”
“아니, 오히려 잘됐어. 현재 마마잭은 그럼 아웃라이징이나 제노사이드 둘 중에 하나에 있다는 거잖아?”
만약 분신 스킬과 같은 게 있다면 두 곳에 다 있을지도 모른다.
진짜를 찾기 위해선 결국 둘 다 방문해야 했지만, 녀석의 위치를 특정할 수 있게 되었으니 오히려 이득이다.
“그럼 가다가 수많은 플레이어들과 싸우게 될지도 모르는데?”
“그건 상관없어.”
어차피 이쪽은 다수의 플레이어를 상대로 싸우는 것에는 이골이 나있거든.
***
“이대로 몸을 빼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현재 마마잭은 아웃라이징 길드에 있는 강태성의 집무실에 있었다.
강태성의 모습으로 변한 그는 아웃라이징의 길드원들에게 김세한의 모습이 찍힌 사진을 나눠주며 그를 잡으라 명했다.
과연 3대 길드답게 플레이어들은 하나같이 행동이 재빨랐고, 서울 전역에 소문이 퍼지는 건 금방이었다. 아웃라이징만이 아니라 제네시스까지 도왔으니 당연하다.
‘두 개의 길드를 관리하려면 몸을 바쁘게 움직여야겠군요.’
아웃라이징의 강태성과 제네시스의 박성혁의 모습으로 변하며 마마잭은 계속해서 여론을 조성해야만 했다. 분신 스킬을 만들어 제네시스에 놔두긴 했지만, 분신은 복잡한 행동을 하지는 못했다.
“플레이어들을 최대한 보호한다고 했었지요.”
과연 이번에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인가.
마마잭은 빙그레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