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110화 (110/332)

# 110

110. 천변(千變)(2)

이민아가 천변을 계승한 이유는 간단하다.

녀석이 마마잭을 죽인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당시 한창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기였던 그녀는 천변을 죽여 한창 유명세를 타게 된다.

하지만 그런 이민아는 얼마가지 않아 잠적을 해버렸고, 그런 유명세도 사그라지지.

‘이민아가 왜 잠적을 했는지는 이제 알지만.’

천변을 어떻게 죽였는지는 모른다.

잠적을 해버린 그녀를 찾아 굳이 천변에 대해 물어본 당사자도 없었으니까.

“오빠, 뭘 그렇게 고민해요? 제가 도와드려요?”

방에서 혼자 고민을 하고 있으니, 언제 왔는지 지수가 말을 걸었다.

이전과 달리 옅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온 지수의 눈에는 오직 나만 비치고 있었다.

‘숨이 턱 막히네.’

호감을 보내준다는 건 고마운 일이지만 지수의 애정은 보통 사람과는 궤를 달리했다.

이전에는 그런 자신을 감추고 있었지만, 적어도 이제 그 마음만은 숨기지 않고 내게 표현했다.

“아니, 이번에는 그냥 이 건물 내에서 잠자코 있어.”

“……네?”

지수가 큰 충격을 받은 것처럼 굳었다.

마치 버림받은 고양이 같은 얼굴이다. 나는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이번 메인 퀘스트는 너와 상성이 좋지 않거든. 지난 번 일에 대한 피로도 안 풀렸잖아? 우선 쉬고 있어. 민아랑 내가 어떻게든 할게.”

자신보다 하위의 존재의 능력을 복사하는 마마잭에게 지수를 보였다간 그대로 카피되고 말 것이다. 나는 최하급 신격을 지녀 아슬아슬하게 비껴나갈 수도 있지만 다른 플레이어들은 신격자체가 없어 백방 카피될 게 뻔했으니까.

그렇게 설명했음에도 지수의 얼굴은 펴질 줄 몰랐다.

“민아와 단둘이 행동하실 건가요.”

‘아, 눈이 죽었다.’

지수는 이성을 잃었을 때의 일도 모두 기억하고 있다.

당연히 민아가 갑자기 자신을 가둬버린 것도 알고 있었다.

나와 민아의 사이는 그냥 편한 친구? 정도의 느낌이지만 아무래도 지수는 그렇게 느끼지 않는 모양이다.

애초에 지수는 내 옆에 다른 ‘사람’이 오는 것 자체를 지극히 싫어한다는 걸 이번 일로 알게 되었다. 물론 내가 싫어할까 봐 그런 티를 내지는 않지만 말이야.

“야, 한지수.”

“네.”

“민아는 미성년자다.”

“…….”

내가 단호하게 말하자 지수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고개를 주억거리는 걸보니 이걸로 납득해 준 모양이다.

그렇게 지수를 방으로 돌려보낸 후, 내가 향한 곳은 린과 백설이가 주로 머무는 놀이방이었다. 이번 일에 둘의 도움은 딱히 필요 없지만, 상황 자체를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마잭은 언제든 카피한 이의 능력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수많은 기술을 익히고 있다고 했지.’

무(武)로 용맹을 떨치는 대표적인 별자리는 금우궁의 알데바란이다.

그런 알데바란도 카멜레온자리의 마마잭은 인정했다.

별자리의 급수로는 아득히 아래에 있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마마잭의 실력은 놀라울 정도로 대단하다는 것이다.

1회차의 이민아에게 진 걸 보면 뭔가 약점이 있는 건 분명했지만 순수한 실력만큼은 초일류라는 거지. 그런 점에서 린에게는 좋은 상대였다.

“아, 다음은 이거지?”

“정답입니다.”

둘은 만들어준 놀이방에서 놀고 있었다.

말이 놀고 있는 거지, 평범한 어린이들의 놀이와는 달랐다.

백설이가 마력으로 이루어진 구슬들을 만들어 허공에 늘어놓았는데, 구슬들의 마력양은 제각각 달랐다.

내가 느껴도 미세하게 다른 그것들을 린은 깔깔 웃으며 하나하나 순서에 맞게 손가락으로 퐁퐁 터트렸다.

‘심지어 구슬이 움직이는 속도도 꽤 빠른 거 같은데.’

린의 움직임은 민아의 것과 상당히 닮아 있었는데, 아마 민아가 둘을 자주 돌봐줬기 때문일 것이다. 그 녀석은 보기완 달리 어린애들을 무척 좋아하니까.

아무튼 무서울 정도네.

마력 감응력도 그렇고 동체시력도 평범한 인간의 아이와는 동떨어져 있다.

백설이야 태생이 기린이니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모르는 모양이었지만, 세한의 눈에는 지극히 이상한 광경이었다.

어쩌면 저 둘은 이게 ‘또래 평균’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아, 오빠 오셨네요. 무슨 일이세요?”

구슬을 모두 터트린 린은 그제야 내가 들어온 걸 깨달았는지 방긋 웃으며 돌아보았다.

그 모습은 아이 같아서 좋긴 했지만…… 이번에는 마음을 독하게 먹기로 했다.

이제 슬슬 린도 자신의 능력에 가닥을 잡을 때가 됐다.

이번 메인 퀘스트로 볼 때, 아카터스가 일을 벌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어. 이번 메인 퀘스트에는 너도 데려갈까 해서.”

“네? 저도요?”

당연히 린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반문했다.

설마 이번 퀘스트에 자신을 부를 줄은 전혀 몰랐던 모양이다.

“너도 플레이어야. 이번 퀘스트는 분명 너에게 좋은 경험이 될 거다. 그래도 던전 같은 데는 다니고 있지?”

“네, 네에. 가끔 아빠랑 함께 다니고 있어요.”

떠듬떠듬 말하는 린의 모습에 백설이가 무표정한 얼굴로 질문했다.

“세한, 저도 따라가는 겁니까?”

“아니. 백설이는 그냥 여기서 대기해.”

“알겠습니다.”

백설이는 최종수단이다.

백설이의 실력은 날이 갈수록 발전하고 있었고, 치유 마법에서는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경지에 이르렀다. 함부로 신들이나 GM 앞에 내보였다간 분명 견제가 들어올 것이다.

‘확실히 모르간에게 맡겨두길 잘했어.’

아무리 생각해도 저번 이벤트 퀘스트는 꿀이었다.

아서도 얻고, 백설이의 마법실력도 향상시켰으니까.

“장비는…….”

“시우 오빠가 만들어줬어요.”

“좋아, 그럼 바로 가자.”

“네? 바로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린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 당연하지. 이미 퀘스트는 시작했잖아?”

나는 한쪽 눈에 비치고 있는 까마귀의 시야를 통해 서울의 한 지점을 관찰했다.

바로 그곳에 ‘그’가 있었다.

새까만 양복차림에 검은 모자를 쓴 정갈한 남성.

평범한 인간과 같은 모습이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녀석의 몸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신격을.

‘최하위 신격의 별자리? 아무래도 정보가 잘못된 모양이야.’

최소 중급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카멜레온자리는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삼류 중에 삼류 별자리였지만 녀석의 신격은 그것을 훨씬 뛰어넘고 있었다.

‘……예상보다 훨씬 어려운 퀘스트가 될지도 모르겠는데.’

명백히 카라스보다 위의 존재다.

그런 존재의 입에서 패배를 시인하게 하라니.

‘중급이면 나로도 변할 수 있다는 거잖아. 썩을.’

나는 재차 이 퀘스트를 준 아카터스를 욕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지구에서 여섯 번째 메인 퀘스트가 시작되기 하루 전.

초월자들만이 드나들 수 있다는 초상계에 한 남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새까만 정장과 그에 어울리는 검은 코트를 걸치고, 검은 모자를 쓴 신사.

마치 누군가를 추모하는 것과 같은 복장을 입은 그는 자신을 맞이하러 나온 거구의 존재를 보며 웃었다.

“존귀하신 GM님께서 하위 별자리에 불과한 제게 의뢰를 주시다니, 이거 영광이군요.”

“하위…… 저도 그렇게 알았지만 아무래도 평가를 수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카터스는 눈앞의 카멜레온 자리, 마마잭을 보며 얼굴을 굳혔다.

워낙 신출귀몰한 인물이라 정보가 적었지만 그가 강해지기 위해 신격을 높이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었다.

그런데 설마 중위 신격을 넘어섰을 줄이야.

“마마잭. 당신이 이곳에 왔다는 건 의뢰를 받아들일 마음이 있다고 생각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지요. 마땅한 보상만 주신다면.”

“……예. 보수는 말씀드린 것처럼 일정량의 신격을 상승시킬 수 있도록 도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퀘스트 형식으로 이번 의뢰를 발현한다면 시스템을 통해 보상을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오오, 과연. 시스템에서 태어난 이들 답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신격을 올리는 일이라는 게 보통 어려운 게 아니라서요.”

단정한 얼굴로 웃는 마마잭의 모습에 아카터스는 혀를 내둘렀다.

‘보통 어려운 게 아닌데 중급까지 올려?’

중급 신격이면 사실 황도 12궁 자리에도 비빌 수 있다.

당장 정의의 여신 아스트라이아가 중상급 신격이지 않는가.

물론 지닌바 신격에 비해 그다지 강한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준은 결코 아니었다.

솔직히 그를 만만하게 생각하고 불렀던 아카터스로선 조금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GM이 막나갈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하위 신격을 지닌 존재가 한계이니까.

“꽤나 흥미로운 의뢰입니다. 한 플레이어를 죽여 달라니…….”

마마잭의 얼굴은 전체상으로 여우상이었다.

눈은 실눈처럼 가늘게 떠서 표정을 읽기 힘들었다.

가볍고 여유로운 어조에 아카터스는 조금 초조해졌다.

“그놈이 보통 놈이 아니거든요. 보면 알 겁니다.”

“예예. 저도 압니다. 이미 영상으로 봤거든요. 플레이어 김세한이었죠? 근데 그 플레이어는 아우터갓과 관련이 있는 인물 아닙니까?”

“……아, 예. 조금 인연이 있는 거 같더군요.”

아카터스의 얼굴이 똥씹은 표정이 되었다.

확실히 아우터갓이 변수였다. 다른 아우터갓은 이 우주에서 일어나는 ‘게임’ 자체에 그다지 흥미를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두 명의 아우터갓이 문제였다.

하나는 인류에게 호감을 품고 있는 신 꿈의 마녀 이드라.

또 하나는 그에 못지않게 인류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신.

기어오는 혼돈, 니알라토텝.

둘의 차이점은 이드라의 경우 진심으로 인류에게 호감을 지니며 그들을 보호해 주려 한다는 점이고, 니알라토텝의 경우에는 그런 인류가 발버둥치는 모습을 보며 즐기는 걸 좋아한다는 것이다.

현재 문제가 되는 건 이드라였다.

‘대체 어떻게 그런 신과 관련이 있는 거야?’

아무튼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아무리 아우터갓이라고 해도 외우주의 신.

자신이 운영하는 서버를 망치게 둘 생각은 없었다.

더군다나 플레이어 하나가 죽는다고 아우터갓 씩이나 되는 존재가 뭐라 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들에게 인류란 벌레 이하의 존재니까.

“하하, 그런 표정 지으실 것 없습니다. 처음 말했던 것처럼 일주일 안에 해결하도록 하죠.”

“예, 꼭 부탁드립니다. 놈이 좀 질긴 녀석이라 좀처럼 죽이기가 힘들더라고요.”

검은 모자의 챙을 만지며 말하는 마마잭의 모습에 아카터스는 그제야 좀 안도할 수 있었다.

‘그놈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중위 신격을 지닌 별자리를 이길 수는 없겠지.’

언제나 이렇게 안도하고 뒤통수를 맞기는 했지만, 이번에야말로 녀석을 죽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남은 건 황도 12궁뿐.’

그것도 황도 12궁 최강의 별자리, 알데바란으로 끝장을 볼 것이다.

아카터스의 눈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

‘과연, 까마귀인가요.’

마마잭은 하늘에서 자신을 감시하는 까마귀를 응시했다.

저건 분명 카라스의 전승스킬이었다.

카라스를 죽이고 새로운 까마귀자리가 되었다더니만 정말이었던 모양이다.

‘플레이어가 별자리라…….’

거의 전후무후한 일이다.

별자리가 게임에 참여하여 죽는 경우는 없으니까.

애초에 그런 불상사를 대비해서 웬만해서는 퍼블리셔가 별자리가 게임에 관여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괜히 중요 별자리가 게임에서 죽었다간 난감해지기 때문이다.

그나마 까마귀자리 카라스는 대단치 않은 위치라 유야무야 넘어간 모양이지만 마마잭의 입장에선 그저 웃음만 나왔다.

‘저 역시 마찬가지이겠죠.’

아카터스의 얼굴을 떠올리면 웃음만 나왔다.

자신을 이용하려고 한 주제에 예상외의 신격에 놀란 꼴이라니.

본래 하위 신격으로 알려진 마마잭이니 만약 문제가 생겨도 큰일로 번지지는 않으리라 생각한 것이리라.

본인이 현재 존재하는 별자리 중에 꽤 뛰어난 해결사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등급은 여전히 하위 별자리에 속한다. 신격이 중급이라고 하더라도 이렇다 할 신화가 없는 별자리인 자신은 결국 근본 없는 놈에 불과하니까.

마마잭은 목에 걸린 팬던트의 뚜껑을 열었다.

그곳에는 한 여성의 사진이 있었다.

‘엘리제…….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상위 신격을 얻게 되면 별자리로서 격을 올릴 수 있다.

신에 동등한 힘을 지닌 별자리를 누가 무시하겠는가.

그래, 누구도 무시하지 않을 신의 격을 얻어야만 했다.

이번 일도 결국 그 일환.

“그럼 일을 벌이기 전에…….”

마마잭의 입이 쩍 벌어졌다.

은은한 미소가 걸려있던 인간의 입이 기괴하게 벌려지며 그곳에서 길쭉한 혓바닥이 까마귀를 향해 날아갔다.

으드득!

“우선 눈부터 치워둬야겠군요. 이런 건 내버려두면 성가시거든요.”

커다란 까마귀를 우적우적 씹으며 마마잭의 실눈이 주변을 살폈다.

평범한 까마귀로 위장하고 있었지만 카멜레온자리인 그의 눈을 피할 정도는 아니었다.

본디 위장이라고 하면 어떤 별자리도 자신을 따라올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그냥 마력덩어리의 맛이네요.”

모든 까마귀들을 씹어먹은 마마잭은 검은 챙이 달린 모자를 꾹 누르며 기감을 확대시켰다.

들은 정보에 의하면 이 근방에는 하나의 길드가 있을 터였다.

“좋아, 저쪽이군요.”

광대처럼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마마잭의 모습이 변했다.

다른 별자리들과 달리 마마잭은 오만하지 않다.

설령 자신보다 격이 낮은 플레이어들이라도 정보를 수집하고 자신이 이길 최선의 방법을 모색한다.

더군다나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은 술래였다.

서울에 있는 플레이어들에게 쫓기는 술래잡기의 술래.

마마잭은 그것을 철저하게 수행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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