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 플레이어-106화 (106/332)

# 106

106. 아픈 소녀의 사랑(4)

“말도, 말도 안 돼. 난 명왕의 아바타다. 신에게 선택받은 인간이란 말이다!”

“선택받아? 너는 그냥 대체품일 뿐이야. 나를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인스턴트 식품일 뿐이지.”

나는 걸어가며 피식 웃었다.

녀석의 자의식과잉은 웃음만 나왔다.

어쩌면 녀석도 잘못된 부모의 교육이 만든 피해자일지 모른다.

하지만 너무 심했다.

인간이 해서는 안 될 짓을 놈은 너무나 많이 저질렀다.

“자, 잠깐만! 그만둬! 나, 나는 어머니의 아들이라고!”

“……이제 와서 그 말을 꺼내다니 웃기는 놈일세.”

자기 어머니를 죽이려 했으면서 잘도 그런 말이 나오나 싶다.

내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검을 치켜들자, 녀석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이런 시바아아알!!”

녀석은 내가 검을 휘두름과 동시에 팔을 휘저었다.

필사적인 공격이었지만 내게는 한없이 느리며 어설픈 춤에 불과했다.

푸욱!

“컥!”

단말마를 지르며 한현수가 피를 토했다.

녀석의 가슴에는 심장을 관통한 한 자루의 검이 있었다.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자신의 가슴팍을 꿰뚫은 검을 내려다보던 한현수가 실없이 웃었다.

“흐, 흐흐흐.”

마치 실성한 것처럼 웃는 녀석의 모습에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뭐가 웃기지?”

“좆 같아서 웃었다. 정말로 신의 말이 맞을 줄이야.”

“……뭐?”

“나를 아바타로 만든 신, 하데스는 내게 말했지. 너는 결코 상대가 안 된다고. 그러니 너를 엿먹일 방법을 알려주더군.”

그다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나는 녀석의 가슴에 박아 넣었던 검을 빼려했지만, 녀석은 내 손목을 왼손으로 꽉 움켜잡았다.

“물론 나는 거부했다. 나는 내 실력으로 너를 죽일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거든. 하지만, 아무래도 신이 옳았던 모양이다.”

한현수는 나를 응시하며 입가를 파르르 떨었다.

눈에는 공포가 담겨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분노와 억울함이 느껴졌다.

‘무슨 생각이지?’

한현수는 비록 전투기술이 미흡하지만 능력치만큼은 나보다 훨씬 우위에 있다.

원래부터 나보다 능력치가 높았던 건 물론이며, 하데스가 포인트를 마구 지른 탓에 기본적인 능력만큼은 월등해진 상태였다.

‘그렇다면.’

나는 왼손가락을 튕겨 허공에 허수 공간을 열어 검을 사출시켰다.

날아간 검은 내 오른팔을 잡고 있던 한현수의 머리를 관통했다.

으득!

하지만 내 손목을 움켜쥔 한현수의 손은 풀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설마.’

나는 검이 박힌 한현수의 얼굴을 보았다.

이미 숨을 거둔 녀석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지만, 눈동자만큼은 달랐다.

원념이 느껴졌다.

인간이 아닌, 그 이상의 존재가 나를 보며 노여워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죽은 자의 몸을 조종할 수 있는 자라면 단 하나뿐이다.

“하, 데스.”

“너는 내가 왜 이렇게 하는지 알지 못하겠지.”

한현수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지만, 그것은 한현수가 말한 것이 아니었다.

녀석을 아바타로 선택한 신, 하데스가 녀석의 몸을 조종하고 있었다.

“사실 나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몹시 기분이 더럽더군. 마치 내 아바타가 네놈에게 죽임당한 것이 처음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었지.”

처음 죽임을 당한 게 아닌 것 같다는 말에 나는 순간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이드라처럼 기억을 공유할 수는 없다하더라도 뭔가 느낌을 받기는 하는 모양이다.

아니면, 이드라가 던전을 변화시킨 탓에 일어난 변화인지도 모른다.

확실한 건 현재 내게는 그다지 좋지만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설마 이런 수를 쓸 줄이야.’

이드라의 경우에는 환상을 이용해 자신의 형상을 만들어냈다면, 하데스는 죽은 시체가 된 한현수를 이용해 자신을 빙의시킨 것이다.

물론, 이렇게 있을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을 것이다.

이드라처럼 평소에는 평범한 인간처럼 아무런 힘도 사용하지 못한다거나, 포인트를 대가로 힘을 발휘하는 게 아닌 이상 그럴 수밖에 없다.

비록 빙의지만 하데스는 지금 자신의 힘의 일부를 내게 사용하고 있었다.

“과연 이 상태에서도 죽음의 선고를 막을 수 있을까?”

한현수의 탈을 쓴 하데스의 오른팔이 움직였다.

바닥에 떨어졌던 한현수의 검이 손에 잡히며 사이한 기운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오른팔을 잘라내고 바로 뒤로 뛰어 피한다.’

나는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능력치가 부족한 내가 잡힌 오른팔을 빼낼 방법은 없다.

그렇다면 검을 사출시켜 팔을 잘라내고 피하는 것이 최선.

어차피 이곳에서 팔이 잘린다고 2회차의 내 육신에게도 피해가 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사망은 달랐다.

“얌전히 죽는 게 좋을 거다. 후에 명계에 왔을 때, 내 화를 피하고 싶다면 말이야.”

‘개소리!’

하데스는 소심한 구석이 있는 신이었다.

사소한 일도 결코 잊지 않았다.

이번에 얌전히 칼에 맞아 죽는다고 해도 그리스 신화의 시시포스와 같이 영원히 고통 받으리라.

“아아아──!!”

그때, 이 상황을 지켜보던 지수가 이쪽을 향해 달려왔다. 내가 위험에 처했다는 걸 본능적으로 인지한 건지 눈동자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뭐냐, 대체 저 속도는?”

지수가 이곳까지 오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1초도 걸리지 않았다.

단 두 번, 도움닫기로 뛰는 순간 이미 하데스의 오른팔을 향해 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성을 잃은 광견 따위가!”

“캬아아아!!”

죽음의 선고를 준비하던 하데스도 당황했는지 죽음의 선고를 취소하곤 검을 휘둘렀다.

물론, 그것을 맞아줄 지수가 아니었다.

고양이처럼 몸을 구부려 피한 후, 그대로 용수철처럼 튕겨 달려들었다.

“나이스, 한지수!”

그 틈을 노려 하데스의 팔꿈치 부분을 무릎으로 올려차 부러트렸다.

팔이 부러지자 손아귀의 힘은 자연스럽게 약해졌고 나는 왼팔을 빼낼 수 있었다.

“신이 두렵지도 않은 것이냐?”

“게임폐인 새끼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있나?”

“무례한 놈!”

과거에는 어땠을지 모르나 지금은 신이나 인간이나 같다.

쾌락을 찾아 매달리는 지성을 지닌 존재.

그러니 나는 녀석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개중에 존경할 만한 신도 분명히 있었지만, 이 게임에 참가한 대다수의 신은 하데스와 같았다.

캉! 캉캉캉!

나와 지수의 협공에 하데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본신의 힘이 어떻건 지금은 한현수의 육신에 불과하다.

팔이 부러지고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몸으로 아무리 대단한 힘을 발휘해 봤자 지금의 나를 죽일 수는 없었다.

녀석이 내 오른팔을 놓치는 순간, 이미 상황은 끝난 거나 마찬가지였다.

아마 하데스도 그 사실을 인지했기에 저런 얼굴을 하고 있는 거겠지.

“그래, 인정하지. 이번엔 내 패배로구나.”

이윽고 막다른 상황에 몰린 하데스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그리곤 큰 공격을 날리려는 듯, 오른팔에 마력을 집중했다.

‘저 공격이 발하는 순간, 마무리를 짓는다.’

이미 한현수의 몸은 만신창이였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벌써 열댓 번은 죽었다.

하데스가 육신을 좀비처럼 조종했기에 그나마 이렇게 선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만약을 대비해 몸을 긴장시켰다.

어쨌든 상대는 신이다. 자신의 포인트를 소모하여 어떤 일을 벌일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졌지만, 그렇다고 네놈이 이길 수도 없을 것이다.”

검이 움직였다.

나는 그것에 정신을 집중하며 피할 준비를 했다.

강력한 마력이 응집되며, 죽음의 기운이 단숨에 발산했다.

콰아아아!!

검이 휘둘러지는 순간, 나 역시 하데스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녀석의 공격을 피하며 카운터를 노린 것이다.

촤아악!!

하데스의 목이 단숨에 베어졌다.

아무리 육신을 조종하고 있는 하데스라도 머리가 잘린다면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으리라.

‘웃어?’

녀석의 머리를 자르는 순간, 나는 하데스의 입가에 걸린 미소를 발견했다.

‘설마.’

머리가 잘려나갔지만, 녀석의 팔은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이 나를 향한 것이라면 피하면 그만이다.

문제는 하데스가 마지막에 노린 건 내가 아니었다.

녀석의 목표는, 멀리서 벌벌 떨고 있는 송채연이었다.

“피해!”

황급히 소리쳤지만, 송채연이 그것을 피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죽음의 선고를 마력으로 모아 쏘아낸 마력칼날이다.

살짝 스치기라도 하면 일반인인 송채연으로선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꺄아아악!!”

송채연이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비명을 질렀다.

하데스는 내 목적이 송채연이라는 걸 알고 이런 짓을 저지른 것이다.

‘그림자 질주라도 있었다면!’

현재 내게 저 마력칼날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떨어지는 능력치가 원망스러운 건 처음이다.

허수공간을 열고 사출한다고 해도 막을 수 없으리라.

나는 늦었다.

하지만 단 하나, 구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

“──!”

이미 송채연의 바로 옆까지 접근한 한지수가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지수가 그곳에 있었던 건, 아마 필연적이었을 것이다.

천살성은 살기에 민감하기에 하데스의 시선이 어디로 향해 있는지 나보다 정확하게 눈치챘을 것이다. 이성이 사라진 지수이기에 직감적으로 알았겠지.

다른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우선 달렸다.

그리고 마력의 칼날이 닿기 전, 한지수는 송채연을 밀칠 수 있었다.

이후의 자신이 어떻게 될지는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촤아악!!

붉은 피가 튀었다.

죽음의 칼날은 연약한 인간의 육신을 반으로 갈랐고, 몸의 절반을 잃은 지수의 몸은 바닥을 굴렀다.

그 광경이, 마치 슬로우모션처럼 보였다.

피를 흩뿌리며 무너져 내리는 지수의 모습을 보자 숨이 턱 막혔다.

“한지수……!!”

채연을 밀어내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지수는 채연을 대신하여 하데스의 마지막 일격을 몸으로 받아내야만 했다.

가녀린 허리는 칼날에 반으로 찢겨 상체와 하체가 분리됐다.

바닥에 쓰러져 바르작거리는 지수에게 나는 황급히 달려가 안아 들었다.

송채연이 무사함 따위는 이미 머릿속에서 사라져 있었다.

“왜, 왜 그랬어?”

새빨갛던 지수의 눈은 평소의 검은 눈으로 돌아와 있었다.

파리한 안색이었지만, 검은 눈에는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이성이 깃들어져있었다.

“……오빠가, 지키라고…… 했으니까요.”

“너 이성이……?”

“아파서, 돌아왔나 봐요…….”

지수는 헤헤, 웃었다.

나는 뭐라 말을 할 수 없었다. 확실히 내가 그렇게 말했었지.

송채연을 지키라고.

지금 지수의 행동은 옳다.

그녀는 어차피 내가 몽상의 신전을 나가면 사라질 존재다.

퀘스트의 목적인 송채연을 살리는 게 옳았다.

평소의 나라면 그것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그렇게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

그런데 뭐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잘했다고 말해야할 텐데, 그럴 수가 없었다.

지수의 눈에 담겨있는 나를 향한 애정이 내 입을 막았다.

녀석은 나를 빤히 응시하다가 이쪽으로 천천히 다가오는 송채연을 향해 말을 걸었다.

“엄마…… 괜……찮아요?”

“으, 으응. 지, 지수야.”

송채연은 그런 지수를 보며 복잡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녀도 지수가 곧 숨을 거두리라는 걸 알고 있겠지.

채연의 얼굴에는 딸을 잃은 슬픔이 확실히 나타났다.

거기까지라면 괜찮았겠지만, 그 얼굴에는 다른 감정도 보였다.

바로 ‘안도’.

그녀는 지수의 죽음에 안도하고 있었다.

“송채연……!”

머리에 피가 쏠렸다.

설마 이 상황에서도 저런 반응을 보이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자신의 딸이 목숨을 걸고 구해준 것이 아닌가?

오열을 해도 모자랄망정 안도?

나는 부글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그녀의 시선이 지수에게 닿지 않도록 막았다.

혹시나 지수가 송채연의 얼굴을 보지 않도록.

그런 내 행동에 지수는 옅게 웃었다.

“알아요. 엄마는…… 저를 무서워했으니……까요.”

“……그런 거 아냐.”

“그래도, 그래도 어렸을 때 엄마는 착했어요……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였을까요…….”

지수의 몸이 점차 차갑게 식었다.

그나마 천살성인 그녀이기에 이렇게 오랫동안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차가운 지수의 손을 꽉 쥐었다.

“넌 잘못한 거 없어.”

“네…… 그때도…… 오빠는 그렇게, 말했죠.”

“그때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그녀는 씁쓸하게 웃으며 내가 꽉 쥐고 있는 손 위에 다른 손을 겹쳤다.

“미안, 해요. 오빠. 이제 저는 오빠를 지켜드리지 못할 거 같아요…….”

“……그건 신경 쓰지 마.”

“계속, 계속 지켜드리고 싶었는데…….”

“앞으로는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

“네, 오빠는…… 강하니까요. 분명, 분명 이 게임도 클리어할 수 있을 거예요. 저는, 믿어요.”

지수는 대체 내 어떤 면을 보고 강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녀가 여태 봐왔던 내 모습은 한심하게 도망치고 울부짖던 모습뿐일 텐데.

“끝까지 살아서, 분명 마지막까지 남아서…… 클리어할 수 있어요. 언제나…… 저에게 자랑 했잖아요……. 한번 잡은 게임은…… 반드시, 클리어 한다고.”

본래 1회차의 그녀도 이랬던 걸까?

나에게 살아 있음을 알리지도 못하고 쓸쓸하게 죽어가는 그때까지, 그렇게 믿었던 걸까?

“쿨럭!”

지수는 그렇게 말하곤 작게 기침을 했다.

붉은 피가 입가에 흘러내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탁이…… 있어요.”

검은 눈동자는 나를 똑바로 직시했다.

곧 숨이 끊어질 것 같음에도 시선에는 강한 의지가 담겨있었다.

“절대, 절대로…… 저를 잊지 말아주세요.”

“……보통은 반대 아니야?”

“싫어요, 저는…… 잊혀지고 싶지 않아요.”

손을 겹치고 있던 지수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마 그녀가 낼 수 있는 최후의 힘일 것이다.

강렬한 갈망과 애정이 지수의 눈에 가득 담겨있었다.

“……안 잊어.”

나는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떼어 간신히 말할 수 있었다.

“절대로.”

잊을 수 있을 리가 없다.

1회차를 클리어하던 때까지 나는 지수를 잊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은, 더더욱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지수는 내 말에 담긴 진심을 읽은 모양인지 얼굴에 안도감이 서렸다.

마치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그녀는 맑게 웃었다.

“다행……이다.”

그것이, 지수의 마지막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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