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
105. 아픈 소녀의 사랑(3)
“으, 으으으.”
적막한 집무실 안에 연약한 신음이 들렸다.
목소리의 주인은 바로 한지수의 어머니인 송채연.
그녀는 쓰러진 자신의 아들과 주원을 번갈아 보며 덜덜 떨었다.
자신의 아들도 상당한 실력을 가진 플레이어였지만 저 사내에게는 전혀 상대도 안 됐다.
그토록 강하던 주원조차 제대로 된 싸움조차 해보지 못하고 죽었다.
그것도 일방적으로.
‘죽, 죽을 거야.’
하지만 기절한 자신의 아들을 두고 도망칠 수도 없었다.
플레이어도 아닌 자신이 과연 저 남자의 손에서 아들을 구할 수 있을 리는 만무했지만, 그래도 등을 돌리는 짓을 할 수 없었다.
“아──아.”
그때, 채연은 기이한 걸음걸이로 집무실에 들어오는 여성이 볼 수 있었다.
마치 두 발로 걷는 게 익숙하지 않은 듯 비틀비틀 들어온 여성은 채연을 보더니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갑작스런 상황이었지만 채연은 움직일 수 없었다.
겁을 먹은 것도 있었지만 그 여성이 잘 아는 인물이었으니까.
“지, 지수니?”
“아으.”
인간의 언어를 잊은 것처럼 그녀는 두발로 걷다가 점차 네발로 달리듯 움직여 채연을 꽉 안았다.
그리곤 사랑을 갈구하는 것처럼 그녀의 가슴에 연신 머리를 비볐다.
‘저, 정말 지수가 맞나?’
마치 인간이라기보단 짐승이다.
하지만 얼굴은 그녀가 아는 지수가 분명했다.
‘얘가 대체 왜…….’
본래 이런 애가 아니었다.
조용하고 말없이 자신의 말에 순종하던 아이.
하지만 그것이 연기라는 걸 채연은 알았다.
채연은 그런 지수를 두려워했고 잦은 폭력을 휘둘렀다.
그 탓에 이런 세상이 된 후 차마 지수와 직접 만날 생각조차 못했다.
힘을 얻은 지수가 자신을 해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지수의 모습은 자신을 해칠 것 같지 않았다.
마치 애정을 갈구하는 아이처럼 계속해서 자신을 껴안는 탓에 두려움으로 떨고 있던 몸이 도리어 진정되었다.
“계속 이곳에 있으면 귀찮아질 것 같으니 이동하도록 하지.”
“예, 예? 저, 저도 말인가요?”
“그래, 애초에 난 당신이 필요해서 온 거다.”
채연은 사내의 말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자신이 필요하다니?
의아한 기색이 역력한 채연의 모습에 사내, 세한은 입을 다물었다.
하나하나 설명할 시간 따위는 없었으니까.
‘곧 건물 밖에 있던 더 씬의 길드원까지 올 거야.’
녀석들을 쓰러트리는 건 문제가 아니었지만 자칫 채연이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현재 세한은 일 대 일이면 몰라도 다수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할 기술 따위는 없었으니까.
“실례하지.”
“자, 잠깐! 꺄아악!”
세한은 쓰려져 있는 채연을 둘러업으며 집무실의 창문을 깨고 밖으로 뛰었다.
조금 높았지만 플레이어인 세한이나 지수에게 부담이 되는 높이는 아니었다.
부스럭.
그렇게 세 사람이 사라진 집무실 안에서 누군가가 천천히 일어났다.
바로 기절해 있었던 한현수였다.
사실 중간부터 깨어나 있었지만 숨을 죽이고 기절한 척하고 있었다.
그야 당연했다. 그는 무려 김주원을 죽인 자였으니까.
“……말도 안 돼.”
누구보다 김주원의 실력을 잘 아는 현수는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자신의 누나인 지수도 살아 있었다.
상태가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결코 약한 것 같지는 않았다.
어쩌면 그 두 명은 자신이 깨어난 걸 알았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버려 뒀다는 건 안중에도 없다는 거겠지.
‘내가 이런 피라미 취급을 받다니.’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쓰러졌다.
그것이 너무나 치욕스러웠다.
현수는 그 이유를 자신이 아바타가 아닌 것에서 찾았다.
“악마나 신과 계약만 했더라도.”
신, 혹은 악마에게라도 계약했다면 이렇게 허무하게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은 재능이 있었다. 조금만 있으면 대단한 악마와도 계약할 수 있으리라 추측될 정도였으니까.
“만약 나였다면 달랐어.”
현수의 눈에 죽어버린 주원의 시체가 보였다.
최상위 신의 아바타씩이나 되면서 허망하게 죽어버린 그의 모습이 그저 한심했다.
만약 자신이 그였다면 분명 이겼을 것이다.
자신이 당한 건 어디까지나 스킬이나 능력치가 뒤떨어지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띠링.
“또 뭐야?”
연신 욕설을 내뱉던 그는 갑자기 들려온 알림에 눈살을 찌푸렸다.
누군가에게 쪽지가 와 있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기분이 상한 현수는 거친 손놀림으로 쪽지함을 열었다.
그리고 눈을 동그랗게 뜰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예상치도 못한 존재에게 쪽지가 와있었으니까.
***
나는 한지수의 어머니, 송채연을 업고 더 씬의 본거지에서 적당히 떨어져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마음 같아서는 조금 더 멀리 가고 싶었지만 현재 서울은 절반쯤 쑥대밭이 되어있는 탓에 따로 이동할 곳도 없었다.
“제가…… 지수를 만나러 가야 한다고요? 하지만 지수는 여기에 있는데…….”
나는 최대한 간략하게 설명하고 채연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물론 돌아온 채연의 답은 예상한 그대로였다.
그녀는 내 옆에 찰싹 붙어있는 지수를 복잡한 눈으로 보며 내 눈치를 살폈다.
“그게 설명하자면 조금 복잡합니다.”
나는 채연에게 존댓말로 말했다.
아까는 주원이나 한현수가 있어 반말로 할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최대한 정중하게 대했음에도 채연은 여전히 나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드라 녀석이 나와서 설명해 주면 편할 텐데.’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공중에 떠 있는 이드라의 옵저버는 촬영에 열중하고 있었다.
아마 녀석이라면 이렇게 내가 난감해하는 걸 더 즐기며 지켜보고 있을 확률이 높다.
‘뭐라 설명해야 되나…….’
이 세계는 이미 사라진 과거의 세계이며, 당신은 세계의 기억으로 이루어진 환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말해야 하나?
이드라는 도리어 재밌어했지만 평범한 사람이라면 미쳐 버릴 수도 있는 말이다.
하물며 송채연은 정신적으로 약한 인물이었다.
섣불리 그런 말을 꺼냈다가는 큰 악수로 작용하게 되리라.
‘시간 없는데.’
나는 슬쩍 지수를 보았다.
그녀는 이곳에 나와 채연이 함께 있는 것만으로 즐거운지 무척 기분 좋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아.”
“?”
“너한테 뭐라 하는 거 아냐.”
지수를 보며 한숨을 쉬자, 웃고 있던 지수가 무슨 일이냐는 듯 가까이 다가와 팔에 달라붙었다. 자신의 탓이라 생각했는지 웃음을 지우고 내 팔에 머리를 슥슥 문댔다.
“지, 지수가 저렇게 사람을 따르다니.”
“당신이 다가가면 똑같이 할 겁니다.”
“저는 돼, 됐어요.”
여전히 지수에게 겁먹은 얼굴이었다.
예전에 대체 지수에게 무슨 짓을 했던 거야?
“학대와 같은 걸 한 건가?”
“네?”
“아! 죄송합니다. 입 밖으로 말하고 말았군요.”
“……아뇨.”
무심코 입 밖으로 세어 나온 말에 채연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 어두운 얼굴이 내 추측에 힘을 실어줬다.
‘학대했네.’
그것도 보통 한 게 아니다.
저런 타입의 인간이 폭력을 썼다면 자신의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했을 확률이 높다.
두려움에 빠진 인간이 얼마나 잔인한 짓을 할 수 있는지, 나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쯤 되자 솔직히 짜증이 치밀었다.
지수는 내게도 소중한 사람이었다. 이번 일을 겪으며 그것을 깨달았다.
평소의 나라면 지수를 굳이 이렇게 구하려 하기보단 좀 더 간편한 길을 택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지수를 죽인다거나.
분명 지수는 중요한 파티원이고 뛰어난 인재였지만 그건 내 합리화에 가까웠다.
나는 지수를 대체할 다른 인물도 머릿속에 생각해 두고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건 그만큼 내가 지수를 소중히 생각하며 결코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증거였다.
‘지수가 어머니를 좋아하는 게 도무지 이해가 안 되네.’
이런 인물을 위해 그토록 폭주했던 건가?
“엄──마, 미─워하지──마요.”
“……그런 거 아냐.”
무심코 그런 내 마음이 시선에 담겼는지 지수가 옷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그런 지수의 말에 내 시선에 잔뜩 긴장해있던 채연의 얼굴이 묘해졌다.
“지, 지수야. 너는 왜…….”
그녀로서도 그런 지수의 말이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채연을 좋아하는 건 물론, 내 시선으로부터 지켜준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지수는 그런 채연의 말에 살그머니 고개를 돌리며 떠듬떠듬 입을 열었다.
“엄, 마도 내──가 어렸을─ 때는 착─했어─요.”
“…….”
채연의 시선이 크게 일렁였다.
설마 지수가 이렇게 말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한 모양이다.
내게 겁먹었던 얼굴은 이내 울먹임으로 변했다.
그리곤 내 눈치를 살피며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왔다.
“너는 대체 왜…….”
그건 채연으로선 분명 용기를 쥐어짠 행동이었을 것이다.
지수에게 직접 한 걸음 다가간다는 건 지금의 채연에게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런 채연의 행동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멈춰!”
나는 큰 소리로 채연을 만류한 후, 지수의 몸을 잡아당겨 크게 뛰었다.
콰콰쾅!!
천장이 반으로 갈라지며 마력의 칼날이 대리석으로 된 바닥을 반으로 쪼갰다.
방금 내가 서 있던 자리에 긴 실선으로 이루어진 흔적이 남아 있었다.
“히, 히익.”
채연은 벌벌 떨었지만, 나는 그녀를 위로해 줄 수 없었다.
왜냐면 부서진 천장의 위로 한 남자가 서 있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한현수, 너.”
“크, 크큭! 설마 그걸 피하다니. 하긴 그 정도로 죽으면 재미없지.”
분명 내가 쓰러트렸던 한 현수가 사슬낫을 들고 서 있었다.
분명 저 무기는 주원이 사용하던 무기다.
‘그뿐만이 아니야.’
녀석의 기도도 달라져 있었다.
한현수는 저 정도로 강력한 힘을 지닌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저건 최소 주원과 같거나, 그 이상.
평범한 플레이어는 이렇게 단시간에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현질했네.’
누군가가 한현수를 아바타로 선택하고 막대한 포인트를 질러 한현수를 강화 시킨 것이다.
신이 포인트를 지원하는 건 한계가 있었다. 짧은 시간에 무리하게 연속해서 투자하면 기하급수적으로 들어가는 포인트가 상승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 정도로 상승했다는 건 하데스가 한현수에게 오지게 포인트를 꼴아 박았다는 소리다.
“나를 죽이기 위해서인가?”
“정확히는 내 힘을 시험하기 위한 실험용 생쥐일 뿐이지. 나는 어마어마한 힘을 손에 넣었어. 이제 누구에게도 구속받지 않을 힘을 얻었지. 넌 그저 지나쳐갈 뿐인 장애물이다. 뭐, 내게 이 힘을 준 신의 요청도 있었지만 말이야.”
“방금 네 공격은 나뿐이 아니라 네 누나와 어머니도 위험한 공격이었다. 미친 거냐?”
“그럴 리가. 나는 제대로 노렸어. 성가신 누나와 짜증나는 어머니를 함께 처리하려 했지. 네가 방해했지만 말이야.”
한현수의 눈이 광기로 번들거렸다.
2회차에서 보았던 녀석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의 녀석의 광기는 정돈되어 있었지만, 지금의 녀석은 그것을 주체하지 못했다.
‘되도록 죽이고 싶지 않았는데.’
지수의 가족이기도 했고, 함부로 죽였다간 채연을 설득하기 힘들어질 확률이 높아 한번 살려줬다. 하지만 설마 이렇게 하데스와 계약하고 돌아올 줄이야.
분명 하데스도 자신의 우수한 아바타를 죽인 나를 죽이기 위해 이런 짓을 벌였을 것이다.
1회차의 김주원은 별다른 짓도 못하고 죽은 탓에 하데스도 깊게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지만 지금은 달랐다.
한국에서도 손꼽히는 플레이어였고 서울이 어둠을 휘어잡은 뒷세계의 왕.
하데스는 분명 즐겁게 플레이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등장한 놈에게 허무하게 죽어버렸으니 화가 치밀어 올랐던 거겠지.
그래서 가장 가까이에 있던 나름 재능이 있던 플레이어, 한현수에게 현질을 하고 나를 죽이라 명한 것이다.
‘죽일 수밖에 없겠어.’
그렇게 되면 채연이 더더욱 나를 두려워하게 될 테지만 이놈을 살려두면 설득할 시간조차 없을 것이다.
“한지수, 네 어머니를 지켜.”
“아──아.”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지수가 단숨에 채연을 향해 달렸다.
현수는 그것을 지켜보며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마치 언제든 죽일 수 있다는 얼굴이다.
나는 한숨을 쉬며 검을 손에 쥐었다.
“하아, 귀찮은 놈.”
“……귀찮다고? 하, 아직 상황 파악을 못한 모양이야.”
상황파악을 못한 게 대체 누구라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짠한 눈으로 바라보자 이를 아득 깨문 한현수가 외쳤다.
“넌 이제 그냥 피라미일 뿐이다!!”
녀석이 모습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주원이 사용했던 스킬, 퀴에네다.
카앙!!
“뭐?!”
하지만 나는 녀석의 공격을 태연히 막아냈다.
경악한 한현수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며 연신 격렬한 금속음이 건물 안에 울렸다.
캉! 카캉! 캉!
우측, 좌측, 후방, 그리고 앞.
모든 각도에서 사슬낫이 휘둘러졌지만 난 태연히 막아냈다.
능력치가 부족하여 손이 저릿했지만 비켜서 힘을 흘려낸 탓에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뭐, 뭐야. 대체 어떻게 막는 거야?”
“어떻게 막냐고?”
그야 보이니까 막지.
이놈은 아무래도 머리가 좀 나쁜 모양이다.
자기가 먼저 천장을 반토막 내버린 탓에 부서진 천장에서 석회가루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뿌연 방안에서 투명해진 녀석이 움직일 때마다 석회가루가 밀려나며 움직였고.
나는 그 방향을 예측해서 막으면 그만이었다.
서걱!
“아악!”
결판이 나는 건 금방이었다.
애초에 한현수는 주원보다 전투기술도 한참 아래였고 경험도 부족했다.
팔에 큰 상처를 입은 한현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도 사슬낫을 바닥에 떨어트리지는 않았지만, 이미 승패가 난 거나 마찬가지였다.
“큭! 크악! 으아아아아!!”
내가 연신 검을 휘두르자 녀석은 내 공격을 연신 막아내기 바빴다.
반격? 그런 건 사치다.
능력치의 높고 낮음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수준 차가 너무 심했다.